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627화 (600/2,000)

< 609. 아이돌 vs 돌아이-2- >

***

덩달아 흥분한 성수가 물었다.

"그럼 이번에 데뷔할 멤버 다 온다는 거야? 모두 몇 명인데?"

"아, 아뇨. 다는 아니고···. 실은 오늘 데뷔 전 마지막으로 개인시간을 줬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몇 명은 친구 만나러 가거나 집에 갔고, 숙소에 남은 애들만···."

"그러니까 그게 몇이냐고."

"네, 네 명?"

"미소 포함해서?"

"네."

성수가 나를 향해 넌지시 시선을 보냈다.

나 역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성수와 눈을 마주쳤다.

아이돌 연습생 넷이 이곳으로 온다.

현재 우리 인원은 모두 여덟.

이 중 절반을 미리 떨구어 내지 않으면, 나중에 볼썽사나운 쟁탈전이 펼쳐질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정보를 밖에 나와 있는 나와 성수밖에 모른다는 거다. 우리는 갑자기 종현을 두고 서로 머리를 맞댔다.

"야. 들었지? 모두 네 명이란다."

"네, 형."

"우리 지금 여덟이고."

"정확히 2 vs 1 이네요."

"사전에 커트해야 하지 않겠냐?"

성수가 여자 문제로 이렇게 적극적이긴 처음이었기 때문에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형. 형은 근데 여자친구 있으시잖아요."

"뭔 소리야? 여친은 여친이지. 난 아이돌 직접 만나보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고."

대충 뉘앙스를 들어 보니 걸그룹을 무척 동경하는 전형적인 삼촌팬의 팬심으로 보였다. 단독 팬미팅이나 다름없는 분위기에서, 혹시나 추하게 파트너를 두고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듯 했다.

나와 방향성은 달라도, 결국 추구하는 목표는 똑같다.

우선 잠재적인 경쟁자부터 제거해야 한다.

"종현이는 주최자니까 일단 끼고 가죠."

"그럼 너랑 나까지 해서 딱 한 명 남는데 저 중에 누굴 데려갈까?"

"음···."

안에 있는 멤버는 대부분 2학년들이었다. 3학년은 성수를 비롯해 나머지 한 명만 참석했다. 나는 2학년 중 그나마 친한 동생을 꼽았다.

"과대 어때요?"

"우선이?"

"네. 걔가 그나마 무난하잖아요. 혹시나 곧 아이돌 될 사람들 앞에서 실수라도 했다간···."

"하긴, 예쁜 여자라고 껄떡대면 괜히 종현이 입장만 난처하게 되겠지.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성수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나머지 멤버들을 쫓아낼 방안을 모색했다. 긴급회의를 마친 우리는 종현에게 물었다.

"사촌 동생이 언제 온다고?"

"아···. 지금 준비해서 나오면 30분 뒤?"

"설마 얼굴만 비추고 바로 돌어 가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뭐 자기들 말로는 TV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편하게 노는 거라고 최대한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면서···."

"오케이. 알았어. 종현이 너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조용히 듣고만 있어. 오케이?"

"네? 네."

우리 셋은 다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술이 돌아서인지 다들 살짝 늘어진 모습이엇다.

보통 이때 2차를 제안하는 무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부회장님, 근데 저희 2차는 어디로 갈까요?"

누군가 대신 말을 받았다.

"4:4니까 볼링 어때?"

"에이, 볼링은 무슨. 당구가 최고지."

"아님, 올 만에 스타나 한판? 무한 헌터 고고?"

"야, 마시다 끊으면 술만 깨잖아. 그냥 술마시러 가자."

예상대로 남자들끼리 모아 놓으니 대체로 뻔한 내용이 나왔다. 성수는 나와 몰래 눈을 마주치더니 좌중을 향해 말했다.

"미안한데, 내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빠져야 될 것 같다."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다른 게 아니라···. 교수님이 낼 아침 교직원 축구 하는데 심판 좀 봐 달라고 해서."

"아···."

"내일이요?"

"웬 교직원 축구?"

"몰라. 노익장들끼리 의기투합 했나보지. 암튼 그래서 새벽 일찍 나가서 준비해야 돼···. 오늘은 먼저 가볼게."

"형 없이 무슨 재미로 놀아요. 아다리도 안 맞네."

"그럼 일곱 명이서 할 수 있는 거 없나?"

그때 나도 조용히 손을 들었다.

"나도 여기까지만."

"어라? 도훈이 형도요?"

"그리고 우선이도."

예상 못하고 있던 우선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저, 저는 왜요?"

"성수 형이 부심도 두 명 필요하데. 1학년 부르면 괜히 갑질 어쩌고 말 나오니까, 너랑 나랑 둘이 도와주자."

"와!! 씨! 뭔 조기 축구하면서 주심에 부심까지!"

"총장배도 그렇게는 안 하겠네!"

"어쩌냐, 교수님 부탁인데···. 그래도 체육과 학생들이 도와야지. 원래 어르신들 격식 갖춰서 하는 거 좋아하잖아. 토요일 오전이라 다른 후배들 부르기 민망해서 도훈이랑 우선이만 부탁했어."

갑자기 셋이나 빠져버리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특히 나보다는 성수와, 우선의 이탈이 치명적이었다.

체육과 남자들의 정신적인 리더는 성수였으며, 애초에 이 모임을 주최한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아··· 도훈이 형에 우선이까지 빠지면···."

"왜? 그럼 현이 네가 부심 볼래? 우선이 대신?"

성수의 물음에 박현이라 불린 2학년 학생이 시선을 회피했다. 어느 누구도 토요일 새벽부터 학교에 나와 교수들 축구심판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종현이 군입대 전 마지막이니까 재밌게 놀아."

"맞아. 아직 시간도 많잖아."

"아니 저는 왜···."

갑자기 차출된 우선이 혼자 중얼거리며 똥씹을 표정을 지었으나, 성수와 나는 조용히 모른 체했다. 그때 3학년 다른 선배가 나서 상황을 정리했다.

"숫자도 애매한데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자."

"맞아요. 성수 형이랑 도훈이 형도 빠지는 데 뭔 재미가 있겠어요. 다섯명이명 팀전도 애매하네."

"집에 가서 롤이나 접속하자."

"오케이. 그럼 오늘은 여기서 씨마이!"

계산을 마친 뒤 하나둘 집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게 된 우선이 성수에게 물었다.

"형. 그럼 내일 몇 시까지 준비할까요? 선심 깃발이랑 공만 챙겨가면 돼요?"

"크크크. 야. 뻥이었어 인마."

"네? 뻥이라뇨?"

"교직원 조기 축구 같은 거 처음부터 없다고."

"아, 아니 아까 왜 그럼···."

우선이 황당한 표정을 짓자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우선이 흥분해 소리쳤다.

"아, 아이돌이 온다고요!!!"

"그래. 무려 4명씩이나."

"저, 아직 데뷔한 건 아닌데···."

"다음주 데뷔니까 아이돌이나 마찬가지지."

"헐, 대박! 그럼 일부러 절 뽑아 주신 거예요?"

"당연하지."

"네가 과대잖아."

"와, 역시 형님들 의리 하나는!"

"야. 근데 이거 소문나면 우리 완전 개 쓰레기 되니까 어디가서 절대 입 털면 안 된다."

"당연하죠. 무덤까지 가져갈게요."

"아··· 그, 근데 저희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종현은 자길 배웅하기 위해 나온 사람들에게 거짓말하고 먼저 보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그를 설득했다.

"종현아. 결과적으로 이게 훨씬 나아."

"네?"

"사촌 동생 친구도 데뷔 전 마지막으로 재밌게 놀고 싶을 거 아니야. 근데 사내애들 여덟 명이랑 떼로 몰려 다닌다고 생각해봐. 1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디서 뭐하고 놀겠냐?"

"아···."

"거기다 숫자도 딱딱 맞잖아. 남자 넷, 여자 넷. 어차피 이렇게 놀아야 서로 피곤하지 않고 편하거든."

"근데 도훈이형, 미소는 제 사촌 동생이라···."

"네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구나."

"네?"

"미소는 네 사촌 동생 맞지. 하지만 같이 따라온다는 세 명은 네 친척이 아니잖아."

종현은 바로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갑자기 뭔갈 깨우친 듯 눈을 번쩍 떴다.

"그, 그렇구나!"

"인마. 너 오늘 잘하면 입대 전 여자친구 생길 수도 있어. 군생활 하는데 편지 써주는 여친이 아이돌이라니! 진짜 대박 아니냐?"

괜히 헛바람을 잔뜩 넣어주자 종현이 헤벌쭉 웃었다.

"제가 정말 멍청했네요. 전 미소만 생각하느라···."

"아무튼, 지금 미소한테 연락해서 여기로 오라고 해."

"네!"

다들 기대에 부풀어 서 있는데 우선이 물었다.

"근데 저희 어디가죠?"

"처음이니 일단 술부터 먹여야 하지 않을까?"

"호프집은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하긴, 티비에 출연했던 애들도 있다니까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피곤하겠다. 도훈이 너 뭐 좋은 데 아냐?"

"노래방 어때요? 시내에 많이 보이던데."

"노래방?"

"네. 통유리로 되가지고 창밖으로 완전히 노출된 노래방인데 거기서 술도 시켜 먹고 친해지기 좋을 것 같아요."

"아이돌이니까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겠네."

"룸 형태라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술 먹기도 좋죠."

"근데 창밖으로 다 보인다면서?"

"어차피 3층 이상이라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아요. 노는 모습만 조금 비추는 거지."

"아···."

"좋아. 거기로 하자."

"우선 저희가 먼저 방을 잡아두는 게 좋겠어요."

"아씨,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차려입고 오는 건데. 너무 대충 나왔네."

"흐흐. 나는 그냥 만나는 것만 해도 좋다!"

성수가 바보같이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었다.

일단 우리 쪽 남자는 모두 넷.

여친이 있는 성수에겐 불순한 의도는 없어 보인다.

녀석은 그저 아이돌이라면 좋아 죽는 열성 아재팬일 뿐.

숫기가 없는 종현 역시 별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걸그룹을 꿈꾸는 사촌 동생과 왜 이렇게 성격이 다른지 모르겠다.

그나마 우선은 제법 남자다운 면이 있어서 팀플레이가 가능할 것 같다. 군인처럼 딱딱한 모습이, 여자가 볼 땐 굳건하고 듬직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

나는 누가 봐도 이 모임의 에이스다.

키 큰 훈남에 음주가무도 능하다.

아, 정정.

음주는 아이템 빨 좀 받아야 하지만.

아무튼, 아이돌 넷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애는 무조건 내 차지다. 뭣하면 넷 다 내 걸로 만드는 것까지 생각 중이다.

흐흐흐.

아이돌 하렘이라니···.

오늘이야말로 매력 발산이 절실한 시점이다.

***

통유리 노래방에 자릴 잡은 네 남자는 뻘쭘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온다는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 때문에 노래를 새로 틀지도 못하고 테이블 위의 안주만 축냈다.

"애들 언제 온 다던?"

초조한 표정으로 성수가 물었다.

"방금 카톡 왔는데 로드 매니져가 비번이라서 택시 타고 오고 있데요. 이제 거의 다 왔다고···."

"아, 긴장되네."

"거기 혹시 제가 알만한 사람도 있어요?"

우선의 물음에 자칭 아이돌 박사 성수가 답했다.

"너 혹시 프로듀스 식스티 나인 봤냐?"

"몇 번 보긴 했어요."

"종현이 사촌 여동생이 거기 최종 직전 탈락했던 얘래. 미소라고."

"미소? 이름도 예쁘네요."

"얼굴은 더 귀여워."

"와! 그럼 엄청 인기 많았겠네요?"

"그지. 길가면 열에 다섯 정돈 알아볼 걸?"

"혹시 나머지 멤버도 다 그 프로그램 출연자들?"

"아, 맞다. 종현아 미소가 뭐라던?"

"아까 물어봤는데 한 명은 거기 출연했데요. 랩퍼 린다라고···."

"린다!?"

"어? 그 이름 어디서 들어봤는데?"

"린다 KIM 말이지? 재미교포인 애?"

"잘은 모르겠어요. 아마 맞을 거예요."

그때 빠르게 핸드폰을 검색한 우선이 테이블 위로 검색 결과를 띄웠다.

"얘 맞죠? 랩퍼, 린다."

"맞네. 맞네."

"와, 얘 랩 진짜 죽이던데."

도훈은 빨갛게 염색한 머리에 후드를 깊이 눌러쓴 프로필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좀 사납게 생겼는데? 한 성깔 하겠네.’

"성격 좀 세 보이는데요?"

도훈의 물음에 척척박사 성수가 답했다.

"겉보기만 그래. 걔 사실 엄청 인텔리야."

"인텔리요?"

"학력 봐봐. 아마 지금 버클리 음대 휴학 중 일걸?"

"오오, 정말이네요?"

"아니 이런 애가 왜 한국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가사 쓰는 거 보면 기가 막히다 진짜. 살짝 미국 힙합 스타일 흑인 랩 구사하는데, 플로우가 쩔어."

"형은 아이돌들 다 알아요?"

말만 하면 줄줄 나오는 프로필에 우선이 신기했는지 성수에게 물었다.

"아니 내가 좀 그쪽에 관심이 많거든···. 하하. 나머지 두 명은 또 누구냐?"

"음, 나머지 둘은 그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이 아니래요. 아마 말해도 잘 모를 거라고."

"이름만 말해봐."

"제희랑 링링이라던가?"

"링링?"

"이름이 우리나라 사람 아닌데?"

"네. 중국 사람이래요."

"헐!"

"우리 말은 할 줄 알아?"

"연습생 생활 2년 해 가지고 어지간한 말은 다 알아듣는데요. 말하는 건 좀 어색하고요."

"링링은 잘 모르겠고. 가만있어봐. 제희라는 애···."

아이돌 박사 성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언뜻언뜻 해당 이름이 스쳐간 것이다.

"아! 혹시!"

"왜요? 누군지 알았어요? 프로듀슨엔 안 나왔다던데?"

"맞어. 거긴 안 나갔을 거야. 그 전에 라이징스타에 참가했던 얠 걸. 싱어송 라이터, 제희."

‘라이징스타’란 아이돌 경연 대회 방식이 유행하기 전 전국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던 최고의 가수데뷔 프로그램이었다. 수많은 솔로 가수들이 배출되었던 프로그램이지만, 반복되는 식상한 포맷과 경쟁 프로그램의 출현으로 지금은 폐지되었다.

"싱어송 라이터면···."

"홍대 길바닥에서 통기타 들고 버스킹했던 얘야. 아이돌 비주얼은 아니었는데···. 노래는 진짜 실력파고. 아마 라이징 스타에서도 탑 파이브 쯤 되었을걸?"

"탑 파이브면 엄청난 거 아니에요?"

"엄청나지. 거기 상위 4명까지 엘범을 내줬으니까. 아마 그때 데뷔 못하고 소속사에 들어갔다가 이번에 걸그룹 런칭할 때 합류했나 보다. 분명 걔가 노래 담당일걸? 랩은 린다가 맡을 거고."

"그럼 센터는 누굴까요? 비주얼 담당요"

성수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당근 미소지."

그때 노래방의 문이 열렸다.

< 609. 아이돌 vs 돌아이-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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