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낭만의 캠퍼스-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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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이 몇 차례 돌고 나니 구기 1분과의 구성이 모두 파악되었다.
배구분과와 여자핸드볼분과는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 있는데, 배구부는 현재 전지훈련을 간 마유미와 우정찬을 비롯, 2학년인 허영무 그리고 나까지 모두 넷.
여자핸드볼부는 4학년 오수정부터 3학년에 김민경, 2학년에 이자영, 마지막으로 신입생 이연두까지 넷이었다.
연두는 이름처럼 몹시 귀여운 아이였는데, 숄더 라인까지 내려오는 중단발에 커다란 머리띠로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봉긋 튀어나온 앞이마와 강아지처럼 커다란 눈이 매력 포인트.
팔선녀 중 외모로 치면 정음 다음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연두는 핸드볼을 배웠었니?"
"네. 초등학교 때요. 저희 학교 시대표로 소년체전까지 나갔었어요."
"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아쉽게 준결승에서 떨어졌죠. 아마 그때 우승했으면 핸드볼부가 있는 여중으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해요."
연두는 입학원서 운동 특기에 핸드볼을 적었다고 한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우리 분과로 소속 되었다.
체육교육과 지원자들은 학창시절 배운 운동을 바탕으로 모두 8개의 분과로 구분되는데 구기(球技)가 가장 많은 3개 분과, 기초 종목인 육상, 수영, 체조. 마지막으로 생활체육과 투기(
이중 구기는 또다시 배구, 여자핸드볼, 야구, 축구, 테니스, 럭비로, 생활체육은 배드민턴과 탁구, 투기는 태권도, 유도 등으로 세분됐다.
가령 태권도 선수였던 육정음이나 유도를 했던 박성수는 투기. 탁구를 오래 배운 태영은 생활체육. 고교 때까지 도내 높이 뛰기 선수로 활약했던 2학년 과대 정우선은 육상 분과에 소속되는 식이었다.
"우리 대학도 여자핸드볼부가 있긴 해. 하지만 배구부에 비하면 위상이 좀 딸리지."
대충 흘러가는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 대학 배구부는 남녀 모두 대학 2부리그에서 전국 8강에 올랐던 강호. 지역 예선에서만 몇 년째 고배를 마시는 여자핸드볼팀관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연두 너 혹시 핸드볼부 가입할 거야?"
"아뇨. 전 그냥 임용 공부만 하려고요. 엄마가 운동하는 걸 반대하셔서···."
연두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 체육교육과에 지원한 것도, 조금이라도 운동을 이어가고픈 마음과 부모의 현실적인 기대 사이에 절충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두의 말에 4학년 수정이 동조했다.
"잘 생각했어. 나도 3년 동안 팀에 속해 있어 하는 말이지만, 핸드볼은 잘해도 빛 보기 힘든 종목이야. 설사 운좋게 프로로 진출한다 해도 딱히 교사보다 좋을 것 같기도 않고."
대학 운동부는 대게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 걸쳐있다.
간판으로 밀어주는 야구부나 축구부 등에선 프로로 입단하는 사례가 있기도 하지만, 대게는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기 힘들다.
"운동은 적당히 취미쯤에서 그치는 편 좋아. 어차피 우리가 프로선수 하려고 대학 온 것도 아니잖아. 임용 공부 해보니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할 걸, 후회만 들더라니까?"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 문득 수정의 얼굴을 쳐다보니 취업에 찌든 수험생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임용이 그렇게 어려워요?"
"어렵냐고? 말도 마, 얘. 작년 중등 체육 모집인원이 500명이야. 지원자는 3900명에 근접했지. 7.7대 1의 경쟁률. 물론 20:1 넘어가는 국어나 영어에 비하면 이게 어디냐고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게네들은 국공립 아니라도 갈 데 많잖아. 당장 사립만 해도 주요과목을 훨씬 많이 뽑고, 진짜 정 안되면 입시학원에 투신해도 취업은 보장되니까. 하지만 체육? 체육 전공해서 떨어지면 뭐할래? 학교 스포츠 강사? 생활체육 지도사? 헬스 트레이너? 특정 직업 비하는 아니지만 까놓고 말해 우리가 그거 하려고 사범대 온 건 아니잖아."
수정의 푸념에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나 역시 중등 임용이 어렵다고만 들었지, 실제 임용 고사 준비생에게 구체적인 수치까지 듣게 되자 상당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흠. 두 자릿수로 아이큐로 7:1을 뚫어야 한단 말인가···.’
내 암울한 표정을 읽었는지 수정이 나를 향해 조언했다.
"도훈이 너도 일찍일찍 준비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면 하루 먼저 되는 거래. 이제 군대도 마쳤겠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겠네."
"그래. 고마워."
"누나 저도 같은 2학년인데···."
영무가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자 살짝 술에 취한 수정이 녀석의 등판을 짝- 소리 나게 후려쳤다.
음, 과연 핸드볼 선수다운 찰진 스윙이다. 점프슛 자세로 날라 뺨치기라도 맞으면 3M는 날아갈 법한 아름다운 궤적이랄까.
"아야! 누나, 왜 때려요? 진짜 아프네."
"넌 얼른 군대나 가 자슥아. 겨울에 2학년 동기들 많이 갔던데, 대체 언제 갈려고 그러니?"
"1학기만 마치고 갈 거란 말이에요."
"허이구. 여자 친구 땜에 영장 미룬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너 사회과 2학년 과대랑 사귄다며?"
"헛!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도서관에 앉아있어도 귀는 있거든? 쯧쯧! 내 동기 도훈이 봐. 1학년 마치고 바로 갔다 오니까 깔끔하게 2학년부터 바로 시작하잖아. 여자 때문에 군대 미루는 애들이 제일 한심한 거야. 그러다 상대가 고무신이라도 거꾸로 신으면···."
수정은 술에 취했는지 아무 말이나 내뱉다가 불쑥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갑자기 말을 멈추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그녀가 갑자기 나를 향해 사과했다.
"미, 미안. 도훈아. 너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닌데···. 아씨 나 취했나?"
으헉!? 차라리 가만히나 있지!
이 무슨 확인사살이야!
바통이 내게로 넘어오자 이제 모두의 시선이 내 입만 쳐다보게 되었다. 뭐라도 해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쿨하게 인정하는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어차피 4학년들까지 모두 참석한 행사에서, 전 주인의 흑역사가 완벽히 봉인될거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몰랐다.
"맞아. 여자 다 부질없더라고."
"형, 설마 군대 가서 차인 거예요?"
"응."
"헐! 대박! 누가 형 같은 킹카를 차요?"
"말도 안 돼! 오빠 찬 여자 눈이 완전히 삐었네. 지금쯤 엄청 후회하고 있을 거에요!"
후배들이 하나 같이 나를 위로하는데 술에 취한 수정이 다시 야지를 놓았다.
"후후! 과연 그럴까? 우리 도훈이 별명이 토···."
"야! 오수정!"
참다못한 내가 수정에게 버럭 소릴 질렀다.
인제 보니 그녀는 할 말 못 할 말을 필터링 없이 모두 쏟아내는 술버릇을 지닌 모양이었다. 참으로 고약한 주사로군.
나의 호통에 수정이 또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저렇게 바로 사과할 일을 대체 왜 벌이는 거야?
"아이참, 나 왜 이러지? 미안. 나 취했나 봐 도훈아."
"맞아요. 언니 아까 너무 달리셨어요. 이러다 내일 공부 지장 있을까 걱정돼요."
"다른 분과 보니 4학년들 하나둘씩 빠져나간 모양이던데 언니도 이만 들어가실래요?"
"그래 니들 말대로 해야겠어. 너무 오랜만에 달려서 그런지 술이 영 안받는다야. 다들 미안."
수정이 민망함에 자릴 일어서는데 순간 휘청, 내 쪽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부축했다.
"고, 고마워."
수정의 입에선 술 냄새가 풀풀 났다.
소주는 무조건 원샷이라며 시작부터 무리하더니 결국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취해 버린 것이다. 그녀의 비틀거리는 모습에 여학생들이 우려했다.
"언니, 그렇게 취해서 집에 가시겠어요?"
"맞다. 도훈 오빠가 동기니까 언니 집에까지만 데려다 주심 안돼요? 밤길에 언니 혼자 보내긴 위험할 것 같은데···."
"난 거뜬해. 걱정 같은 거 하지···."
내 손을 뿌리치고 홀로 가려던 수정이 다시 한번 크게 휘청였다. 나는 수정을 억지로 부축하며 말했다.
"에이, 진짜. 너 집이 어디야. 내가 바래다줄 게."
"아이참, 도훈이 오랜만에 봐서 기분 좋았는데···. 미안해."
"애들아. 수정이 데려다주고 올 테니까 너희들끼리 놀고 있어."
"네."
나는 수정을 데리고 사범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저녁 9시가 넘어 밖은 깜깜했다.
"그러게 이기지도 못할 술은 뭐 그렇게 빨리 마시냐?"
"몰라. 너도 공부해 봐. 얼마나 스트레스 심한데. 놀지도 못해. 연애도 못 해. 섹···. 아이 씨, 나 미쳤나."
수정은 또다시 필터링 없이 쏟아내다 갑자기 자신의 입을 손으로 후렸다. 그러나 마지막에 내뱉은 단어의 첫음절이 무척 독특했기 때문에 도저히 다른 단어는 생각할 수 없었다.
‘뭐야? 방금 섹스라고 말하려고 한 거야?’
[섹섹섹으로 시작하는 말은~]
‘뜬금없이 노래하지 말고.’
[아니 왜 저한테 답정너를 하십니까? 쿨타임 찼으니 스킬로 한번 보시던가요.]
‘아, 그렇지. 아침에 지하철에서 썼으니 지금 가능 하겠구나.’
나는 비틀거리는 수정을 부축하며 몰래 그녀의 정보창을 읽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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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오수정 (비 처녀)
나이 : 23
호감도 : 70/100 (취중버프)
개방성 : A
성감대 : 겨드랑이, 엉덩이, 목덜미
성욕지수 : 매우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시면 ‘그 거미줄 내가 걷어주마’ 업적을 달성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섹스를 못해 굶주려 있습니다.
?추천멘트 : "라면 먹고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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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호감도가 왜 이리 높아?’
[취중버프 상태로군요. 오수정 양은 아마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아질수록 이성에 대한 호감도와 성욕이 끌어 오르는 타입일 겁니다.]
‘아, 취하면 막 남자한테 앵기는 애들 말야?’
[그렇죠. 주인님께서 오늘 운이 좋으신 겁니다. 지금의 그녀라면 누구라도 술자리에 끝까지 남았으면 잘 수 있었을 것 같으니까요.]
‘설마 저 업적 때문인가?’
[네. 관련된 설명을 디스플레이 띄워드리겠습니다.]
★달성 가능한 위업 리스트(현재까지 6/108)
80. ‘그 거미줄 내가 걷어주마’(1년 넘도록 자위를 참아온 여성과 관계 시 달성. 단, 자발적 거부자의 경우 해당 조건에 부합되지 않음.)
-그녀의 막힌 곳을 뚫어 주세요.
-업적 보상 : 600포인트 추가 제공.
‘어라? 이런 것도 업적이 돼?’
[아마도 모종의 이유로 자위를 참아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게 성 경험이 있는 여성의 경우 파트너도 없이 1년 넘게 참기는 쉽지 않을 텐데 말이죠.]
‘오호라. 근데 보상이 왜 이렇게 짜냐.’
[아마도 업적 난도에서 비교적 낮게 책정된 것 같습니다. 사실 자위 참는 사람이야 지나가는 사람들 정보창을 뒤지다 보면 열에 한 명 정도는 나오지 않겠습니까?]
로시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껏 해당 업적이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정보창으로 확인했던 모든 여성이 1년 안에 자위를 참지 않고 했다는 뜻이다.
‘윽. 믿었던 정음이 너마저!’
[주인님. 어쨌든 굉장히 유리한 상황입니다. 분위기만 잘 유도하시면 오늘밤의 위업은 문제 없습니다.]
‘오케이. 슬슬 자극해 볼까?’
"너 비틀거려서 안 되겠다. 나한테 업히자."
"괜찮아. 나 걸을 수 있··· 끄흑."
"거봐. 트림하고 난리 났네. 얼른 업혀. 나도 바로 돌아가야 돼."
내가 무릎을 꿇고 등을 내밀자 수정이 마지못해 나에게 업혀왔다.
"영차!"
"미안···. 나 무겁지?"
"아니? 솜털처럼 가벼운데?"
"피."
"물에 젖은."
"뭐야 진짜!"
"농담, 농담. 하나도 안 무거워. 살쪘다는 거 다 뻥이네."
"아냐. 진짜로 많이 쪘단 말야. 안 보이는 데 살 많아."
"그거야 봐야 알지. 안 보이는 데를 내가 무슨 수로 아냐?"
"······."
농담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수위에 수정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 등에 업힌 그녀는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원룸이 인문대 뒤쪽으로 있댔지?"
"···응."
"나 오랜만이라 학교길 까먹어서 그러니까 니가 알려줘."
"알았어. 저기서 왼쪽."
"흐억. 허벅지 터지겠네. 하필 언덕길이네."
"미안. 나 내릴래."
"괜찮아. 장난친 거야. 나 몸 많이 좋아졌어. 군대서 운동 열심히 했거든."
"그, 그런거 같아."
"응?"
"아니 등 쪽이 되게 단단하길래···."
수정의 목소리에서 촉촉한 느낌이 묻어났다.
나에 대한 상당한 호감이 느껴진다.
나는 고의로 그녀의 엉덩일 받친 손을 위로 들어 가슴을 등판에 문질렀다. 출렁대는 가슴이 바짝 붙어서자 물컹하는 촉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꺄아."
"미안. 팔이 자꾸 흘러서."
"으, 으응."
왠지 수정의 목감김이 좀 더 견고해진 느낌이다. 너무 끌어 안는데? 설마 유혹인가?
"너 근데 진짜 많이 변했다? 그런 소리 안 듣니?"
"사람은 당연히 변하지. 나이도 먹었는데···."
"군대 갔다 온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예비역 오빠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책을 좀 많이 읽어서 그런가 봐. 시간이 많아 매일 읽었거든."
"아···."
"근데 너 아까 무슨 말 하려고 한 거야?"
"뭐?"
"내가 말 끊었을 때."
"미안.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어. 갑자기 나도 모르게···."
"사과받으려는 게 아냐. 나도 대충은 들었어. 나 군대 가고 악의적인 소문이 돌았다고."
"자꾸 너한테 말 실수하게 되네. 미안해."
"근데 나 그 소문 진짜 억울해."
"응?"
"나 토끼 진짜 아니거든."
"헛! 민망하게···."
"아니야. 진짜로 억울해서 그래. 그렇다고 어디 가서 증명해 보일 수도 없잖아."
"나, 난 안 믿었어."
"거짓말."
"진짜야.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지? 사람들이 너무 한 쪽 말만 듣는단 말이지. 어, 여기가 인문대 뒷길이구나. 거의 다 온 것 같네."
"···응. 이제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 텐데 많이 아쉽다. 오늘은 좀 오래 놀고 싶었는데."
"다른 4학년들도 많이 들어갔잖아. 무리하지 마."
"그래도···."
이쯤에서 슬슬 멘트를 꺼낼 시간인가?
"근데 수정아."
"응?"
"나 배고픈데 너네 집서 라면 먹고 가도 돼?
< 145. 낭만의 캠퍼스-1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