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0. 교생 실습-24- >
정현아는 두 사람이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때부터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다 인적 드문 체육관에서 나란히 걸어 나오는 모습을 마주치는 순간, 눈동자에 불꽃이 튀는 것처럼 이글거렸다.
여자의 직감.
그것은 때론 모든 근거를 과감하게 도약하며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내놓는다.
"두 사람, 거기서 뭘 하고 나왔길래 그렇게 땀을 흘리니?"
말투는 바짝 날이 서 있었고, 안광으론 사람도 태워 죽일 기세였다. 겁먹은 혜진이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자 현아의 심증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설마, 너희들···."
"배구 네트 좀 치고 왔어요."
"···뭐?"
고개 숙인 혜진과 달리 도훈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도 당당한 태도 앞에 현아의 확신이 흔들렸다.
"배구라고?"
"네. 점심시간 잠깐 옷 갈아입으러 왔는데 네트가 아직 안 쳐 있더라고요. 그래서 혜진이랑 같이 치고 오는 길이에요."
도훈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눈빛과 말투는 한 치의 거짓도 없어 보였다. 그의 입술이 유난히 반짝였다.
‘후후, 오빠 믿지 립밤 처음 써보는데 효과가 어떠려나?’
혜진의 시오후키에 열을 올리던 도훈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서둘러 배구 네트를 친 뒤, 지난 일본 원정 때 손에 넣은 오빠 믿지 립밤을 입술에 발랐다.
호감도 80이상인 대상에게 무슨 말이든 믿게 만들고, 그 이하인 상대에겐 강력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아이템.
아이템의 효과가 발휘되었는지, 현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 그랬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그런 일이면 다른 교생들 불러서 같이 하지 그랬니."
현아는 말하는 도중 힐끔 고개를 내밀어, 유리창 너머 체육관 내부를 확인했다. 도훈의 말대로 체육관 한가운데 배구 네트가 눈에 들어왔다. 빼도 박도 못한 증거 앞에 현아는 자신이 오해했다고 착각했다.
"아니에요. 배구 동아리에서 자주 쳐봐서 혼자도 금방 치거든요. 그래도 혜진이가 도와줘서 점심시간 안에 칠 수 있었어요."
"아, 그래서 저렇게 땀을···."
현아는 그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는 표정이었다.
5월 초라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아니지만,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몸에 땀이 나곤 했다. 현아는 도훈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의 대답을 100% 신용했다. 무엇보다 오빠 믿지 립밤의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아, 쪽팔려. 내가 어쩌다 그런 망측한 생각을···. 사실 따지고 보면 도훈이 같은 훈남이 저런 여중생 같은 쬐그만 여자애랑 썸탈리도 없는데 말이야.’
현아는 초반에 언성을 높인 것이 부끄러워 다급히 변명할 거리를 둘러댔다.
"네트 치러 간다고 귀띔이라도 해주지 그랬니. 그것도 모르고 난 학년 연구실에서 너희들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죄송해요. 그냥 옷 좀 갈아입으려다가··· 근데 기다리다뇨? 무슨 일 있나요?"
"오늘 퇴근하고 뒤풀이하는 거 있잖아. 사람 수가 많아서 학년 별로 찢어지기로 했는데 어디로 갈지 정하는 중이었거든. 두 사람 의견도 들어보려고···"
궁색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었다.
그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챠임벨이 울렸다.
"엇, 벌써 시간이···"
"오후엔 전공과목 참관이지? 도훈이는 운동장으로 가고 혜진이는 2학년 7반으로 가면 돼."
"네."
혜진이 도망치듯 자리를 물러나자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현아가 도훈을 향해 말했다.
"근데 쟤는 왜 저렇게 땀을 많이 흘렸다니?"
"원래 좀 물이··· 아니 땀이 많은 편인가 봐요."
"그래?"
"근데 선생님은 수업 안 가세요?"
"난 수업없어."
"좋으시겠다."
"심심한데 도훈이 수업이나 구경 갈까?"
"네?"
"실은 이번 체육 시간이 우리 반 수업이거든."
"아···."
"내가 옆에서 우리 반 말썽꾸러기들이 누군지 하나씩 찝어줄게. 어차피 공개수업하면 우리 반 데리고 해야 하잖아. 같이 가자."
도훈은 그녀의 속셈을 뻔히 짐작하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두 사람이 밖으로 나오자 학생들은 운동장을 뛰고 있었다. 조회대 위에서 하품하고 있던 체육 선생은 현아와 도훈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물었다.
"으잉? 현아샘이 여기 웬일이야?"
"공강 시간이라 우리 반 수업하는 거 구경이나 하려고요."
"허어, 맨날 빈 시간에 보건실가서 자던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체육 선생의 놀림에 현아가 이빨을 꽉 깨물며 체육 선생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런 농담하심, 도훈 학생이 진짠 줄 알그등요?"
"아, 알았어, 아, 아프다구!"
혼쭐이 난 체육 선생이 사과하자 현아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도훈을 향해 방긋 웃었다.
"체육 선생님이 장난이 심해서···호호!"
"아, 네."
도훈은 담임 현아의 푼수 같은 모습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나이에 비해 은근 유치한 성격이구나. 아까 보니 질투도 많은 거 같던데···. 저러니 여태껏 남자친구가 없지.’
그때 운동장을 모두 돌고 온 학생들이 하나둘 헉헉대며 조회대 앞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체육 선생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
"어쭈? 너네 담임 선생님도 보고 있는데, 이따위로 한다 이거지? 지금부터 왼편 축구 골대 찍고 온다. 선착순 10명."
"어헉!"
"바, 바로요?"
"야, 그냥 뛰어!"
학생들은 영문도 모은 채 헐레벌떡 축구 골대로 달려갔다.
체육 선생이 도훈을 보고 말했다.
"요새 애들은 너무 운동을 안 해. 저렇게라도 해야지 몸이 좀 풀리거든."
"아···."
체육 선생은 뒤처지는 학생들을 보고 다시 큰 소리를 질렀다.
"늦게 오는 녀석들은 팔 벌려 뛰기 서른 번씩이야! 빨랑 안 뛰어?"
체육 선생의 으름장에 학생들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선두로 들어온 몇몇 학생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 모습에 체육 선생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도훈 학생이랬지?"
"네."
"기억해 둬. 중학교 남학생들은 그냥 짐승이라고 생각하면 돼. 요녀석들은 이렇게라도 힘을 빼주지 않으면 맨날 뻘짓거리나 하고 다닌단 말이지."
"뻘짓이라뇨?"
현아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체육 선생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듯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 그런 게 있어. 암튼 이제 수업할 테니까 두 사람은 저쪽에서 참관하도록."
"흥, 대답도 안 해주고는."
"그럼 열심히 참관하겠습니다."
"아냐. 열심히 하면 내가 부담스러우니까 그냥 구경만 해. 현장 수업 감만 잡도록."
"넵."
체육 선생이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자 도훈과 현아는 운동장 구석에서 수업을 구경했다. 조회대 옆 그늘이 쳐진 계단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현아가 도훈을 보고 물었다.
"근데 체육 선생님이 무슨 뜻으로 말 한 거야?"
"네?"
"아니 아까 그랬잖아. 이렇게 안 굴리면 맨날 뻘 짓 한다고."
"글쎄요?"
"도훈 학생도 중학생 시절 겪어 봤으니 잘 알지 않아?"
도훈은 노골적인 현아의 물음에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떠보려는 건가? 하여간 머릿속에 응큼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는···.’
[우습군요. 주인님의 정체를 알면 놀라 까무러칠 텐데요. 주인님을 몹시 순진한 사람으로 생각하나 봅니다.]
‘그럴 만도 하지. 이도훈은 생긴 것만 봐선 운동만 좋아하는 열혈 체육인이니까. 얼굴도 은근 순진하잖아.’
[실제로는 그랬죠. 주인님과 영혼이 뒤바뀌기 전까지는요.]
‘원주인이 너무 순진한 거지. 이런 대물을 가지고 그렇게밖에 못 살다니.’
[재능을 꽃피우기도 전에 박명해 버렸으니까요. 군대 막 제대하고 요절해버렸으니···.]
‘안타깝구만. 어쨌든 그 억울함, 내가 실컷 풀어 주지.’
"글쎄요. 저는 맨날 운동만 해서···."
"아항. 도훈군은 어려서부터 운동만 했구나? 하긴 운동하는 애들은 따로 스트레스 풀 곳이 있으니까 좀 덜하긴 하겠다."
"그럼 안 하는 애들은 어떤데요?"
도훈은 현아의 의도를 짐작하고 적당히 받아쳤다.
"그냥 뭐··· 알잖아. 맨날 이상한 얘기나 하고."
"이상한 얘기요?"
현아가 눈치를 살피더니 귓속말을 하려는 듯 도훈 옆에 바짝 붙었다. 굳이 엿들을 사람도 없는데도, 괜히 살을 맞대고 싶어 하는 티가 역력했다.
"왜 저번엔··· 내가 뒤에 오는 줄도 모르고 지들끼리 막 품번 얘기하고 있더라니까?"
"품번이 뭐에요?"
도훈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빠 믿지 립밤이 발린 그의 말은, 뭐든지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현아는 도훈의 순진무구한 태도에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이라고 굳게 믿었다.
‘얘 진짜 운동만 했나 보구나. 세상에··· 중학생보다도 모르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키워서 잡아먹고 싶어하는 어린 청년이, 여기저기 찔러대는 난봉꾼이라면 더 실망스러울 터였다.
‘슬슬 자극해 볼까? 눈치 좀 챘으면 좋겠는데···.’
"정말 몰라서 묻니?"
"네."
"도훈 군은··· AV같은 거 전혀 안 보구나?"
"AV요?"
"이런···. 선생 될 사람이면 이런 건 필수적으로 알아둬야 해. 요즘 애들에겐 성교육도 무척 중요하니까."
"아, 그렇군요."
현아는 너무 날티나 보일까봐 한 마디 덧붙였다.
"나, 나도 물론 연수 가서 배운 거야."
"네."
"아무튼 야동있잖아, 그걸 품번으로 구분하나 보더라고. 작품명 대신에."
"아··· 야동."
도훈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쑥스러워하는 표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캬! 일본 다녀오더니 연기력이 일취월장하셨네요.]
‘풉- 우스워 죽겠다. 이 아가씨가 무슨 말 하는 지 지켜볼까?’
"응. 야동. 도훈 군은 학생 때 그런 거 전혀 안 봤어?"
"제, 제가 좀···."
현아는 민망해하는 도훈을 놀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애들 성교육을 위해서라도 조금은 알아 둘 필요가 있어. 물론 교육적인 목적으로 말이야."
"그런건 전혀 생각 못했어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나도 사실 남중에 오기 전까진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는지 잘 몰랐거든."
"네···."
체육 선생은 학생들을 반으로 갈라 축구를 시키고는 심판을 보았다. 축구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도훈과 담임쪽은 신경도 안쓰고 열심히 공놀이에 빠져들었다.
"저 봐. 중학생이라곤 해도 덩치는 말만 하잖아. 몸은 거의 성인이라니까?"
"하긴 저도 중학교 때 180 넘었던 것 같아요."
"정말? 엄청 일찍 컸네?"
"네. 고등학교 땐 5cm 자랐어요. 중학교 때 다 커가지고."
"후후. 그럼 막 면도하고 다닌거 아니야?"
"면도요?"
"응. 중학생부터 털 자라잖아."
"아···."
현아는 노골적으로 도훈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쳐다보았다.
털이 어디를 말하는지 의도가 뻔해 보였다.
문득 현아는 도훈의 체육복 바지에서 하얀게 묻은 것을 발견했다.
"어? 여기 뭐 묻었는데?"
바지 가운데 묻은 것은 혜진이 쏟아낸 일부였다.
뜀틀 위에서 분수를 난사한 혜진의 물이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던 바지에 까지 튀었던 것이다.
"아··· 그렇네요."
"이런. 선생님 될 사람이 이런 걸 묻히고 다니면 어떡하니?"
현아는 좋은 핑곗거리를 발견한 것처럼 바지 안쪽의 얼룩을 손으로 문질렀다. 도훈은 얼굴이 빨개져 소리쳤다.
"제, 제가 닦을게요."
"그냥은 안 닦아질 것 같은데··· 가방에 물티슈가 있던가?"
현아는 어깨에 메고 다니는 조그만 섹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그리고는 직접 물티슈를 꺼내 도훈의 바지 얼룩을 닦아 주었다.
"근데 여기 뭘 흘린 거야? 이상한 거 아니지?"
"이, 이상한 거라뇨."
"후훗. 농담이야. 뭘 그렇게 놀래니?"
은근슬쩍 허벅지 안쪽을 터치하는 현아의 손길에 도훈의 물건이 살짝 반응했다. 짧은 반바지 사이로 그의 커다란 물건이 존재감을 드러내자 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 세상에 지금 저게 설마?’
현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옷이 구겨졌다고 보기엔 윤곽이 너무 뚜렷했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크지?’
현아는 짐짓 못 본 것처럼 물러섰다.
"다 닦았어."
"고, 고맙습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일부러 그러셨죠?]
‘당연하지. 대물을 한 번 보여주고 나면 더 집착할 거 같아서.’
[역시 흘리는 솜씨 또한 일품이십니다.]
도훈의 의도대로 도훈의 물건을 어렴풋이 확인한 현아는 가슴이 콩닥 거려 아까처럼 편하게 말을 잇지 못했다.
‘세상에. 얼굴만 존잘인 줄 알았더니···. 거기는 더 대박이네. 세상에 어쩜 이런 애가 우리 반에 들어왔을까?’
현아는 도훈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오늘 밤 회식 이후의 시나리오가 멋대로 펼쳐졌다.
-도훈이는 여자친구 안 사겨?
-사실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어요.
-누군데? 실습생 중에 있어?
-아뇨. 연상이요. 하지만 좋아해선 안 되는 사람이에요.
-그런게 어딨어?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이나 신분같은 건 아무 상관없어.
-서, 선생님···.
-도훈아, 오늘 밤 선생님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푸훕-!"
망상에 빠져있던 현아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야. 아무것도. 저기 지금 드리블하는 애 보이지? 쟤가 대성이라는 얜데 우리 반에서 제일 통이야. 저 얘만 제압하면 나머지 애들을 금방 따를 거야."
"아···, 그렇군요. 네 감사합니다."
"에효, 난 이만 가봐야겠다. 옆에 계속 붙어 있으면 학생들이 괜히 이상한 소문 내거든."
"아···."
"그럼 참관 잘하고 와. 직원 체육 때 보자."
"네, 선생님."
도훈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물러나는 현아의 엉덩이를 한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 탱탱한 엉덩이를 벗겨놓고 두들길 생각을 하니 괜스레 대물이 꿈틀거렸다.
< 480. 교생 실습-2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