< 781.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1- >
***
"그러니까 정우야, 업소 뛰는 애들은···."
끈적한 터치.
말이 마담이지 최마담은 끽해야 30대 중반의 농익은 여인이었다. 여자로서 성욕이 절정에 이른 나이니만큼 노골적인 욕망을 고스란히 쏟아냈다.
"자존심을 건드려선 안 돼."
"자존심이요?"
나는 그녀의 은근한 스킨십을 모르는 척 받아주었다.
거부했다간 괜히 어색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최마담은 3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미인이었다. 자고로 예쁜 여자가 알아서 만져주는 데 굳이 거부할 필욘 없었다. 이래서 여자의 성추행 범죄가 드문 것이다. 남자들은 어지간해선 수치심을 못 느끼거든.
"나도 그쪽 일 오래 해서 아는데, 은근 자격지심 같은 거 있어."
"자격지심이라면···."
"쉽게 말해 스스로 천한 일을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거지."
"음."
"사람들이 흔히 그러잖아. 밤에 피는 꽃이라고."
"네. 야화라고 들 하더군요."
"근데 그 꽃을 함부로 꺾고 짓밟는 사람은 세상엔 너무 많아."
"무슨 뜻인지 잘."
나의 무대응을 긍정으로 여겼던지 최마담의 터치가 점점 농밀해졌다. 손등에서 시작한 스킨십은 이제 은근슬쩍 팔꿈치로 올라왔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팔꿈치 주름진 곳을 장난감처럼 주물렀다.
"막말로 돈만 주면 누구나 꺾을 수 있는 꽃이잖니."
"하긴 뭐."
"근데 이런 일 한다고 취향이 없겠니? 우리도 똑같은 여자야. 당연히 마음 가는 사람은 따로지."
"그렇겠죠."
"하기도 싫은 섹스를 돈 때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봐. 오늘은 이놈에게 박히고, 내일은 저놈에게 따먹히고. 그런 게 은근 사람 자존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리거든. 내가 돈 때문에 이렇게 구차하게 사는구나, 하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요."
최마담의 끈적한 손은 이제 삼두를 주무르고 있었다. 단단한 근육이 마음에 드는 듯 그녀의 입술이 벌어지며 뜨거운 입김이 스며 나왔다. 만지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짝 발그레해진 두 볼이 나이답지 않게 귀여웠다.
최마담이 뜨거운 숨을 한 번 내뱉더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조심해. 상처받은 여자는, 누구보다 악독해지기 마련이니까."
"누님도 혹시 그러셨어요?"
"응?"
의외의 질문이었을까?
최마담의 터치가 잠시 중단됐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니?"
"아니, 현역 시절에요. 이런 데 놀러 오면 막 받은 걸 돌려주고 싶으셨어요?"
최마담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럴 때도 있었지."
"그런 때도요?"
"물론 지금은 아니야."
"아."
"따지고 보면, 우리같은 여자들이나 너희들이나 다 불쌍한 사람들이거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 게 맞지. 안 그래?"
이제 최마담의 터치가 더욱 대범해졌다.
특히 ‘서로 돕고’라고 말하는 타이밍에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든 손이 나의 가슴을 꽉 주물렀다. 내가 여자였다면 성추행이라고 해도 무방할 행동이었다.
"넌 몸이 참 단단하구나?"
"감사합니다."
"어머, 미안.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네."
"그러니까요, 새우깡도 아니고."
"새우깡?"
"자꾸만 손이 간다면서요? 손이 가요, 손이 가."
뜬금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자 최마담이 빵 터졌다.
"호호, 너 말 디게 재밌게 한다. 웃겨."
"감사합니다."
"기분 나쁜 건 아니지?"
"상관없어요.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호호. 말도 예쁘게 하는 것 좀 봐. 난 너처럼 단단한 아이가 좋더라? 남자답게 우직하고."
두 볼이 상기된 최마담이 불쑥 주변을 살피더니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오늘 퇴근하면 나랑 얘기 좀 하다 갈래?"
"저랑 사장님이랑요?"
"응. 실은 술한잔 하고 싶은데 같이 마셔줄 사람이 없네. 다음 주에 최마담 언니 복귀하면 이제 다시 보기 쉽지 않을 것 같고."
으음, 설마 이건.
"괜찮으시겠어요? 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호호. 어차피 난 너희들 다 퇴근시켜야 마감치는 사람이야. 그보단 정우 네가 체력이 될지 걱정이네. 업소애들 상대하다가 진 빠지는 건 아닌지 몰라?"
나는 행간을 읽었다.
최마담의 제안은 노골적인 유혹이다.
어차피 임시 마담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이.
새벽 4시가 넘어 남녀가 단둘이 술을 마신다?
최종 목적지는 불 보듯 뻔했다.
[최마담이 주인님을 유혹하는 건가요?]
‘네가 봐도 그렇지?’
[네. 어제의 면접이 강렬하긴 했나 보군요.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일단 보험 삼아 놔둬보자. 나도 이번 미션 길게 끌고 갈 생각 없으니까.’
[그 말씀은.]
‘오늘 동탁이 지명 손님 모두 3명이랬잖아. 어제처럼 셋다 한방에 조지면 5명 채우는 미션까지 완료할 수 있으니까.’
[그 말 진심이십니까?]
‘못 할 건 또 뭐야? 쓰리썸에 한 명만 더 추가하면 포 썸인거지.’
[주인님 혼자만 셋을 상대하는 게 아닙니다. 어제 함께 한 현성군과 가게 간판인 동탁군도 있는 걸요.]
‘알아. 그래서 더 해보고 싶은 거야. 동탁이고 나발이고, 한 번 제대로 붙어 보고 싶어서.’
[오호. 드디어 진검승부인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패널티 매치랄까. 난 힘을 숨긴 상태니까.’
[그렇다면 자연인 이정우와 호빠 에이스 조동탁의 대결이라고 봐야 겠네요.]
‘두고 봐. 내가 어떻게든 오늘 밤 안에 미션 클리어 시키고 만다.’
나는 각오를 다지며 마담에게 답했다.
마담은 내가 3인 미션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다.
"하하,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체력 하나는 끝장나거든요. 걱정 마세요."
"그래? 믿어 봐도 돼? 나 진짜 기다린다?"
"네."
그때 카운터에 호출 벨이 울렸다.
마담이 룸넘버를 확인하더니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정우야. 지금 현성이 데리고 1번 방으로 들어가야겠다."
"아, 저희 호출이군요."
"다시 말하지만, 걔들 자존심만 건드리지 마. 그럼 괜찮을 거야."
"네, 명심할게요."
나는 대기실에 죽치고 있던 현성을 데리고 오빠호빠에서 가장 호화롭다는 1번룸의 문을 열었다.
***
"오빠, 애들 상태 좋은 거 확실하지?"
장미가 동탁에게 재차 물었다.
새로 옮긴 가게에서 손에 꼽히는 동생들을 끌고 온 만큼, 두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재초이스 해도 된다니까 그래."
"지명해 놓고 어떻게 그래?"
같은 유흥업에 종사한 입장이다 보니 지명을 뺀찌 당할 때의 굴욕감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 알았다. 초이스를 당했다가 튕기는 것도 서러운데, 지명으로 불렸다가 축객령을 받으면 자존심에 타격을 입는다.
장미는 동탁이 재초이스를 너무 쉽게 입에 올린다고 생각했다.
‘뭐지, 이 오빠는? 친한 동생들이라더니. 후배들 아낄 줄을 모르네.’
장미는 새끼마담이다.
필드를 뛰기도 하지만, 업소를 관리한다는 마인드도 강하다.
유흥업에서의 관리라는 건 다름 아닌 사람 관리다.
룸이라면 업소녀를, 호빠라면 선수를 관리하는 게 일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어차피 양주야 들어가는 것 다 똑같고, 안주라고 해봐야 기발할 것도 없다. 인테리어는 조명 몇 개 깔아서 적당히 분위기만 잡으면 분간도 잘 안 된다.
결국 단골을 상대하는 마담의 역량과 가게의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인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 인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이 상품은 단순한 물건과 다르다.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보니 소위 멘탈 관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몸 팔고, 웃음 팔아 돈버는 직업이라지만 자존심은 지켜 주어야 한다.
지명을 시켜놓고 내쫓아도 된다는 건 상식 이하의 행동이다.
"이제 한 번 불러봐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윤솔이 말했다.
금테 안경을 쓴 그녀는 대기업 비서처럼 깔끔한 오피스 룩 차림이었다. 블라우스 사이로 터질 것처럼 튀어나온 젖가슴에 동탁이 혀를 내둘렀다.
‘햐. 젖탱이 실화냐? 장미가 이번에 작정하고 에이스만 데려 왔구나.’
윤솔 옆에서 애들처럼 과일을 집어 먹고 있는 여름 또한 만만치 않은 외모였다. 그녀는 얼핏 보면 철부지 20대 대학생처럼 보였는데, 개구진 눈동자 속에 묘한 색기가 흘렀다.
도발적이랄까?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언제 튀어나갈지 몰라 조마조마한 사춘기 소녀같은 풋풋함이 남아 있었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발그레한 두 볼이 남자로 하여금 따먹고 싶은 충동을 일으켰다.
‘쟤도 만만치 않네. 와꾸가 무슨 현역 아이돌 급이야.’
두 사람의 눈부신 외모에 동탁은 문득 장미를 쳐다보았다.
장미는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동탁이 빠르게 호구조사를 해보니, 여름은 스물셋. 윤솔은 스물 여섯이었다. 그리고 장미가 스물 일곱.
‘일곱은 씨발, 알고 고면 나보다 누나 아냐?’
화류계에서 실제 나이보다 후려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동탁은 장미가 나이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예전에 한번 2차를 나갔을 때의 충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젖꼭지도 거무튀튀하고, 특히 흑보는 좀.’
장미가 한때 흑장미로 불렸던 이유는 멜라닌 색소 침착으로 흑두에 흑보였기 때문이다.
‘하여간 장미가 셋 중 가장 후지네. 오늘은 꼭 파트너 바꿔서 나가야지.’
"그럼 부릅니다."
안에서 벨을 누르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선수 두명이 입장했다. 먼저 들어온 것은 현성. 곱상한 외모가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유형의 선수였다.
에이스급은 아니어도 제법 잘나가는 현성을 보고도 세 여자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겨우 저거?
대충 그 정도의 표정이었다. 일단 현성이 에이스급이 못 된 이유는 얼굴보다 체형에 있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취향이라면 모를까, 깡마른 체구는 아무래도 남성성이 다소 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현성에 이어 도훈이 등장하자 세 여자의 기대는 실망을 넘어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게 선수라고?
직설적인 성격의 윤솔은 보자마자 툭 내뱉었다.
"방 잘못 들어오신 거 아니에요?"
"네?"
"웨이터 아니죠?"
"아닌데요."
"하-. 참나."
윤솔은 실망감 가득한 표정으로 곧바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그 모습을 본 동탁이 유들유들하게 상황을 모면했다.
"아이고, 초면부터 장난이 심하시네. 일단 다들 앉아. 현성이 넌 이쪽으로. 정우가 저쪽에 앉아라."
동탁은 현성을 여름 옆에. 그리고 도훈은 가장 시니컬한 반응을 보인 윤솔 옆에 앉혔다. 자신은 일단 장미 옆에 앉아 있었다.
"자자, 어차피 초이스도 아니니 일단 각자 파트너랑 소개팅 한 번 하시고요."
"잠깐요. 지금 파트너 지정된 거예요?"
도훈이 마음에 안 드는 지 윤솔이 즉각 반발했다. 동탁은 여전히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아뇨. 선수들끼리 모였는데 그런 법이 어딨어요? 적당히 돌릴 거에요. 자, 나는 장미랑 오붓하게 한 잔 할테니 서로 얘기들 나누세요."
동탁이 장미에게 술을 권하는데 장미의 시선이 윤솔의 옆에 앉은 도훈에게 쏠려 있었다.
"저 애 이름이 뭐라 그랬어?"
"응?"
장미의 반응이 미묘하다고 느낀 동탁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 아는 사람이야? 정우라고해. 이정우."
장미는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하며 연신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는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겨서. 근데 아니겠지."
장미는 도훈을 처음 보고 살짝 놀랐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아니라, 목소리가 굉장히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깜짝 놀랐네. 그때 나이트에서 만난 기둥이라는 애랑 목소리가 똑같아서.’
체격도 엇비슷했다.
손으로 얼굴만 가리면 나이트에서 만났던 기둥하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때 걔는 되게 잘생겼었으니까.’
하지만 얼굴이 전혀 달랐다. 몇 달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해도, 저렇게 빻은 얼굴은 절대 아니었다.
장미의 시선을 느낀 도훈은 사실 속으로 더 놀라고 있었다.
‘뭐야? 동탁의 지명 손님이라는 사람이 설마 쟤였어?’
[맞죠? 저번에 나이트 만났던 3인조 중에 한 분.]
‘확실해. 설마 내가 같이 잤던 여자 하나 기억 못 할까 봐.’
장미는 도훈의 바뀐 얼굴을 못 알아 봤지만, 도훈은 확신했다. 그녀는 맨몸으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이트 조각모음을 했을 때 스스로를 텐프로라고 소개한 업소녀 중 하나였다.
아이비, 재스민, 로즈.
‘그래. 기억났다. 로즈! 그 흑두에 흑보.’
[아아!]
‘와씨, 하필 여기서 만나냐. 설마 날 알아보진 못 했겠지?’
[주인님을 자꾸 힐끔거리는 게 의심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들키면 미션이고 나발이고 다 틀어지게 돼. 가만, 근데 로즈면 이번 미션 대상 자동 제외아니야?’
[그렇죠. 빻은 얼굴 미션은 주인님 얼굴이 변한 상태로 처음 만난 대상의 경우에만 해당 됩니다. 지난 번에 만난 로즈양이 맞다면 애초에 이번 미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하, 최악이네. 미션은 그렇다 치고, 괜히 다른 애들한테 말해서 파토내면 어떻하지?’
도훈이 속으로 안절부절하는 데 로시가 말했다.
[헌데 주인님. 지금은 로즈양보다 눈 앞에 파트너부터 신경쓰셔야 하지 않을지.]
‘아차, 내 정신 좀 봐. 당황해서 아직 인사도 못했네.’
도훈이 뒤늦게 실수를 깨닫고 윤솔에게 고개를 돌렸을 땐, 윤솔은 이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하, 진짜 어이가 없어 가지고. 여기 왜 왔어요?"
윤솔이 공격적으로 물었다.
< 781. 빻은 얼굴도 할 수 있어.-3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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