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1. 아이돌 vs 돌아이-4- >
‘흐음. 한국 남자의 성 능력을 불신한다 라.’
린다의 정보창을 들여다본 도훈은 공략팁에 써진 글귀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외국 생활을 겪어 본 유학 여성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한남=소추, 서양=대물’이라는 이분법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물론 평균 사이즈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흑형 중에도 소믈리에(?)가 있을 수 있고, 또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까보지도 않고 무조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인종차별이나 진배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군. 저 까칠한 힙합녀에게 한국산 대물 맛이 어떤 건지 보여줘야겠는데?’
[호오, 린다 양의 편견이 주인님의 호승심을 자극했나 보군요.]
‘사실 이름부터 웃기잖아. 린다 김이 뭐야? 지가 무슨 전설의 로비스트라도 돼?’
[네? 무슨?]
‘아냐, 아무것도.’
하지만 린다는 도훈과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었다.
불쑥 말을 걸자니 굉장히 어색한 그림이 예상됐다.
‘일단 자리부터 가까이 앉아야겠는데···.’
불특정 다수가 모인 술자리에선, 우연히라도 앉은 옆 사람끼리 대화하는 게 불문율이다. 멋대로 자리를 옮겼다간 자칫 옆에 앉은 사람의 감정이 상하거나 상대방의 파트너를 뺏는 듯한 느낌을 줄지도 모른다.
도훈은 고민하다 자연스럽게 자리 이동을 할 방법을 떠올렸다.
"참, 다들 아이돌이시면 노래 잘하시겠다."
도훈이 던진 낚시에 미소가 덥석 물었다.
"아니에요. 종현 오빠는 대체 무슨 소문을 내신 거예요?"
"너 왜 근데 갑자기 존댓말?"
종현은 눈치 없게 사촌 동생의 겉치레를 바로 뭉갰다.
둘만 있을 때 얼마나 격의 없는 사이였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임과 동시에, 미소가 지금 이 순간 여기 있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당연히 도훈은 미소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후훗. 누가 봐도 여기 에이스는 나니까.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일단은 우선 순위 상 린다부터 처리하고.’
"무, 무슨 말이에요? 다, 당연히 오빠니까."
"흠, 군대 간다니까 갑자기 안 하던 짓을···."
"돼, 됐고."
미소가 종현의 입을 급히 막았다.
"우리 중에선 제희 누나가 노래 젤 잘해요. 특히 발라드 부하심 귀호강 하실 걸요?"
"오, 정말?"
"제가 본 가수 중에서 진심 최고!"
"야, 왜, 왜 그래!"
제희가 부끄러운지 귀밑까지 빨개져 손사례를 쳤지만 성수가 재빨리 리모컨을 들어 예약 번호를 눌러버렸다. 책자를 보지도 않고 고른 노래는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라는 오래된 발라드 곡.
선곡을 마친 성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제희에게 말했다.
"이 곡맞죠? 라이징 스타 시즌 3 때 심사위원 만장일치 나왔던 예선곡. "
"아···. 너무 오래되서 잘 할지···."
알고 보니 예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불러 화제가 되었던 노래였던 모양이다. 간주가 시작되자 성수가 그녀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제희 씨. 직접 불러 주시면 제 평생의 영광이겠습니다."
덩치 큰 성수가 극진히 떠받들자 제희도 마지못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어색해하는 기색이 전혀 가수다운 자신감이 없었다.
‘노래를 얼마나 잘하길래 성수가 저래 호듭갑이람?’
[왜요? 갑자기 관심이 가십니까?]
‘노래야 아이템만 있으면 나도 가수지. 그냥 몸매가 훈훈하잖아.’
자연스레 자리를 옮기려던 도훈은 어느새 마이크를 붙잡은 제희에게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청바지에 흰티를 입고 나온 제희는 아이돌답지 않은 청순한 패션이었는데, 하늘색 스니커즈와 살짝 드러난 복숭아뼈가 유난히 매력적이었다.
[아하, 주인님 취향이 글래머 스타일이셨죠?]
‘얼굴은 몰라도, 몸매는 제희가 여기서 제일 맘에 든다.’
이윽고 노래가 시작되자 다들 숨을 죽이며 그녀의 노래를 경청했다. 읊조리듯 시작된 노래는 조금씩 클라이막스를 향해가며 애절함이 더해갔다.
제희의 목소리는 원가수인 장혜진과 비견될 정도로 쓸쓸한 음색이라 좌중은 순식간에 음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대여 다른 건 다 잊어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내가 그대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는지를"
절정에 치달았을 때 소름 돋은 고음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훈 역시 실력파 가수의 라이브를 직관하긴 처음이라 완전히 얼이 빠졌다.
‘우, 우아! 대박.’
[노래를 정말 잘하는 군요.]
‘평범한 사람이 노래만 잘해도 달라 보이는데, 저런 미인이 노래까지 잘하니 정말 매력 터지는 구나.’
[주인님. 정신 팔릴 때가 아닙니다. 일단 자리를 옮기셔야죠.]
‘아, 그렇지.’
제희는 린다의 옆자리 였기 때문에 그녀가 일어서자 자연스럽게 공석이 나왔다. 도훈은 리모컨을 붙잡는 척 자리를 옮겨 제희의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와! 진짜 노래 잘하신다. 앵콜 곡 한 번만 더 해주세요!"
노래를 마친 제희가 수줍어 했으나, 마이크를 계속 붙잡고 있는 모습이 마냥 사양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때 성수가 도훈에게 말했다.
"그거 부탁해봐."
"뭐요?"
"제희씨가 라이징스타 8강 진출할 때 불렀던 곡 있거든. 번호가 뭐였더라?"
성수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뭔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81408!"
"네?"
"81408 눌러보라고."
성수의 요청에 따라 그대로 번호를 입력했다.
시작 버튼을 누르자 <거위의 꿈>_인순이 ver. 노래반주가 흘러나왔다.
성수가 득의양양 말했다.
"맞죠? 이 노래?"
"아! 부끄럽게···. 다른 분들은 하지도 않았는데 저만 두곡 씩이나···."
"앵콜 곡이잖아요!"
"멋있다!"
"언니 파이팅!"
다른 아이돌들도 제희 뒤를 이어 부를 자신은 없는지 그녀의 앵콜을 반겼다. 남자들도 듣는 귀가 즐거우니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어 했다.
"난 꿈이 있었죠···."
다시 시작되는 제희의 발라드.
파워 풀한 인순이와는 다른 차분하고도 섬세한 감성이 섞인 목소리에 다들 순식간에 노래에 빠져 들어갔다.
뭔가 불만인 듯 씹던 껌으로 풍선을 불어대는 린다만 빼고.
옆자리로 옮긴 도훈은 노래를 감상하며 눈치 없이 물었다.
"제희씨 노래 정말 잘하네요."
"네, 뭐···."
린다가 예상대로 성의 없게 대답했다.
‘뭐지? 자기보다 제희가 주목받는 것에 대한 불만일까?’
도훈은 그녀의 의중을 떠보기 전에 우선 인사부터 했다.
"반가워요. 린다씨 맞죠? 저는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네에···."
여전히 관심 없다는 투였다.
호감도 50대인 여자는 오랜만이었으므로 도훈도 살짝 당황했다.
‘와, 외모 버프가 전혀 먹히질 않으니 생각보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구나. 아참, 공략팁에 따르면 힙합 얘기를 좋아한댔지?’
도훈은 점점 절정을 향해가는 노래에 맞추어 질문했다.
"린다 씨는 혹시 저 노래 아세요?"
"몰라요."
"아···. 미국에 계시느라."
"아니요. 그냥 전 힙합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아하. 노래 선곡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구나.’
"엇? 힙합 좋아하시나 보네요?"
"네. 뭐."
"저도 좋아해요. 힙합."
도훈은 차분히 공감대부터 쌓기로 했다. 이런 외골수 취향은 같은 취미로 접근해 가는 게 정석이다.
"진짜요?"
"네. 투팍이나 에미넴. 제이지 노래 엄청 좋잖아요."
도훈은 일부러 그녀의 주 종목인 미국 힙합 가수를 열거했다. 이제껏 시큰둥한 반응이던 린다가 처음으로 도훈에게 흥미를 보였다.
"제이지 좋죠. 무슨 노래 좋아하는데요?"
‘억. 노래까지 내가 알게 뭐야?’
말문이 막힌 도훈이 역으로 질문을 던져 시간을 벌었다.
"린다 씨는요?"
"Song cry요."
"와우! 대박! 쩔죠 그 노래!"
도훈은 과장된 추임새를 넣어가며 호응했다. 나름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어깨를 들썩이며 우쭐대는 동작을 보더니 린다가 빵 터졌다.
"뭐예요, 진짜 크크! 왜케 아재 같아요?"
"아, 그래요? 하하. 우리 술이나 한 잔 할까요?"
"네."
두 사람이 술을 채워 잔을 부딪치는 사이 제희의 노래가 끝났다. 돌아갈 자리를 찾던 제희는 도훈이 자기 자리에 앉은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성수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술자리에 노래가 곁들어지자 분위기는 한창 달아올랐고, 각각의 남녀는 서로 좋든 싫든 옆 사람과 오붓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가졌다.
도훈은 린다를 밀착 마크하며 그녀가 이 모임을 파토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듣기론 린다씨는 미국에서 대학 다닌다던데?"
"네, 버클리요. 지금은 휴학 중이예요."
"오, 버클리. 거기 엄청 유명한 데 아니에요?"
"그냥 뭐···."
별거 아닌 척하지만 린다의 어깨가 우쭐거리는 게 느껴졌다. 도훈은 대번의 그녀의 성격을 파악했다.
‘예상대로군. 자기가 여자들 중에 제일 어른이고, 또 학벌만큼 자존심도 높은데 대접을 제대로 안 해준 것에 골이 난 거였어. 처음부터 오고 싶은 모임도 아니었고 말이야.’
[캬. 주인님의 혜안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지 뭡니까?]
‘인마. 여자를 하루걸러 바꿔 떡치는 마당에 이런 것도 눈치 못 챌까봐.’
[린다 양을 눌러 앉힌 방법은 찾으신 겁니까?]
‘린다가 이 모임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건, 애초에 한국 남자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기 때문이야. 그녀에게 있어서 한국 남자는 성 능력이 부족한 좆 밥들 뿐이니까.’
[그런데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면 기대감이 조금 생기지 않겠어?’
[섹스어필을 하시겠다는 말씀인가요?]
‘섹스하고 싶어 죽게끔 만들어 줘야지.’
도훈은 그녀의 성감대를 떠올렸다.
특이하게도 귓불이 그녀의 성감대였다.
‘저길 좀 자극하면 달아오르려나?’
도훈은 그녀의 귀에 걸린 피어싱을 보고 물었다.
"오, 이거 피어싱 어디서 하신거예요? 살짝 본토 느낌 나는데?"
"홍대서 했는데요? 풉!"
"아, 홍대."
린다는 도훈이 말을 걸어 주자 기분이 풀렸는지,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살짝 업 된 표정이었다. 도훈은 분위기를 타 불쑥 그녀의 피어싱을 만지는 척하면서 그녀의 귓불을 터치했다. 물론 손에는 비장의 무기인 ‘몸에 좋은 크림’을 살짝 묻힌 상태였다.
"이거 아무리 봐도 디자인이 마데인 USA 느낌인데?"
"아, 아···."
린다는 도훈이 귀를 만진 순간 찌릿하고 느껴지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움찔 놀랐다.
‘뭐, 뭐지? 갑자기 왜···.’
너무나 오랜만에 느낌 감각에 린다가 자기도 모르게 허벅지를 오므렸다. 그러고보니 이 남자. 은근슬쩍 스킨십을 해대는 폼이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뭐야? 나한테 껄떡대는 거야?’
린다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사실 그녀가 한국 남자를 안 만난 것은 아니었다.
자유분방했던 그녀는 미국에서처럼 귀국하자마자 다양한 남자들을 만났다. 주로 클럽에서. 힙합 좀 한다고 금목걸이를 차고 다니는 스웨거들 위주로.
하지만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어쭙잖게 힙하고 합하는 것까진 참았지만, 밤일이 시원찮은 남자들만 계속 만나다 보니 한국 남자 전체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말로는 홍콩을 보내준다느니, 하루에 다섯 번도 거뜬하다더니 하는 남자들은 막상 실전이 닥치자 간에 기별도 안 갔다. 이미 미국에서 흑형 백형 할 것 없이 대물을 받아낸 그녀의 입장에선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이었다.
도훈이 대놓고 껄떡대는 걸 감지한 린다는 문득 그를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도훈 씨는 운동 좀 하시나봐요?"
"네. 저희가 과가 과다 보니까."
"아, 체육과라고 하셨죠?"
그녀는 전혀 관심 없었다는 투로 대충 얼버무렸다.
"네."
"그럼 헬스 같은 것도 좀 하세요?"
"운동이야 매일 하죠."
"정말요? 저도 미국에 있을 땐 하루가 멀다하고 짐(Gym)에 다녔거든요. 거긴 운동이 습관처럼 되있어서."
"네."
"근데 한국 오니까 여기 남자들은 몸 만드는데 별로 관심이 없더라고요. 다들 패션 근육에만 관심이 있어서."
"그렇죠. 아무래도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까."
"난 몸 두꺼운 남자가 좋던데···."
린다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리더니 도훈의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다리가 두꺼우면 더 좋고."
그러면서 천천히 허벅지를 타고 오르며 남몰래 그의 다리를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도훈은 그녀가 자신을 시험한다는 걸 깨닫고 다리에 힘을 바짝 주었다.
린다는 도훈의 대퇴부를 만지며 깜짝 놀랐다.
늘씬해 보이던 도훈의 하체가 의외로 튼실했던 것이다.
‘오오! 좀 하는데?’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몸만 좋고 거기는 부실한 사내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뭐··· 다리 두껍다고 다 두껍나?"
린다가 속삭이듯 말하며 손을 떼려고 하자 이번엔 도훈이 그녀의 손을 위에서 포겠다.
"확인해 보면 알지 않을까요?"
"음?"
두 사람의 터치는 테이블 아래서 이루어졌으므로 술자리가 한창인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도훈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점점 사타구니 안쪽으로 끌고갔다.
"뭐? 이 정도?"
린다의 손이 도훈의 노발기 된 대물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지를 격해서도 느껴지는 묵직한 두깨감게 린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허, 헛! 뭐가 이렇게 커? 설마 발기한거야?’
린다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손바닥으로 꾹 바지를 눌렀다.
그러나 말캉하고 들어가는 느낌이 절대 꼴린 상태가 아니었다.
‘노, 노발기에 이정도면···.’
린다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제희와 이야기 하고 있던 성수가 도훈을 향해 말했다.
"야, 남자들도 답가를 해줘야지. 우리쪽 대표는 ···이도훈!"
"네? 저요?"
< 611. 아이돌 vs 돌아이-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