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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424화 (397/2,000)

< 406.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3- >

[얼씨구,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시구요. 주인님은 PK단 만나면 일단 튀는 게 상책입니다.]

‘왜? 나도 싸움은 잘한다고.’

도훈의 신체 능력은 상위 1%의 레벨.

프로선수에겐 못 비벼도, 아마수준에서는 비교할 상대가 없는 수준이었다.

근력, 체력 민첩성까지 고루 발달한데다, 투기 종목인 태권도와 유도 능력까지 흡수했기에 스스로도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게다가 타고난 피지컬 덕에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에게 시비를 걸 생각조차 못했다. 158의 이정우 시절엔, 툭하면 어깨빵 당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눈빛만 마주쳐도 기가 질린 사내들이 슬금슬금 그를 피했다.

[능력자 간의 대결이란 주인님이 생각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뭐라?’

로시가 도훈을 향해 냉엄히 경고했다.

[인간을 기준으로 그들을 비교하지 말라는 겁니다.]

‘걔네는 뭐 용가리 통뼈야? 맞으면 안 아파?’

[그런 능력자들도 충분히 있죠.]

‘정말?’

[아이언 스킨, 혹은 금강불괴 스킬을 익혀 극성의 경지에 오르면 흔히 말하는 도검 불침의 존재가 됩니다. 일설엔 총알도 튕겨낸다 하더군요.]

‘헐! 그거 실화냐?’

[실화고 말고요.]

‘젠장, 나도 대물만큼은 쇳덩이처럼 만들 자신 있는데···.’

[바로 그게 문젭니다.]

‘응?’

[주인님의 클래스가, 그러니까 고른 직업이 하필 색공의 대가라는 사실이요.]

‘흐음···. 한마디로 능력자간의 대결에선 내 섹스킬은 별 쓸모가 없다?’

[그렇죠. RPG 게임에 비유하면, 남들은 투사니 검사니, 마법사를 고를 때 주인님은 정력왕을 고른 셈이거든요. 아무리 일반인 중에 뛰어나봐야 뭐합니까? 능력자에겐 개미나 사마귀나 밟으면 끝나는 건 똑같은데.]

‘후읍-. 젠장, 그렇게 직설적으로 비유하지 말라고. 듣는 사마귀 기분 나쁘니까.’

[아무튼 PK단을 혹시라도 만나게 되거든 그것만 기억하십시오.]

‘무조건 튀어라?’

[네. 혹시나 나중에 힘을 길러 그들을 제압할 수 있게 될지 는 모르지만, 당장은 그게 가장 현명한 처사입니다.]

‘···알았어. 분하지만 당분간 바짝 엎드리는 수밖에.’

***

미호는 오랜만에 대학생으로 변신했다.

그녀의 아홉 인격 중 가장 어린 ‘요나’의 등장이었다.

요나로 변한 미호는 아침 내 화장을 다듬으며 분주히 움직였다. 그녀는 실제 대학생이 된 것처럼 표정부터 몸짓 하나까지 완벽하게 변해 있었다.

군령자라 불리는 독특한 능력.

아홉 개의 혼을 한 곳에 담아 두고 필요할 때 적절히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그녀가 가진 능력이었다.

"룰루~ 오랜만에 캠퍼스 밟아 보는구나~."

화장대 앞에서 빨간 틴트를 바르는 요나는 무척 들 뜬 표정이었다. 상큼하게 땋아 올린 머리는 하얀 목덜미를 훤히 드러내고 있어, 순결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색기를 흘렸다.

혼이 바뀌면 미묘하게 달라지는 얼굴 표정과 분위기 덕에 사람들은 그녀를 아홉 명의 다른 사람으로 인식했다. 분명 똑같은 얼굴인데도, 전혀 다른 인상으로 비치는 능력. 흔히 말하는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처럼, 미호는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

었다.

"뭐? 진짜로 플레이어를 발견하면 어쩔 거냐고?"

바르던 틴트를 멈춘 체 요나가 혼잣말을 했다.

영혼들은 안에 갇혀 있다가도 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글쎄, 여자면 죽이고 남자는 겁탈해 버릴까나?"

요나는 치창을 이어가며 계속 혼잣말을 했다.

거울을 바라보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약간은 섬뜩한 느낌마저 풍겼다.

"···걱정 마, 세나 언니. 능력자 협회에서도 날 어찌할 순 없으니까. 어차피 협회장도 한 달에 한 번 흡생하는 것은 인정해 주기로 했다고."

"맞어. 웃기지? 그 뱀파이어 놈은 요새 헌혈병원에서 수혈 받는 다며? 세상에 아무리 이족(異族)이 씨가 말라도 그게 뭐니, 구차하게."

"아무튼 기왕이면 크고 실한 놈이면 좋겠어. 생기 쪽 빨아 버리게. 이번에 그 이종격투기 선수도 제법 쓸 만해 보였는데···."

"맞아 맞아. 원래 덩치 크다고 거기 큰 거 아닌 거. 저번에 왕언니가 그랬잖아. 지금까지 상대한 남자들 중에 가장 대물은 정조 때 밭일하던 머슴이었다면서, 푸하하."

다른 인격들과 떠들며 한참 혼잣말을 하던 요나가 세팅을 마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책상위에 놓아 둔 두툼한 클리어 파일을 가슴팍에 안으며 씽긋 웃었다.

"자, 그럼 어디 영계 사냥하러 가 볼까?"

***

"야, 저기 봐 저기. 누구냐 저 뉴 페이스는?"

학점 떨어지는 나무로 유명한 학떨목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던 태영이 친구 기남에게 말했다.

"···?"

"인마, 눈이 콧구멍에 달렸냐? 저기 노란 원피스 말이야."

"아아···. 처음 보는 얼굴인데 다른 단대 학생 아닐까?"

"야, 근데 진짜 참신하게 예쁘다. 사범대 4대 천황 뺨치겠네."

"4대 천황?"

"몰라? 원래 삼대장으로 불리던···. 음악과 고소미, 사회과 허나리, 과학과 이보영 말이야."

"그 사람들이 누군데?"

"와, 이 자식 진짜 맨날 닭처럼 졸기만 하더니 세상 물정 너무 어둡구나. 다들 사범대에서 날고 긴다는 미녀들이라고. 근데 이번에 우리 체육과에서 한 명 더 올라가는 바람에 삼대장에서 사대천황이 됐잖아."

"우리과? 누구?"

"누군지 몰라? 바로 1학년에···."

"저기요?"

태영이 한참 흥분해 떠드는 사이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학생이 태영에게 다가왔다. 태영은 갑자기 다가온 여학생의 미모에 놀라 손에 든 콘 아이스크림을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으앗!"

"어머! 괜찮으세요?"

"아, 아니요. 안 그래도 버리려고 했어요. 하하!"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죄송해요. 저 때문에."

여학생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동안 태영은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눈을 떼지 못했다.

‘헉! 가까이 보니 젖탱이도 대박이네. 최소 C컵 이상인데?’

"정말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로···."

"길 좀 여쭈려고요. 여기가 사범대 1관 가는 길 맞나요?"

"네. 저기 저 건물이 1관이구요, 그 뒤가 2관이에요. 근데 사범대 생 아니신가 봐요?"

원피스를 입은 학생은 수줍게 웃으며 손에 든 클리어 파일을 들어 올렸다. 겉면엔 네임 팬으로 쓴 소속과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연과학부, 이요나.’

"아! 공대생이시구나."

"네."

"근데 사범대엔 어쩐 일로?"

이과인 자연과학부는 사범대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가끔 교양 수업에서 만난다고는 하나, 애초부터 연관성이 전혀 없는 공대 학생들이 사범대로 넘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아, 누굴 좀 찾느라고."

"그러시구나. 제가 도와 드릴까요? 무슨 관데요?"

"정말요? 근데 과를 잘 몰라서···."

"이름은 알아요?"

"이름도 잘···."

태영은 살짝 당황했다.

공대 아름이가 분명한 청순한 여학생은 과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대체 뭐지? 첫눈에 반한 사람일까?’

그때 요나가 말했다.

"아, 키가 무척 커요. 남자 구요."

"아하, 키 큰 남자."

태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의심을 확신했다.

‘어디 수업에서 우연히 사범대생인 걸 알게 된 남학생인가 보네. 쳇, 예쁘게 생겨서 들이대 볼까 했더니만···.’

"···도와··· 주실 거예요?"

"하하, 아니 그게···."

첫눈에 반한 이상형을 찾아 사범대까지 건너 온 공대 여학생을 도와줄 이유는 하등 없었다. 그러나 요나의 눈빛이 너무 간절해 도무지 외면할 수 없었다.

‘젠장! 난 왜 이렇게 사람이 착한 거냐고!’

"네, 뭐. 그럴게요. 마침 수업도 공강이기도 하고."

"고마워요. 정말 친절하신 분이 시군요."

요나가 감격스런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감사를 표하자, 태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으읏! 이런 횡재가! 이 손 일주일간 안 씻어야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이 사나이의 매너죠. 안 그러냐 기남아?"

"···으음? 나는···."

기남은 요나가 가까이 다가온 직후부터 뭔가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둘 사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우물쭈물 거렸다.

"왜? 너도 할 일 없잖아."

"아, 아니. 나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어. 먼저 가볼게!"

기남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요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신기가 있는 놈이구나. 꼬리를 감춘 내 정체를 눈치 채다니. 혹시 저 놈이 플레이어?’

그러나 마음속의 다른 인격들은 요나의 의견에 반대했다.

<무당처럼 어설프게 귀기(鬼氣)를 느끼는 놈 정도겠지.

‘흐음. 하긴 플레이어였다면 팔찌가 먼저 반응했을 테니.’

요나는 기남에 대한 의심을 접고 다시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 사이 기남을 애타게 부르던 태영이 뻘쭘하게 요나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친구놈이 영 숫기가 너무 없어가지고···. 미인을 보면 늘 저렇게 도망친단 말이죠. 하하하!"

"어머, 지금 저보고 하시는 말씀이세요?"

"당연하죠. 설마 옆에 있는 오징어들 보고 하는 말일까!"

태영이 나름 점수를 따기 위해 아부를 했지만, 요나는 속으로 코웃음이 나왔다.

‘쯧쯧. 철부지 같은 놈. 생기 쪽 빨려 봐야 정신 차리지.’

하지만 오늘은 옵져버의 제보에 따른 플레이어 탐색이 먼저였으므로 요나는 금세 생각을 고쳤다.

‘운 좋은 줄 알아라, 너. 오늘 1년 수명 번거니까.’

태영은 그녀와 둘이 사범대 교정을 거닐며 신나게 떠들었다.

주로 요나의 외모를 칭찬하는 동시에, 자신의 장점을 어필하는 것들이었는데 수백년 먹은 구미호인 요나로서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뻔한 수작이었다.

"어제도 스쿼드 캐리해서 치킨 먹었거든요. 하하, 제가 게임하나는 타고 나가지고."

"사실 이래 뵈도 체육과 다녀요. 운동도 썩 나쁘진 않죠. 친구들이 저더러 10Cm만 더 컸으면 NBA 입단했을 거라며···."

태영의 끝없는 자기PR에 요나도 슬슬 안내자를 잘 못 골랐나 싶은 후회가 들었다.

‘아우 씨, 진짜 듣기 싫어 죽겠네. 확 입을 꼬매 버릴 수도 없고.’

"저기 태영씨라고 하셨죠?"

"네. 근데 씨가 뭐에요 동갑끼리. 그냥 태영이라고 해."

"그래. 근데 태영아, 혹시 사범대 다니는 학생들 중에서 키 큰 사람은 잘 모르니? 너네 과에는 없어?"

요나의 물음에 태영이 고민에 빠졌다.

‘많지. 특히 배구하는 선배들은 다들 180은 넘으니까. 가만있자, 근데 내가 얘를 도와줘야 하는 게 맞는 거야 아닌 거야?’

다른 것도 아닌 요나가 ‘남자’를 찾는 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만에 하나 그녀가 찾는 사람이 체육과라면, 괜히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아닌가? 못 먹을 감이지만 남 주긴 아까웠다.

"우리 과? 음, 사실 키 큰 사람은 거의 없어. 키까지 크면 체육교육과 안 오고 운동선수 했을 테니."

태영이 거짓말을 했다.

사범대 사정을 잘 모르는 요나는 의구심에 다시 물었다.

"그럼 너보다 큰 사람도 없어?"

태영이 뻔뻔하게 말했다.

"응. 나 정도면 우리과에서 손에 꼽히게 큰 편이거든."

‘아···. 분명 키가 크다고 했는데. 체육과는 우선 아닌가 보네.’

"혹시 다른 과 사람들은?"

"글쎄···. 영어과에도 한 명 있고, 미술 과에도 있고···."

"거기가 어딘데?"

"사범대 2관이야, 저 뒤쪽 건물."

"아···. 그래. 알겠어. 고마워. 나 먼저 가볼게."

"왜? 내가 안내해 줄게."

"아니야. 괜히 시간 뺏어 미안."

‘이런 날파리 같은 녀석. 도움도 안 되고 옆에서 쫑알대기만 하니 얼른 치워버려야지.’

요나가 갑자기 손가락을 마주치며 교묘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태영이 두 발에 본드가 붙은 것처럼 바닥에 철썩 달라붙고 말았다.

"어라?"

"그럼 먼저 간다."

"아, 아니 잠깐 이게 뭔···."

태영이 옴짝달싹 못하고 당황하는 사이 요나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녀는 마치 축지법이라도 쓴 것처럼 스르륵 바닥을 미끄러졌지만, 태영은 땅바닥에 달라붙은 발을 때어 내는데 정신이 팔려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아씨, 누가 여기다 뭘 붙여 놓은··· 어? 요나 어디 갔지?"

분명 방금 전까지 있던 요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태영은 어리둥절하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땅으로 꺼지거나 하늘로 솟구치지 않는 한, 가시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태영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됀···."

"거기서 뭐하냐, 김태영."

그때 사범대 1관을 나오던 훤칠한 사내가 태영에게 말을 걸었다.

"도훈이형! 아니, 누가 여기다 껌을···."

태영은 발바닥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무리하게 움직이다 혼자 바닥에 벌러덩 넘어졌다.

"우앗!"

쿵-!

요나가 걸어 놓은 주술이 풀린 사실을 몰랐던 태영은 형편없이 바닥을 굴러야 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도훈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 요새 연극동아리에서 슬랩스틱 공연하니?"

"아, 아니에요! 분명 여기다 누가 접착제를···."

"뭔 접착제?"

도훈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바닥을 살폈지만, 바닥엔 아무 흔적도 없었다. 태영은 뻘쭘해져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섰다.

"진짜 별 일이 다 있네."

"왜? 뭔 일 있었어?"

"아, 아니에요. 다리 신경이 잠깐 꼬였었나 봐요."

"그러니까 게임 좀 작작하라니까. 맨날 의자에 앉아있으니까 글치."

"흐흐. 형은 수업 끝났어요?"

"응. 이제 점심이야."

"다음 수업 저랑 같이 듣는 거 맞죠? 우리 점심이나 같이 때릴래요?"

도훈이 흔쾌히 응했다.

"나도 먹을 사람 없었는데 잘 됐네. 너 근데 방금 왜 그랬냐?"

"몰라요. 괜히 수상한 사람을 만난 것 같아서···. 아참 형 그거 국춘 문예 어떻게 됐어요? 결과 나왔어요?"

태영과 도훈이 떠들며 식당으로 향하는 사이 요나는 열심히 플레이어의 흔적을 찾아 돌아다녔다.

사범대 내에 키 큰 남자는 샅샅이 살폈지만 플레이어로 의심되는 사람은 없었다. 허탕을 친 요나가 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여간 이 오탁후 놈들을 믿은 내가 병신이지! 아으, 본부에 이상 없다고 보고 해야겠다."

우연히 도훈과 엇갈려 버린 요나는 아무 소득도 없이 본부로 돌아갔다.

< 406.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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