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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11화 (484/2,000)

< 493. 교생 실습-37- >

미호의 속셈을 눈치챈 대장이 난색을 표했다.

그는 능력에 비해 인정을 못 받으면서도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투철한 고리타분한 사내였다.

"미호, 개인적인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니야. 저런 타입의 플레이어는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아씨, 진짜 둘이서만 계속!"

두 사람은 창범을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며 계속 대화했다.

"대장도 이제 승진하실 때 되지 않았어요?"

"어?"

"생각해 봐요. 만약 저 친구가 플레이어가 맞다면 우린 우연히 뉴타입 플레이어를 발견한 거라고요! 아마 저런 유형은 카사노바 이후로 처음일걸요?"

"그, 그건 그렇지."

"그러니 본부에서 알게되면 꽤 흥미로워하지 않겠어요? 십 년 넘게 현장에서 뺑뺑이만 돈 대장도 슬슬 올라갈 때가 된 거죠."

"으음···."

중년의 PC방 사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미호가 감언이설로 계속 꼬드겼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아요, 대장. 너무 양보만 하는 사람은 호구 취급당하는 세상이에요."

‘호구라···.’

대장, 김철수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껏 수많은 임무를 성공했음에도 팀장 직급에서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함께 PK단 생활을 시작했던 동기는 벌써 중앙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다.

인건비를 줄여가며 매일 12시간씩 밤샘을 해야 하는 가난한 생활에 점점 이골이 났다. 세상을 위한다는 명분과 사명감 하나도 묵묵히 버텨 왔는데, 현실은 늘 녹록지 않았다.

쓰고 버리는 패.

김철수는 딱 그 정도의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철수가 자괴감에 빠진 모습에 미호가 계속 그를 부추겼다.

"이건 조직의 룰을 거스르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 봐요. 지금 저 친구가 100퍼센트 플레이어라는 확신이 있나요?"

"아직 그 정도는···."

"그렇죠. 그러니 이건 탐색전이에요."

"탐색전?"

"플레이어일지도 모르는 대상을 저희끼리 확인하는 단계라는 거죠. 그러니 당장 보고할 의무도 없는거구요."

"하지만 플레이어가 맞다면?"

"그땐 우리가 해치워 버리면 그만이죠. 본부에 보고하면 저 친구가 우리 몫으로 떨어지겠어요?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장 일본 지부부터 움직일걸요?"

"흐음···."

"젠장, 나는 담배나 피우고 올랍니다. 둘이서만 계속 얘기하쇼."

창범이 화가 났는지 짜증을 내며 흡연실로 들어가 버렸다. 미호는 창범의 투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나한테도 엄청난 기회야.’

미호는 인외의 인물이다.

남자의 정기를 흡수해 생명력을 유지하는 그녀는, 주기적으로 생명력을 채우지 못하면 급격한 노화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가장 좋은 먹잇감은 정력 좋은 사내.

화면에 등장한 가면의 사내가 자신의 예상대로 성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그는 어떤 영약보다 값어치가 있을 게 분명했다.

‘잘하면···, 잘하면 나도 이 지긋지긋한 저주에서 벗어날지도.’

대장이 뭔가를 결심했는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좋아, 미호. 우리끼리 녀석을 잡는다 쳐. 대체 어떻게 잡을 거지? 얼굴도 모르는 데다 심지어 한국에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잖아?"

미호가 씩 웃었다.

"그렇죠. 아직은 정보가 너무 없죠. 하지만 정식 발매된 작품이라면 소속사에 배우의 신상 정보가 남아 있지 않겠어요?"

"설마 일본을 직접 찾아가겠다는 거야?"

"플레이어를 잡는다면 어딘들 못 갈까요."

"가서 어쩌려고? 일본말은 할 줄 알아?"

"잊으셨나 보네요. 제 영혼이 아홉 개라는 걸. 걔 중에는 일제  시대를 겪었던 망령도 들어 있죠."

"아···, 그렇지. 하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가는 건···."

미호가 흡연실 부스를 턱끝으로 가리켰다.

"걱정 마요. 우리 쪽엔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고도 상대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으니까."

"아아···. 그렇군."

창범은 자신을 쳐다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삐진 표정으로 훽 등을 돌렸다.

잠시 후 미호와 얘기를 마친 철수가 삐져있는 창범에게 다가갔다.

"창범아. 담배 다 폈어?"

"뭐요? 나는 아주 안중에도 없더만? 계속 얘기해여 쭉. 아주 그냥 찰떡궁합이던데."

"왜 그래 아마추어 같이. 너 미호랑 일본에 좀 가야겠다."

"일본요?"

대장이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창범은 그제야 꿍해 있던 표정을 풀면서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근데 대장.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아까 영상보고 어떻게 그놈이 플레이어라고 확신한 거예요?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

"확신까진 아니고 수상한 점이 있었어."

"뭔데요?"

창범이 그답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같은 팀에 배속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과의 격차는 까마득했다. 나이를 짐작할 수조차 없는 구미호는 물론이거니와, 10년 넘게 현역 생활을 이어온 베테랑인 철수 역시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였다.

"혹시 그 장면 기억나? 왜, 놈이 갑자기 여배우를 남편에게 넘길 때 말이야."

"네. 가장 흥미진진했던 장면 말이죠? 정말 그 부분은 압권이었어요. 두 남자도 대단한데 그걸 앞뒤로 받아낸 여배우는 진짜···."

"쯧쯧. 그렇게 작품에 몰입하니까 전혀 눈치를 못 챘지."

"네?"

"영상을 잘 보면 녀석이 불쑥 마지막 장면에서 손에 찬 시계를 보면서 중얼거리더란 말이지."

"시계요?"

"어. 근데 그 장면이 너무 께름칙하더라고. 왜, 플레이어들은 다들 매개물을 몸에 지니고 있잖아."

"에이, 그건 좀 억측인데? 혼자 기합을 넣기 위해 중얼거렸을 수도 있잖아요. 얼마나 박진감 넘치던 대결인데."

"아냐. 내가 하도 수상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계속 돌려보면서 입 모양을 분석했거든. 근데 정확하게 이렇게 말했어."

"뭐라고요?"

"커져라, 여의봉."

"여의, 푸훕! 아씨 그게 뭐야."

"농담이 아니라니까? 신음에 씹혀서 음성이 잘 안들리는 데 자세히 들어보면 마지막에 ‘봉’ 소리는 명확하게 들려."

"그러니까 그게 플레이어들의 스킬이라는 소리죠?"

"그리고 그 뒤가 더 문제였어. 놈이 대결을 이긴 뒤에 물건을 뽑아냈을 때 기억나?"

"나죠, 당연히. 분명 질싸를 했는데 한 번 더 딸들하고 하더라고요. 정력이 무슨···. 어우야. 근데 설마 연속으로 두 번 한다고 플레이어란 소린 아니죠? 원래 그 나이 때는 싸고 바로 세울수도 있어요. 설마 대장님은 아니었을까나?"

"땍!"

"앗, 왜 때려요."

"자식이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아니, 솔직히 말이 안 되잖아요. 촬영하는데 깜빡하고 시계를 찰 수도 있죠. 하다가 흥분해서 혼자 중얼거릴 수도 있구요. 싸고 또 싼다고 플레이어면, 나도 플레이어겠네, 나도!"

"허세 부리지 마라."

"함 여기서 보여줘요? 내가 한창 때 삼연딸도 했던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요."

"쯧쯧. 그러니까 넌 눈썰미가 없다는 거야. 내가 지금 그것 때문에 그런 줄 알아?"

"그럼 뭔데요? 괜히 국위선양 잘하고 있는 엄한 배우 질투 나서 괴롭히려는 건 아니고요? 일본년놈들 대물로 폭격하는 모습 보니까, 내가 다 뭉클해 지더구만."

"크기."

"네?"

"크기가 달라졌어."

"네에?"

창범이 눈을 껌뻑거렸다.

도훈이 워낙 큰 대물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크다고만 생각했다.

"확실해. 미호가 의심한 장면도 거기였고."

"진짜로 크기가 달라졌다고요? 물건 사이즈가?"

"그래. 그 커져라 여의봉을 외치고 나서 말이야. 어때? 이 정도면 꽤 의심스러운 정황이지 않아?"

"흐음···."

창범이 턱밑을 쓰다듬었다. 평소 고심할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신체 변형 스킬이라···. 대장님이 허투루 본 게 아니면 확실히 수상하긴 하네요."

"내가 그래서 너희들까지 불러서 같이 확인했잖아. 내가 혹시나 헛다리 짚었나 싶어서. 근데 미호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거든. 놈의 물건이 이단으로 발기되는 특이 체질이 아닌 이상 분명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일 거야."

"쩝, 그놈 부럽네. 무슨 능력을 받아도 그딴 걸···. 근데 굳이 우리가 해결해야 할 필요 있을까요? 보아하니까 한국계 AV배우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거 같더만. 거기도 PK단 있잖아요?"

철수는 미호의 논리를 빌어 창범을 설득했다.

"···하여간 그런 이유로 우리가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어."

"하긴, 혹시라도 아니면 쪽팔리긴 하겠네요. 세상에 야동보던 중에 플레이어를 발견하다니···."

"인마. 우리 복무 신조 몰라?"

"알죠. 우리는 인류의 적, 플레이어 발본색원한다."

"그렇지. 물론 나도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검증해볼 필요는 있겠지."

"알겠습니다. 제가 미호랑 일본에 가서 해야 하는 일이 뭔데요? 아씨, 월차 겨우 아껴놨는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그러니까 너는···."

***

실습 세 번째 날.

여느 때처럼 택시를 타고 중학교로 향했다.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교문에 들어서자 등교하던 남중생들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교생 선생님."

"선생님 짱 잘생겼어요."

"하하, 좋은 아침."

아침부터 칭찬을 듣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잘생긴 게 좋긴 좋군요. 남학생들에게도 주목을 받으니까요.]

‘원래 사춘기 때는 유독 외모에 집착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아이돌에 열광하는 거지.’

[주인님이 아이돌하고 같다는 겁니까, 지금?]

‘아니 뭐 그 정돈 아니지만···.’

[지나친 자신감은 결코 득이 되지 않습니다. 항상 겸손하고 매사에 신중하십시오.]

‘알어. 나도 이 정도로 우쭐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인데, 중수에 가까워질수록 PK단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플레이어는 축복받은 존재이지만, 언제나 삐뚤어진 마음으로 시기하는 대적자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아직 중수도 안 됐는데 뭘 또. 그리고 걱정 마. 비싼 돈 들여 경보기까지 사놨는데 별일이야 있으려고.’

[제 말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거죠.]

‘귀에 박히겠다. 잔소리 좀 그만.’

교실로 들어서자 교탁 부근에 서있던 현아가 고개만 까닥 거렸다. 어제 했던 말대로 학교에선 절대 티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리라.

그리고 잠시 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혜진이 등장했다. 지각을 면하기 위해 한참 뛰어 왔는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숨을 헐떡거렸다.

"왔니?"

"지, 지각은 아니죠?"

"응, 다행히. 담임 선생님 아침 생활지도 참관하는 날인데 늦을 뻔했네."

"하아, 하아-, 그, 그게 지하철 타고 오는데 너무 신경 쓰여서."

"뭐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치마폭 위에 다소곳이 손을 올리는 혜진의 모습에 어젯밤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차! 내가 오늘 노팬티로 오라 했구나?’

아마도 혜진은 노팬티 차림으로 출근을 하느라 굉장히 애를 먹은 모양이다. 에스컬레이터만 올라도 치마 뒤를 신경 써야했을 테니 여간 곤혹스러웠겠지.

‘크크. 진짜로 노팬티로 왔나 보네. 말 잘 듣는데?’

나는 교실 뒤편에 마련된 교생용 의자에 앉으며 혜진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앉아. 아침 생활 지도 참관해야지."

"괘, 괜찮아요. 전 서 있는 게 편해서···."

"뒤에서 서성거리면 담임 선생님 신경 쓰일 거야. 얼른 앉아."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다분히 명령조였다.

혜진은 마지 못해 다리를 바짝 붙이며 의자에 앉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초조해하는 표정에서, 혹시나 반 남학생들이 치마 속을 훔쳐볼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흐흐. 조금 골려줘 볼까?’

나는 아침 조회를 시작하는 현아를 두고 혜진에게 귓속말을 했다.

"시킨 대로 하고 왔지?"

"···네."

"기분이 어때? 좀 시원해?"

"아, 음···. 부, 부끄러워요."

"괜찮아. 네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거든."

"그, 그래두요."

"이렇게 부끄러움이 많아서야···. 내가 오늘 너한테 가르칠 게 많아."

"뭐, 뭔데요?"

"나중에 다시 말해줄게."

너무 오래 속닥거리면 현아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므로 자세를 바로 했다. 혜진은 내 말에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키며 다리를 바짝 오무렸다.

"이번 주 학교폭력실태 조사 있으니까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꼭 설문 마감해. 알겠니?"

"네."

"분명히 말하지만, 언어적인 폭력도 학교폭력이야. 자기가 직접 당했거나 옆에서 본 것도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쓰라고. 응?"

"선생님, 선생님이 때린 것도 폭력인가요?"

"누가 널 때렸는데?"

"아니 체육 선생님이 저번에 체육복 안 가져 왔다고 제 구렛나루 잡아당기던데요?

"김진희, 너 진짜···. 그게 무슨 폭력이니? 다음부터 잘하라는 소리지. 그리고 너 중학생이 무슨 구렛나루야. 너 나와. 두발 검사부터 해야겠다."

"아아앗! 죄송합니다."

조회가 끝나고 반 학생들이 음악실로 이동하자, 현아가 기운 빠진 얼굴로 말했다.

"봤지? 하여간 요새 애들은 조금만 혼내도 학교폭력이다 뭐다···. 가끔 몇 놈은 진짜 때려주고 싶다니까?"

"많이 힘드시겠어요."

"아무튼 아침조회 시간에 학교 지시사항 전달하고, 학급과 관련된 주제로 애들하고 토의하면 돼. 사실 중등부터는 담임이랑 얼굴 볼 시간이 많지 않아서 주로 아침 시간에 담임 활동이 이루어지거든."

"넵."

"근데 오늘 일정은 어떻게 되니?"

"오전엔 전공수업 참관이에요."

"그럼 도훈이는 또 운동장?"

"아뇨. 전 1교시 수업이 없어서 연구부장 선생님께 잠깐 들러야 할 것 같아요. 대표 수업 문제로 의논 드릴 게 있어서."

"아, 김한솔 선생님? 도훈이 너 긴장해야겠는데?"

"네?"

"그 선배 진짜 엄청 스파르타로 유명하거든. 많이 깨지고 올 테니 미리 위로해줄게."

나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론 피식 웃었다.

연구부장이 아무리 철혈의 대쪽이라도, 내 앞에선 한낱 구멍달린 암컷일 뿐이다.

< 493. 교생 실습-3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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