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31화 (311/2,000)

< 313. 애자매-13- >

충격이다. 아니 충격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

정보창의 글귀를 읽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것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사촌이 알고 보니 연쇄 살인마라거나, 평생을 함께한 친구가 나 몰래 아내랑 10년째 붙어먹고 있었다는 사실에 비견될 만큼 어마어마한 반전이었다. 머리가 띵-하고 울려온다.

"참, 도훈 군은 어떤 차를 좋아하지요?"

우아함이 몸에 밴 여인.

정숙함의 상징 같은 최 사모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그러나 껍질을 한 꺼풀 벗기고 실체를 목도 하자, 온몸에 소름이 밀려온다.

환한 미소는 내면의 색녀를 감추기 위한 위장이요, 부드러운 목소리는 맹독을 숨긴 짐승의 가식이었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을까?

과연 저런 여자를 사람이라 부를 수나 있는 것인가?

"···으음, 도훈 군?"

또다시 간교한 혓바닥이 날름거린다. 먹잇감을 쳐다보는 눈빛에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세상에, 초대남이라니···.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단어다.

부부가 쌍으로 돌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대체 부부 관계를 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무리 쾌락이 좋아도 그렇지, 막장 중에 개막장이 따로 없다. 바람을 핀다거나 유흥업소에 들락거리는 일이 애교로 느껴질 지경이다.

[주인님, 평정심을 되찾으십시오. 혼란스러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지금의 모습은 무척 어색해 보입니다.]

로시의 충고에 겨우 멘탈을 추슬렀다.

그래. 티 내선 안 된다.

내가 비밀을 알아챘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아, 잠시 문자 메시지를 보느라. 죄송합니다."

"어머, 그게 문자 수신도 되나 보네요? 신기해라."

"피! 엄만 그것도 몰랐어? 요샌 스마트 폰이랑 다 연동되잖아."

미애가 버릇없이 핀잔을 주는데도 사모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상과 같은 모습이지만, 그녀의 비밀을 아는 나로서는 그런 미소조차 역겨울 뿐이다.

"저는 아메리카노 좋아합니다. 기왕이면 진하게."

"그렇군요. 우리 딸들은 평소 마시던 차로."

최 사모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미애가 나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그녀는 스마트 워치에 강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오빠, 근데 이건 어디 제품이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중소기업 제품이라 그럴 거야."

"디자인 엄청 산뜻한데? 무게는 어느 정도야? 나 한 번만 차봐도 돼?"

"아, 그게···."

"한 번만~응?"

미애가 막내딸다운 애교를 부리며 팔짱을 깊숙이 찔러왔다. 어쩌면 스마트 워치는 순전히 핑계에 불과하고, 스킨십을 위해 저러는 거 같다.

[절대 안 됩니다. 시계를 푸는 순간 저와의 교신이 끊기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인님을 케어할 수 없습니다.]

‘나도 알아. 근데 저렇게 거머리같이 들러붙으니···. 누가 딸부잣집의 막둥이 아니랄까 봐 애처럼 때 쓰는 것만 배웠고만.’

쉽사리 대답을 못 하는 사이 미애가 찰싹 들러붙었다. 그 바람에 그녀의 보드라운 가슴이 팔꿈치에 돌격해 왔다. 말랑한 촉감에 나도 모르게 움찔 놀랐다. 정보창이 보증하는 스무 살 숫처녀의 몸에선 희미한 복숭아 향이 났다.

‘으으, 완전히 작정하고 들이대네? 아직 젖살도 안 빠진 계집애가 왜 이렇게 저돌적이지?’

아무리 봐도 고의다.

나는 곤혹스럽게 만들려고 작정한 사람 같다.

보다 못한 희애가 눈살을 찌푸렸다.

"미애. 너 왜 할아버지 손님을 귀찮게 구니?"

"그냥 시계 좀 풀어 달라는 건데?"

"도훈 씨가 난처해 하시잖아."

"그게 아니고···."

"자꾸 말대꾸할 거야?"

희애의 경고에 미애가 곧바로 팔짱을 풀었다.

그녀는 엄마보다 큰 언니를 더 어려워하는 것 같다.

미애는 시무룩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희애가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식사도 마치셨으니 이제 식후 땡 하실 타이밍이네요?"

"네?"

"담배 태우시잖아요. 아까 저한테 들키고선 모른 척 할거에요?"

"아아···."

"저쪽 테라스로 나가시면 재떨이 놓아둔 곳이 있어요. 저희 할아버지도 애연가라서."

"감사합니다. 어디 쪽이라고요?"

"아니다. 그냥 따라오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희애가 거실에서 연결된 테라스로 나를 이끌었다. 다른 여동생들은 입이 삐죽 나온 체 우리를 쳐다만 볼 뿐이었다.

맏언니의 위세가 대단하군.

테라스를 나오자 길 다란 나무 벤치가 보였다.

"이쪽이에요."

희해는 스스로 벤치에 앉았다. 내가 머뭇거리자 희애가 손바닥을 탁탁 두들기며 말했다.

"앉아요. 안 잡아먹으니까."

‘네 얼굴에 딱 잡아먹는다고 쓰여 있구먼. 뭘.’

별 내색 없이 미애 옆에 앉았다.

"그게 아니라 희애씨 옆에서 담배 피우는 게 껄끄러워서요."

"···웃기고 있네."

가족들과 떨어지자 미애의 목소리 톤이 확 바뀌었다.

"이제 와 왜 순진한 척? 아까 수영장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피더니···. 그리고 둘이 있을 땐 존댓말 하지마. 내가 나이 들어 보이니까."

마침내 1호기가 본색을 드러냈다.

애자매의 맏이, 노출광 최희애.

정보창의 공략 팁에 따르면 그녀는 고분고분한 남자에게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도발에 당황하거나 기가 눌린 모습을 보였다간 대번에 관심이 식어버릴 것이다.

"···안 그래도 말 놓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잘됐네. 남녀 사이에 나이가 어딨어?"

"그럼?"

"내 여자냐 남의 여자냐 뿐이지. 내 여자면 어차피 존댓말 할 필요 없는 거고, 남의 여자면 애초에 말 섞을 가치도 없는 거니까."

뻔뻔한 나의 대답에 희애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번만큼은 가식 같은 건 없는 웃음이었다.

"역시 넌 재밌는 아이구나?"

"너도 그래. 근데 밥 먹을 때 자꾸 가슴골 보이더라? 일부러 그런 거지?"

"들켰니?"

"응. 티 났어. 그렇게 파인 옷 입고 와서 고개를 앞으로 숙이면 안 볼래두 안 볼 수가 없잖아."

"흐흐, 맞아. 일부러 그랬어."

"왜?"

"너 꼴리게 하려고."

"그거 가지고 꼴리겠어? 꼭지도 안 보이는데."

나의 도발에 희애가 피식 웃더니 벤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본관 테라스에서 이곳까진 조경수가 심어져 시야가 가로막힌 상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희애는 갑자기 가슴골 사이로 옷깃을 부여잡더니 갑자기 상의를 끌어 내렸다. 늘어지는 소재의 원피스가 가슴의 저항을 이겨내고 훌러덩 밑으로 벗겨졌다.

출렁-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통째로 밖으로 튀어나왔다. 허리춤에 걸린 원피스 때문인지 유독 두드러진 가슴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우아, 빨통 탄력 보소?’

유심히 보니 꼭지에 살 색의 밴드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노브라임에도 티가 안 났던 모양이다.

"뭔데 그건?"

"이거? 니플 패치."

"꼭지만 가리는 것도 있구나."

"응. 게다가 난 살짝 함몰이라 이것만 붙여도 티 안 나."

"떼봐도 돼?"

"왜? 꼴리고 싶어?"

"너가 나 꼴린 거 보고 싶다며. 난 꼭지를 봐야 꼴리겠는데?"

자극적인 대화에 희애의 눈에 음탕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떼도 돼. 대신 입으로만"

과연 색녀.

야외에서 가슴을 까 보이는 대범함도 대범함이지만, 참으로 거침없는 성격이다. 그녀가 미사일처럼 튀어나온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입으로 니플 패치를 떼기 위해 살살 혀를 굴리자 희애의 입에서 끈적한 비음이 스며 나왔다.

"흐으응. 패치를 떼라니까 가슴을 핥고 있네?"

"너무 꽉 붙어서 잘 안 돼."

"그럼 더 바짝 붙어야지."

희애가 갑자기 내 뒤통수를 잡더니 빨통에 처박았다. 풍만한 가슴골 사이로 느껴지는 여인의 체취에 나도 모르게 똘똘이에 자극이 왔다.

‘으읏, 꼴린다.’

슬슬 대물이 일어서자 희애가 응큼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라? 꼭지도 안 보여도 잘만 서는데?"

희애의 손이 멋대로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는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대물을 크기를 가늠했다. 그러고 보니 해시태그에 #대물 성애자가 있었지? 꼴리게 하려는 속셈이 설마 물건의 크기를 확인하려는 것이었을까?

"오, 장난 아니다 너?"

희애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 물건이 이 정도로 실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나 보다.

"왜? 뭐든 큰 편이 좋다며?"

"풉-. 눈치챘구나?"

"당연하지. 바보도 아니고. 큰 거 좋아해?"

"응. 사실 난 영국에 오래 살다 왔어.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기서 나왔거든."

"아아."

"양놈들만 만나다 보니 작은 건 성에 안 차더라고. 그런 의미에서 넌 합격이야."

"합격?"

"응. 키만 큰 멀대 같은 놈이면 당장 쫓아내려고 했거든. 근데 꼴린 거 보니 충분하겠다."

"뭐가 충분한데?"

"내 봊이에 박을 자격."

‘아주 거침없이 던지는 고만.’

그때, 테라스 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커피 나왔어."

동생의 목소리를 들은 희애가 재빨리 원피스를 상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는 바지에서 손을 빼더니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꼭지도 못 봤는데···."

"정 보고 싶음, 나중에 내방으로 따로 오던지."

희애는 그 말만 남기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아차, 노닥거리느라 담배도 못 피웠네.’

나는 빠르게 담배를 꺼내 한 호흡에 털어냈다.

입을 한 번도 떼지 않고 피우는 스킬.

담배를 마저 태우고 거실로 들어가자 가죽 소파에 네 모녀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특히 바로 전까지 나에게 가슴을 빨리던 희애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앉아있는 모습이 퍽 우스웠다.

‘이 집안 여자들은 성욕과 더불어 표리부동도 타고났구나. 어쩜 저렇게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지?’

"도훈 군도 무척 애연가신가 봐요."

커피잔을 내민 최 사모가 물었다.

"네."

"시아버님도 병원에 갇혀 있던 게 답답해 담밸 사러 나가셨다가 사고 날 뻔하셨다던데···. 그러고 보면 도훈 군하고 우리 집안을 이어준 게 담배였네요."

"그런가요?"

"그때 얘기 좀 해줘 보세요."

"그게 그러니까···."

나는 튼튼 병원 앞에서 최 회장을 구한 일화를 요약해 전달했다. 내심 궁금했는지 모녀들이 귀를 쫑긋 새우며 집중했다.

"우아! 오빤 힘도 엄청 세구나? 휠체어째로 할아버지를 들었다고?"

"차가 막 달려오니까 나도 모르게 없던 힘이 솟아 났어."

"대단해. 용기 있는 사람이야."

"아니야. 누구라도 그랬을 거야."

최 사모가 뭔가 생각난다는 듯이 물었다.

"아버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구해주고서 말없이 사라져버렸다던데, 정말인가요?

"네. 사람들이 막 몰려오길래,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도 그냥 가시면 어떡해요. 아버님께서 얼마나 찾으셨는데···."

"딱히 사례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닌걸요."

"후후. 물론 도훈군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아버님은 또 그게 아니거든요. 저희집 가훈이 뭔 줄 아세요?"

"뭔데요?"

"오빠, 저기 봐."

미애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거실 가운데 액자에 걸린 글귀가 보였다.

<최씨는 빚을 지지 않는다.

으잉? 무슨 가훈이 저래?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둘째 수애가 설명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은 거야."

"저 가훈을요?"

"할아버진 굉장히 소설 광이거든."

"흐음?"

"외국 판타지 소설 ‘왕좌의 게임’을 인상 깊게 보시더니 거기 나온 가언을 따라 지으셨어."

‘왕좌의 게임? 들어 본 것도 같은데···.’

[주인님이 모르시는 책도 있으신가요?]

‘나라고 모든 책을 다 읽진 않지. 특히 문학은 고전작품 말고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

내가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수애가 다시 설명했다.

"정말 몰라? Winter is Coming. 이런 말 안 들어 봤어?"

"겨울이 온다?"

"응. 그 소설에 보면 칠왕국을 지배하는 일곱 가문이 나와. 각각의 가문은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언을 품고 있지. 그중 ‘라니스터’가문의 가언이 바로 저 글귀야. 라니스터는 빚을 지지 않는다."

"아아, 그 말이구나."

그러고 보니 최 회장이 서재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자신이 평생 동안 지켜온 원칙이 하나 있다고.

‘받은 것은 기필코 갚아준다.’ 라는.

설사 그렇더라도 소설에서 본 글귀를 가언으로 삼을 정도라니···.최 회장도 왠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아 참, 정보창 스킬 있을 때 최 회장도 한 번 스캔해 봐야 하는데···. 그 노인네가 무슨 꿍꿍인지 모르겠단 말이지. 나중에 효력이 떨어지기 전에 확인해야지.

"수애는 국문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문학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그렇군요."

"엄만 별말을 다···."

"도훈 군은 체육교육과를 다닌다고요?"

"네. 체육 교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좋은 직업이네요. 저도 한때는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

"엄마 왜 내 소개는 안 해?"

팔짱을 끼고 있던 희애의 말에 최 사모가 연이어 설명했다.

"희애는 영국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했어요. 국제 경영을 전공해서 지금은 무역 상사 쪽에서 실무 경험을 쌓고 있어요."

"할아버지 계열사 중 하나야. 그냥 뭐 낙하산이랄까?"

"희애야. 그런 얘길 손님 앞에서···."

최 사모가 난처해 하는데도 희애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낙하산을 낙하산이라고 하지 뭐. 아무 때나 연차 쓰는데도 부장이 찍소리도 못하는데."

"어쩜 애는···. 제 딸아이지만 너무 솔직한 게 탈이에요."

"아닙니다."

"그리고 이쪽 미애는···."

"난 재수생. 언니들하고 다르게 공부를 못해서."

자진 실토하는 미애의 말에 희애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대학 못 간 게 자랑이니? 그러니까 공부 좀 열심히 하라니까."

"이제 열심히 할 거다 뭐. 그니까 엄마, 도훈 오빠한테 과외 좀 시켜달라고요."

"과외?"

과외라는 말에 나머지 여자들의 눈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 313. 애자매-1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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