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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88화 (368/2,000)

< 370. 조각모음-8- >

도훈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괜찮으십니까?]

‘···기이하군. 전쟁 같던 섹스보다 나비처럼 가벼운 키스가 더 큰 여운을 남길 줄이야.’

[감정의 교류야 말로 인간관계의 본질이니까요. 섹스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고요, 혹은 결과거나.]

‘내가 지금 미나에게 흔들린다는 소리야?’

[저는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만? 스스로 실토하시는 건가요?]

‘유도신문 하지 마. 머리 복잡하니까.’

도훈은 복잡한 심경에 담배를 꼬나물었다.

한적한 거리는 마음껏 길 빵을 해도 무방한 시간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로시가 다시 도훈에게 물었다.

[어쩌면 그게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가끔 주인님을 보면 위업을 위해 감정을 거세시킨 듯한 느낌이 듭니다.]

‘거세라니? 말조심해. 기만하기 싫을 뿐이라고.’

[누구를요?]

‘여자들. 사귀지도 않을 거면서 밀당하는 거. 아주 질색해.’

[아쉽군요. 주인님이 불륜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처럼, 그 모순만 이겨내신다면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텐데요.]

‘누군가를 상처 주면서까지 이룩해야할 업적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아. 그러려고 얻은 능력도 아니고.’

[오···. 왠지 병신같지만 멋진 멘트군요.]

‘뒤지고 싶냐?’

[농담입니다. 하지만 여러 여자를 동시에 만날 순 있어도, 모두를 사랑할 순 없을 겁니다. 결국 주인님의 의도와 달리 버려지는 여자를 피할 순 없겠죠.]

‘알아. 그래서 고민이야. 차라리 붉은 실을 모두 끊어 버릴까.’

[인연을 끊는 것은 항상 신중하셔야 합니다. 한번 단절된 관계는 불가역적인 것은 아니나, 대체로 회복에 배의 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건 무슨 소리지?’

[사귀었다가 헤어진 커플의 경우와 같습니다. 감정의 교류엔 필시 앙금이 남죠. 격렬했던 감정일수록 더욱. 한때나마 주인님에 호감을 가지고, 몸을 섞었던 여자들이라면 호감도가 초기화 되었다 한들 그 앙금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 다는거죠.]

‘실을 끊으면 자연스럽게 처리된다며?’

[그렇죠.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남기 때문에 호감도 향상에 디버프가 걸린달까요?]

‘흐음. 무작정 내쳤다가 아쉬울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주인님이 감당키 버거운 인연부터 먼저 자르시라는 겁니다.]

‘몇 명 생각해 둔 애들이 있긴 해.’

[그게 누굽니까?]

‘일단 넘어가자.’

도훈은 담배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털어내며 생각했다.

인간관계가 담뱃재처럼 쉽게 털어낼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런 찜찜한 기분도 들지 않을 텐데.

‘골치 아프군. 내일 업적이나 생각할래.’

[훌륭한 태돕니다. 해결되지 않을 고민은 미뤄두는 게 현명하죠.]

‘근데 맨몸으로 업적 말이야. 공략 중에 지켜야할 사항이 정확히 뭐였지?’

[스킬 봉인, 아이템 사용금지, 그리고 공략 시 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대화 또한 일체 금지입니다.]

‘공략대상이 아닌 경우엔?’

[그건 해당 사항 없습니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도훈은 갑자기 꼼수가 떠올랐다.

[왜요? 무슨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으십니까?]

‘응.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거든.’

[귀뜸이라도 해주시죠.]

‘내일 지켜보면 알거야.’

[아앗, 우리 사이에도 비밀을 만드시는 건가요?]

‘왜? 너도 자주 그러잖아. 레벨이 오르면 알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아앗!’

도훈은 내일의 공략에 집중하며 미나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떨쳐냈다. 하지만 잠들기 전까지 그녀와 키스하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미나는 떨쳐내기엔 너무 매력적인 여자였다.

***

다음날.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냈다.

수업 열심히 듣고, 남는 시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학과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여자들은 일부러 피해 다녔다. 괜히 꼬였다가 업적 전에 힘을 빼고 싶지 않으니까.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오픈 채팅방에 슬슬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클럽 매냐 : 다들 오늘 조각 오시는 거 맞죠?

-전설의 대물남 : 넵.

-보픈각 : 그 술집 앞으로 10시까지 가면 되나요?

-클럽 매냐 : 혹시 안 오실 분 있으심 지금이라도 말해주세요. 슬슬 견적 내봐야 하니까.

-홈런만 친다 : 현찰 얼마나 필요할까요?

-클럽 매냐 : 호프집 1차는 만원씩만 걷으면 될 것 같구요. 룸이랑 테이블을 왔다 갔다 할 거니까 나이트 비는 정확히 N빵하기로 해요. 대충 홈런 친다 생각하시면 20정도면 넉넉할 듯요.

-섹스피스톨 : 헐, 스무 장이면 그냥 안마방 가도 되는 금액인데···.

-클럽 매냐 : 그럼 그렇게 하시던가요.

-섹스피스톨 : 아닙니다! 그래도 사먹는 건 별로 재미없죠. 그래서 조각하는 거잖아요.

‘20만원이라고? 어떻게 그 견적이 나오지?’

나는 젊은 시절 놀아 본적이 없어 유흥비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질문을 던졌다.

-성난 불기둥 : 방장님, 어떻게 견적이 나왔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클럽 매냐 : 1차랑 나이트 다해서 15만원 잡으시구요, 5만원은 대실비 정도로 생각하심 돼요. 지금 원 룸, 원 테이블이니까 룸에다 양주 추가해서 대충 60, 테이블은 부스로 잡고 20 팁은 10 정도 생각하세요.

-성난 불기둥 : 부스가 무슨 말이에요?

-클럽 매냐 : 불기둥님 초짜임? 테이블이랑 부스도 구분 못함?

‘씨발, 내가 평소에 나이트를 다녀봤어야지.’

대답은 전설의 대물남이 대신했다.

-전설의 대물남 : 양주 받아주는 테이블 있어요. 우퍼에서  떨어져 있고 자리도 넓어서 합석하기 좋은 테이블. 불기둥님은 나이트 별로 안다녀 보셨나 보네.

-보픈각 : 초짜는 별론데···.

-섹스 피스톨 : 근데 팀은 어떻게 짜요?

-클럽 매냐 : 일단 그건 만나서 사이즈 보고 결정하죠.

-섹스 피스톨 : 설마 잘생긴 팀, 못 생긴 팀 나눌 건 아니죠? 전 방장님이랑 한 팀 먹고 싶은데···.

-클럽 매냐 : 차라리 제비뽑기를 하면 했지, 그렇게는 안해요. 그건 한 팀 돈만 대주고 버리는 꼴임.

-보픈각 : 오, 그럼 어떻게?

-클럽 매냐 : 2차 잘 나가는 팀은 기본 구성이 있어요. 3명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얼굴마담 하나는 꼭 필요해요. 보통 에이스라고 하죠. 그리고 쩐주 한명, 총알 여유 좀 있으신 분이 좋구요 갑자기 웨이터 팁 꽂아줘야 할지도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뻐꾸기 날릴 분 한명 정도.

뻐꾸기는 또 뭐람?

궁금함에 채팅창에 ‘뻐꾸기가 뭐예요’를 쓰던 중 다시 지웠다. 괜히 질문했다가 또 초짜소리를 들을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열등생으로 낙인 찍히면 조각에서도 배척받는다.

‘젠장, 눈치껏 알아채야지.’

-섹스 피스톨 : 키아, 정석이네 정석. 제가 와꾸는 별로여도 입 터는 거 하난 자신 있는데···. 제가 뻐꾸기 날릴게요 그럼.

-클럽 매냐 : 피스톨님 타율 높아요?

-섹스 피스톨 : 즉석으로 2번 성공했어요. 에프터도 한 번.

-클럽 매냐 : 횟수 말고 성공률이요. 몇 번 가서 몇 번 홈런 쳤냐구요.

-섹스 피스톨 : 스무 번은 족히 간 것 같은데···.

-전설의 대물남 : 그럼 1할 언저리네. ㅋㅋ, 님 그건 뻐꾸기 잘 날리는 게 아니고 그냥 막 들이대다 얻어 걸린 거 아님?

-섹스 피스톨 : 흠, 그래도 제가 말하면 다 빵빵 터지던데···.

-전설의 대물남 : 웃음에는 여러 의미가 있죠.

-섹스 피스톨 : 대물남님 너무 쿠사리 주는 거 아님? 몸 좋으면 다임?

-전설의 대물남 : 네. 전 가만 있어도 알아서 여자들이 앵기 더라고요. 촤하하.

-홈런만 친다 : 역시 대물님. 현직 트레이너의 위엄.

-클럽 매냐 : 자자, 팀은 일단 만나서 짜는 걸로 하고, 이제 1시간 남았으니까 스타일링 좀 다듬어서 오세요. 설마 츄리닝에 삼선 슬리퍼 신고 오는 분 없겠죠? 이번에 가는 나이트는 물 관리 좀 하는 편이에요. 여자들도 20대 중후반이 주류고.

-홈런만 친다 : 아, 나는 차라리 성인 나이트가 좋던데. 30대 미시들한테 먹히는 스타일이라···.

-클럽 매냐 : 20대가 발정 난 미시들한테 왜 대주셈? 그건 초보들이나 가는 코스죠. 그리고 괜히 유부녀 엮이지 마요. 제 지인 한 명 남편이 경찰인 여자랑 엮었다가 진짜 좆 될 뻔함.

-홈런만 친다 : 간통죄 폐지 아닌가요?

-클럽 매냐 : 법은 멀어도 주먹은 가깝더라고요.

-홈런만 친다 : 아! 그 생각은 못 했네.

-클럽 매냐 : 아무튼 늦지 말고 오세요. 10분 이상 늦으면  재낍니다. 그럼.

대화가 정리되자 채팅창을 껐다.

집합 장소까진 택시로 20분 거리.

슬슬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샤워를 하며 로시와 대화를 나눴다.

'아무리 봐도 방장은 프로 느낌이 나.'

[클럽 매냐 말이죠?]

'응 솔직히 나머지 멤버는 거기서 거기 같은데, 방장은 쓰는 용어만 봐도 전문가 같잖아. 어떤 나이트에 어떤 연령대가 모이는 지도 잘 알고, 룸비나 팁 같은 것도 속속들이 꾀고 있고···.'ㄹㅗ

[긴장되시나요? 우리 초짜님?]

'긴장은 무슨. 이런 대물패를 쥐고 시작도 전에 쫄면 병신이지.'

나는 아래로 축 늘어진 대물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노발기 상태임에도 한손으로 쥐어도 끝이 남을 정도로 우람한 대물이 나의 든든한 자신감의 원천이다.

[하지만 명심하셔야 합니다. 물건 꺼내놓고 장사하는 곳도 아니라는 걸요.]

‘그래도 척보면 척이지. 내가 작게 보이는 타입은 아니잖아?’

[주인님보다 몸 좋은 사람도 있더군요.]

‘누구? 전설의 대물남? 몸 좋긴 하더라. 근데 풍선 근육이야. 죄다 헬스로 조져서 만든.’

[원주인도 헬스로 만든 겁니다만?]

‘끄응. 아무튼 나는 운동 잘하잖아.’

[주인님. 주인님이 실제로 무엇을 잘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건 무엇을 잘하는 지 보이는 거죠. 나이트 가서 배구 시범 경기라도 하시게요? 아주 도복을 입고 가서 태권도 발차기를 하지 그럽니까?]

‘어쭈? 기어오른다?’

하지만 로시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처음 본 여자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 지다.

내 물건이 큰지, 내 섹스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흐음. 그래도 나 입 터는 것은 좀 되지 않냐?’

[말을 못하는 편은 아니죠. 다만 유머코드가 너무 아재개그 스타일인게 문제일뿐.]

‘실제로 아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아재 취향으로 고르셔야 겠네요 그럼.]

‘됐거든? 그럴바에야 차라리 관급 나이트 가서 미시를 꼬시고 말지.’

조각 멤버들과 채팅을 하면서 모르던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트에는 등급이 있다.

30~40대 주로 찾는 소위 ‘관’급 성인 나이트는 초보용 던전이다. 애초에 바람 피려는 유부들이 파트너를 찾는 곳이기 때문에 재수만 좋으면 당일 홈런도 용이하다.

하지만 불고기 같은 미시들의 그곳에는 전혀 흥미가 동하지 않는다. 단순히 여자만 먹고 싶었다면, 내 능력으로 얼마든지 가능할 테니까.

반면 20대들이 주로 찾는 ‘클럽’은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고 했다. 우선 20대들은 원나잇에 대해 조심스럽다. 순전히 춤만 추러 간 여자들도 많기 때문에 섹스가 목적인 남자의 경우 실컷 놀다가 물먹는 경우도 많다나?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는 일반적인 나이트.

이곳이 진정한 메이저다.

20대 초반의 영계로부터, 외로움에 잠을 못 이루는 30대 초반의 골드미스까지 다양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외모에 물 오르는 20대 중후반의 직장인들이 주류를 이루며,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원나잇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대로 수 틀리면 그대로 나가리다.

[하긴 난이도는 적당하군요. 멤버들이 쟁쟁한 것 빼고는.]

나이트를 함께하는 멤버는 팀을 이루면서도 동시에 경쟁하는 기이한 사이다. 서로 메기고 받으며 추켜세우다가도, 마음에 꽂히는 상대가 겹칠 땐 짐승처럼 치고받아야 한다.

때문에 팀원은 너무 잘나도 부담스럽고, 너무 못나면 애초에 성사조차 안 된다.

‘일단 방장은 확실한 에이스야.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선 재끼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최대한 놈이 찍은 여자는 피하는 전략으로 가야지.’

[전설의 대물남도 한 몸매 하던데요?]

‘오히려 그쪽은 취향이 확실해서 쉬워. 우락부락한 근육덩치는 좋아하는 여자만 좋아하거든. 차라리 나처럼 늘씬하게 빠진 패션근육이 낫지.’

[아주 자신감 넘치시군요. 돈 많은 그 직장인은요?]

‘BMW 키홀더 돌린다는 놈? 풉-. 돈 지랄로 넘어올 여자라면 안 봐도 뻔하지. 줘도 안먹어.’

[샤대생하고 춤꾼도 있습니다만.]

‘공부잘한다고 먹어 주냐? 그거야 고삐리 때 일이지. 차라리 현직 의사나 잘나가는 사업라면 모를까 기껏해야 대학생이야. 춤꾼은 뭐 스테이지 픽업 할 거 아니면 논할 가치도 없고.’

[요컨대 방장 말고는 크게 견제하지 않는 다는 거네요?]

‘막말로, 저것들 이빨만 터는 걸 수도 있어. 대물은 벗겨보면 소물이고, BMW는 중고차 팔이, 샤대생은 알고보니 지방 캠퍼스, 춤꾼은 뭐··· 쌩 양아치나 되겠지. 지가 그렇게 잘났으면 벌써 아이돌 데뷔 했겠지.’

[진짜일수도 있잖습니까?]

‘진짜든 뭐든 중요한 게 아냐. 네가 그랬잖아. 실제로 중요하진 않다고. 어떻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며.’

[그건 그렇죠.]

‘오늘은 순수하게 내 실력으로 여잘 꼬시고 말겠어. 두고 봐.’

[부디 홈런에 성공하길 빌겠습니다. 아참, 야구 적성은 아직 없으셨던 것 같은데···.]

‘시작부터 초지지 마라. 내가 오늘 한만두의 전설을 보여줄 테니까.’

[한만두요?]

‘한게임 만루 홈런 두 번 말이야.’

[헛스윙 삼진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련만···.]

로시가 계속 깝죽거렸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누가봐도 반할 만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이 와꾸로도 실패한다면 접싯물에 코 박고 뒤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 물론 정말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채비를 마치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 370. 조각모음-8-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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