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91화 (371/2,000)

< 373. 조각모음-11- >

***

"어서오십쇼!!!"

저녁 11시.

얼큰히 술에 취한 이들이 불나방처럼 나이트로 뛰어드는 시간.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도, 애인이 있는 여자도, 30년째 모쏠인 동정남도, 2년 전 이혼을 한 돌싱녀도 부푼 기대감을 안고 하나 둘씩 모여든다.

평소에는 입지도 못할 짧디 짧은 미니스커트의 여성들과, 왁스로 머리 잔뜩 힘을 주고 지갑이 터질 듯 현금을 채운 남성들이 입장도 전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와, 무슨 사람이 이렇게 많아."

나이트는 입장도 전부터 인산인해였다. 입구에 도착한 도훈의 조각 멤버들은 인도까지 밀려 나온 기다란 인파의 행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시간은 기다려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냥 10시에 입장할 걸. 불금이라는 걸 깜빡했네."

그때 방장이 말했다.

"세분은 천천히 들어오세요. 나중에 들어오면 꼭 연락하고."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세미 정장을 빼입은 클럽 매냐가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룸 직행은 대기열 안서거든요."

"아···."

"모두 같이 안 들어가고요?"

"저희 팀 먼저 들어가서 수질 좀 재고 있을게요. 어차피 시간이 금이니까."

그렇잖아도 필드로 밀려나간 떨거지 팀은 방장의 말에 더욱 울상이 되었다. 1차 술자리에서 방장 팀이 룸에 들어가는 걸로 합의가 되었으나 이렇게 바로 꼬리를 자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어이, 이쪽."

"네네, 갑니다요."

말끔한 정장을 입은 사내가 방장의 부름에 후다닥 달려 나왔다. 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다 막 복귀한 삐끼 같았다.

"룸으로 3명요. 입장 되죠?"

"네네 물론이고요. 룸 손님을 기다리게 하면 안 되죠.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러면서 옷깃에 달린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치칙 - 남자손님 세 분 지금 룸 입장하십니다.

"혹시 찾으시는 웨이터라도 있으신지?"

대기열이 선 계단을 지나쳐 룸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한 삐끼가 방장에게 물었다.

"종범이형 있어요?"

"아, 종범이 형님은 오늘 비번인데···."

"아씨, 하필 오늘···."

"아니면 쏴이라고 열심히 하는 동생 있는데 그놈으로 붙여 드릴까요?"

"쏴이요?"

"네, 진짜 열심히 하는 동생이에요. 쪼인 될 때까지 무한 부킹 약속 드립니다."

"그래요? 아저씨 믿고 가도 되죠?"

"예, 물론이고요."

방장은 씩 웃더니 지갑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웨이터의 셔츠 포켓에 꽂아 주었다.

"좋은 웨이터 소개시켜 주셔서 고마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삐끼는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했다.

"잘 좀 부탁드릴게요."

"네네, 물론이지요. 이쪽으로 따라 오시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심장을 울려왔다. 초강력 우퍼가 공명을 이뤄내며 사람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삐끼의 랜턴 빛에 의지하지 않고선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어두침침한 배경에서 무대 조명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호르몬이

들 끊는 남녀들이 하룻밤 상대를 찾아 헤매는 진정한 야전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쪽입니다."

웨이터가 룸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싸인을 보냈지만, 내부를 훓터 본 방장이 단박에 뺀찌를 놨다.

"아니, 이런 방 말고요. 룸 화장실 바깥으로 난 걸로요."

"아! 그런 방 찾으시는 구나, 잠시 만요."

삐끼는 금세 무전을 때리더니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새로운 방에 들어가서야 방장이 만족해하며 삐끼를 돌려보냈다.

"양주 셋팅해서 바로 쏴이 놈 불러 오겠습니다요."

"네."

삐끼가 룸을 나가자 방장은 ㄷ자로 배치된 널찍한 테이블의 가운데 자릴 잡았다

"뭘 멀뚱히 구경하고 서 있어? 다들 앉아."

방장이 양 날개 쪽에 도훈과 샤대생을 앉혔다.

‘치밀한 새끼.’

[네?]

‘저 봐. 먼저 센터에 떡하니 앉은 거. 이 방의 호스트 같이 굴잖아. 마치 자기가 쏘는 사람처럼.’

[정말 그렇군요.]

‘자리배치 하나까지 뼛속까지 이기적인 놈이야. 돈도 미리 걷었겠다, 필드로 나간 애들은 이제 낙동강 오리알 신세겠군.’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습니까?]

‘물론 챙겨주는 척 하겠지. 하지만 이미 단물 다 빼먹었으니 시늉만 할 거야. 이렇게 팀을 가른 순간부터 놈은 안중에도 없었을걸.’

"근데 삐끼한텐 왜 팁 주신 거에요? 걔가 부킹해주는 애도 아니잖아요."

"이자식은 공부만 잘했지 아무것도 모르네."

방장이 샤대생(사칭)에게 핀잔을 줬다. 머쓱해진 샤대생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 공부머리랑 이거랑 같나요."

"니 말이 맞긴 해. 보통은 자리 안내하는 삐끼한테 돈을 찔러주는 경우는 없거든. 근데 내가 돈 줄 때 어떻게 하는 지 봤어?"

"네?"

"아까 우리 걷은 돈 내가 다 가지고 있잖아."

"그렇죠."

"현금으로 100만원 되는 돈이야. 5만원짜리로 빵빵한 지갑을 일부러 보여준 거라고."

"그걸 왜···."

"그래야 저 삐끼가 웨이터한테 말할 거 아냐. 이쪽 룸 손님들 돈 많아 보인다고. 그러니까 잘 뜯어먹으라고."

"아!"

방장의 의도는 이랬다.

만원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라, 돈 많은 손님인 걸 과시함으로써 시중을 들 웨이터의 기대치를 올려주는 것이다.

"기억해. 웨이터는 돈만 보고 움직여.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역시 고수십니다. 근데 아까 말씀하신 종범이라는 분이 없는게 아쉽네요."

"누구? 나 모르는데?"

"네? 아까 분명 아는 웨이터라고···."

"아아, 그거야 당연히 초짜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아무나 찔러 본 거지. 나도 이 나이트는 처음이야."

"헉. 근데 어떻게 아셨어요?"

방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종범이, 찬호박, 아니면 개그맨 이름 딴 웨이터들은 어떤 나이트에나 하나씩 있거든. 없는 나이트가 더 드물지."

"우아! 대박. 혹시 룸을 바꾸신 것도 이유가 있으셔서?"

"당연하지. 먼젓번 룸은 룸 화장실이 안쪽 붙어 있잖아. 그러면 만에 하나 화장실서 작업할 때 바깥 눈치를 봐야 하거든. 하지만 이방은 화장실이 바깥문에 달려있으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여자들도 그걸 보고 안심할테고."

방장의 행동 하나하나엔 숨겨진 이유가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샤대생은 방장을 무슨 신처럼 떠받들었다.

"형이랑 한 팀 돼서 진짜 다행이에요. 반대 팀 갔으면 아직도 줄 서고 있을 듯요."

"그래서 내가 싸인 줬잖아. 우리 팀 정도면 충분히 먹혀."

방장이 샤대생과 도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조각으로 모인 여섯 명 가운데 가려 뽑은 인물이다.

샤대생은 학벌로 관심 끌기 좋았고, 덩치 좋고 훈훈한 외모의 도훈은 몸매 따지는 애들에게 호감사기 좋은 타입이었다.

‘그래봐야 알맹이는 내가 쏙 빼먹고 니들은 콩고물이나 먹고 떨어지겠지만···. 흐흐.’

방장은 자신이 있었다.

샤대생은 학벌 말곤 내세울 게 없다.

못생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모가 출중한 편도 아니다. 오히려 처음 봤을 땐 이도훈을 가장 경계했다.

발란스가 꽉 잡힌 근육질 체형에 180이 훌쩍 넘어 보이는 훤칠한 키. 게다가 얼굴도 상당히 미남이었다. 하지만 1차에서 말을 좀 섞어보니 말주변이 없이 과묵한 타입이었다.

‘피지컬은 훌륭하지만 딱 그 정도야. 한마디로 관상용이랄까? 여자들은 적극적으로 호감 보이고 들이대는 사람을 좋아하지, 저렇게 조용한 타입에겐 처음엔 흥미를 보이다가도 금방 식어버리거든.’

방장은 도훈을 초보라고 판단했다.

저런 타입은 얼굴을 자주보는 일상에선 인기가 많을 타입이지만, 나이트에서 먹여주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그때 도훈이 말했다.

"팁은 얼마나 줄 생각이세요?"

"글쎄? 너희들이라면 얼마나 주겠냐?"

역으로 방장이 물었다.

둘의 내공을 시험하는 질문.

"5만원 쯤?"

"기둥이는?"

"화끈하게 10만원. 팁으로 그 정도 쓴다지 않으셨어요?"

"다 틀렸어. 정답은 안준다야."

"네?"

"팁을 안준다고요?"

‘이 새끼들은 역시 초보네.’

방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삐끼한테 만원 줄 땐 고민도 없이 줬지만, 정작 부킹해주는 웨이터들에겐 10원짜리 하나 안 줄 거라고."

"안주면 부킹도 안 해주지 않을까요? 오히려 웨이터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돈 많은 것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래서 안주는 거야."

"이해가 잘 안돼요."

"똑똑히 배워 둬. 팁 주는 건 타이밍의 예술이야. 웨이터는 삐끼가 돈 받은 사실을 알고는 엄청 기대하고 들어올 거란 말이지. 돈 많은 손님들이니까 호구처럼 퍼줄 줄 알고. 그땐 오히려 안줘야해. 대신 꼭 단서를 달아야지."

"어떻게요?"

"부킹 성사시켜주면 두둑히 챙겨 준다고."

"아!"

"절대 웨이터를 만족시키선 안 돼. 배부른 사자는 먹잇감을 쳐다도 안보는 법. 초보들이 흔히 실수하는 게 부킹 해주는 웨이터에게 잘 보이려고 처음부터 크게 뽀찌를 찔러주는 거야. 그럼 웨이터는 대충 시늉만하고 다음부턴 얼씬도 안 해. 이쪽에서 받을 돈 다

받았다 이거지. 웨이터가 술값으로 돈 버는 건 아니잖아? 걔들은 팁이 수입이라고."

"이야! 진짜 방장형 대박. 어떻게 그런 걸 아셨어요?"

방장이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내가 그랬잖아. 내가 너희들 오늘 홈런치게 해준다고. 나만 믿으라니까 그래. 참, 그리고···."

방장은 옆에 매고 온 가죽 토드 백에서 뭔가를 꺼냈다.

고급스러운 술병에 든 양주였다.

"어? 양주 아니에요?"

"맞아. 도시락으로 챙겨왔지."

"이거 걸리면 클나지 않아요? 그리고 보호캡 때문에 술이 안 들어 갈 텐데?"

방장이 씩 웃었다.

"다 넣는 도구가 있어. 양주 한명에 20 넘잖아. 그걸 왜 돈주고 사먹냐? 부킹 쉴 때 쯤 적당히 웨이터 눈치 보면서 조금씩 채워주면 돼."

도훈은 그 순간 방장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 새끼 아까 견적 낼 때 룸에 양주 추가한다고 했던거 같은데, 이렇게 해서 돈을 굳히네? 완전 쌩양아치 새끼잖아?’

도훈은 방장의 꼼수를 읽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마치 도훈의 의심을 의식했다는 듯 방장이 말했다.

"물론 이렇게 해서 남긴 돈은 나중에 공평하게 뿐빠이 할 거야. 아끼는 게 좋은 거잖아. 그치?"

"네네. 물론이고요."

‘어련히 그러겠다, 엿같은 새끼. 결국 자기 돈은 한 푼도 안쓰겠구만?’

그때 누군가 룸을 똑똑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야. 웨이터 들어온다. 내가 다 말 할 테니까 둘다 보고만 있어."

"넵."

잠시 후 웨이터가 트레이 가득 양주를 들고 왔다. 두 사람이었는데, 워낙에 세팅할 양이 많았는지 모두 양손 가득이었다.

"열심히 모시겠습니다, 형님!"

명찰에 ‘쏴이’라고 붙여진 웨이터가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방장은 고개만 끄덕이며 대충 인사를 받았다.

"양주는 임페리얼로 주시구요. 언더락 잔 좀 많이 깔아주세요."

"넵!"

웨이터 둘은 분주히 움직이며 테이블위로 셋팅을 시작했다. 도훈은 웨이터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진짜 못생긴 게 그 가수랑 비슷하네. 웨이터 작명도 은근 얼굴따라 간단 말이지?’

"오늘 물 좋아요?"

"물론입죠. 원하는 취향 말씀해 주시면 바로 대령시키겠습니다."

"일단 되는 데로 넣어 줘 봐요. 아직 시간 많으니까."

"넵."

셋팅이 끝날 때까지 방장은 일절 지갑을 열지 않았다.

웨이터가 조바심을 느끼는지 슬쩍 한마디 건넸다.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형님. 한잔 따라 드릴까요?"

"아뇨. 술은 저희가 깔게요."

"아···. 네."

"아, 그리고 팁은."

"뭐 주신다면야···."

"하는 거 봐서 드리고요."

"네?"

"부킹 들어오는 거 봐서요."

"아···. 네넵. 저는 안주셔도 되는데 이 친구는 서빙만 돕는 친구라서 조금이라도 챙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중에 두둑하게 드릴게요. 저분 것도 같이."

"···알겠습니다. 아가씨들 바로 모시겠습니다."

웨이터는 못 마땅한 표정으로 룸을 나섰다.

방장은 그들이 사라지자 한마디 했다.

"존나 노골적이네. 꼬리까지 붙여 와서는."

"꼬리가 뭐에요?"

"옆에 보조 웨이터. 쟤는 그냥 팁 받으러 온 거야. 혼자 할 수도 있는데 괜히 놀고 있는 애 데려와서 호구 잡으려고."

"와, 이것들 진짜···. 근데 표정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당연하지. 삐끼한테 우리 돈 많은 거 듣고 왔을 텐데 지갑을 통 안 여니까."

"그럼 부킹 잘 안 해주는 거 아니에요?"

"아니. 이제 팁 받으려고 발에 불나게 움직일 걸? 두고 봐. 5분 내로 여자 끌고 올 테니까. 참, 우리 사인 좀 미리 맞추자."

방장이 맥주병을 들고 말했다.

한 병이라고 하지만, 300ml짜리 조그만 병이었다.

"이건 여자들이 마음에 안들 때 따라는 술. 그리고···."

방장이 이번엔 양주병을 들었다.

"이건 여자들이 마음에 들면 따라 줄거고."

"술로 여자를 가른다고요?

"그렇지. 여자들도 사람이야. 대놓고 뺀찌주면 매너 없다고 찍히거든. 웨이터들한테 다 일러바친단 말이야. 그러니까 술은 따라주되, 맥주를 주면 바로 내보내는 거고 양주를 주는 것은 한번 놀아 보는 거지. 다들 이해했지?"

"네."

"일단 언더 락부터 채우자."

방장이 언더락 잔에 얼음을 집어넣더니, 녹차를 까서 따랐다.

"왜 양주 안 따르시고?"

"우리가 먼저 취해서 되겠냐? 양주는 여자들 먹이라고 있는 거야. 그리고 여자들 중에 멋대로 음료수 까먹는 애들 있거든. 그거 못하게 하려고. 룸에 왔으면 술을 먹어야지 음료수를 먹으면 쓰나."

‘캬. 이 새끼 진짜 꾼이네?’

[하는 것만 봐선 장난 아니네요. 선숩니다, 선수.]

‘완전 나이트 죽돌인 가봐.’

[혹시 주인님보다 더 여성편력이 대단한 거 아닙니까? 성사율 50%가 입 발린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요.]

‘흥, 50% 가지고 무슨. 나는 맘먹으면 100% 넘겨.’

[그거야 스킬을 쓸 때 가능한 거죠. 이번엔 주인님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합니다. 자신 있으십니까?]

‘못할 건 뭐야? 저 쌩양아치 새끼도 하는 걸.’

똑똑-

진짜로 5분도 지나기 전에 웨이터가 다시 문을 두들겼다.

"손님, 들어가겠습니다."

< 373. 조각모음-1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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