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 조각모음-28- >
***
미현은 한때 흑장미로 불렸다.
성이 장씨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미’라는 별명이 생겼고, 성정이 드세고 시원스런 성격 탓에 ‘흑’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 전해진다.
물론 이는 표면적인 이유고, 실제로는 새까만 유두 덕에 얻은 불명예스러운 별칭일 뿐이었다.
멜라닌 색소 침착으로 칠흙처럼 까만 유두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트라우마. 심지어 처녀 적에도 그곳만 기이할 정도로 새까맸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젖꼭지만 까만 여자는 없었다.
그렇다.
그녀는 음부마저 거무튀튀했다.
야동 배우도 성기 색깔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판국에 흑두에 흑보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그녀에겐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유난히 새까만 주요 부위는 남성들로 하여금 불유쾌한 상상을 유발시켰다.
-엄청 허벌인가보네.
-혹시 몰래 애 키우는 건 아니지?
-너보고 있으면 어째 우리 마누라 생각이 나서···.
수많은 편견과 오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꿋꿋이 살아남았다.
함께 데뷔했던 동기들이 마이낑을 못 갚아 지방으로, 섬으로 팔려나가고 양아치 기둥서방에게 몸도 돈도 뺏겨 알거지가 되는 순간에도 그녀는 보란 듯이 버텨냈다.
그녀의 열등감은 자신을 더욱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결국 20대 후반에 새끼마담까지 오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연마한 섹스킬 덕분이었다.
후배들은 가끔 그녀에게 물었다.
-언닌 왜 그렇게 필사적이에요?
-악착같이 돈 모으는 이유라도?
-그냥 호구 하나 물어서 신분 세탁할 수도 있었잖아요.
대부분의 유흥업 종사자들은 이 일을 평생 하고픈 생각이 없다. 좋아서 뛰어든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며, 피치 못할 사정이 대부분이다. 설혹 시작하더라도 한 두 해도 못 가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대부분은 과거와 단절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미현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었다.
-난 우리나라 최고의 호스티스가 될 거야.
접대부.
창녀.
윤락 여성.
유흥업 여성을 비하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지만, 그녀는 ‘호스티스’란 직업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노래는 잘하는 사람은 가수가 되어 즐거움을 주고, 음식을 잘 만드는 이는 요리로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그럼 섹스를 잘하는 여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쉽게 돈 벌려고 그런 일을 한다며 손가락질했다. 그저 누워서 다리만 벌리면 되는 일 아니냐며. 성스러운 육체노동을 더는 모욕하지 말라고.
하지만 미현은 따지고 싶었다.
그렇게 쉬워 보이면 실제로 한 번 해보라면서.
하루, 아니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도망칠 거라는 데 손모가질 걸겠다고.
호스티스는 몸을 팔기 이전에 웃음을 파는 직업이다.
회사 일에 지치고, 가정사에 염증이 난 남성들에게 잠시나마 몸과 마음에 안식처가 되어 주는 일이다.
그들은 심리상담사이자, 사려 깊은 경청자이며, 때론 자상한 엄마같이 때론 화끈한 누님이 되어 손님의 성적 판타지를 해소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존심을 굽혀야 하며, 씻지도 않은 더러운 물건을 입에 담은 날도 많았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날에도, 웃음을 팔고 몸을 팔았다. 남들이 눈물 흘릴 때 그녀는 봇물로 울었다.
어떤 일이든 겪어보지 않고선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기 힘든 법. 미현은 사람들이 창녀를 너무나도 멸시한다고 생각했다.
-이 일이 우습지? 1년만 버텨봐. 몸이든 마음이든 어디 하나 병나서 십중팔구 쓰러질 테니.
미현은 스스로를 프로라고 자부했다.
그것도 험한 유흥업계에서 수년간을 버티고 버텨낸 베테랑.
프로 중에 프로, 흑보 로즈가 도훈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녀는 평생의 내공을 담아 도훈을 보내버릴 작정이었다.
‘두고 봐. 싼데 또 싸고, 지린데 또 지려서 아주 불알까지 씹어 먹어 주마.’
***
"아흑, 어어허어엉, 허엉!"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는 법이지.
대물에 박히기 전까진 말이야.
"하흑, 하앙, 아아앙!"
로즈가 자신 있게 덤벼들었지만, 끝내 내 상대는 될 수 없었다. 그녀와 나는 애초에 격이 달랐다.
범재는, 타고난 천재를 이기지 못한다.
그 천재가 노력까지 한다면 더더욱.
"너, 너무 쌔! 어, 어떻게 나이도 어린 것이··· 흑!"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단 말 못 들었어?"
"그, 그래도 경험의 차이가···."
"경험이라면 나도 만만치 않거든. 솔직히 말해서, 최근 나보다 여잘 많이 갈아치운 남자도 없을 걸?"
"흐으윽-."
로즈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나를 평범한 대학생 정도로 착각했다는 사실.
하지만 최근 몇 달간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섹스에 몰두했다. 편의점 모녀부터 시작된 엽색 행각은, 마지막에 한 집안 자매를 모두 자빠뜨리는 애자매까지 이어졌다.
그녀가 프로라면, 나 역시 프로다.
그녀는 돈을 받고 섹스를 했지만, 나는 무일푼으로 여자들을 넘어트렸다.
그것이 바로 그릇의 차이.
퍽퍽퍽!
나는 벽 쪽으로 로즈를 몰아붙였다.
벽에 가슴이 짓눌린 그녀는 대물이 들어박힐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신음을 토해냈다.
"헉, 이, 이럴 수가! 어쩜 이렇게···. 아흑."
"참지 마. 참을 필요 없어. 오늘은 누나가 내 손님이니까."
"아, 안 돼. 우리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자존심 같은 소리하네. 아직도 모르겠어?"
로즈의 한 다리를 어깨 위로 걸쳤다. 그녀는 발레리나처럼 외다리로 섰다. 활짝 젖혀진 그녀의 구멍을 향해 유래없이 단단해진 대물을 처박았다.
퍼억-!
"나, 대물이라고!"
파바바바바박!
"아아아아아앙!!!!!!!!!!"
로즈가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바닥으로 널부러졌다.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린다.
그녀의 새까만 구멍에서 허연 국물 같은 정액이 끈적하게 흘렀다.
‘끝냈다.’
[축하드립니다, 주인님! 미션 성공입니다! 정말이지 대단한 섹투였습니다. 텐프로 셋을 한 방에 보내버리다니.]
‘흥. 어차피 이것들, 제대로 된 텐프로가 아냐.’
[네?]
‘본인들은 텐프로 간판 걸고 영업하겠지만, 끽해야 쩜오나 되려나? 리얼 텐프로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겠지.’
[그런가요?]
‘와꾸는 봐 줄만 한데, 딱 그 정도일 뿐. 깊이가 없어. 명기는 고사하고.’
[아···.]
‘분명 어딘가에 제대로 된 일류가 있을 거야. 그런 애들을 꺾기 전까지는 아직 자만해선 안 돼.’
[역시 우리 주인님이십니다. 승리의 순간마저 방심하지 않으시네요.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것 같아 제가 더 기쁩니다.]
"어휴, 그나저나 난장판이군 완전."
룸 안은 폭격을 맞은 분위기였다.
쓰러져 신음하는 세 여자는 그렇다 치고, 포썸을 벌이며 사방으로 흩뿌려진 술병이나 안주가 잔해처럼 널려있었다.
"흐음. 너무 질펀하게 놀았나?"
옷을 걸쳐 입고 적당히 주변 정리를 하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린 재스민이 물었다.
"너, 너 뭐야 대체 정체가···."
"네?"
"너 호빠 선수지?"
"아닌데요?"
그녀는 여전히 아랫도리가 저리는 지,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선수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프로 같은 아마추어라고 해두죠. 세상엔 별난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
재스민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자존심이 상한 듯 잔뜩 패배감이 드리워진 얼굴.
나는 쓰러진 술병을 정리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너무 자존심 상해 마요. 그래도 굉장했으니까, 그 뒷방아는."
"이, 이걸로 끝이라고 착각하지 마."
"네?"
"우리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도 많아. 아무리 너라도 ‘그 여자’ 한테는 안 될걸."
그 여자?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게 누군데요?"
"있어. 우리 업계에선 전설로 통하는 명기가."
"명기라···."
하긴, 일반인 중에서도 몇 봤는데 하고 많은 창녀 중에 없을라고.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요. 내가 질 일은 없을 테니까."
"···건방지긴."
"건방진 게 제 매력인데, 아직 모르셨구나."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슬슬 아이템의 효력이 떨어질 시간이다.
방장과 샤대생이든, 아니면 부스에 죽치고 있던 무리던 어느 한 팀이든 곧 들이닥칠 것이다.
업적도 이뤘겠다, 나이트에 더이상 미련은 없었다. 대충 정리를 마친 나는 슬슬 정신을 차리고 있는 텐프로들에게 말했다.
"밖에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 나가볼게요."
"으으···."
"저 짐승 같은 놈···."
"야. 기둥이!"
"네?"
그때 로즈가 클러치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내 쪽으로 던졌다. 검은색 바탕에 빨간 장미가 그려진 명함이다.
"언제 한 번 우리 가게 놀러 와. 홈그라운드에서 다시 붙어 보자고."
나는 명함을 대충 구겨 넣으며 대답했다.
"봐서요, 뭐."
***
룸 밖으로 나온 도훈은 핸드폰을 켜 오픈 채팅방을 확인했다.
"얼레? BMW는 또 언제 나갔데?"
중고 외제차를 끌던 BMW는 한참 전에 방을 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맴버들 대화도 띄엄띄엄 한 것이 자신이 룸을 걸어 잠근 뒤부터는 전혀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방장도 샤대생도 아무 말이 없었다.
"설마 파장인건가?"
임시 결정된 파티는 그 끝이 언제나 흐지부지하다. 목적을 이루든, 혹은 실패하든 시간이 지나면 조각은 필멸한다.
솔로홈런에 이어 쓰리런홈런까지 날린 도훈 역시 더는 조각에 미련이 없었다. 더구나 룸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상태라 계속 이곳에 있다간 다른 멤버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 뻔했다.
"뭐···. 난 목적 달성했으니까."
도훈은 BMW의 전례를 따라 오픈 채팅방을 나갔다.
이제 그들과 두 번 다시 엮일 일은 없을 것이다.
핸드폰을 품에 집어넣으려는 데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혜미 : 정우 오빠, 저 이제 나가요.
도훈은 그제야 잊고 있던 혜미가 떠올랐다.
맨 처음 부킹 했던 간호학과 대학생.
스킬을 쓰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만으로 꼬셔 그런지, 왠지 성취감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도훈 : 집에 가려고?
-혜미 : 네. 그럼 집에 가야지, 어딜 가요?
‘얘 봐라? 은근히 흘리네?’
도훈은 나이트를 나서며 계속 문자를 주고받았다.
-도훈 : 나도 막 나가려던 참인데···. 혹시 출출하면 해장이나 하고 갈래?
-혜미 : 해장요? 음···. 둘이서만요?
-도훈 : 응. 친구들 있니?
-혜미 : 네.
-도훈 : 그럼 친구들 먼저 택시 태워 보내. 밖에서 기다릴게.
-혜미 : 그럴까요?
도훈은 피식 웃었다. 왠지 속내가 훤히 보이는 혜미의 행동에서 풋풋함이 느껴졌다.
‘확실히 직업여성하곤 느낌이 다르단 말이지.’
[설마 또 하시려고요?]
‘무슨 소리야, 진짜 밥만 먹을 거야. 힘을 너무 썼더니 배고파서.’
[주인님은 절대 밥만 드실 분이 아닌데···.]
‘야. 나도 한계라는 게 있거든? 지금은 쥐어짜도 안 나와.’
[정말 그럴까요? 음양보합술로 인해 소모한 정력의 반을 돌려받았는걸요?]
‘오잉?’
그러고 보니 포썸을 한 것치곤 생각보다 현자 타임이 길지 않았다. 허기는 졌지만 육체적인 피로 때문일 뿐 성욕이 크게 떨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혜미 : 오빠.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어요? 택시가 생각보다 안 잡혀서.
-도훈 : 천천히 해.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게.
도훈은 나이트 입구 주변에 담배를 태우는 남자들을 보았다. 다들 부킹이 어쨌느니, 내상을 입었다느니 신세 한탄하는 무리들로 한 가득이었다.
‘음, 왠지 여기 있으니 패배자가 된 것 같군. 연타석 홈런에 쓰리런 까지 날렸는데 말이야.’
그때 옆에 있던 남자의 말이 귀에 들려왔다.
"야. 너 들었냐?"
"뭐?"
"이 나이트에 구미호 산다는 말."
"뭔 개소리야? 취했냐?"
"아니, 아니. 나도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야."
사내가 말한 내용은 이랬다.
무지하게 섹시한 여자가 혼자 나이트를 오는 데, 항상 누군가를 점찍어서 모텔로 데려간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뭐, 신장이라도 빼간 데? 장기 밀매단이야?"
"아니 그건 아니고. 그 여자랑 잔 사람들이 하나같이 팍싹 삭아버린다는 거야."
"그게 뭔 소리야?"
"누구는 하루아침에 흰머리가 수십 가닥이 났다더라고."
"염병, 어디서 인터넷 썰 같은 것에 혹해가지곤."
"진짜라니까? 경험자가 한 두명이 아냐."
"그래서. 그 여잔 대체 어떻게 생겼는데? 꼬리라도 아홉게 달렸데?"
"아니 그건 아닌데··· 실은 이상한 게 목격자 말이 다 달라."
"달라?"
"응. 누구는 키 크고 늘씬한 미인이라고 하고, 누구는 작고 아담하게 생긴 평범한 여자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간호사,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 교사, 어떤 사람은 대기업 비서라질 않나. 직업도 각양각색이야."
"무슨 변신술이라도 한다는 거야?"
"내 말이!"
"완전 무슨 도시괴담 급이구만. 정신 차려 새끼야. 룸에서 내상 입더니 완전 맛탱이 갔구나. 걍 콩나물 해장국이나 먹으러 가자."
"이, 있어봐. 여기서 죽치면서 헌팅 조금만 해보다 가게. 아쉬워서 이대론 못가겠어."
"아이고, 부킹도 안 되는 마당에 헌팅인들 되겠냐. 난 이만 접을란다. 씨발 그냥 룸갈 돈으로 안마방이나 가는 건데."
"야, 야! 한번만 해보자니까?"
도훈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로시에게 물었다.
‘구미호? 진짜로 그런 게 있을까?’
[······.]
‘로시? 자냐?’
[아, 아닙니다. 잠시 딴 생각을 하느라.]
‘무슨 생각. 설마 구미호라는 게 진짜로 있는 거였어?’
[아닙니다. 과거에는 간혹 영물이 있었다곤 하는데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자취를 감췄다 들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께름측한 생각이 드는군요.]
‘무슨?’
< 390. 조각모음-2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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