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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생그녀05
"가겐 별 일 없었지?"
"네."
"그래, 뭐 별 일이야 있겠냐만."
기춘이 기분 나쁘게 웃는다.
아까 수연에게서 CCTV 이야기를 들은 직후라 그런지 괜히 그의 행동이 거슬렸다.
이 새끼 진짜 뭔가 알고 있는 건가?
하긴 뭐 알면 어쩔 건데? 막말로 여사장이 유부녀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간통법이 폐지된 이상 처벌할 규정조차 없는 세상이다. 이혼녀랑 대학생이 섹스 좀 했다고 뭐?
그게 무슨 대수라고.
"너 어제 보니 담배 피더라? 원래 안피지 않았냐?"
"원래는 폈었어요. 끊었다가 다시 핀 거에요."
"그래? 그럼 손님도 없는데 한 대 빨래?"
"그러죠 뭐."
아직 퇴근까진 시간이 남았기에 우린 가게 밖 파라솔에 앉아 담배를 태웠다. 한 두 모금 빨고 나서 기춘이 나에게 물었다.
"도훈이 너 이제 곧 복학 하겠다? 알바는 이번 달 까지 한댔지?"
"네. 그래야죠. 곧 개강이니."
"일은 안 힘들어?"
"그냥 저냥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
"그냥 저냥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도훈의 대답에 기춘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그래. 참 좋은 경험이었겠지. 사장이 월급도 주고 몸도 대주니까 아주 신나겠네, 씨발. 누구는 1년간 좃뱅이 치고도 한번을 못 먹은 걸 고작 두 달 만에 낼름 따먹어?’
그러나 기춘은 도훈에게 악감정 같은 건 없었다.
어쨌든 그로 인해서 귀중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이제 이걸로 어떻게 사장을 옭아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하린이를 이용해야 겠어.’
기춘은 사장의 딸을 이용해 협박할 작정이었다.
딸에게 도훈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모두 꼰질러 버리겠다고.
딸의 SNS에 올리고, 아니면 딸이 입학한 대학에 대자보를 붙여 힘들게 입학한 대학, 쪽팔려서 다니지도 못하게 만들겠다고.
그게 싫으면 자기도 한 번 대주라고.
‘크크크. 시작이 어렵지 한 번 따먹고 나면 그 뒤로는 일사천리지.’
기춘은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사장을 자신의 육노예로 만든 다음 돈을 요구할 생각이다. 수틀리면 딸에게 지금까지 모든 일을 확 다 불어 버리겠다고. 앞으로 교사가 될 딸이 엄마를 어떻게 보겠냐고.
그러면 자신은 이제 밤샘 알바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나이 찬 과부 엉덩이나 두들기면서, 마음껏 게임만 하는 것이다.
‘아니지. 딸도 곧 대학 간다고 떠난다 하니 사장 집에 아주 얹혀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전에 보니 되게 좋은 아파트 사는 것 같더만... 흐흐흐. 이런 게 바로 기둥서방이라는 건가? 도훈아, 내가 니 덕에 호강하겠다. 고맙다 새끼야.’
"...도훈아. 어쨌든 고맙다."
"네? 뭐가요?"
"아냐. 그냥 뭐 이것저것. 왜, 이전에 했던 야간알바 기억 나냐? 니 사수하던 애."
"네...뭐."
"그 새끼 맨날 희한한 핑계로 지 타임 빵구를 내가지고 내가 좀 피곤했걸랑. 아니 무슨 친척이 맨날 돌아가셔 씨발. 이 번주는 외할아버지, 다음 주는 친할머니... 아마 4달 여기 있으면서 일가친척 싹 다 줄초상 났을 걸?"
"좀 심했네요."
"그치? 넌 그래도 빵구 한 번 안내고 잘 해줬잖아. 참 성실한 새끼야. 그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감사합니다."
"야, 손님도 없는데 한 대 더 빨래?"
***
"야, 손님도 없는데 한 대 더 빨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이 새끼 혓바닥 늘어지는 거 보니까 괜히 수상한데? 로시, 혹시 정보창 스킬을 남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나?’
[가능은 합니다만... 아까 사용하셔서 현재 쿨타임이 5시간 19분 남아있습니다. 또한 동성에게 사용되는 정보창 스킬은 호감도 개선을 위한 맨트 밖에 제공되지 않습니다.]
‘흠, 혹시 저 새끼가 무슨 꿍꿍인 줄 알아낼 방법은 없을까?’
[그렇다면 ‘내 귀에 도청장치’ 아이템을 추천 합니다.]
‘아, 그 200포인트짜리?’
[네. 해당 아이템을 이용하시면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거든요.]
200포인트면 전 재산이나 마찬가진데...
하지만 지금의 찝찝한 기분은 단순한 직감만이 아니었다.
분명 기춘은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혼자 담배를 피다 이죽거리는 모습이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협잡꾼의 인상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제길, 200포인트를 여자를 공략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일에 써야하는게 좀 아깝긴 하지만 포인트는 모녀덮밥으로 벌면 되니까.
‘지금 바로 그거 구입해줘.’
[알겠습니다. 결재가 완료되었습니다. 주인님의 잔고는 현재 ‘0’포인트입니다.]
‘이제 가방으로 배달 된 거야?’
[네. 가방을 열어보시면 이어폰이 들어 있을 겁니다. 아이템을 사용하려면 상대를 바라보고 이어폰 줄에 달린 음량 조절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형, 저 먼저 들어가서 정산하고 있을 게요."
"그래."
나는 가게로 들어가 창고에 놔둔 가방을 열었다. 정말로 가방 안에 평범하게 생긴 하얀색 이어폰이 들어 있었다.
‘이걸 착용하면 상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거지?’
[네. 본래 프로토 타입에선 이어폰으로 직접 마음속 소리가 들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해당 소모품의 상위 버젼 역시 헤드셋 형태로 만들어 졌죠.]
‘그런데?’
[문제는 대화 중 사운드가 겹치면서 혼선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상대방이 내뱉은 말인지 속마음이 들리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했거든요. 개발자들은 그 점에 착안해 마음의 소리가 카툰 방식의 시각적 화면으로 구현되도록 업데이트 했습니다. 이제 기능을 사용하시면 상대의 속마음이 1분간 말 따옴표 형태로 떠오를 것입니다.]
‘호오. 진짜 마술같네 이건.’
나는 스마트폰 단자 끝에 이어폰을 꽂아 음악을 듣는 척 가장하며 정산을 시작했다. 그때 기춘이 가게로 들어와 함께 돈을 헤아렸다.
"어라, 중간에 사장 왔다 갔냐? 돈이 시작금이네?"
"네. 좀 늦게 왔다 가셨어요. 딸이랑."
"오늘 충주 간다더니... 아참, 너 들었냐? 오전에 가게 경찰 왔다 갔어. CCTV 확인한다고."
"수연이가 교대할 때 말해줬어요. 형이 고생 많으셨겠어요."
"고생은 무슨..."
기춘이 갑자기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 그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나는 자연스레 볼륨을 높이는 척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머릿속의 생각이 만화처럼 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크크크. 그 경찰 덕분에 내가 좋은 구경 했는데 고생이랄게 있나?)
나는 순간 표정관리가 안될 뻔 했다. 눈앞에 사람 생각이 떠오른 다는 것이 이렇게 비현실적인 것일 줄이야.
‘우아 이게 진짜 되네? 천상계의 기술력은 대체 어디까진 거야?’
[그렇게 고차원적인 기술은 아닙니다. 증강현실 기법을 특정 가시광선 영역에 구현하는 것으로...]
‘아니 설명을 바란 건 아니고.’
나는 그것보다 기춘이 해당 영상을 봤다는 데서 살짝 짜증이 났다. 비록 카운터 장면만 찍혔지만, 그 자체도 상당한 고수위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음 상황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단 기춘이 나와 사장의 관계를 눈치 챘다는 건 알았는데... 이 새끼가 대체 이걸로 뭘 하려는 걸까?
나는 그를 한 번 떠볼 필요를 느꼈다.
"참, 하린이 이번 주 새터 간다는 데요? 금토일인가?"
"새터? 그게 왜?"
"아니 하린이 없으면 주말 비번 빠지는 거 사장 혼자 다 매꿀거 아니에요. 형 이번 주 뺀다지 않았어요?"
"아, 그랬지. 주말에 너랑 클랜 회식 같이 가기로 했잖아."
"네. 저번에 얼핏 들으니 수연이도 이번 주 쉰다는 것 같더라구요. 둘이 겹치면 안 될 것 같은데...대타도 없고."
"그래? 그건 내가 사장님한테 따로 물어 볼게."
나는 바로 아이템을 사용해 기춘의 생각을 읽었다.
(흐흐. 가만있자, 그럼 주말 내내 사장 혼자 집에 있다는 소리잖아?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좀 있다 혼자 있을 때 CCTV 파일로 빼가지고 사장 폰에다 협박해야지. 말 안 들으면 확 딸 대학도 못 다니게 만들겠다고.)
기춘의 생각을 읽는 순간 속에서 울컥 올라올 것 같았다. 놈은 나와 사장의 관계를 악용해 그녀를 협박할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굳게 쥐어지면서 눈에 힘이 들어갔다.
‘와, 이런 창의적인 씹새끼를 봤나? 나이도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못 된 짓만 배워가지고는...’
"돈 이상없다. 도훈이 들어가 봐. 고생했다."
"......"
"응? 너 나한테 할 말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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