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즐거운 사라-31- >
***
얼굴에 묻은 정액을 닦는 스테파니를 보자 불현듯 현자 타임이 몰려왔다.
방금 전까지도 탐스럽기 그지없던 몸뚱이가, 살진 돼지의 그것처럼 역겨워진다. 은성이나 사라를 공략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그 차이를 곰곰이 따져보았다.
‘뭐지? 왜 이렇게 허무감이 밀려오는 걸까?’
분명 섹스는 좋았다.
스테파니는 노련한 스킬을 선보였고, 어려운 체위도 곧잘 소화해냈다. 게다가 나이도 두 사람보다 한참 어렸다. 그런데도 현자 타임의 정도는 아까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 어쩌면···.’
그래. 바로 그것이군.
사라와 은성이에겐 있고, 스테파니에겐 없는 것.
‘얼굴이 빻았구나, 쟤는?’
사실 떡칠 때 여자 외모는 크게 중요치 않다.
보이는 건 씹구멍이요, 몸에 닿는 건 말캉한 젖가슴이다. 열락에 찬 교성과 새하얀 살결 앞에, 본능은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사정을 종용한다.
하지만 짧았던 쾌락 끝나면 다시금 외모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저딴 애를 따먹었다고?
여자를 공략해냈다는 성취감, 도도한 그녀를 자빠뜨렸다는 정복감은 바로 여자의 외모로 결정되기 마련.
저렇게 예쁜 여자를, 내가!
돈 주고 산 것도 아니고, 순수 내 능력으로!
이러한 고양감은 현자 타임의 허무를 중화시킨다.
하지만 스테파니에겐 그것이 없었다.
바로 예쁜 얼굴.
‘으으으. 진짜 성민에 대한 복수심만 아니면 줘도 안 먹었을 얜데···.’
[거짓말 마십쇼. 주면 냉큼 먹었을 거면서.]
‘인마, 섹만 없다는 말 몰라?’
[네?]
‘섹스엔 만약이 없다고.’
[참나···. 아무튼 주인님. 아까 말씀하신 메인 디쉬가 성민 군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요?]
‘성민이? 우엑! 쟨 남자잖아.’
[그렇다면 역시?]
‘이 별장에서 나한테 안 뚫린 여자가 누가 남았냐?’
[오오! 드디어 여동생을 공략할 결심을 굳히신 겁니까?]
‘어허, 실제론 여동생이 아니잖아. 거기다 민짜도 아니지. 그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었는데 더 거리낄 것도 없지.’
[후후! 역시 주인님은 타고난 난봉꾼입니다. 인륜을 거스르는 자!]
‘가족도 아닌데 무슨 인륜까지 들먹여? 그리고 그 연극톤의 말투는 어디서 배운 거냐?’
[···어, 어쨌든요.]
‘어서 저 꼴 보기 싫은 스테파니부터 치워버려야 겠어.’
"스테파니. 여기 너무 오래 있던 것 같아. 의심받기 전에 얘들한테 돌아가."
"앗! 그렇네요. 저 가볼게요."
"야, 가운은 나 주고 가야지. 넌 타올 입고 왔잖아."
"아차차."
그녀는 베스 타올을 두르더니 후다닥 별장을 떠났다.
나는 스테파니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깊은 잠에 빠진 성민을 향해 중얼거렸다.
"옆에서 떡 쳐대는 줄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자는구나. 과연 천상계의 기술력이란···."
그러다 문득 이 녀석을 어떻게 엿 먹일지를 고민했다.
자고 일어나면 별장 안의 모든 여자가 이미 내 차지가 되어 있겠지만, 그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다. 이 오만하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재벌 집 손자새끼한테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려줘야 한다.
‘참, 그게 있었지?’
불쑥 놈이 춘약(?)으로 쓰려고 챙겨둔 돼지 발정제가 떠올랐다. 인근 농가에서 은밀하게 빼돌려온 물건. 분명 사람에게 타 먹이려고 한 것은 불법일 터, 이걸로 잘만 엮으면 놈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국내 굴지 재벌가 손주, 별장에 여자들 불러 돼지 발정제 이용해 난교 파티 벌여.]
캬-! 표제 좋고.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기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기사다.
하지만 내가 아는 기자가 있을 리가···.
"맞다. 대한일보 강 기자가 있었지?"
고작 대학생인 도훈이 기자를 알 리가 만무.
하지만 40대의 선임 연구원이던 이정우라면 얘기가 다르다. 앞서 언급한 강 기자는 주로 기업의 신기술 개발분야 취재를 담당하던 기자였는데, 선임 연구원이던 나와 막역한 친분을 유지하는 사이였다.
그의 인맥을 이용한다면 ‘주간대한’에서 가십만 전문으로 파는 다른 기자를 연결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당장 그와 접촉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은 늦었고, 번호조차 모른다.
아니지. 번호는 알 수 있구나?
요즘 기자들은 대부분 인터넷 제보를 받고 있다. 따라서 기사를 검색하거나 블로그를 뒤지다 보면 강 기자의 번호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스마트 폰을 들고 한참 강 기자의 번호를 찾았다.
‘역시!’
예상대로 강 기자가 운영하는 블로그에 그의 핸드폰 번호가 남겨져 있었다.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지만 나는 무턱대고 전화부터 걸었다.
물론 제보자의 내 신원이 공개되면 곤란하므로 ‘*23#’을 이용해 번호를 감추는 것은 필수. 목소리 또한 변조 아이템을 이용 전혀 다른 사람처럼 위장했다. 요, 아이템 생각외로 쓸모가 많군.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강 기자님.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누구시죠?
"제보를 하나 할까 해서요."
-제보라고요? 저 아시는 분인가요?
"그냥 인터넷 블로그 뒤지다 보니 기자님 번호가 나오더라구요. 대한 일보면 우리나라 최고의 언론사 아닙니까?"
-그건 맞지만, 대체 무슨 내용 이길래 이 시간에···.
"제가 실은 축산업계 종사잔데요, 오늘 누가 와서 돼지 발정제를 빌려더라고요."
-돼지 발정제요?
"모 정치인이 데이트 강간용으로 썼다는 그···."
강 기자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더니 갑자기 말을 끊었다.
-저기, 제보 전화는 고맙지만 해당 건은 제가 다루는 분야가 아닌 것 같네요.
"강 기자님."
-네?
"그걸 가져간 사람이 삼현 그룹의 고성민인데도 상관없습니까?"
-사, 삼현이요? 그 소스 확실한 겁니까?
"저희 농가 주변에 삼현 그룹 소유의 별장이 있거든요. 오늘 저녁 웬 외제 차가 한 대 들어왔는데, 거기서 외국 여성 둘을 포함해 모두 여자 넷이 젊은 남자랑 내리더라고요."
-잠시만요, 그 남자가 고성민이라는 걸 제보자분께선 어떻게 아셨죠? 고성민은 언론에 노출을 꺼려서 신원 파악이 어려울 텐데요? 막연한 추측 아닙니까?
역시, 강 기자다.
무턱대고 떡밥을 물진 않는구나.
물론 이 질문에 대해선 이미 대비를 했다.
"당연히 저야 모르죠. 거기 관리인이 귀띔해 줬어요. 그 젊은 총각이 재벌 후계자 고성민이라고."
-···어, 제가 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수첩 좀 가져올게요. 끊지 마시구요. 아셨죠?
물론이지.
잠시 후 반대편에서 수첩을 휘갈기는 소리가 들렸다.
-제보자분, 제가 한 번 내용을 정리해 볼 테니까 천천히 들어보세요.
"네."
-오늘 저녁 고성민이 삼현 그룹 소유의 별장에 여자 넷을 끼고 왔다. 그런데 고성민이 인근 농가에서 돼지 발정제를 구해갔다. 맞습니까?
"정확히는 관리인이 구해갔어요. 어디 쓸데가 있다면서.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겁니다. 늙은 별장 관리인이 돼지 발정제를 대체 어디다 쓴답니까? 거기서 돼지 키울 것도 아니고. 그래서 별장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아까 말한데로 차에서 젊은 남녀가 우르르 내리더라고요."
다시 뭔가를 빠르게 휘갈기는 소리.
강 기자가 물었다.
-제보자분, 혹시 이 내용 경찰에 신고하셨나요?
"아직은요. 좀 애매해서요. 돼지 발정제 가지고 강간을 하려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흥분용으로 쓰려는 건지."
-맞습니다. 잘하셨어요. 제가 이 거 편집장님한테 보고하고 곧바로 담당 기자들 현장 보낼 건데요, 혹시 거기 주소가 어떻게 되죠?
나는 스마트폰 지도를 켜 현 위치를 확인한 뒤 알려주었다. 물론 다음 말도 덧붙였다.
"근대요, 저 아무래도 신고는 해야겠어요."
-지금요?! 아, 안됩니다!
"아니 솔직히 그 사람이 돼지 발정제 써서 진짜 강간이라도 해봐요. 그거 빼돌린 우리까지 좆되는 거 아녜요. 에이 썅! 그러게 처음부터 주는 게 아니었는데."
-잠시만요. 저희가 최대한 빨리 가볼게요. 2시간만, 아니 1시간만 신고를 늦춰주실 수 없을까요? 확실하지도 않은 내용이라면서요.
"아씨,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럼 무조건 3시까지 오세요. 저도 그 이상은 못 기다립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제보자분 성함 좀 알 수 있을까요? 익명의 제보자보다는 실명이 있는 편이···
"됐어요. 하여간 빨리 오기나 해요."
뚝-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제 미끼를 문 강 기자는 최대한 서둘러 움직일 것이다. 편집장에서 취재 허락받고, 새벽에 자는 카메라맨까지 깨워 양평의 별장으로 오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1시간은 넘는다.
그전까지 나는 놈이 숨겨놓은 돼지 발정제를 꺼내놓고 경찰에 강간신고를 접수할 것이다. 강력범죄는 설사 장난 전화라고 의심되더라도 현장 확인이 필수니까.
그 뒤에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과 신고받은 경찰이 우르르 이곳을 덮치겠지. 아무것도 모르고 태평하게 잠들어 있는 성민은, 자다가 폭탄을 맞은 기분일 것이다.
"크크크. 꼴 좋다 요놈."
나는 성민을 맘껏 비웃어 준 뒤, 돼지 발정제가 숨겨진 선반에서 내용물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여기 증거품 1호 대령하시고."
이제부턴 오늘의 피날레, 혜은이만 기다리면 된다.
[캬! 주인님은 정말 음모의 달인이십니다. 현재 아이큐가 두 자릿수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아이큐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잖아. 그리고 잔머리랑 아이큐랑 무슨 상관이야? 아, 온다. 온다.’
나는 문밖으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잽싸게 방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리고 대충 이불을 펼치고 자는 시늉을 했다.
***
"오빤 대체 어디 간 거야?"
혜은은 별장에 들어오자마자 도훈부터 찾았다. 2시간여 온천을 마칠 때까지 코빼기도 안 비친 도훈이 못내 야속했던 것이다.
"일찍 씻고 자러 갔나 보지."
"어, 저 방에 누구 자고 있는데?"
"성민 오빠 아냐?"
"스테파니 넌 어떻게 보지도 않고 누군지 알아?"
"아, 아니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진짜 성민 오빠네? 완전히 뻗었는데?"
"종일 운전하느라 피곤했나 보네."
"그럼 저 방에 있는 사람은 도훈 씬가?"
"도훈 오빤 언제 또 여기 들어왔데?"
"응?"
혜은은 대화에서 뭔가 어색함을 느끼고 은성에게 되물었다.
"우리 오빠 봤었어요?"
"아, 아니. 아까 목소릴 들은 것 같아서."
당황하는 은성을 돕기 위해 사라 역시 나섰다.
"맞아. 아까 너희들 반대편에 있을 때 우리 근방에서 씻고 갔을 거야. 나도 도훈씨 목소릴 들었거든. 그러니까 너희들 넘어오기 전에."
"아···. 근데 언니들 원래 그렇게 친했어요? 갑자기 엄청 친해진 것 같네?"
"우, 우리?"
"하하! 같이 계속 씻으면서 얘기하다 보니."
"맞아. 그때 친해졌어."
차마 도훈과 쓰리썸을 하며 정(?)이 들었다고 말할 수 없엇던 두 사람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상하네. 저녁 먹을 때 만해도 되게 서먹한 사이 같았는데···.’
"시간도 늦었으니 이제 자러 가자. 내일 일정도 있으니까. 다들 방이 어디야?"
"전 2층이요."
"나도."
"전 1층에 짐 있는데···."
"레이첼은 그럼 1층서 자."
"내일 보자."
"네 언니."
"잘 자요."
"Good Night!"
여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소리에 도훈이 감았던 눈을 떴다.
‘젠장, 진짜로 잠들 뻔했잖아? 역시 3연사는 무리였나?’
잠든 척 누워있던 도훈은 스스로의 볼을 찰싹 때리며 잠을 깼다. 아직은 잠들어선 곤란했다. 경찰에 신고 전화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혜은이 남아 있었다.
끼이익-
도훈이 밤 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1층엔 모두 3개의 방이 있었는데, 남자들이 자는 방을 제외하면 유일한 방이 혜은의 방이었다.
똑똑-
"누구세요? 스테파니니?"
"나야."
"오빠?"
잠겼던 문이 열리며 파자마를 걸친 혜은이 뛰쳐나왔다.
"자고 있던 것 같더니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하나뿐인 여동생 생일 축하해 주러 왔지."
"아···!"
도훈의 무심함에 속상해 있던 혜은은, 생일 축하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도훈이 손가락으로 눈물을 대신 훔치며 말했다.
"까먹을 줄 알았지? 일부러 티 안넸는데."
"뭐야, 진짜! 오빠도."
혜은이 도훈의 가슴을 두들겼다.
솜방망이 같은 주먹은 앙탈을 부리듯 애교가 넘쳤다.
"선물은? 준비했어?"
"선물? 그건 너가 원하는 거 사서 쓰라고 용돈 줄 생각이었는데?"
"치. 조그만 거라도 준비했어야지. 센스 없기는."
여동생의 핀잔에 도훈이 답했다.
"미안, 몸으로라도 때울까?"
"뭐? 뭘로 때운다고?"
"조그만 걸 준비 못 했으니 몸으로 때운다고. 뭐 시킬 것 있음 말해. 다 들어줄게."
도훈의 말에 혜은의 눈이 반짝거렸다.
"진짜 다 들어 줄 거야? 무슨 소원이건?"
"물론. 하나뿐인 혜은이 소원인데."
"나 그럼 마사지해줘. 허리 결려 죽겠어."
"마사지?"
"응. 몸으로 때운댔으니 실컷 부려 먹어야지. 왜? 이제와서 후회돼?"
"후회는 무슨. 일단 방에 누워. 허리 쪽은 누워서 해야되니까."
"오에~ 신난다."
혜은은 콧노래를 부르며 깔요 위에 누웠다. 도훈은 소리 나지 않게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엎으려 있던 혜은의 등 뒤에 섰다.
"허리 주물러 달라고 했지?"
"응."
도훈은 과감하게 혜은의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헛!, 오, 오빠 뭐하는 거야?"
"뭐긴? 마사지지."
도훈이 응흉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 126. 즐거운 사라-3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