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7. 교생 실습-11- >
***
"안녕하세요. 교생 여러분. 저는 연구부장 김한솔이라고 해요. 교장 선생님 인사에 앞서 잠시 학교 소개를 할게요."
연단 위에 선 한솔이 고개를 쳐들었다. 유난히 높은 콧대가 위로 들리며 도도한 인상을 풍겼다. 살짝 업 된 하이톤의 발성에,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은 차갑고 이지적인 뉴스 아나운서를 연상시켰다.
‘촌스럽게 바짝 얼어붙어 있기는···.’
그녀는 평소에도 시건방진 성격으로 유명했다.
학창시절부터 눈에 확 띄는 화사한 외모와, 특유의 오만한 성격 덕에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들이 거의 없었다.
가시 돋은 장미.
그것이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이었다.
‘나이 어린 연구부장이라고 얕잡아 보여선 안 돼. 확실히 엄포를 주어야지.’
사범대 재학 시절 4년 전 장학생.
수석 졸업.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지녔던 그녀는, 단방에 임용을 합격한뒤 만 23살부터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특유의 독한 성격 덕에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에 연구부장까지 꿰찼다. 교사집단 내에서 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필수 보직을 고작 서른 초반에 임명 받은 것이다.
그만큼 그녀는 스스로에게 철두철미했고,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결혼 준비에 바쁜 또래와 달리 오직 일만 보고 살아왔다.
하드 워커 홀릭.
매일 밤늦게까지 야근을 불사하는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이었다.
"저희 대광중은 올해로 개교 29년을 맞이한 학교로서···."
주말 내 준비한 PPT 자료가 스크린에 비추었다. 한솔은 또렷한 발성으로 암기한 스크립트를 읊었다. 사소한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꼼꼼함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공식적으로 첫 출근한 교생들은 다들 긴장된 표정으로 한솔의 프리젠테이션에 집중했다. 입을 쩍 벌리며 하품하는 한 남학생을 제외하면.
‘뭐야? 쟤 지금 하품한 거야?’
유독 한 학생이 눈에 거슬렸다.
스크린을 비추느라 조도가 낮아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드문드문 드러나는 얼굴이 척 보아도 선이 고운 미남이었다. 특히 어깨가 다부지게 넓고 머리가 작은 편이라 차려 입은 수트가 모델처럼 잘 어울렸다.
‘이 시건방진···.’
하지만 한솔에게 외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껏 그녀에게 대쉬한 남자들 중에 저정도 외모를 가진 사내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사람을 보는 기준은 무엇보다 능력에 있었고, 지독한 엘리트 의식과 선민사상으로 가득 찬 그녀는 평소에도 무능력한 선생을 보면 대놓고 혐오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눈 앞은 교생들은 아직 후배도 아니었다.
사범대 생을 예비교사라 부르는 것이 언어도단인 시대.
현재 합격률로 보자면 여기 모인 서른명의 교생 중 나중 임용까지 이르는 수는 손으로 꼽을 것이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감히···. 너 두고보자. 너 나한테 딱 찍혔어.’
연구부장 한솔의 미간이 딱딱해 졌다.
***
"하암··· 왜케 피곤하지."
도훈은 밀려나오는 하품을 참지 못하고 급히 입을 막았다.
순간 PPT를 발표하던 연구부장교사가 자신을 째려보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미 시작된 생리현상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어제 무리하신거 아닙니까? 오랜만에 정음양을 상대했으니까요.]
‘그러게. 일본가선 하루에 2-3탕을 뛰어도 거뜬했는데···. 확실히 정음이 명기는 명기란 말이지. 기빨리는 게 차원이 달라.’
[그래도 PPT에 집중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됐어. 저딴게 뭐라고. 학교 연혁 소개하고 교직원 소개하는 건 그냥 스킵해도 돼. 저 여자는 근데 뭘 저렇게 열심히 준비했대? 그냥 대충 표로 만들어 떼우지는.’
[열심히 한 것을 굳이 폄훼할 필욘 없죠.]
‘뭐 그렇긴 한데···. 근데 상당히 예쁘지 않아?’
[누구요? 저 연구부장이란 사람이요?]
‘엉. 표정이 좀 차가운 거 빼곤···. 이 학교에서 본 여자중에서 제일 예쁜 것 같은데?’
[담임인 정현아도 예쁘다면서요?]
‘아니 현아샘은 몸매가 좋은거지. 그리고 색기가 넘 넘치는 거고. 근데 저 여자는 예쁘긴 한데 향기가 전혀 나질 않는군. 너무 무표정해서 그런가?’
[왠지 주인님쪽을 쳐다보는 거 같은데요?]
‘뭐? 하품 좀 했다고? 지가 야리면 어쩔거야. 나참, 교생이라고 갑질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좀 피곤하면 하품도 할 수 있지.’
[굳이 찍혀선 좋을게 없을 것 같으니 지금부턴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그래.’
잠시 후 불이 켜지며 학교 소개가 마무리 되었다.
한솔은 연단 위에서 교생들을 둘러 보며 물었다.
"잠시 후 교장 선생님께서 인사하러 오실 거에요. 그전에··· 제가 설명한 내용은 다 숙지하고 있겠죠?"
"···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는데 한솔이 다시 말했다.
"우리학교의 교훈, 교목, 교화···. 2주간의 실습이지만 이런 것들 정도는 당연히 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기 니트타이 한 학생."
한솔이 벼르고 있던 도훈을 지목했다.
"저요?"
"네. 일어나 보세요."
빠르게 지나간 PPT에서, 그것도 교화니 교목이니 이런걸 외우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한솔이 도훈을 찝어낸 행동은 명백한 망신주기에 지나지 않았다.
"방금 말한 제 질문 대답해 보세요."
"아···교훈, 교화, 교목이요?"
"네."
"그게···."
도훈이 말꼬리를 흐리자 한솔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여러분. 교직이 회사는 아니지만 기본이라는 게 있어요. 여러분이 만약 회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그 회사의 창립자가 누군지, 또 어떤···."
"교훈은 바르게 살자. 교화는 진달래, 교목은 소나무입니다."
"어?"
설마 대답할 것이라곤 생각못했던 한솔은 자기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맞죠?"
"아, 아···. 네. 맞아요. 음···."
도훈을 무안주기 위해 했던 시도가 엉클어지자 한솔은 순간 할말을 잃고 주춤거렸다. 그때 교장이 등장하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곧바로 교장을 소개했다.
"교장선생님 오셨습니다."
모두가 자세를 바로 잡는 사이 한솔은 눈을 흘기며 도훈을 노려보았다.
‘어, 어떻게 알았지? 분명 내 얘기에 집중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물론 이는 도훈이 얄팍한 수를 쓴 것이었다.
그는 한솔이 질문이 떨어지는 순간 현자타임을 발동했고, 급격하게 올라간 기억력은 몇분전에 망막을 지나쳤던 모든 정보들을 완벽하게 복기해 냈던 것이다.
도훈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 흘김을 무시했다.
‘거, 건방진 자식같으니. 용케 그 부분만 기억해가지고···. 나중에 두고보자.’
***
[왠지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죠?]
‘뭐가?’
[저 연구부장이라는 사람 말입니다. 주인님을 망신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넵 둬. 속이 베베 꼬인 여잔가 보지. 꼭 저런 여자보면 대부분 노처녀더라고. 콧대가 저리 높고 성격이 괴팍하니 아무리 예뻐도 남자들이 좋아해 주겠어? 지 잘난 맛에 사는 건 좋지만, 남을 무시하진 말아야지.’
[으음, 유난히 뾰족하군요.]
‘아, 그런가. 현자타임이라 그래. 머리가 팽팽 도는 건 좋은데 아무래도 여성 혐오가 생기려고 하는군.’
현자 타임이 발동된 도훈은 이김에 교생들을 빠르게 훑으며 여자들을 낱낱이 파악했다.
‘3개 학년 통틀어 여자교생이 21명, 남자가 9명이군. 여자 중에 봐줄만한 애들은 다섯. 그중에 둘은 남자친구가 있고.’
[네? 어떻게 아셨나요?]
‘두명은 왼손에 커플링 끼고 있더라고.’
[아···. 역시 머리가 팽팽도니까 관찰력이···.]
‘그래봐야 뭐 그림의 떡이지. 그나마 다행인건 자주 보는 2학년 교생 대표가 제일 괜찮다는 사실이야.’
[수학과 오진아라는 분 말이죠?]
‘응. 얼굴은 비슷하게 예쁘장해도 몸매가 우월하잖아.’
[확실히 유독 눈에 띄긴 하군요. 옆에 박혜진양과 비교하면 더더욱요.]
빈유와 풍유.
옷태만 보아도 가슴 사이즈의 차이가 상당했다.
게다가 소심한 성격과 적극적인 성격 탓에 풍기는 인상마저 전혀 상반되는 두 사람이었다.
‘흐음. 어쨌든 난 미션만 달성하면 그만이야. 이 학교에 공략할 여자가 하나 뿐이라는 건 좀 아쉽구만. 2주간 고작 미션 하나라니···. 평균적인 달성률과 비교하면 흉작 수준이겠는데?’
[너무 계산적이시군요. 현자타임이라 그런지.]
‘글쎄, 그냥 머릿속으로 자동계산이 되버리네.’
한참 로시와 떠들던 도훈은 다시 고개를 들어 교장을 쳐다보았다. 어느 학교를 가나 교장은 붕어빵으로 찍어낸 듯 똑같은 멘트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물론 마지막일리는 없었다.
교생실습의 의의와 교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태도, 그리고 앞으로 교직에 첫걸음을 내딛는 실습생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구절구절 중얼대는 교장을 지나 도훈의 시선에 연구부장에 머물렀다.
서류판을 가슴팍에 움켜 쥔 한솔은 손톱을 물어 뜯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연구부장이라는 사람, 우리학교 학과실 보조랑 이름이 비슷하네.’
[그렇군요. 동명이인이랄까요.]
‘근데 이미지는 전혀 반대야. 가시가 너무 많아. 생선도 가시가 많으면 발라먹기 힘든 법이거든.’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문득 알림이 울렸다.
띠링-
‘음? 뭐지?’
[주인님 미션입니다.]
‘미션? 흐음, 그렇군. 내 행동 가운데 뭔가가 특정 조건을 충족시킨 모양이군. 아마도 한솔과 관련된 것이겠지?’
[캬, 눈치가 귀신이 다 됐네요. 현자 타임의 위력인가요?]
‘다 보여. 머릿속에 다 보인다고 모든게. 왼쪽편 셋째 줄에 앉은 남자가 몰래 코파는 거랑, 내 뒤에줄 마지막에 있는 여자가 스마트 폰 보는 거. 그리고 내 옆에 앉은 박혜진의 심박수가 평소보다 1.2배 빨라진 것 까지. 주변 모든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어.’
[와···. 역시 3단계나 강화시켜놔서 그런지 아주 무시무시 하군요.]
‘잔말 말고 미션 내용 읊어봐.’
[넵.]
-도도녀를 응징하라.
*실습 학교에 근무하는 콧대 높은 여교사를 응징하는 미션입니다.
*성공 보상으로 3000 포인트가 제공됩니다.
*제한 조건으로 그녀 스스로 당신을 먼저 덮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정신조작이나 호감도를 상향시키는 일체의 아이템과 스킬 사용이 제한됩니다.
*제시된 시간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남은 시간 : 13일
★천상의 메시지★
-팜므파탈 여신의 관심-
"당신의 공략을 팜므파탈의 여신이 관심있게 지켜봅니다. 도도한 그녀의 빗장을 무너뜨릴 때마다, 팜므파탈의 여신이 당신에게 300포인트를 후원합니다."
[미션과 함께 신들의 후원과도 연동되었군요.]
‘호오. 여신이 등장하긴 처음이군. 팜므파탈이라니. 근데 표현이 모호한데? 빗장을 무너뜨릴 때마다는 무슨 뜻이지?’
[아마도 일정 수위에 도달할 때마다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준은 후원하는 신들의 마음이지요.]
‘그렇군. 누군가 저 콧대높은 여자를 꺾어주길 바라는가 보군. 그런거야 내 전공이지.’
[문제는 이번에도 역시 스킬과 아이템이 봉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상대는 주인님께 호감이 거의 없어 보이는 타입이구요. 아니 지금 관계면 모르긴 몰라도 비호감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래? 일단 그 부분은 한 번 확인해 봐야 겠어.’
교장의 소개가 끝나는 순간. 도훈의 현자 타임도 끝이났다.
10분간 폭발적으로 두뇌를 혹사시키는 현자타임은 부작용은, 옆에 헐벗은 처녀가 있어도 무덤덤해지는 성욕감퇴였다.
‘크흑. 젠장. 의욕이 뚝 떨어져 버렸는데···.’
[주인님. 힘내셔야 합니다. 이번 미션에 걸린 포인트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 일단 정보창으로 확인 좀 해보자.’
"학생은 몇 학년 교생이죠?"
아니나 다를까 시종일관 도훈을 벼르고 있던 연구부장 김한솔이 도훈에게 다가와 물었다.
"네. 2학년입니다."
"그렇군요. 나중에 수업지도안 부분은 나한테 평가 받는 거 알고 있죠?"
"아, 그런가요?"
"이도훈군. 내가 기억하고 있겠어요."
한솔이 도훈의 명찰을 노려보며 경고를 남겼다.
그 사이 도훈은 한솔의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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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한솔 (처녀)
나이 : 32 #천연기념물#비혼주의#워커 홀릭
호감도 : 45/100
개방성 : D
성감대 : ???
*애무 포인트 : 애무를 받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성욕지수 : 매우 낮음.
공략팁
*그녀는 당신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잘생긴 남자들에게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가진 능력에 대비 외모로 후광효과를 보는 것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대학 시절부터 늘 성적이 우수했던 그녀는, 여교수가 잘생긴 남학생에게 시험 성적보다 후한 점수를 준 것을 알고 격분했습니다.
-그녀는 당신 또한 그러한 부류로 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편견을 제거하지 않으면 호감도 회복이 어렵습니다.
-추천 멘트 : "교생 대표 수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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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랍군요.]
‘진짜 천연 기념물이잖아? 어떻게 저 나이 먹도록 처녀지?’
[비혼에 워커 홀릭. 남자보다 일이 좋은 여성인가 봅니다.]
‘물론 그거야 그럴 수 있는데···. 외모가 저정돈인데 남자들이 가만 놔뒀다는 데 이해가 안되는데?’
[외모보단 성격에 질려서 나가 떨어졌겠죠. 잘생긴 남자에 거부감이 있으니 대쉬해도 다 튕겨냈을 거고···. 못생긴 남자들은 아예 접근조차 안했을 테니까요.]
‘햐-. 왜 미션이 걸린 줄 알겠군. 이건 거의 난공불락 수준이잖아?’
[자신을 가지십시오. 주인님이라면 빗장을 열 수 있을 겁니다.]
도훈은 자신의 외모가 전혀 먹히지 않는 상대를 보고 내심 당황했으나 이대로 포기하기엔 걸린 포인트가 만만치 않았다.
성공보상만 3000포인트에 신들의 후원을 감안하면 거의 4000~5000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상대였다.
‘좋아. 저 건방진 콧대를 꺾고야 말겠어. 저 오만한 눈이 훼까닥 뒤집혀 내 좆을 빨게 만들어 주지.’
[역시! 불굴의 정신이야 말로 주인님의 매력이랄까요?]
도훈이 돌아선 한솔을 향해 다급히 물었다.
"저 연구 부장 선생님."
"응?"
"혹시 교생 대표 수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467. 교생 실습-1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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