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 조각모음-29- >
[혹시라도···. 아닙니다. 굳이 그런 얘길 지금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군요.]
‘뭐야, 사람 궁금하게?’
[누구 말마따나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때 담배 피우러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훈이 저도 몰래 시선을 따라가는 데 나이트 입구에서 엄청난 몸매의 여자가 걸어 나왔다.
"우아, 몸매 실화냐? 저 여자 좀 봐. 아주 작살나네."
"지린다 진짜. 옆에 남자 새낀 계 탔나 보다, 오늘."
사내들의 이목을 잡아 끈 이는 모델처럼 늘씬한 여자였다.
높은 힐을 신고 있기도 했지만, 키가 굉장히 커 실제로 모델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쭉 뻗은 다리에 쏙 들어간 허리, 골이 훤히 비치는 가슴까지···. 어디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대박! 나이트에 저런 애가 있었다니···.’
[남자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쳐다보는 군요.]
‘당연하지. 남자는 시각적인 자극에 취약하거든. 여친이랑 같이 있어도 옆에 몸매 좋은 여자 지나가면 본능적으로 눈이 돌아간다는 말씀이야.’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뭐를?’
[저 분의 실제 몸매요.]
‘실제 몸매라니? 아아! 쓰리 사이즈 스카우터?’
[맞습니다. 주인님이 맨몸으로 업적을 달성하고 받으신 아이템이면 어떤 여자든 실제 몸매를 측량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군. 전송해봐.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고.’
[상의 포켓으로 전송했습니다. 상세 내용은 디스플레이에 띄우겠습니다.]
[3 size 스카우터]안경
-상대의 몸매를 완벽하게 측정해 디스플레이에 띄워줍니다.
-수치는 인치(Inch) 단위로 제공됩니다.
-착용 시 사용가능.
*남성의 신체 정보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제한 거리 5M.
도훈은 검은 색 뿔테 모양의 안경을 손에 쥔 체 설명을 확인했다. 겉보기엔 평범한 안경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쓰고 상대를 쳐다보면 된다는 건가?’
[네. 착용 후 대상을 지정하시면 3D 스캐닝을 통해 여성의 신체 정보가 디스플레이에 표기됩니다.]
‘오호라.’
도훈은 안경을 쓰고 지나치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순간 렌즈의 위아래로 한줄기 가로선이 훑고 지나갔다. 마치 복사기가 돌아가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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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우터와 연동된 스마트 워치로 위치 좌표 같은 3개의 숫자가 표기되었다.
‘이게 그러니까 저 여자의 실측 몸매란 소리지?’
[네. 순서대로 바스트-웨스트-힙입니다.]
‘둘레가 29인치라고? 저 가슴이? 것보다 훨씬 커 보이는데?’
[스카우터는 결코 오류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리 보인다면 아마도 착시효과 겠지요.]
‘착시? 아아, 뽕이란 소린가? 헐.’
여자의 진실을 확인한 도훈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과도하게 부풀린 가슴이 알고 보니 뽕이었다니.
스카우터가 제시한 정보로 봐선 키만 쓸데없이 큰 절벽녀였다.
‘가만. 설마 엉덩이도 그럼?’
[네. 패드를 착용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젠장, 와꾸 좀 괜찮다 싶었더니 엉뽕에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 가슴이었다니···.’
도훈이 실망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정우 오빠?"
"어?"
새로운 아이템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도훈은 혜미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여기서 기다렸어요? 근데, 원래 안경 썼던가?"
"아···, 응. 밤 눈이 좀 침침해서."
"풉-. 뭐에요, 젊은 사람이. 비타민A 부족인가 보네."
도훈이 계속 안경을 쓰고 있던 탓에 자연스레 혜미의 몸매도 스캔되었다. 힐끔 디스플레이를 쳐다보자 다른 수치가 표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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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바스트 보소?’
[몸매는 이쪽분이 훨씬 훌륭하군요.]
도훈은 다시 한 번 혜미의 큰 가슴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뽕 찬 모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참젖에, 기분이 흡족해졌다.
‘역시 내가 사람보는 눈은 정확하단 말씀이야.’
도훈이 계속 가슴 쪽을 쳐다보자 부담을 느꼈는지 혜미가 팔을 들어 상체를 가렸다.
"뭐에요? 지금 어딜 보는 거예요?"
"아, 아냐. 아깐 안경을 안 써가지고 이렇게 예쁜 줄 몰랐네."
"흥! 얼굴도 안 쳐다봐 봤으면서 무슨."
"얼굴 예쁘단 소린 아니었는데?"
"어머어머, 이 오빠가 증말."
혜미는 유쾌한 성격 같았다. 짓궂은 도훈의 농담도 가볍게 받아 넘겼다.
"친구들이 자꾸 2차 가자고 해서 혼났어요. 먼저 보내느라."
도훈은 안경을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랬어?"
"네. 다들 취해가지고···. 실은 부킹이 안돼서 좀 짱 났거든요."
"부킹이 안됐어?"
"뭐 그냥저냥···."
혜미가 배시시 웃었다.
사실 2차를 가자고 한 남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혜미는 도훈을 생각하며 끝끝내 거절했다. 친구들의 부킹이 실패한 이유는 모두 혜미 때문이었다.
"오빠는요? 같이 온 사람들은 어딨어요?"
두 사람은 음식점이 있는 곳으로 향하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다 해산했어. 비싼 룸 잡고 아무것도 못 했다고 다들 열내면서."
"풉-. 그럼 룸 잡아서 뭐하려고 했는데요?"
"뭐하긴. 기왕이면 조용하게 얘기나 하려던 거지."
"아닌 거 같은데? 응큼한 생각했죠?"
혜미가 자연스레 팔짱을 껴왔다.
풍만한 가슴이 팔꿈치를 누르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리고, 귀엽고, 때론 도발적인 아이였다.
도훈은 혜미의 솔직한 모습이 쏙 마음에 들었다.
‘봤지? 얘는 온전히 내 힘으로 꼬신 거다.’
[누가 뭐랍니까? 이미 업적도 달성하신 분이···.]
‘그래도 아까 텐프로 랑은 차원이 다르지. 걔들은 떼 씹도 서슴없이 하는 발랑 까진 애들이고, 얘는 순진한 대학생이잖아.’
[어딜 봐서 순진하다는 줄 모르겠군요. 처음 보는 남자에게 불쑥 팔짱을 끼어대는 모습이요?]
‘됐다. 말을 말자.’
이미 두 차례 질펀한 섹스를 마친 도훈이었지만, 혜미와 단둘이 있으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특히 이정우 본연의 모습으로 매료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성취감을 느꼈다.
"응큼하기는 너도 만만찮거든?"
도훈이 바짝 붙은 혜미를 향해 말했다. 혜미에게선 살짝 술 냄새가 났다. 자세히 보니 두 볼은 빨개져 있고, 발걸음도 불안했다.
"아니에요. 잠깐 어지러워서 기대는 거라구요."
"술 많이 마셨니?"
"최대한 뺀다고 뺐는데, 예의상 한 모금씩 하다 보니···."
"부킹을 얼마나 갔으면, 십시일반 가지고 취하니?"
"열번 쯤 넘게?"
"열번 넘었다고?"
"몰라요. 그 못생긴 웨이터가 엄청 끌고 가더라구요. 여기 끝나면 저기. 저기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오늘 룸이란 룸은 죄다 돈 것 같아요."
"헐. 쏴이 이 자식, 우리한텐 3번도 안 해주더니."
"정말요?"
"그렇다니까? 처음엔 좀 넣어주는 가 싶더니 팁을 많이 안줬더니 너무 신경 안 쓰더라. 룸 가면 무한 부킹 해준데서 간 거였는데···."
도훈은 거짓말을 했다.
굳이 여기서 진실을 밝힐 필욘 없었기 때문이었다.
[와, 뻔뻔하시군요.]
‘그럼 여자 넷을 자빠뜨려 룸 떡 쳤다고 말하리?’
[알아서 하십시오. 주인님 마음가는 데로.]
"부킹 많이 못해서 섭섭했어요?"
"아니 꼭 섭섭하다기 보다···. 넌 많이 해서 좋았겠다?"
"아닌데요."
혜미가 정색했다.
"하나도 재미없었어요. 억지로 끌려가서 호구조사나 당하고···. 별로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 부른 거야?"
"제가요? 전 그냥 집에 간다고 했는데 오빠가 해장 하자고 부른 건데요?"
도훈은 계속 부딪혀오는 혜미의 가슴에 슬슬 음심이 동했다. 음양보합술로 인해 현저하게 줄어든 현자타임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쯤에서 시동 걸어 볼까나.’
"진짜로 해장만 하고 가게?"
도훈의 뼈가 담긴 말에 혜미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아휴, 진짜. 오빠 엄청 노골적이시다."
"그래서 별로야?"
"아뇨. 저 사실 오빠만 기다렸어요."
"나를?"
"네. 실은 밖으로 2차 가자고 조르는 남자들 많았거든요. 친구들도 놀자고 하고. 근데 제가 계속 튕겼어요."
"왜?"
"오빠랑 놀려고요."
"왜?"
"···이유를 굳이 말해야 되요?"
그때 두 사람의 발걸음이 모텔 앞에서 멈춰 섰다.
도훈은 본능적으로 삘이 왔다.
‘모텔 각이다.’
"해장국 먹을래, 아님···."
"아님?"
"나 먹을래?"
"아 쫌!"
혜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도훈의 팔을 찰싹 때렸다. 이미 단 둘이 만날 때부터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혜미가 스스로 도훈을 이끌었다.
"가요. 가."
"진짜로?"
"뭐, 어때요. 둘이 좋으면 됐지."
혜미의 적극적인 모습에 도훈은 매우 흡족했다.
스킬 없이 본연의 힘으로 꼬셨 다는 점이, 그에게 전에 없는 성취감을 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정우의 힘으로 이뤄낸 트로피였다.
"나 너 안 재운다."
"피. 말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텔로 입성했다.
***
배명우가 다시 눈을 뜬 시각은 도훈이 혜미를 데리고 모텔로 입성할 즈음 이었다.
‘으으, 골이야.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지?’
배명우는 극도로 탈진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하프마라톤을 뛰고 집에 와 뻗을 때의 피로감. 섹스 한 번 했다고 이렇게까지 기력이 쇠한 적은 처음이었다.
‘뭐야? 그 여잔 먼저 가버린 건가?’
유치원 교사 하나는 보이지 않았다. 잠든 사이에 떠난 그녀를 야속해 하며 명우가 머리맡 협탁에서 담배를 찾았다.
‘어휴, 골이야. 술은 많이 안마신 것 같은데···.’
그는 지금의 두통이 숙취의 일종이라 여겼다.
침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자 파편처럼 기억이 떠올랐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후다닥 끝나버린 섹스. 어딘지 모르게 기가 빨리는 느낌에, 관계를 마치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씨발, 내 지갑!"
퍼뜩 꽃뱀 생각이 난 배명우는 걸쳐 놓은 상의 주머니에서 서둘러 지갑을 찾았다. 나이트 온다고 현금을 두둑히 찾아 놓은 게 생각났던 것이다.
'어쩐지 그런여자가 공짜로 준달때 눈치깠어야 했는데'
그러나 지갑은 다행히 그대로 있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BMW키홀더도 함께.
"에이, 괜히 쫄았네."
하나가 지갑이라도 훔쳐갔을 까봐 전전긍긍하던 그는, 허탈감에 피식 웃었다. 그때 벽면에 전신 거울에 나체인 자신의 몸이 비쳐졌다.
"어?"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 배명우는 왠지 모를 위화감에 거울로 다가가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유독 거칠어진 피부는 건조하다 못해 푸석푸석했다. 머리에도 윤기가 하나도 없고, 눈 밑으로 다크써클이 진하게 내려 앉아 있었다.
"언제 이렇게 늙어 버렸담?"
본래 노안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배명우는 거칠어진 피부를 매만지며 의문에 빠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배명우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공떡이라고 좋아했지만 크나큰 대가를 지불한 그였다.
***
"아니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야?"
"기둥이 형도 톡방 나가버린 것 같은데요?"
"뭐, 진짜?"
"네. 나간 지 한참 됐어요. 방장이랑 샤대생 형은 여전히 잠수고."
"와, 우리 뒤통수 맞은 거야?"
"일단 가볼까요? 아까 룸 넘버 알려준데로."
"그래."
파리 날리는 부스에서 외롭게 앉아 있던 덩치와 춤꾼이 마침내 룸으로 향했다. 교대하기로 약속된 시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자,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여기지?"
"네."
"들어가 볼까?"
"네."
"먼저 들어가."
"네?"
덩치는 소심하게 룸 앞에서 머뭇거렸다. 덩치 값을 못하는 그는 괜히 다른 방문을 열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결국 푹- 한숨을 쉬며 춤꾼이 먼저 들어갔다.
"혀, 형! 와보세요."
"왜?"
덩치가 조심스럽게 룸으로 들어갔다.
"헉! 이게 다 뭐냐?"
룸 안은 난장판 이었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사방이 어질러져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이 냄새는···."
"그지? 분명 떡 친거지?"
바닥에 튄 정액과 여자들의 분출물에서 스며 나온 냄새가 밀폐된 룸 안에 퍼져 있었다. 그제야 당했다는 걸 깨달은 덩치가 주먹을 쥐며 소리쳤다.
"씨발, 방장 팀 새끼들 지들끼리만 재미보고!"
"그냥 가버린 거예요? 룸 안에서 해결하고?"
"딱 보면 모르겠냐? 우리 완전 뒤통수 맞은 거라니까?"
그때 열려진 룸으로 웨이터가 들어왔다.
그의 가슴팍에는 ‘쏴이’라는 명찰이 걸려 있었다.
쏴이를 본 덩치가 따지듯 물었다.
"웨이터. 여기 있던 손님들 어디 갔어요?"
"아니 누가 룸을 이 따위로···."
"여기 손님들 어디 갔냐고요."
"혹시 일행이십니까?"
"일행 맞는데, 언제 나갔는지도 몰라요?"
일행이라는 말에 쏴이의 얼굴이 대번에 험악해졌다.
"···이것들 이거 진짜 말로 해선 안 될 놈들이네?"
"네?"
그때 쏴이 뒤로 나이트 기도로 보이는 등빨 좋은 사내 둘이 뒤 따라 들어왔다. 쏴이가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도 일행이랍니다. 룸 청소비까지 아주 톡톡히 받아내야 정신 차리지. 어우, 진상 새끼들 진짜 하는짓 하고는."
덩치와 춤꾼은 영문도 모른 체 서로를 쳐다보며 눈을 껌뻑였다.
***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혜미가 나를 껴안았다.
"오빠. 나 오늘 괜찮은 날이아. 안에 해도 돼."
적극적인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역시 여자는 단둘이 누워봐야 안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떨어트렸다.
"정말 괜찮겠어?"
"응. 처음 볼때 부터 오빠랑 하고 싶었어. 사실 나 오늘 남자랑 자고 싶어서 온거야."
혜미는 솔직했다.
너무나 솔직한 나머지 안해도 될말을 덧붙였다.
"나 사실 남친있어."
< 391. 조각모음-2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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