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 애자매-14- >
***
네 여인은 저마다 주판알을 튕겼다.
1호기는 이렇게 생각했다.
‘미애 과외 선생이라고? 그러면 주기적으로 우리 집에 찾아온다는 소리잖아? 아까 만져보니 물건도 실한 데다, 힘도 넘쳐 보이던데···. 저런 애가 방문서비스까지 해주면 완전 개이득이지.’
2호기는 이렇게 생각했다.
‘으읏! 미애 저 기집애, 나이는 어려도 얼마나 여우 같은데···. 도훈이라는 애 외모도 성격도 내 마음에 꼭 드는데 괜히 미애 좋은 일만 시키는 거 아냐? 중간에 확 가로채 버리고 싶다.’
3호기는 이렇게 생각했다.
‘히힛. 도훈 오빠가 내 과외 선생님 해주면 정말 좋겠다. 잘생겼지, 듬직하지, 게다가 어찌나 머리도 좋은지···. 아까 그 못생긴 의대생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렸을 땐 정말 통쾌하더라니까? 과외 하다 은근슬쩍 들이대면 나 막 덮쳐버리는 거 아냐? 어우야, 생각만 해도 좋당.’
마지막으로 최 사장의 와이프, 정선희는 이렇게 생각했다.
‘막내 과외 선생이라···. 하아···. 팔뚝에 핏줄 선 것 좀 봐. 저 거친 손으로 날 맘껏 범해 줬으면 좋겠는데···. 과외 시키면서 넌지시 떠볼까? 잘만 유혹하면 넘어갈 것 같기도 한데.’
음탕한 음모를 꾸민 정선희는 본색을 숨기고 물었다.
"어쩌죠, 우리 애가 저렇게 원하니··· 도훈 군은 혹시 생각 있나요?"
도훈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뇨."
"아···."
"음?"
"왜요?"
도훈의 대답에 여인들이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실망하는 기색이 대부분이었다. 도훈이 그들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바로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니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너무 급작스러운 제안이라 그런 거라면···."
"그게 아니고 제가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많이 바쁘세요?"
"네. 학과 공부 때문에 여유가 없네요. 미애 학생을 지도하려면 주당 2~3회는 해야 할 텐데 지금 스케쥴로는 그럴 시간을 뺄 수가 없어서요."
"아···."
"그냥 아까 왔던 의대생을 쓰시는 건 어떤가요? 저보다 훨씬 잘 가르칠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오빠가 이겼으면서."
도훈이 발끈하는 미애를 타이르듯 말했다.
"잘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른 거야. 난 수학을 좋아하긴 해도, 누굴 가르쳐 본 경험이 없어. 또 괜히 껴들어서 남의 일자리 뺏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그런 문제라면 걱정마요. 그 학생은 강남에서 그룹 과외로 유명한 선생님인데, 아는 지인 통해 소개받은 거예요. 여기 아니어도 다른 곳에서 과외 많이 하는 거로 알아요."
정선희는 자기가 너무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하지만 딸의 성적을 위한다는 핑계로 더욱 밀어붙였다.
"그러니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은 안 가져도 돼요. 다른 것보다 우리 딸이 도훈 군에게 꼭 배우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안되겠어요?"
정선희의 간청에도 도훈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 다행이긴 한데···."
도훈이 계속 발을 빼자 잠자코 있던 희애까지 나섰다.
"제가 보기엔 잘할 것 같은데? 도훈 씨는 선생님이 꿈이라지 않았어요?"
"네."
"그럼 이번 기회에 학생 가르치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나? 과목은 조금 다르지만."
희애가 그렇게 말하며 남모르게 윙크를 날렸다.
수락을 재촉하는 행동이었다. 희애의 말에 미애까지 동조했다.
"언니 말이 맞아요. 아까 저 문제 알려주실 때처럼만 해주심 충분해요."
딸들의 지원사격에 힘입어 선희가 다시 설득에 나섰다. 이들은 도훈을 과외 교사로 뽑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사람처럼 굴었다. 도훈이 보기엔 다들 꿍꿍이 속이 있어 보였다.
"도훈 군. 우리 미애가 저렇게 원하는데 한 번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이 안 맞으면 주말 한 번이라도 괜찮아요. 페이도 넉넉히 챙겨 드릴게요."
도훈은 한참 뜸 들인 후에야 마지못한 척 수락했다.
"페이까지 많이 주시면 제가 너무 죄송한데···."
"걱정 안 해도 괜찮아요. 아버님 은인이신데 설마 돈이 아깝겠어요?"
"제가 정말 누굴 가르칠 실력이 되는 줄 모르겠네요. 언제라도 마음에 안 드시면 짜르신다는 조건이면 받아들일게요."
도훈의 수락에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아니에요. 응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버님도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더 실 거에요. 그런 것에 굉장히 예민하시거든요."
도훈이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액자를 쳐다보았다.
<최씨는 빚을 지지 않는다.
‘훗-. 할아범에겐 이미 충분히 받은 셈이야. 위업을 클리어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
사실 도훈이 계속된 간청을 거듭 고사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비치는 정보창이 그렇게 하길 유도했던 것. 도훈이 제안을 거절하면 할수록 여인들의 공략 팁엔 과외 수락할 시 호감도가 오르게끔 수정되었다. 어차피 수락할 거라면 동시에 호감도
를 올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호감도 상승률은 차이가 있었다.
미애와 희애가 가장 많이 올랐고 최 사모는 중간 정도, 그리고 수애는 유일하게 소폭 하락했다. 아마도 그녀는 동생을 밀어내고 자신이 도훈을 독차지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았다.
‘수애는 가진 외모에 비해 자신감이 부족하군. 특히 위아래 샌드위치 신세라 그런지 두 자매 사이에서 전혀 기를 못 펴고 있어.’
결국 수애는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늦지 않게 오렴. 아버지 걱정 끼치지 말고."
"네."
수애는 도훈을 향해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딱이더니 집 밖으로 나섰다. 도훈은 그녀의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수애는 좀 더 자신의 매력을 깨달을 필요가 있겠어. 기회가 되면 내가 일깨워 줘야지.’
수애가 나가자 최 사모가 도훈에게 말했다.
"그럼 도훈 군은 잠시 제 방으로 가실까요? 과외 관련해서 얘기할 것도 있고···."
"그냥 여기서 얘기하면 되지 않아?"
평소 허용적이던 최 사모도 이번만큼은 단박에 잘랐다.
"가르치는 학생 앞에서 페이 같은 걸 어떻게 얘기하니. 도훈 군도 불편할 거야."
"그런가?"
"미애는 충분히 쉬었으니 2층 가서 공부하렴. 희애 넌 계속 집에 있을 거니?"
"네."
"연차까지 냈는데 어디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지 않구선."
"귀찮아서요. 그리고 놀 남친도 없고, 누구처럼."
희애의 발언에 정선희가 움찔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눈치 못 챘겠지만, 아까부터 예민하게 촉을 새우고 있던 도훈에겐 최 사모의 동요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호오, 희애가 엄마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아는 건가? 아니면 단순한 의심?’
도훈은 정보창을 통해 희애의 속마음을 들여다봤지만, 자신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별도의 팁은 제공되지 않았다.
"남친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니?"
선희가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되묻자 희애가 딴청을 피웠다.
"아니, 수애 저 계집애요. 요새 남자 만나고 다니는 것 같아서."
"수애가? 정말이니?"
"말을 잘 안 하니 모르지만, 사람 촉이란 게 있잖아요. 방금도 엄청 꾸미고 나가는 걸 보면, 사귀진 않더라도 숨겨진 썸남이 있는 게 확실해요."
"나중에 따로 물어봐야겠구나. 수애 나이면 연애 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
"그러게요. 혼자 방에서 낑낑대는 것보다야···."
"응?"
"아니에요. 그럼 두 분 얘기 나누세요. 전 씨어터 룸에서 영화나 한 편 보려고요."
희애가 굳이 이동하는 동선을 밝히곤 물러났다. 도훈이 신기한 듯 물었다.
"집에 씨어터 룸이 따로 있나요?"
"네. 애 아빠가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별도로 꾸며놓은 방이 있어요. 이름처럼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하네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렇게 잘 사는 집은 처음 와 봐요. 아까 식사도 그렇고···."
"후훗-. 앞으로 자주 볼 거잖아요, 우리."
정선희가 ‘우리’라는 발음에 묘한 어감을 주었다.
마치 연인들이나 쓸 법한 음색이었다.
‘···슬슬 시작되는 건가. 색녀의 흘리기가.’
하지만 도훈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설레지는 않았다. 다만 이 부정한 여인이 어디까지 자신을 유혹할지 궁금증이 들 뿐이었다.
"여기가 제 방이에요."
"그냥 거실에서 말씀하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미애가 호기심이 많아서 몰래 엿들을 수도 있거든요."
"아···."
‘웃기시네. 나랑 단둘이 있으려고 그러는 거면서 핑계는.’
도훈은 속으로 콧방귀를 끼면서도, 순진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열고 들어간 정선희의 침실은 생각외로 수수했다. 물론 들어간 가구 대부분이 명품이겠지만, 겉으로만 봐선 굉장히 절제된 인테리어였다.
"제가 이 방에 들어가도 될는지."
"괜찮아요. 여긴 저 혼자 쓰는 방이라."
"부부침실이 아니고요?"
"후훗-.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르시나 보네요. 원래 제 나이쯤 되면 다들 각방 써요."
"정말요?"
"네. 아무래도 장성한 애들도 같이 사는 데다, 시아버님도 계시니 눈치도 보이고. 무슨 말인 줄 알죠?"
‘또 흘리고 있네? 저 색기 넘치는 목소리는 흉내도 못 낼거야.’
[주인님을 떠보려는 분명합니다. 단둘이 안방까지 끌어들이고.]
‘됐어. 어차피 난 자매 덮밥만 완성하면 끝이야. 과외는 이 집에 머무를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니까.’
[흐음, 안타깝군요. 불륜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태껏 발목을 붙잡고 있다니. 지금쯤 극복하실 때도 됐는데···.]
‘내가 그 얘긴 분명 다시 꺼내지 말라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주제넘었습니다.]
도훈은 로시에게 너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 같아 미안했다. 사실 그 역시 로시의 본의를 알고 있었다.
카사노바를 뛰어넘는 난봉왕이 되겠다는 플레이어가, 전생에 겪은 불륜 트라우마로 관련 위업들을 시도조차 못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그렇다는 걸.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도훈 역시 그로 인해 극심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최 사모의 음란한 사생활을 알게 되었을 땐 자기도 모르게 혹하기도 했다.
멀쩡한 가정을 파탄 내는 불륜이 아니라면 어떨까?
그러니까 남편이 부추기고 부인도 동조하는 초대남같은.
그것은 불륜이란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까? 당사자끼리 합의만 된다면···.
도훈이 고민에 빠져 있는데 최 사모가 그를 침실 옆 테이블로 안내했다.
"저기 잠시 앉으실래요?"
"네."
도훈은 침실에서 퍼지는 은은한 라벤더 향이 마음에 들었다.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그녀를 자빠뜨리고 꽂아 버려도 괜찮을 것을 알기에 머릿속은 더욱 복잡했다.
-누나, 내가 따줄까?
이 한마디면 자빠뜨릴 수 있는 미인과 단둘이 침실에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답답하고 무력했다.
"음, 일단 오시는 시간은 토 일 중 언제가 편하세요?"
"날짜를 딱 잡고 고정하긴 애매할 것 같아요. 학교 행사로 1박2일씩 멀리 가기도 하니까."
"그럼 일주일 전에만 알려주세요. 저희가 거기 맞추면 되죠."
"제 편의를 너무 봐 주시는 거 아니에요?"
"후훗-. 도훈 군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거에요."
‘어쭈? 이건 좀 쎈데?’
도훈은 뭐라 할 말이 없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실은 제 딸아이지만 조금 불쌍했거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실은 올해 재수 안 했어도 괜찮은 대학 정돈 갈 수 있었어요. 실제로 몇 군데 합격까지 했었고."
"그런데 왜?"
"아이 아빠가 너무 눈이 높아서요. 일류대가 아니면 본인이 창피해서 못 보내겠데요."
"아···."
"첫째가 영국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있고, 둘째 애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여대를 갔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눈이 높아진 거죠."
"미애가 부담이 크겠네요."
"맞아요. 위로 언니들이 하나 같이 공부를 잘했으니까. 그래서 미애를 보면 안쓰러워요. 하필 절 닮아가지고 공부를 못하나 싶기도 하고."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에요. 애 아버지는 공불 잘했거든요. 저는 어려서부터 무식해 보인다는 얘길 많이 듣다 보니···."
갑자기 최 사모가 얼굴을 붉히며 말꼬릴 흐렸다.
"누가 그런 소릴 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아이구, 총각 앞에서 이런 말 말하려니 쑥스러운데."
"네?"
도훈은 알면서도 유도 심문에 넘어가 주었다.
"왜, 그런 말 있잖아요. 가슴 크면 무식해 보인다고···."
"아, 아."
선희가 그렇게 말하며 은근히 가슴골을 드러냈다. 그녀의 가슴은 나이가 들었음에도 처지지 않고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때요? 그런 소리 들을 만 한가요?"
"어, 어머님 갑자기 그러시면 제가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어머, 도훈 군.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네요? 호호."
‘요년 보소? 내 앞에서 빨통 흔들면 어떤 꼴 당하는지 몰라서 그러나? 확 끄집어서 좆 끼워 버릴라. 그나저나 크기 하나는 지리네. 어쩌면 희애보다 한 치수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어머! 아직까지 보는 거예요? 갑자기 민망하네···."
"아앗, 죄송합니다."
그때 최 사모가 거실에서 들고 온 찻잔을 팔꿈치로 밀어 도훈에게 떨어트렸다. 식은 차는 뜨겁지 않았지만, 순식간에 도훈의 허벅지를 적셨다.
"어머나! 이를 어째! 도훈 군 괜찮아요?"
"아, 네. 별로 안 뜨거워서 괜찮아요."
"정말 미안해요. 도훈 군이 하도 빤히 보길래 나도 모르게 물러서려다···. 그나저나 바지를 다 버려서 어쩌죠?"
"하하. 있다 보면 마르겠죠. 전 정말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그대로 말리면 자국이 남아서 바지를 버릴 거에요. 벗어봐요. 내가 빨아 줄테니."
'어딜 빤다는 거야, 이 아줌마가'
도훈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정선희를 보며 생각했다.
ㅡ
어째, 공략하러 온게 아니고 공략당하러 온 것 같다며.
'심심한데 장단만 좀 맞춰줘 볼까나?'
< 314. 애자매-1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