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 조각모음-12- >
***
"손님, 들어가겠습니다."
문이 열렸다.
웨이터와 함께 3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진한 색조의 화장, 허벅지가 훤히 드러낸 묘령의 여성들. 면접을 보듯 옆으로 죽 늘어선 눈길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음, 나름 괜찮은데?'
초심자의 행운인 걸까?
시작부터 괜찮은 여자들이 들어왔다. 눈에 띄는 미인은 아니지만, 하룻밤 상대로는 충분한 사이즈다. 왠지 예감이 좋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쇼!"
웨이터가 정중한 태도로 문을 닫고 나갔다.
방장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여자들에게 말했다.
"뭐하고 서 있어요? 들어왔으면 얼른 앉지 않구선."
놈의 말투는 예상외로 까칠했다.
마치 불청객을 맞이하는 태도랄까?
'왜 저러지? 눈이 엄청 높은가?'
하지만 여자들은 객관적으로 따져 중상은 돼 보였다.
딱히 못생긴 여자도 없고, 몸매도 저만하면 훌륭했다. 다소 짙은 화장에 선정적인 복장이 맘에 걸렸지만, 그것도 그런대로 드레스 코드를 맞춘 결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장은 어지간히 불편한 기색이었다. 들어온 여자들은 방장의 냉대에 긴장했는지 뻘쭘하게 눈치를 보았다. 그러자 샤대생이 벌떡 일어나 손수 자리를 안내했다.
"자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안으로 들어오세요."
놈이 자리 배치를 주도했다. 셋 중 가장 이쁜 애를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는 나머지 둘을 우리에게 붙였다.
"술은 어떤 걸 드시겠어요?"
샤대생이 자기 파트너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순간, 방장의 입매가 비틀렸다. 처음부터 못마땅하게 앉아있던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야. 넌 뭘 그딴 걸 묻고 있어? 맥주나 돌려."
"아, 맥주로요?"
"···저희 그냥 나가볼게요."
방장의 핀잔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여자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룸을 나갔다. 다시 남자 셋만 남은 방에서 방장이 흥분해 소리쳤다.
"씨발, 웨이터 새끼 불러. 이 새끼가 누굴 개호구로 아나?"
나는 테이블 옆에 호출 벨을 눌렀다.
"형, 왜 그러세요. 나름 괜찮은 애들 같던데."
샤대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놈은 제 옆에 가장 예쁜 애를 앉혔기 때문에 방장이 기분 상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방장이 대꾸했다.
"아직도 모르겠냐?"
"뭘요?"
"허-. 이 새끼 진짜 답 없네. 야 기둥이."
놈이 이번엔 나에게 물었다.
"네?"
"넌 내가 쟤들 왜 쫓아낸 지 알겠어?"
‘낸들 그걸 어떻게 알아?’
"···글쎄요. 혹시 생긴 게 별로라?"
"얼씨구? 이 자식들 초본 줄 알았지만,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네. 니들이 그러니까 맨날 호구 잡혀서 털리는 거야."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러신 건데요?"
방장이 답답한지 언더락 잔에 담긴 녹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딱 보면 견적 나오잖아? 저년들 죽순이야."
"죽순이요?"
'설마 대나무 죽순?'
[주인님 제발···.]
'알았어, 짜샤.'
[되도록 아재 개그는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농담한 거래도? 내가 그런 말도 모를까봐?'
[입이 근질근질해서 아무 때나 튀어나올까 봐 그렇죠. 걱정입니다 정말.]
"막 들어온 룸 손님한테 빨대 꽂는 방법이 몇 가지 있어."
"어떻게요?"
"저런식으로 고정 죽순이들 투입해 양주만 쪽 빨아 먹게 만드는 거야. 맥주랑 다르게 양주는 시키는 족족 웨이터 매상으로 올라가거든. 술값 남겨 먹으려는 수작이지."
"아···."
"근데 어떻게 죽순인 줄 아셨어요?"
나의 물음에 방장이 대답했다.
"애들 와꾸 봤지?"
"네. 쓸만하던데요."
"원래 죽순이들은 평타는 쳐. 못 생기면 양주 빨기가 불가능하니까."
"그냥 일반인일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그런것도 구분 못 할까 봐? 원래 룸부킹은 인원 맞추는 게 가장 힘들어. 한 명을 먼저 불러오고, 나중에 친구들 불러서 겨우 맞춰주는 식이지. 아니면 아예 다른 팀에서 각각 데려오던가. 근데 시작하자마자 아다리 딱 맞춰 데려왔잖아. 저건 백퍼 웨이터 자식이 통빡 굴린 거라고. 시작부터 빨대 꽂아 볼라고. 이 새끼가 사람을 뭘로 보고."
방장이 흥분해 씩씩거리는 데 호출을 받은 웨이터 쏴이가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부르셨습니까? 얼래? 여자들 벌써 갔어요?"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시죠?"
방장이 거만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확실히 많이 놀아본 놈이라 그런지 사람 대하는 태도가 시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약자에 대한 갑질이 몸에 익은 듯 했다.
"단도직입으로 말할게요. 매일 출근 도장 찍는 애들 말고 참신한 애들로 섭외해 와요."
정곡을 찔렸는지 웨이터 쏴이가 주춤했다.
캬, 방장 눈치도 보통이 아니구나.
"아···. 인원을 3명 딱 맞추기가 어려워서···. 그래도 나름 신경 써서 데려온 건데, 좀 놀아보시지 그러셨어요."
"숫자 안 맞아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해달라고요.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지명 바꿉니다? 지금 지배인 불러드려요?"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맞춰서 해드리겠습니다."
"진짜 이렇게 대놓고 말해야 아나? 지금 팁 안 줬다고 꼬장 부리는 거 아니죠?"
"아니요. 설마 그럴리가요."
"팁은 나중에 두둑히 챙겨 줄테니 걱정말아요. 우린 양주 한 병 더 먹느니 그 돈 웨이터한테 현찰로 꽂아주는 사람들이니까. 제 말 무슨 말인 알아들었죠?"
방장이 일부러 두툼한 지갑을 열어 보였다. 5만원짜리가 가득 든 지갑을 보는 순간 웨이터의 태도는 더욱 공손해졌다.
"네,네 형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얼른 물어오기나 해요."
"넵!"
웨이터는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더니 쏜살같이 방을 빠져나갔다.
"봤지? 이렇게 길들이는 거야."
방장의 갑질에 감탄한 샤대생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와, 형님은 진짜 고수시구나. 이런 건 다 어디서 배우신 거예요?"
"너도 많이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 알게 돼."
‘방장 저 새끼 과거가 궁금해지는데?’
[왜요? 흥미가 돋으시나요?]
‘혹시 나이트 삐끼 출신 아냐? 이 바닥 생리를 너무 잘 알잖아?’
[한번 찔러 보시든지요.]
나는 자연스럽게 방장에게 물었다.
"형은 근데 무슨 일 하세요? 저흰 둘 다 대학생인데."
"왜? 제비 같냐?"
"아뇨. 그냥 화술도 출중하시고 그러니까···."
"인터넷 쇼핑몰 해."
"아, 사장님이시구나."
"사장은 무슨. 그냥 옷 장사 하는 거지."
"그래도 잘나가는 쇼핑몰은 억대 매출 올리던데요?"
"그냥 먹고 살 만한 정도야. 그리고 호구 조사는 니 파트너한테나 하세요."
"아니 그냥 궁금해서."
‘저 말이 사실일까?’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아냐. 굳이 이런 쓸데없는 데 스킬을 남용할 수 없지.’
"참, 그리고 너희들 나이 좀 속여."
"몇 살로 할까요?"
"그건 상대봐서 적당히 구라쳐야지. 어쨌든 너무 어리면 없어 보이니까."
"근데 학생이 아니라면 직장인이라고 해야 하나요?"
"샤대 넌 학벌 괜찮으니까 계속 공부 중이라고 해. 그리고 기둥이 넌···."
놈이 위아래로 나를 훑었다. 사람을 품평하는 듯한 눈빛에 기분이 불쾌해졌다. 제깟 놈이 뭐라고···.
"그래. 골프 친다고 해라."
"골프요?"
"응. 같은 운동이라도 골프가 좀 더 있는집 자식 같잖아."
"전 골프는 전혀 모르는데···."
아쉽지만 전생에 골프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상관없어. 지들이 어떻게 확인 할 건데? 프로 준비하고 있다고만 해."
"네."
일단은 시키는 데로 받아준다.
한참 뒤 웨이터가 또 다른 여자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방장은 계속 여자들을 쫓아내기만 했다.
얼굴이 별로네, 가슴에 뽕찼네, 걸레 같이 생겼네, 오늘 안 대줄 것 같이 생겼네 하며 온갖 핑계로 여자들을 내쳤다.
‘이런 씨발, 대체 몇 명을 쫓아낼 생각인 거야? 한 시간째 제대로 된 부킹도 못 하고 있네.’
돈은 돈대로 내고 이러다 여자들 얼굴만 보다 갈 판이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칠 무렵.
제비처럼 들락거리던 웨이터가 마침내 제대로 여자를 물어왔다.
들어온 순간 알 수 있었다.
값 비싼 악세사리, 도도해 보이는 태도, 화려한 외모까지.
첫눈에 보아도 이전에 들어왔던 여자들과는 클라스가 달랐다.
이번엔 진국이었다.
그 순간 방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서오세요!"
늘 까칠하게 굴던 방장의 태도가 단박에 달라졌다. 놈은 굳이 입구까지 마중을 나가더니 한 명씩 자리로 안내했다.
"이쪽에 앉으세요."
방장의 달라진 눈빛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야수의 냄새가 났다. 사람이 저렇게 180도 변할 수 있는 건가?
‘설마 이런 여자들을 기다리고 있던건가?’
[그러게요. 다들 엄청난 미인들이네요.]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호호, 너무 오버하신다."
"반겨주셔서 고마워요."
방장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라 옆자리에 앉히더니 남는 여자들을 샤대생과 나에게 각각 붙였다. 맨 처음 샤대생이 했던 것처럼 파트너를 제 옆에 앉으려는 얄팍한 수작이었다.
[그럼 저는 이제부터 빠지겠습니다. 부디 건승하시길.]
‘알았어.’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방장의 파트너만 못했지만, 내 옆자리에 앉은 여자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아니 들어온 셋 다 다른 팀 에이스보다 훨씬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조합이 가능한 거지?
"술은 어떤 걸로···."
"전 괜찮아요. 주량이 약해서 잘 안 마셔요. 물이나 한 잔 주세요."
‘어라 이게 아닌데?’
다들 각자 파트너에게 술을 따르는데 나 혼자 얼음이 담긴 컵에 물을 따랐다. 시작부터 영 불길하군.
"들어온 지 오래되셨나 봐요?"
"네? 저희 얼마 안 됐는데···."
일찍부터 들어왔다고 하면 한심하게 생각할까 거짓말을 했다.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두룩 한데요?"
여자가 피식 웃었다. 방장이 연달아 뺀지를 놓는 사이 피운 담배 필터로 재떨이가 가득 찬 걸 깜빡한 것이다.
‘으읏. 딱 걸렸네.’
"아···. 제가 줄담배를 피는 편이라."
"저도 한 대 펴도 되죠?"
"물론이죠."
여자가 은장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자 재빨리 불을 건넸다.
"여기요."
"괜찮아요. 저도 라이터 있어요."
여자의 라이터에서 듀퐁~ 하는 소리가 청량감 있게 울려 퍼졌다. 섹시하게 담배를 꼬나문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학생?"
"네?"
"학생이냐구요. 되게 어려 보이는데?"
"아, 아뇨. 골프 연습 중이에요."
"골프?"
"아니 그러니까 프로 지망···."
"아닌 거 같은데? 어디 CC에서 캐디 알바 하는 건 아니고?"
‘씨발. 이게 뭐라고 떨린담?’
로시의 도움이 없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패널티였다. 당장이라도 정보창을 열어 나에 대한 호감도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제까지 쉽게 여자의 호감을 샀던 나로서는, 갑작스러운 금제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 차라리 능력이 없었으면 모를까, 있다가 못쓰게 되니 환장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거, 거짓말 아닌데."
"알았어. 근데 너 몇 살이야?"
"스물다섯요."
"정말? 스물다섯이 무슨 띤데?"
‘아차, 이런 질문은 예상도 못 했는데.’
"그러니까 그게···."
버벅대는 사이 그녀가 치고 들어왔다.
"너, 나보다 어리지?"
"그쪽은 몇 살인데요?"
"그거 한 잔 다 마시면 말해주고."
여자가 내 앞의 잔을 가리켰다. 녹차에 채워둔 얼음이 어느새 거의 다 녹아 묽어져 있었다.
‘다행이다. 미리 녹차로 채워놔서.’
나는 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다 마셨으니까 이제 말해줘요."
"우선 술부터 받고."
여자가 거침없이 양주를 들이부었다. 얼음도 없는 잔에 스트레이트로 가득.
‘아오, 완전 페이스 말려버린 것 같은데···.’
대화의 주도권을 전혀 잡을 수 없었다. 여자는 나를 뜨내기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른 커플들이 다들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데 나만 병신처럼 여자에게 휘둘리고 있었다.
‘여자 앞에서 이렇게 비굴해지다니! 정신 차려 이정우! 넌 옛날의 난쟁이 똥짜루가 아니라고! 185의 18cm 대물을 가진 절륜남이야!’
각오를 새로이 다졌지만, 여자는 이미 나에게 흥미를 잃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른 커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풉. 쟤 말하는 거 웃기다. 누구야? 친구는 아닌 거 같은데."
"친한 형이요."
"여자친구 있지?"
"저요?"
"아니 너 말고 저 사람."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왠지 인원수를 맞추기 위해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것 같았다. 능력을 봉인 당한 것이 이토록 치명적이라니···.
그때 방장이 말했다.
"어쩐지 미인분들이라고 했더니···. 들었어? 여기 여자분들 스튜어디스 랜다."
"스튜어디스 였어요?"
"응. 엊그제 미국 갔다가 오늘 비번이라 같이 놀러 왔어. 근데 생각보다 영 물이 별로네."
여자는 어느새 나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고 있었다.
나를 애송이 취급하는 눈치였다.
"물이 별로에요?"
"응, 실은 여기 오기 전에 다른 룸 돌다 왔거든. 근데 죄다 배나온 아저씨들뿐이더라고. 그나마 여기가 제일 어리네."
"어린 남자 좋아하세요?"
"아니 난 잘생긴 남자가 더 좋은데?"
으윽. 제기랄.
대화를 나눌수록 점수를 잃는 기분이었다.
나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었다.
‘로시 당장 튀어나와.’
[업적을 중단하시는 건가요?]
‘어차피 텄어.’
[언제는 믿고만 있으라더니···.]
‘상대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어 하는데 낸들 어째?’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확인해 보면 알겠지. 내 앞의 여자 정보창 띄워봐.’
[포기가 빠르신 분.]
‘닥치고.’
< 374. 조각모음-12-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