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4. 아이돌 vs 돌아이-57- >
확실히 린다의 행동거지엔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베란다에서 변태를 발견했다면서 호들갑을 떠는가 하면, 갑자기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어?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네?’하고 시치미를 뚝 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였나 보구나.’
그리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겁지겁 남은 족발을 순삭 시키더니 서둘러 자리를 파장했다. 당시엔 이해가 안 됐는데, 도훈을 집안으로 들이기 위해 수를 쓴 것이라고 생각하자 아귀가 착착 맞았다.
‘이것들, 재밌게 노는데?’
그제야 린다의 술책을 깨달은 링링이 드라이로 젖은 머리를 말리더니 옷장을 뒤졌다. 그녀의 눈은 오랜만에 먹잇감을 발견한 사냥꾼처럼 빛났다.
***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모르고 도훈은 제희와의 섹스에 한창이었다.
‘슬슬 마무리를 해볼까?’
벌써 5번이나 체위를 바꿔가며 제희를 마음껏 휘둘렀다.
목표는 떡실신.
제희가 혼절할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
"으으으으으!"
제희를 바닥에 눕힌 도훈이 힘차게 내려찍었다.
물레방앗간에서 절구질하듯 묵직한 대물이 쿵쿵- 소리를 내며 제희의 밑을 공략했다.
제희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렸다.
‘가라, 얼른 가버려!’
온 힘을 다한 도훈의 내려찍기에 마침내 제희가 오르가즘이 왔는지 도훈을 꼭 껴안았다. 그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쾌락에 헐떡이며 부들부들 사지를 떨었다.
도훈 역시 절정에 이르렀다.
그는 재빨리 물건을 빼 제희의 새하얀 배 위에 뜨거운 정액을 벌컥벌컥 쏟아냈다.
"큭-."
전립선으로 찌릿한 감각과 함께 허무감이 밀려왔다.
격렬한 섹스 후에 찾아오는 후폭풍이었다.
"끄어."
결국 실신한 제희 옆으로 도훈 역시 벌러덩 쓰러졌다.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격렬한 한 판이었다.
[애피타이저라더니 시작부터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그럼 어째. 제희를 재우지 못하면 어차피 뒤가 없는데.’
[제희 양도 제희 양이지만, 이러다 주인님이 먼저 쓰러지시겠습니다.]
‘그러면 곤란하지. 그나저나 커피라도 한 잔 때렸으면 좋겠네. 혹시 마켓에 각성제 종류 없나?’
[없을 리가요. 드링크, 정제, 주사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습니다.]
‘주사?’
[스팀팩이란 아이템인데 말 그대로 맞는 순간 "아~예"가 절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뽕 맞은 느낌인가 보네. 주사는 너무 갔고, 정제는 마실 물이 없으니 드링크로 가자.’
[넵. 24시간이 모자라, 드링크입니다. 마시는 순간 에스프레소 열 잔을 동시에 때려 부은 것 같은 강력한 각성 효과를 유발하며 뒤끝 또한 없습니다. 가격은 500포인트구요.]
‘괜찮네. 자주 애용해야겠는데?’
[몸에 무리가 없다는 소리지 어차피 부족한 잠은 언제든 채워야 합니다. 체력을 당겨쓰는 효과 말고는 의미가 없지요.]
‘그런거야 뭐.’
오늘만 보고 사는 도훈은 쌕쌕거리며 잠에 빠져든 제희를 쳐다보며 24시간 모자라 드링크를 꿀꺽 삼켰다. 마시는 순간 두 눈이 개안하는 것처럼 세상이 명료해졌다. 피곤했던 심신이 다시 활력이 샘솟는 듯했다.
‘우오! 이 정도라니! 커피랑은 비교도 안 되네?’
[강제 각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뿐입니다. 체력이 보충되는 것은 아니니 정력 관리에 유념하십시오.]
‘아직 거뜬해. 제희 하나쯤이야 뭐.’
도훈은 알몸으로 널브러진 제희에게 이불을 덮어주고는 벗어 던진 겉옷을 걸쳤다. 린다를 이용해 숙소를 침투하고, 제희를 통해 은신에 이르렀다. 이제부턴 오늘 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미소와 링링의 공략이 남아있었다.
[그나저나 계획은 있으신 거죠?]
‘무슨 계획?’
[설마 아무 계획도 없이 여기까지 들어온 겁니까?]
‘당연히 그건 아니지.’
[그럼요?]
‘이게 바로 계획이야.’
도훈이 바짓가랑이를 가리켰다.
바지춤엔 한바탕 물을 빼고 축 늘어진 대물이 들어 있었다.
[···예?]
‘어차피 여기 들어온 이상 이걸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말이야.’
[아니 이렇게 무대뽀로···.]
물론 도훈이 완전한 무대책은 아니었다.
그는 섹스 후 생성되는 운빨 대폭발 스킬을 믿고 있었다.
괜히 공들여 에피타이저를 시식한 게 아니었던 것.
도훈의 바람이 통했을까? 잠든 제희 몰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문 앞에 나이트가운을 입은 링링이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네."
"엇!?"
도훈은 갑작스레 등장한 링링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는 마치 도훈의 잠입을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훈의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읏. 운빨 대폭발일까, 운빨 좆망인건가?’
"아까 야식 배달하던 사람, 오빠 맞죠?"
"아, 아니 그러니까···. 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훈에게 운빨 대폭발 스킬이 있다면, 내기의 상대는 신이라 불리는 존재.
이번 승부를 위해 얼마든 상황을 악화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도훈은 만에 하나 링링이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눈앞이 까마득해졌다.
‘아놔, 젠장 위기탈출 No.1이라도 찍어야 하는 건가.’
"나한테 변명할 생각 마요. 린다 언니가 몰래 오빨 끌어들인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그, 그걸 어떻게?"
도훈의 링링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데 깜짝 놀랐다. 이 무표정한 중국 여자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눈치가 빠른 타입같았다.
링링은 고개를 내밀어 슬쩍 제희의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침대에 널브러진 제희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근데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어째서 오빠가 제희 방에서 나오느냐는 거죠. 린다 언니가 아니고요."
"음···. 링링. 그건 내가 설명할 수 있어."
도훈은 링링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자칫 말실수했다간 걸그룹 숙소를 난입한 변태로 몰릴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좋아요.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따라와요."
"응?"
"여기 서서 얘기할 건 아니잖아요? 제 방은 1층이에요."
"아, 아···."
링링이 그 말을 남기고 앞장섰다.
얇은 나이트가운 사이로 그녀의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탐스러운 엉덩이와 개미처럼 잘록한 허리가 눈을 못 뗄 정도였다.
일부러 그런 의상을 택한 것인지 실루엣만으로도 남자를 홀리게 만들었다.
도훈이 머뭇거리자 링링이 돌아서서 다시 말했다.
"뭐해요? 안 따라오고."
"그래."
어차피 도훈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다만 이것이 승부의 신의 농간인지, 아님 운빨 대폭발의 효과인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호랑이 굴에 끌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고 했으니까.’
링링은 여느 아이돌과 풍기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나이는 다른 멤버보다 어린데,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이 났다. 다른 여자들이 이제 갓 성인이 된 풋풋한 새내기 같다면 그녀는 10년은 더 무르익은 성숙한 여인처럼 여겨졌다.
‘하긴, 지나온 삶의 역정부터가 남다를지도.’
도훈은 정보창을 통해 본 그녀의 과거를 떠올렸다.
아무리 대륙의 기상이 대단하다지만, 그녀의 삶은 그중에서도 기구할 정도로 불행의 연속이었다. 평범치 않은 삶을 살아왔으니만큼 당연히 생각이나 사상도 독특할 것이다. 도훈은 이 점에 기대를 걸었다.
‘자기 방으로 끌어들이는 걸 보면 일단 최악은 아니야.’
링링의 방은 전체적으로 붉은 톤이었다. 특이하게도 호롱등 같은 조명이 천장에 매달려 내려와 있었다. 그밖에도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가구들로 가득했다.
도훈이 멀뚱히 방 구경을 하자 링링이 고동색 나무 의자를 내밀었다. 그녀의 화장대 앞에 놓여 있던 물건이었다. 도훈이 유심히 보니 화장대도 요즘 것 같지 않게 고풍스럽고 클래식한 디자인같았다.
"거기 앉아요."
"으, 응."
도훈은 심문을 받는 사람처럼 방 한가운데 의자에 앉았다.
링링은 화장대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좀 특이하죠? 인테리어가."
"그러네."
"본토에서 살던 그대로 옮겨왔어요. 한국 가서도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
"아···."
도훈은 그제야 링링의 방이 중국풍으로 꾸며진 이유를 깨달았다.
타국에 있지만, 떠나온 고향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가 느껴졌다.
"자, 그럼 어디 한번 말해봐요.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셋 사이에."
셋이란 도훈과 린다, 그리고 제희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 그녀는 상당 부분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도훈은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그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었어."
"미소 사촌오빠 말이군요."
"응. 종현이 군대 가기 전."
도훈은 대답을 하면서도 링링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정신없이 머릴 굴렸다.
‘솔직한 편이 좋겠지?’
[다 밝히시려고요?]
‘링링이라면 이해하지 않을까 싶어서.’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적당히 양념을 쳐야지.’
"계속해봐요."
링링이 흥미롭다는 듯 다리를 꼬았다. 미끈한 다리가 가운 사이에서 올라가는데 허벅지 사이로 가터 펠트가 보였다.
‘응?’
링링은 희한하게도 나이트가운을 입고 스타킹을 신은 채였다.
뭔가 위화감이 들었지만, 도훈은 내색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갔다.
"그날 노래방에서부터 제희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더라고."
"호오."
"내가 노래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 봐. 제희는 노래를 좋아하니까."
"랩을 잘하긴 하더군요. 제희 언니가 마음에 들어할만 해요."
"근데 문제는 동시에 린다도 나를 찍었다는 거야."
"언니는 좀 티가 나더라고요. 그래서요?"
"2차 때 클럽을 갔을 때···."
도훈이 한 호흡 끊었다.
지금부터 링링의 의중을 명확히 파악해야 했다.
‘링링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야. 오히려 자극적인 얘기에 흥미를 보일지도 몰라.’
[도박을 걸어 보시는 건가요?]
‘도박이라기보단 확률이지.’
도훈이 대강의 사정을 건너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린다랑 둘이 호텔로 방을 잡은 상태로 제희를 불렀어."
"그럼 셋이 같이 즐겼겠네요?"
예상대로 링링은 쓰리썸을 했다는 데도 크게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화장대에서 내려와 도훈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는 별로 였나요?"
"어, 어?"
"그날 오빠 후배라는 사람이 저한테 작업을 걸더군요. 자기랑 한번 자자고."
‘억, 우선이 이 새끼. 정말 막 나갔구나.’
"그때 생각했어요. 아, 나는 오빠한테서 배제된 거구나."
"아니야."
"뭐가 아니죠?"
링링이 다리를 들어 올리더니 도훈이 다리 사이에 들이밀었다.
가운이 말아 올라가자 허벅지 안쪽이 훤히 드러났다.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으슥한 곳을 쳐다보며 침을 삼켰다.
링링이 발끝을 세워 도훈의 가랑이 사이를 압박했다.
"말해봐요. 뭐가 아닌데요?"
"그땐···. 우선이가 너무 너를 원했어."
"저를요?"
‘우선아 미안하다. 없는 자리선 나랏님도 판다는데 너 좀 팔자.’
"둘이 노래방에 화장실 갔을 때 그러더라고. 링링 네가 마음에 든다고."
"그래서요?"
링링의 발끝이 점점 앞으로 밀려오며 도훈의 물건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가랑이를 더욱 벌리며 엉덩이의 의자 끝까지 붙여 뒤로 물러섰다.
"어쩔 수 없이 양보했지. 난 우선이가 여자한테 그렇게 관심 갖는 것 처음 봤거든."
"양보란 말을 참 쉽게 하시네요. 제가 무슨 물건인가요?"
링링이 눈썹을 치켜뜨며 가랑이 사이에 발을 붙였다.
발닥이 사타구니를 압박하며 도훈의 물건이 그녀의 발에 자근자근 밟혔다.
"흑!"
"그런 뜻이 아니고, 난 평소에도 여자들 자주 만나니까···."
"자주 만나니까 나는 양보해도 괜찮겠다?"
링링은 이제 대놓고 도훈의 물건을 발로 조물락 거렸다.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밟아대자 도훈이 수치심에 귀 밑까지 달아올랐다.
‘뭐, 뭐야 이건. 왜 내가 취조를 당하는 기분이지?’
[어쩔 수 없죠. 링링양은 지금 무단침입한 주인님을 협박하는 셈이니까요.]
‘젠장. 근데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야릇한 분위기에 도훈이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기력을 잃었던 대물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링링 역시 도훈의 발기를 느꼈는지 입매를 비틀며 웃었다.
‘역시 제법이란 말이지?’
링링은 자라나는 새싹을 짓밟는 것처럼 계속 도훈의 대물을 억눌렀다.
"아니야. 나도 너를 고르고 싶었어."
"거짓말."
"네가 우선이한테 키스하는 걸 보고 나서는 마음을 접은 거라고."
링링의 응징(?)이 멈추었다.
"키스요?"
"그래. 네가 우선이한테 진하게 키스했잖아. 난 그래서 우선이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알았지."
링링이 이마를 짚더니 "큭큭" 소리나게 웃었다. 굉장히 겉멋이 든 웃음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건 벌칙일 뿐이었어요."
"벌칙을 그렇게 진하게 하는 사람은 없어."
"키스 따위가 뭐라고."
린다가 그렇게 말하더니 의자에 앉은 도훈의 위로 포개 앉았다.
난데없는 포옹에 도훈이 저도 모르게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링링은 도훈의 두볼을 두 팔로 붙잡더니 이마가 맞닿을 만큼 들이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근접한 상태로 링링이 말했다.
"벌칙이면 섹스도 아무렇지 않은 걸."
"헛!"
도훈을 혼란에 빠뜨린 링링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기예단 출신답게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도훈의 등 뒤로 돌아가더니 도훈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뒤통수로 뭉클한 가슴이 느껴졌다. 도훈을 풀발기로 만든 링링이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린다랑 제희보다 내가 더 맛있을걸?"
< 664. 아이돌 vs 돌아이-57-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