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8- >
안영은 시큰둥한 도훈의 반응에 몹시 실망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밍밍할 수가? 내가 지금 엄청난 기회를 마련해 준 거나 마찬가진데!’
그녀의 부계정 아이디에 컨택 쪽지를 보낸 출판사나 메니지먼트 회사 중엔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일류 업체들이 많았다. 전작도 없는 신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업체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니?
"저기요, 지금 제 말 듣고는 있는 거예요?"
"네, 듣고 있는데요."
"아니 그런데 무슨 반응이···."
그러자 잠자코 앉아 있던 도훈이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으면 심드렁하게 물었다.
"잠시 만요. 제가 먼저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뭐요?"
"지금 저한테 허락도 안 받고 제 작품 무단으로 올리신 거잖아요."
"아, 아니 나는 작품이 너무 재밌길래···."
날카롭게 따지고 드는 도훈의 태도에, 안영이 다급히 변명했다.
"재밌으면, 원 저자 허락 없이 올려도 돼요? 아무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싸이트에?"
"아···, 기, 기분 상했어요?"
"제가 솔직히 민주 샘 아는 분이고, 또 대학원 선배님이라서 그냥 참으려고 했는데 이번 건은 저한테 사과부터 하시는 게 순서 아닌가요?"
"미, 미안해요···."
도훈의 따끔한 지적에 들떠있던 안영이 깨갱하고 수그러들었다. 그때 로시가 도훈에게 말했다.
[모처럼 단호한 태도군요. 저는 나중에 복수의 좆방망이라도 휘두를 줄 알았더니···.]
‘야. 나도 눈 달려 있거든? 저런 퍽은 줘도 안 먹어.’
도훈은 안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성욕이라곤 눈꼽만큼도 일지 않았다. 옆에 있던 민주와 비교해 그녀는 너무 못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겐 정식으로 사과를 받고자 했다.
‘하여간 안영이라는 사람의 잘못은, 민주한테 대신 받아내도록 하지. 친구 잘 못 사귄 민주의 죄랄까.’
[허어, 엄한 불똥이 민주 양에게 튀는 군요.]
‘민주도 딱히 잘한 건 없으니까.’
안영은 도훈의 기분이 많이 상한 것 같아 재차 사과했다.
"제가 경솔했어요. 전 그냥 좋은 뜻으로 한 일인데···. 다시 한 번 사과할게요."
"알겠어요. 사과받으니까 기분은 좀 풀리네요."
도훈은 안영의 사과를 받고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어쨌든 내용을 들어보니 자신에게 불리할 것은 없는 조건이었다.
"근데 아까 말씀하신 컨택이란 게 무슨 말이에요?"
"아, 그건 그러니까···."
안영이 빠르게 현 장르 판 상황을 요약했다.
대여점 체계가 붕괴된 뒤 최근 스마트폰을 이용한 유료결재 시스템이 정착된 것으로부터, 잘나가는 작가는 하루에 수백 만원 씩 수입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수백이요?"
"그렇다니까요? 혹시 웹툰 안 봐요?"
"아뇨, 안 보는데요."
"아···. 웹툰 안보는 구나. 아무튼 웹툰에 스타 작가들이 많잖아요. 방송도 출연하고, 공중파에도 막 나오고. 근데 소설쪽에서도 성공한 작가들은 그런 웹툰 작가들 못지않게 엄청나게 잘 나가요."
"그래요?"
"아까 봤죠? 무료편 조회수가 5만이 넘어 가는 거."
"네."
"이게 유료결제로 넘어가면 편당 100원이거든요."
"한 편에요?"
"네. 그러니까 5만 명이 100원씩 내고 네 작품을 읽었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수입을 올리겠어요?"
빠가가 된 도훈은 곧바로 답이 나오질 않았다.
유독 느려진 계산 실력이 발목을 잡았다.
‘···5만원인가? 50만원?’
그때 좌불안석인 표정으로 안영 옆에 앉아 있던 민주가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오, 오백만원?"
"오백요? 한편 올렸는데 오백을 받는다고요?"
도훈은 생각지도 못한 시장규모에 무척 놀랐다.
"그러니까 제 작품을, 돈 주고 봤다면 한편에 500만원도 벌 수 있다는 말이에요?"
"아뇨, 그건 매출이고. 정확히는 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게 되면 유통하는 플랫폼이랑 매니지먼트와 수익을 나누게 되거든요. 그래도 대충 절반은 남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절반이면 250?"
도훈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한 달에 250, 아니 25만원만 있어도 대학생 용돈으로는 충분할 텐데 하루에 250만원까지도 벌수 있다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시장이었다. 도훈과 민주가 놀란 표정을 짓자, 도훈의 호통에 눌려있던 안영도 점점 신을 내며 말을 이어갔다.
"물론 무료니까 오만명이 읽었을 수도 있죠. 유료로 넘어가면 그 숫자가 유지가 안 되니까."
"아···. 그럼 얼마 정도 되는 데요?"
"음, 작품마다 다르지만 대략 무료 독자의 10% 정도 따라오는 게 업계 평균일 거에요.."
"그럼 오천명···. 그래도 50만원이 넘네요?"
"그렇죠. 지금 작품이 지금 그만한 포텐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에요. 업계에서도 그래서 도훈 학생을 붙잡으려고 안달인 거구요."
"음···."
‘로시, 들었냐? 하루에 50만원을 벌수 있다는 거?’
[작가에게 떨어지는 몫은 정확히 25만원이죠.]
‘그래도 한 달이면 750만원이잖아.’
[글쎄요. 계속 비슷한 수입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단순 계산으로는 그렇군요.]
‘가만 있어봐, 이거 쉽게 생각할 게 아닌데? 한 달에 백, 아니 이백만 벌어도 럭셔리한 대학 생활이 가능하단 말이지. 그런데 한 달에 칠백이면 거의 재벌 수준이라고.’
도훈은 과거 연구원으로 잘나가던 이정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도 1년에 1억 넘게 벌었지만, 그건 선임 연구원에 오른 30대 후반 부터나 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유학파 출신이라 연봉이 좀 더 높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기껏 스물 셋에 불과한 이도훈이 과거 전성기 때와 비슷한 연봉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떨려왔다.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겠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공모전 떨어지고 침울해 하던 주인님에겐 천금 같은 기회로군요.]
"아, 잠시만요, 나 예전 활동하던 출판사에 뭐 좀 물어본 게 있는데 전화가 와가지고··· 잠깐 밖에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안영이 전화기를 들더니 급히 까페 밖으로 나갔다.
이제 둘 만 남게 된 민주는 도훈의 책망이 두려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 전 화장실 좀···."
"앉어."
안영이 나가자 마다 도훈이 태도를 싹 바꾸며 차갑게 말했다. 도망치려던 민주는 그대로 얼어붙은 체 다시 착석했다.
"···네."
"요 앙큼한 것. 내가 분명 내 작품 다른 사람 보여 주지 말랬던 것 같은데?"
"죄송해요 주인님··· 저도 너무 재밌어 가지고···."
"저 여자랑 똑같은 소리 하네? 재밌으면 마음대로 퍼가도 돼는 거야? 블로그에서 글을 퍼가도 퍼가요는 남기겠다."
"아, 안영이가 예전에 장르 소설 출판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쪽 분야 전문가가 보면 어떠나 하고 물어보려고 했어요. 저한테만 재밌을까봐서···. 전 주인님이 쓰신 거라면 뭐든 재밌을 것 같아서요."
"흠···."
민주의 저자세에 도훈도 조금 기분이 풀렸다.
딴에는 자신을 생각해서 한 일 인데, 안영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민주가 대신 덤터기를 쓰는 상황이었다.
민주입장에선 억울한 부분이 있지만, 도훈은 자신에게 쩔쩔매는 민주의 모습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민주는 왠지 괴롭히고 싶어지는 캐릭터란 말이지.’
[쯧쯧. 또 나왔군요. 그 못된 심보. 왜 민주양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입니까?]
‘정말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
[네?]
‘민주는 나한테 혼나면서 지금 혼자 젖고 있을 걸?’
[정말요? 그 정도로요?]
‘내기 할래?’
"어쨌든 잘못을 했으면 누군가는 벌을 받아야지.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한테 화를 풀 수도 없잖아?"
도훈은 그렇게 말하면서 운동화를 벗더니 발을 쳐 들어 반대편에 앉은 민주의 치마 사이로 쑥 집어 넣었다.
도훈의 과감한 행동에 민주가 화들짝 놀라며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공개된 까페에서 설마 이런 짓을 할지는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아, 앗 주인님!"
"다리 벌려. 오므리면 화낸다."
"누, 누가 보기라도 하면···."
"보긴 누가 본다 그래? 여기가 제일 구석인데. 다리 활짝 안 벌려?"
민주는 도훈의 강압적인 태도에 기가 눌려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그러자 도훈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민주의 팬티 가운데를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어쭈? 너 젖은 거 같은데?"
"아, 아니에요!"
"팬티 안으로 발가락 쑤셔봐야 솔직히 말할 거니?"
"···저, 젖었어요."
"너도 참 대단하구나. 친구랑 같이 있는데도 혼자 젖고 있다니."
"주, 주인님이 혼내니까 저도 모르게···."
도훈이 속으로 로시에게 물었다.
‘혹시 아이템 중에 바이브레이터 같은 것도 있을까?’
[바이브레이터요?]
‘어. 저번에 스키장에서 쓴 무선으로 된 거. 천상계 기술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거 아냐?’
[흐음···. 그런 변태적인 물건이 있을 리가···, 아, 있군요.]
‘진짜 있다고?’
[네. 음, 이건 특별한 여성플레이어들은 위해 제작된 물건 같습니다.]
‘특별한 이라니?’
[음, 그게···. 종교적인 이유로 평생 수절해야 하는 수녀나 비구니 플레이어를 위한 제품이라고만···.]
‘어디서 수절인지 모르겠군. 후장만 뚫렸으니 아직 처녀라는 주장인가. 아무튼 아이템 띄워봐.’
[넵.]
도훈이 연신 발가락을 꿈틀대며 스마트 워치를 힐끔 쳐다보았다.
[꿀렁꿀렁 촉수괴물]탄성 고무, 1200p
-형상기억을 가진 특수 재질로 만들어 진 이 제품은, 스스로을 위하는 여성들에게 극도의 쾌락을 선사합니다.
-어플에 연동하여 10가지 모드 가능.
-세척 후 재사용 가능
-햇볕에 말리면 자동 충전.
‘오오, 이름부터가 이건 무슨···.’
[신중히 판단하셔야 합니다. 지구상엔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라 민주양이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민주가? 나를? 아니, 절대 그럴 일 없을 걸. 민주는 내가 오줌을 먹여도 군 말 없이 들이킬 아이니까.’
[알겠습니다. 주인님이 알아서 판단하실 문제죠. 1200포인트나 되는 데 구매하시겠습니까? 최근 중간고사 대비로 미션 수행을 뜸하게 하셔서 포인트가 점점 바닥나고 있습니다.]
‘괜찮아. 시험 끝나고 한 판 크게 벌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후 지정된 장소로 물건이 전송됩니다.]
‘전송위치는 내 가방으로 해줘. 저런 물건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진짜로 변태 같아 보이니까.’
[이미 변태 맞으시면서···.]
‘닥쳐!’
발가락을 세워 민주를 괴롭히던 도훈은 잠시 후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넌 오늘 안영이 몫까지 해서 혼 좀 나야겠어."
"하, 하악, 주인님···."
"내가 외국에서 신기한 물건을 하나 직구했거든. 어디보자···."
도훈이 가방에서 꺼내든 것은 보라색의 끈적한 물질이었다. 소위 액체괴물이라 불리는 물체처럼 끈기가 있으면서도 서로 잘 뭉쳐져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에요?"
"응. 널 괴롭힐 도구."
"아, 아···."
"지금 화장실 가서 팬티 안에 생리대처럼 딱 붙이고 와."
"왜, 왠지 비위생적일 거 같은데···."
"아니야. FDA 승인 받아서 인체에 무해한 제품이야. 내 말 못 믿어?"
"아, 아니에요. 근데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
"자꾸 토 달래? 확, 그냥."
"죄, 죄송해요. 지금 당장 다녀올게요."
민주가 꿀렁꿀렁 촉수괴물을 받아들더니 화장실로 향했다. 그 사이 통화를 마쳤는지 안영이 복귀했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아니에요."
"근데 민주는 어디 갔어요?"
"아, 방금 화장실 가신다고···. 아마 금방 올 거에요."
안영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방금 전 통화한 내용을 전했다.
"도훈 학생. 제가 방금 이전 편집장님이랑 통화하고 왔거든요."
"네."
"실은 저도 현장 떠난 지 좀 돼서 감이 좀 없어서요. 그래서 편집장님한테 도훈씨 소설을 어디랑 계약하면 좋을지 살짝 여쭤봤어요."
"음, 그래서요?"
"혹시 시간 되면 만나보자는 데요?"
"그 편집장님이요?"
"네. 자랑은 아닌데 제가 있던 출판사가 굉장히 큰 곳이었어요. 이름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작가들도 엄청 많고요."
"잠시 만요. 근데 제가 아직 작품을 계속 쓴다는 말도 안했는데···. 저 그거 공모전에 올린 거 아시는 거죠?"
"네네. 물론이죠. 민주가 엄청 재밌게 봤다면서 저한테 한 번 봐달라고 하더라고요. 나름 업계에 종사했으니 작품 보는 눈이 있겠다면서요."
"네. 민주샘에게 방금 들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도훈 학생 작품은 공모전에 낼 작품은 아니에요."
"음."
"아뇨, 아뇨. 공모전 같은데 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말이죠. 혹시 문학하고 싶어요?"
‘난 그냥 상금 500만원을 타고 싶었을 뿐인데···. 만능 만년필 성능 테스트도 해볼 겸.’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글 쓰는 걸 좋아해서요."
"그렇죠? 제가 볼 때 도훈군은 정말 재능이 넘쳐요. 문학성을 몰라도 재미 면에서는 정말···. 혹시 그거 경험담이에요?"
안영이 은근히 슬쩍 관심을 드러내자 도훈이 정색하며 딱 잘랐다.
"아뇨. 그냥 인터넷으로 들은 이야기 짜깁기 한 건데요."
"아···. 그렇구나. 너무 생생해서 놀랐어요. 만약 상상만으로 써낸 거라면 도훈군은 정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거예요. 타고난 이야기 꾼이랄까?"
"과찬이시네요."
"아무튼, 저희 편집장님 만나서 얘기만 한 번 해보세요. 작품을 계약 안하더라도 분명 좋은 조언 많이 해주실 거예요."
도훈이 고민하는데 화장실에 들른 민주가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스마트 워치가 미약하게 떨리며 알람을 알려왔다.
[꿀렁꿀렁 촉수괴물이 장착되었습니다. 모드를 실행시키시겠습니까?]
도훈이 알람을 보며 씨익 웃었다.
< 411.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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