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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화 〉138화 만남의 이유는? (138/177)



〈 138화 〉138화 만남의 이유는?

상단 재단사들의 도움으로 멋있게 차려입은 밀크와 그의 옆에 선 새로운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색해하는 벨의 모습이 보였다.

턱시도를 연상케 하는 검은색과 흰색이 조합된 옷으로 갈아입은 밀크, 그리고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흰색이  배합된 기사단 정복으로 갈아입은 벨, 기품있는 귀족가의 도련님과 그런 도련님을 호위하는 여기사의 모습을 보는  같아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머리 위에 뿔과 꼬리뼈에서 튀어나온  꼬리는 숨기지 않아서 누가 보아도 아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  있었지만, 초대한 대상이 그런  신경 쓰는 인물이 아닌 듯했고 아인이라도 입구에서 제지를 당할 이유도 없기에 따로 숨기지는 않았다.

신성 왕국과 국경이 닿아 있어서 아인 멸시 사상이 제법 많이 성행하던 중앙의 수도와는 다르게 완전히 반대쪽에 있기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아인이라고 대놓고 무시하거나 멸시를 하는 사상에 물든 사람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 이곳은 아인들이 자주 왕래하는 나라인 푸크시온 제국과 국경이 닿아 있는 곳이다. 물론 푸크시온과 첼슨이 전쟁을 하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나라의 안위는 국경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따라 판단되지 않는가.

제니리스 후작은 그러한 푸크시온 제국과 닿은 국경 위치에 있는 자신의 영지를 잘 다스리고 있는 여장부라  수 있었다. 푸크시온에서 넘어와 장사하거나 하는 아인들도 이곳에 많이 있기에 아인에 대해서도 관대한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해 볼 뿐이다.

에스타에서 출발한 마차가 제니리스 후작 관저에 멈추었다. 마차에서 내리는 밀크와 그의 옆으로 서는 벨, 이제 옷에 몸이  적응한 것인지 방금처럼 어색해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나이가 지극한 노신사의 말에 밀크는 그에게 에스타 상단의 주인인 밀크라고 밝혔고 제니리스 후작의 저녁 식사 초대에 응하여 왔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노신사는 허리를 정중하게 굽혀 인사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밀크님. 안에서 후작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손한 그의 태도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밀크, 그의 안내를 받아 후작 관저에 들어가니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갈하게 정리된 공간이 드러났다.

붉은 카펫이 가장 고급스럽게 보일 정도이니 여타 다른 왕국의 귀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관저라  수 있었다.

그러나 사치를 부리지 않는 것이지 과연 그녀의 관저는 후작가라는 이름의 걸맞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호위하는 병사들의 모습도, 일하는 자들의 모습도 흐트러지지 않고 후작가의 명예에 흠이 되지 않으려는 당당함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모습들

잘 걸어가던 집사가 어느 순간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넓은 입구가 있는 방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한   쉬고는 밀크를 향해 양해를 구했다.

“후작님이 워낙 호승심이 강하신 분이다 보니 식전에 간단히 대련을 청하셨습니다. 무례한 경우인 것은 알고 있지만, 너그러이 용서 부탁드립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제니리스 후작이 벨을 보고 한번 붙어보고 싶다고 했던 일의 연결 선상인 듯했다. 물론 밀크는 이미 그녀가 벨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 내색은 하지 않았다.

“초대받은 입장이니 이해해야죠. 그럼 이리로 들어가면 되나요?”

“예 밀크님. 그리고  노구에게 말을 높여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은 초대받은 밀크님에게 존대 받을  없는 낮은 위치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앞으로는 말을 편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 내가 생각이 짧았네. 앞으로 주의하지.”

나이가 지긋하고 너무도 멋진 신사인지라 왠지 모르게 과거 동내에서 자주 뵙던 노인분들이 생각나서 자기도 모르게 말을 높인 밀크였다.

그렇게 노신사의 안내를 받아 입구가 거대한 방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먼저 온 선객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금빛을 머금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멋진 검무를 펼치고 있는 제니리스 후작, 그녀는 밀크와 벨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것인지 자신의 검무를 계속 추는 것에 여념이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한참 울려 퍼지면서 칼끝에서 일어난 매서운 바람이 살을 에는 듯한 기분이 절로 드는 상황에 밀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벨이 그의 앞에서 삭풍에 대항하듯 온 힘을 집중하여 버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훗”

별안간 제니리스 후작의 입이 벌어지며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주변으로 몰아치던 삭풍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녀가 기운을 갈무리하며 검을 검집에 집어넣는 순간 벨의 긴장이 무색할 정도로 빠르게 그 기운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 걸음…. 겨우 한 걸음 물러섰다? 내 알기로 홀스타우로스 남성은 여성들의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하는 몸이 약한 소중한 존재로 알고 있었지. 그런데 홀스타우로스 남성이 어떻게 그리 강인한 담력을 가질  있는 건지 궁금하군.”

작은 시험이었던 듯. 그녀는 유쾌하게 웃으며 자신이 서 있던 연습장에서 계단을 밟고 올라와 밀크 그리고 벨과 대치했다.

평소의 기사 정복 차림인데 조금 더 가벼운 복장이었다. 팔이나 다리까지 완전히 꽉 감싸 매고 있던 것과 다르게 각반이라든지 갑옷 조임  부분이 조금씩 사라진 복장, 연습을 위한 편한 복장인 듯했다.

“뭐 궁금한 것은 뒤로 미루고 지금은 일단 몸이 달아올랐으니 이 흥분을 잠재워줄 상대가 필요하니 이 여인은 내가 잠시 빌리도록 하지. 괜찮겠나?”

제니리스 후작의 말에 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벨에게 조심하고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눈빛을 전했다. 그녀의 실력이 보통은 넘어서는 듯했고 벨이 상대하기에도 조금 버거우리라는 것이 한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벨은 그의 눈빛을 받고 조금 기분이 상했지만, 자기도 그녀가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긴장을 하며 그녀를 뒤따라 연습장을 향해 계단을 내려갔다.

“묻지 이름이 뭔가.”

“벨입니다. 후작님.”

“후후후. 딱딱하게 후작이라니. 지금부터는 전사 대 전사로 싸우는 것이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미레뉴 제니리스다. 미레뉴라고 부르거라.”

“예 미레뉴님.”

“무기는 무엇을 사용하지?”

“감히 저 역시 검을 주로 사용합니다. 주인에게 받은 이 검으로 상대하겠습니다.”

이름이 붙은 명품의 검은 아니지만 밀크가 그녀를 위해 제작해준 검이 그녀의 허리춤에서 뽑혀 나왔다. 유려한 곡선과 함께 검붉은 듯한 도신이 멋진 곡도였다. 현란한 움직임으로 적을 제압하는 그녀의 검술에  맞은 자유분방한 도, 그것이 바로 이 곡도다.

“멋진 검이로군, 홀스타우로스의 야장 기술이 뛰어난 것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오늘 보니  유명세가 절로 느껴지는군, 식사 중에 그 이야기도 하게 되겠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이야기한 미레뉴는 자신의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변하였다. 아까까지 그런대로 살가웠던 태도는 사라지고 상대방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전사의 눈빛으로 변하여 벨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는 그녀.

“죽일 생각으로 덤비거라.”

“하압!!!”

그 말에 벨은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녀의 스승인 린다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린다와의 싸움에서도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그녀였지만, 자신보다 강자와 싸울 때는 거리가 중요하다는 린다의 가르침을 항상 실천하는 그녀였다.

미레뉴의 코앞까지 쇄도해 들어간 벨은 그대로 곡도를 휘두르며 마치 미끄러지듯이 미레뉴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검과 검이 맞닿으며 불똥이 튀었고 미레뉴는 벨의 움직임을 눈동자로 따라가며 즉시 몸을 비틀어 방어 동작에 들어갔다.

캉!!!

그러자 쏜살같이 측면으로 들어간 벨의 곡도가 다시 한번 힘차게 휘둘러짐과 동시에 미레뉴가 취한 방어 동작으로인해 그녀의 검에 부딪혔다. 그런데 그에 굴하지 않은 벨은 2차 그리고 3차 공격을 감행하며 이번에는 미레뉴의 후방을 잡기 위해 또 한 번 미끄러지듯 이동을 시작했다.

“멋지군, 정말 대단해. 내가 변방에서 썩고 있던 사이에 왕국에는 이런 실력자들이 생겨났단 말인가?!”

기쁜 듯 일갈한 미레뉴는 이번엔 몸을 틀지 않았다. 그리고 간단한 동작으로 검을 뒤로 빼내 후방에서 그녀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어 오는 벨의 검을 튕겨내 버렸다.

“큭!”

너무나 쉽게 방어해 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하고  기가 죽들만도 한데 벨은 더욱 투지를 다지며 속도를 높였다. 단단한 그녀의 허벅지에서 근육이 팽창했고 그것은 그녀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지치지도 않는 건가? 역시 아인의 체력은 인간보다 대단하군. 정말이지 부러운 일이야.”

엄청난 체력 그리고 신체 조건이었다. 하지만 칭찬 일색이던 미레뉴의 얼굴이 순간 담담하게 변하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인가.”

퍽!!!

“크윽!!!”

밀크의 눈으로도 쫓아가기 힘들었던 벨을 어떻게 포착한 것일까. 미레뉴는 발을 차올려 어느 장소를 때렸고 그곳으로 달려오고 있던 벨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너무도 쉽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중심을 잃어버리고쓰러지며 튕겨 나가는 벨, 하지만 그녀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고 땅에 닿음과 동시에 팔로 땅을 박차고 튀어 올라 낙법과 동시에 자세를 잡으며 미레뉴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좋군!”

방금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나리라 생각했는데 벨이 다시금 공격해 들어오자 미레뉴의 눈에 다시 이체가 발했다.

벨의 공격을 시작으로 수십의 공방이 이어졌다. 벨이 밀어붙이고 미레뉴가 방어를 한다. 그러나 방어하는 미레뉴는 전혀 밀리지 않고 공격을 하는 벨이 오히려 뒤로 밀려 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스릉!

미레뉴의 검이 벨의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려졌다. 방어하지도 못하고 완전히 허를 찔려버렸는지 벨의 눈에는 놀람만이 가득했다.

“충분해. 장하구나. 내가  때  나이가 많은 홀스타우로스는 아니야. 그런데도 이렇게나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니 오래 사는 너희 종족에서는 장래가 유망해 보이는구나. 원래 이런 녀석들에게 칭찬을 해주면자만해서 인생을 망치곤 하는데 넌 그런 녀석들처럼 망칠 타이밍은 이미 지난 거 같고 성격도 차분해 보이는 녀석이니 괜찮지 싶구나.”

칭찬과 함께 검을 내리는 미레뉴, 그에 따라 벨 역시 자신이 검을 내리고는 검집에 넣었다. 완벽한 패배, 그리고 인정, 미레뉴는 기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벨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켜야 할 존재가 있으면 강해지는 법이지. 그런 점에 있어  다른곳에 한눈팔 점도 없으니 내가 현역에서 내려오기 전에 날 뛰어넘을 거 같구나.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붙어 보자.”

그리고는 한동안 그 자리에  박혀 있는 벨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의 시선이 밀크를 향해 이동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대족장.  아이는 좀 시간이 필요할 듯하니 나와 식당으로 먼저 가지. 내 기사들이 이 아이가 깨어나면 정중히 모셔올 테니까.”

“손속에 자비를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뭘…. 나 역시 오랜만에 땀 좀 흘렸지. 후후후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 정말 살이 따가울 정도로 무서운 솜씨야.”

그렇게 밀크와 함께 연습장에서 나간 미레뉴는 식당으로 그를 직접 안내한 뒤 몸을 정돈하고 오겠다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벨이 기사들의 도움으로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났을  미레뉴 역시 기사단 정복이 아닌 가슴의 중앙이 드러난 정열적인 드레스 차림을 하고 식당에 나타났다.

“불편해, 정말 불편하군. 하지만 후작가 여식인 이상 손님 맞이할 때 몸단장이 중요하다고 어찌나 집사가 못살게 구는지 이래서야 후작 해 먹고 살겠나 어디…. 하하하”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그녀의 뒤로 집사로 보이는 젊은이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그녀를 책망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밀크와벨의 뒤로 접근한 하녀들이 두 사람의 잔에 와인을 따라주자 미레뉴가 자신의 잔에도 와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두 사람의 중앙으로 내밀어 건배를 요청했다.

“자  말은 많지만 우선 한 잔씩 마시지. 대화야 그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 말이야.”

그리고는 먼저 독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와인을 들이켰고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예의에 따라 주인이 먼저 술을 마셨으면 따라서 마셔야 하기에  사람 역시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도수가 높은 포도주가 목을 타들어 가는 듯한 감각을 선사했고 잠시 후 달콤하고 싸한 향이 코로올라왔다.

그에 기분이 좋아진 미레뉴는 눈앞의 요리에 잠시 관심을 두다가 집사가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만류하는 태도를 보이자 입맛을 다시며 밀크에게 시선을 옮겼다.

“자 그럼 에스타를 수중에 넣은 젊고 유망한 아인의 대족장, 밀크라는 남자를 오늘 처음 보니 감회가 새롭군.  변방까지 진출한 이유를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괜찮다면 이유를 말해 주겠나?”

그녀의 질문에 밀크는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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