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8화 (138/2,000)

< 140. 낭만의 캠퍼스-9- >

[주인님, 잊으셨나 본데 아직까지 랭귀지 마스터 스킬을 익히지 못했습니다. 흑마가 미도달 상태거든요.]

‘아참, 그렇지. 흑마까지 올라타야 스킬을 받는구나.’

[하지만 외국인 관련 위업이 꼭 백마흑마 위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잉? 그건 무슨 소리야?’

[인종이 다른 여성을 상대로 하는 위업 역시 존재합니다.]

‘그래? 띄워봐.’

[디스플레이에 활성화 시켰습니다.]

★달성 가능한 위업 리스트(현재까지 6/108)

95. 인종의 도가니탕. (보기에 해당하는 인종과 관계 시 달성) 0/3

-보기-

1. 류큐인(류큐의 토착 민족. 오키나와어로는 오키나와 사람이란 뜻의 우치난츄(沖?人, ウチナンチュ ?)라고 함.)

2. 슬라브인(동유럽과 북아시아의 주된 주민으로 러시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불가리아의 기간 민족)

3. 라틴인(이탈리아 라티움 지방에 살았던 부족으로, 인도-유럽어계의 이탈리아인에 속함.)

-당신은 이제 인류의 유전자를 뒤섞는 업적에 도전합니다.

-업적보상 : 식스 센스(패시브 스킬)-육감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불운을 피하거나 행운의 감지 등, 다방 면에 직관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

‘와, 이런 위업도 있어? 가만 좀 이상한데? 왜 사라나 스테파니를 공략했을 땐 활성화 되지 않았던 거지? 게네들도 외국인이잖아?’

[백마 타고, 흑마 타고 업적은 인종보다는 피부색에 따른 구분입니다. 하지만 위의 위업은 보기에 해당하는 인종과 관계를 해야지만 가능하고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사라 자매의 경우 앵글로 색슨계의 게르만 혼혈이었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백인과 흑인이 아니라, 정확하게 해당 인종하고만 관계해야 한다는 뜻이구나?’

[그렇습니다. 와세다대 교환학생 료코 양은 오키나와 출신의 류큐인으로 위의 인종에 속해 있습니다.]

‘그럼 슬라브인이나 라틴인은···.’

[주로 러시아나 이탈리아 반도에 분포되어있을 가능성이 크죠.]

‘흐흐. 백마중에서도 명품으로 친다는 러시아산 백마에, 동내 마실 가는 여자들마저 하나같이 패션모델이라는 이태리 출신의 여자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데? 업적이 아주 글로벌 해.’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니까요. 이건 카사노바 시절엔 꿈도 못 꿀 위업입니다.]

‘식스 센스 보상은 또 뭐야? 패시브 스킬이라고?’

[문자 그대로 뛰어난 직관력을 갖추게 해주는 스킬입니다.]

‘직관력?’

[감각, 경험, 연상, 추리, 판단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을 의미합니다. 가령 위험을 감지하거나 아무 근거 없이 막연히 그럴 것 같다는 추정을 할 때 사용되곤 하죠. 이는 주인님의 신변에 크나큰 위협이 닥쳤을 때 발동되는 기민한 감각의 확장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혹시 4지선다 형 객관식 문제를 찍을 때도 도움이 되나?’

[물론입니다. 뛰어난 직관을 갖춘 이들은 흔히들 얘기하는 ‘찍기의 달인’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오호!’

학점 관리에 매진하기로 한 도훈에게 ‘식스 센스’ 스킬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료코에게 태극기를 꽂는 수밖에···.’

[역시 주인님은 애국자십니다.]

‘당연한 말을. 고등학교 때 배운 일제 강점기의 치욕과 수모의 역사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고.’

도훈이 한참 로시와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불쑥 태영이 말했다.

"맞다. 저 지금 가봐야겠어요."

"어딜 가?"

"아까 동아리 모집하는 데 갔다가 오후에 면접 보기로 했거든요."

"면접? 태영이 너 무슨 동아리 드는데?"

"연극동아리요."

"으잉?"

예상밖에 대답에 도훈과 정음 둘 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태영이 말을 이었다.

"저 사실 연기 쪽에 관심 많았거든요. 한땐 대학도 연극영화과로 가고 싶었고요."

"그런데 왜 우리 과를 왔어?"

정음의 물음에 태영이 쑥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도훈이형 마스크만 됐어도 뒤도 안 보고 질렀을걸. 근데 보시다시피 와꾸가 이 모양이라···."

자기비하적 발언에 정음이 고개를 저었다.

"태영이 네가 어때서?"

"야. 나도 거울 보고 다니거든? 암튼 뭐 전문적으로 할 건 아니지만 동아리 활동이라도 해보려고요. [비상]이라는 극단인데 상당히 알아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누구지? 중견 탤런트 박휘성씨도 여기 연극부 출신이라고."

"그래?"

"암튼 나름 인기있는 동아리라 면접을 통과해야 가입시켜 준대요. 형은 1학년 때 동아리 든 것 없었어요?"

[이도훈 군은 1학년 재학 당시 배구부로 활동했습니다.]

"음. 난 배구부."

"아···. 근데 그건 거의 자과 동아리 수준이잖아요."

"그건 그렇지."

"대학 본부 벚꽃길 가보시면 이주 간 동아리 홍보 기간이라고 홍보 많이 하고 있어요. 혹시 시간 되시면 한 번 둘러보세요."

"그래. 면접 잘 보고 와라."

"넵, 저녁에 뵈요."

태영이 떠나자 이제 벤치에는 도훈과 정음만 남게 되었다.

정음은 이 순간만 기다려온 사람처럼 두근두근 심장이 떨렸다.

***

동아리라.

그러고 보니 이정우 시절엔 공부에만 매진하느라 동아리 같은 것은 들 생각조차 못 했다. 나도 소싯적엔 영화나 독서감상 같은 고상한 취미가 많았는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정음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오···빠 배구동아리 계속하실 거죠?"

"응?"

순간적으로 위화감이 느껴진 건 그녀가 오늘 처음으로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단둘이 있을 땐 오빠라고 불러주는 건가? 귀엽네, 하는 짓이.

"아니 저도 동아리 하나 들까 해서···."

"배구동아리도 좋긴 한데 태영이 말처럼 대부분 우리 과 사람들이잖아. 당장 학회장 마유미만 해도 선수로 있고. 그래서 이번엔 다른 동아리도 한 번 둘러 볼까 해."

"아···."

정음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눈에 띄게 소심해진 것 같다.

항상 파이팅 넘치는 열혈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여성스럽게 머리를 빗어 넘기고 치마도 입고 있다.

치마?

그러고 보니 얘 치마 안 입는다지 않았던가?

강의실에서 바로 만나서 몰랐는데 정음은 오늘 굉장히 스타일에 신경 쓴 모양새였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주름치마에 위에는 상콤한 아이보리색 니트. 얼굴에 살짝 기초화장이 들어간 것 같기도···.

"근데 너 오늘따라 좀 예쁘다?"

"아, 앗!"

정음이 부끄러운 듯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얘 나랑 같이 수업 듣는 것을 의식한 건가?

왠지 민망해하는 모습을 보니 더 골리고 싶어진다.

"화장도 했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왜, 왜 그러세요. 오빠···."

"하핫. 농담이야. 그래도 이렇게 꾸미고 다니니까 보기 좋다."

"···정말요?"

"응. 내가 아까 강의실에서 슬쩍 보니까 뒤에서 남자애들이 너보고 소곤거리더라."

"뭐라고요?"

"쟤가 체육과 얼짱이냐며."

"앗!"

빨개진 볼을 두 손으로 가리는 정음이 모습이 몹시 귀여웠다. 선머슴 같던 애가 언제 저렇게 여성스럽게 변했을까?

"거, 거짓말마요."

"아니야. 내가 좀 귀가 밝은 편이거든. 하도 대놓고 쳐다보길래 눈치 좀 줬어. 자꾸 쳐다보지 말라고."

"왜요?"

"넌 내 여자니까."

으! 내가 이런 닭살 돋는 멘트를 날릴 줄이야!

[아니 주인님께 이런 면모가!]

‘야, 나도 어색하니까 놀리지 마.’

[아닙니다. 잘하시고 계십니다.]

정음은 더욱 얼굴이 빨개져 이젠 시한폭탄처럼 터지기 직전이었다.

"가,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니야? 난 내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힝···. 오빠도 참···."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음은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타입인 것 같다. 솔직한 녀석 같으니.

"주말에 할머니 병간호하느라 힘들었지? 미안해. 연락해야 했는데 미국에서 여동생이 귀국하느라 가이드한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병간호까진 아니구요, 중환자실에 계셔서 혹시 몰라 병원 지키고 있던 거예요. 지금은 많이 호전되셔서 괜찮아요."

"그랬구나. 다행이다."

"동생분은 그럼 바로 미국 돌아간 거예요?"

"아니. 지금은 수원 화성 본다고 놀러 갔어. 내일 모래 쯤에나 돌아갈걸?"

"아···. 그래도 오랜만에 동생 만나서 좋았겠네요."

"음. 좋긴 좋았지."

여동생이 친동생이 아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있었지만.

"암튼 저 배구동아리 들어가 볼까 해요."

"배구 해보게?"

"네."

왠지 나 때문에 별 관심도 없는 종목을 배우려는 것 같군. 나는 벤치에 다소곳이 앉은 정음에게 말했다.

"한번 일어서봐."

"네?"

"키 좀 재보게."

"네."

정음이 일어서자 나 역시 그 옆으로 바짝 붙어섰다. 순간 거리가 가까워지며 그녀의 얼굴이 내 가슴에 닿았다.

"아,아···."

"흠, 이 정도면···."

나랑 바짝 붙어선 게 민망했던지 정음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 확 안아주고 싶었다.

살짝 허리춤을 잡아 배 쪽으로 당겨본다.

미끈한 도자기처럼 잘록 들어간 허리가 한팔에 휘감기며 그녀가 내 품에 들어왔다.

"좀 더 정확히 재볼 게."

"앗!"

눈앞에 정음의 정수리가 보인다. 머리에서 나는 샴푸 냄새가 은은하게 흘러나온다.

흐음, 좋은 향기군.

"대충 20Cm 차이 나네. 165 쯤 되나?"

"64에요."

"아항."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간격을 벌리자 정음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술을 오물거린다.

왜? 키스라도 해 주길 바랐니?

하지만 주변에 눈이 너무 많구나.

"배구 하기엔 키가 좀 아쉬운데···."

"그런가요? 왜 TV에서 보면 작은 선수들도 있던데."

"리베로 말이야? 에이, 화면에서나 작아 보이지 걔들도 다들 180 넘는 애들이야."

"아···."

"나도 키가 185인데 배구에선 그렇게 큰 편은 아니거든. 배구는 높이의 스포츠라서 키가 작으면 많이 불리해. 그래서 난 비추."

"그래두···."

정음이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와 같은 동아리에 들고자 마음을 몰라준다고 여긴 걸까?

"동아리 가입 목적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있는데, 배구부엔 너무 우리과 애들이 많잖아. 차라리 다른 운동은 어때?"

"어떤 거요?"

나는 아무 말이나 나오는 데로 씨부렸다.

"MTB?"

"자전거 동아리요?"

"응. 요새 자전거 많이 타잖아. 그것도 재밌을 것 같고. 아니면 실내 암벽 등반도 괜찮지."

"아, 암벽 등반요?"

"응. 그게 좀 근력이 필요한 운동인데 넌 운동을 꾸준히 해와서 왠지 잘할 것 같아."

"오빤 어떤 거 가입하시려고요?"

마치 내가 가는 데로 따라가겠다는 노골적인 질문이군.

이런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음. 아직 고민 중이야. 공부도 해야 하니까 시간 많이 내야 하는 동아리는 좀 부담스러워서."

"네···."

"태영이 말로는 이 주 동안 홍보 기간이라고 하니까 다음에 시간 나면 같이 가보자."

"다음에요? 지금은 어디 가세요?"

"아까 성수 형이 수업 끝나면 개강총회 준비 좀 도와달라고 했거든. 난 오늘 수업 이걸로 끝이야."

"아···."

"넌 계속 수업 있니? 없으면 나랑 같이 가자."

"저 마지막 8교시에 영어회화 하나 남았어요. P/F 수업이라 출석이 가장 중요하대서···."

[영어회화는 1학교 필수 교양수업입니다. 이전의 도훈군은 영어 울렁증이 있어 가까스로 패스했습니다.]

나는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마지막 수업 8교시 시작까지 아직 30 여분 여유가 있었다.

"아직 시간 좀 남았는 데 같이 있어 줄까?"

"정말요?"

"응. 공강 시간에 혼자 기다리기 심심하잖아."

"고마워요, 오빠."

"뭘 이런 거 가지고. 근데 30분 동안 뭐 하고 때운다? 도서관이나 구경 갈래?"

"도서관요?"

"응. 심심할 때 읽을 책이나 빌릴까 해서."

"그래요!"

정음이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나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가 보다.

[정말 책만 빌리러 가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서요.]

‘그럼 뭐 도서관가서 떡이라도 치리?’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

"씨발! 대체 어떤 새끼가 찌른 거야?"

거대한 저택에서 성민이 버럭 짜증을 내고 있었다.

몇 년 만에 돌아온 서재지만 떠나기 전 모습 그대로.

마치 자신이 언젠가 다시 집으로 들어오리라는 것을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말끔한 청소상태 마저 그의 화를 부추겼다.

"씨발! 씨발! 씨이발! 이게 뭐냐고!"

"도련님, 진정하십시오."

"진정? 문수 씨,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까 할아버지 한 말 못 들었어?"

-집을 떠나도 가문에 누는 끼치지 않겠다더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냐? 기자들 겨우 입막음해 놨으니 당분간 집에서 근신하고 있거라.

고 회장의 호통에 똥 씹은 표정을 짓던 고성민의 모습이 떠올라 문수는 문득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러나 그는 반평생을 훈련받은 군인으로 살아온 사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일단 회장님 말씀을 따르셔야 합니다. 이런 말까지 드리기 뭣하지만, 도련님 목줄은 지금 회장님이 쥐고 계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던 성민은 문수의 냉정한 지적에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벌어진 일. 열을 낸다고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장이 뜨거울수록 머리는 차갑게.

성민은 겨우 흐트러지는 멘탈을 다잡았다.

성민이 진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기립해 있던 문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짐작 가는 사람이 전혀 없으십니까?"

< 140. 낭만의 캠퍼스-9-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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