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101화, 여신 배라밀프. (101/177)



〈 101화 〉101화, 여신 배라밀프.

얼마 뒤 밀크의 부족 마을, 베라밀프 여신의 황금상 완공이 된 날이었다. 저번에 약속했던 대로 퍼슨이 에스타 상단의 상단주를 대동하고 마을을 찾아왔다. 짐을 바리바리 다 싸 온걸 보니 아예 지부를 이곳으로 옮길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뜻밖에도 퍼슨과 동행을  사람이 또   있었으니 늙은집사를 대동한 레이나였다. 그녀는 멀리서 보기에도 어두워 보이는 얼굴을  채 밀크를 보자마자 그동안 묵혀두었던 설움이  번에 북받쳐 올라서 그만 눈물을 터트렸고 레이나의 마음을 이해한 집사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밀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렇게 레이나가 안정을 취하자 밀리에게 부탁하여 그녀를 쉴  있게 해준 밀크는 그녀를 대신하여 그 집사 알프렛과 퍼슨, 그리고 에스타 상단의 상단주 릭스와 함께하는 자리를 가졌다.

“레이나가 그런 위협을 받을 줄이야…. 그럼 놈들이 벌써 이곳에서 가까운 지역에 발을 디뎠다는 뜻이군요. 집사님?”

“말 편하게 하십시오. 아가씨의 사업 파트너이시니  늙은이에게 말을 높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저희 상단 작업장에 들이닥쳤으니 멀어도 사흘이나 나흘 안으로  렘톤에 도달할 겁니다. 하나 군세의 수가 천명이라 보급과 군사들의 피로를 생각하면 조금 더 천천히 진군할 수도 있을 겁니다.”

집사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투로 퍼슨이 질문했다.

“아니…. 레이나 아가씨는 반돌프 상회의 상단주이기 이전에 이 첼슨 왕국의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지 않습니까. 저희 같은 뼛속까지 상인인 자들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인데 그런 타국 귀족의 사업장을 그리 무참히 박살 내놓아도 되는 겁니까! 이거야말로 1 왕자가 크게 잘못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2 왕자 연합에서도  일로 인해 큰 탄핵이 올라오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예전에 역병이 크게 번졌을 때, 에스타 상단이나반돌프 상단이 왕자파들의 권유를 받은 적이 있지요. 그때 1 왕자파 귀족들의 권유를 매몰차게 거부한 이유로 1 왕자파 귀족들의 도움을 받을  없었습니다. 아가씨를 내치긴 했어도 딸이라는 정 때문에 완전히 연을 끊어버리지 않은 반돌프 백작님께 자초지종을 들어서 대략적인 내용을 들었는데…. 이번 성국의 공격은 1 왕자가 사주한 모양입니다. 어차피 남작, 그것도 여자 남작이 가지고 있는 상단 하나쯤 무너트려 봐야 1 왕자에게는 생채기조차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2 왕자파에 붙으려 했다는 얼토당토않은 모함까지 해서 1 왕자 측은 이번 성국의 공격에 전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2왕자 측이야 자기들 편이 되지 않는 귀족이 알아서 사라져 준다면 나쁠 것이 전혀 없다는 식이라,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머리 나쁜 왕자치고는 이번엔 생각보다 영악했습니다.”

“하…. 그나마 2 왕자는 양반이군요. 비록 저희 에스타 상단이 그를 지지하지 않아서 유감을 표하긴 했지만, 옹졸하게 되돌려주는 자는 아니었으니까요. 2 왕자파 귀족들이 좀 엇나가는 성격이긴 해도 2 왕자가 이번에 1 왕자를 탄핵할이유는 충분할 텐데요?”

“그것이…. 안 그래도 탄핵 상소는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아인들을 노예라는 명목으로 보호하고 있던 것이 완전히 드러나 버린 마당이라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찌 되었건 저희 왕국은 성국의 가까운 곳에 있는지라 대부분 귀족은 아인 멸시 사상에 물들어 있으니까요.”

“후…. 거기서 발목이 잡혔군요…. 이거야 원 국왕 폐하라도 멀쩡히 계셨으면 이럴 일이 절대 없었을 텐데.”

후궁이랑 합방 한 번 잘못했다가 기가 허해지는 바람에 몸져누워 버린 그 국왕을 떠올린 밀크, 이래서 사람은 건강이 중요한 것이다.

“국왕은 아인 멸시 사상이 없나?”

“예? 아, 네 족장님. 국왕 폐하께서는 아인이고 인간이고 모두 평등하게 자신의 백성이라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저희 왕국에 아인들이꽤 많이 있던 것이고요. 그래서 이번에 겪은 풍파도 참 심합니다. 아예 노예로 다루어지던 아인은 상관없지만, 시민권을 따고 인간과 같이 생활하던 아인들이 대거 잡혀들어갔으니까요. 물론 2 왕자께서 번인 색출을 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최대한 색안경을 끼지 않고 확인하는 중이라 관련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 풀려나오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요…. 거기에 성국 성기사단은 자신들의 실적도 필요하여 자신들이 잡아들인 아인들을 직접 선별해  좋은 자들을 모두 노예로 끌고  예정이라 아인 백성들의 수가 대거 줄어들 예정입니다.”

“결국, 자기 국력을 잡아먹는 일이 아닌가! 미친놈들…. 내가 웬만해서는 이 나라의 일에 왈가왈부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건 정말 도가 넘었어. 국왕인지  양반이 깨어나자마자 칼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1 왕자는 미친놈이 분명해.”

그답지 않게 화가 치밀었다. 그야 과거에 인간이었고 하니 인간의 관점으로 쳐다본다 하여도 이건 미친 짓이었다. 외세를 끌어들여 실권을 잡아 왕이 된 자의 말로는 언제나 파멸뿐이지 않은가.

물론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던 그가 기억하는 나라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 넓고 넓은 삼국의 땅덩어리의 절반도 차지하지 못한 채 구석에몰려 변방의 속국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다시금 삼국으로 찢어지는 결과가 일어나니 작금의 첼슨 왕국 상황은  보듯 뻔해 보였다.

“후…. 내 나라도 아닌데 괜히  올릴 필요 없지. 우린 당장 닥쳐올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그레서 레이나는 상단을 모두 정리하고 나에게 의탁을 하러 왔단 말이지?”

“예. 아가씨의 상단을 정리한 돈으로 식량과 무기를 대거 사 왔습니다. 다만 홀스타우로스가 사용하기 힘든 무기는 모두 배제하였습니다.”

“뭐 사용하지 못할 무기는 다시 녹여서 새 걸로 만들면 되니까 걱정할  없어. 거기에 에스터 상단도 우리 마을에 본점을 아예 이전하겠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퍼슨이 뒤로 물러나자 꼬장꼬장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만큼 눈에는 총명함이 가득한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그는 밀크의 나이 따위는 게의치 않고 자신을 낮춰서 소개했다.

“홀스타우로스를 다스리는 밀크 족장님을 처음 뵙습니다. 에스타 상단의 상단주 릭스입니다. 이제까지 퍼슨을 잘 봐주어 우리와 거래를 해주셔서 감사 인사를 먼저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마을에 터전을 잡고 신세를 지겠습니다.”

“아니. 나 역시 퍼슨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지. 독점 거래이긴 했지만, 그는 절대 독점이라는 것을 이용하지 않고 언제나 나에게 더 많이 해주려고 노력해서 그에 감동한 결과야. 그러니 너무 그렇게 저자세로 나올 필요는 없어 상단주. 앞으로도 잘 부탁해 성왕국 과의 일이 해결되면 첼슨 왕국을 넘어 다른 왕국까지 교역로를 넓혀 보자고. 우린 지금 아인들이 연합해 있으므로 홀스타우로스의 젖뿐만 아니라 여러 부산물이 모이고 있으니 이걸 팔면 에스타 상단의 이름은 다시 우뚝 세울 수 있을 거야.”

“감사한 말씀입니다. 앞으로 저희 상단이 마을에 필요한 물건을 절대적으로 먼저 구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필요한 것은 퍼슨을 통하여 말만 해주십시오.”

“든든하군. 앞으로  부탁할게. 에스타 상단의 활약을 기대하지.”

대략적인 상황 대화를 마친 그들은 밀크의 집에서 나와 마을 중앙 공터로 향했다. 마침 정신을 차린 레이나 또 한 밀리와 함께 공터로 나와 있었고 홀스타우로스들과 마을에 상주하던 다른 부족의 아인들도 다 같이 약속된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공터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어마어마한 크기로군요. 무슨 동상이라도 세우신 겁니까? 들어오면서 보니까 언뜻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아니 상단주님 그럼 저것이 동상이란 말씀입니까?”

“그래. 이 나이쯤 되면 촉이라는 게 살아나는 법이다. 특히나 우리 상인들은 눈칫밥으로 살아남는 족속들이니 하나를 보고 열을 깨우쳐야 한다. 자세히 보아라. 뭔가를 숨기기 위해 겉을 격벽으로 막아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격벽을 이용해 높은 곳까지 올라가 뭔갈 만들기 위함이고 감시를 위한 탑으로 보기엔 너무 낮은 감이 있고 집이라기엔 폭이 좁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사다 나른 대량의 금덩이와 더불어 저기 보이는 조각 도구들을 보아라. 이렇게까지 힌트가 있는데 모르는 것을 보니 네 녀석도 아직 멀었어. 끌끌”

“아…. 정말, 그렇군요…. 아아….”

지금까지 그래도 총명한 모습을 보여왔던 퍼슨, 그러나 상단  앞에서는 어른 앞의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머릿속에 잘 기억해 두는 퍼슨이었다.

“음~ 바로 알아맞힐 줄은 몰랐네. 맞아 이건 동상, 황금으로 겉을 감싼 황금상이지. 더 정확히는 신상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신상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성왕국의 신들 중 하나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것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들이 따르는 신들은 인간에서 신이  존재들,  인간의 신들이지 우리와는 상성이 전혀 맞지 않아. 그리고 내가 뭐 헤베나 왕국이랑 신상 하나 만든 거로  보여서 친선이라도 할 생각도 아닌데 구태여 그들의 신을신상으로 왜 만들겠어? 괜한 고생이지. 여기 계시는 신상의 주인공은 천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명맥을 유지해 오던 우리 홀스타우로스와 미노타우로스를 주관해 주시던 여신님이지.”

“오오! 그런 신이 존재하였군요. 하긴 천 년이나  이야기는 인간들에게는 너무나 먼 과거니까 유실이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거기에 인간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인의 신이니 더더욱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겠지요.”

“천 년은 인간에게도 긴 시간이지만 홀스타우로스에게도  시간이지. 거기에 부족 생활을 하는 홀스타우로스이기에 갈라지고, 갈라지고 또 갈라져 나오는 과정에서 그 자료들이 상당 부분 유실되었더군. 우리 제사장도 어렴풋이 우리들의 신이 존재했다는 것만 기억할  이분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야.”

때마침 도착한 칸젤라와 릴리핀, 그리고 도칸은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격벽의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여신상을 보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압도적인 크기에 반해 느껴지는 감정은 평온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허…. 이분이 바로 고대의 신이란 말인가? 우리 미노타우로스도 잊고 지내왔던 우리들의 신.”

누구보다도 경건한 마음으로 여신상을 바라보는 도칸, 그리고  옆에 칸젤라와 릴리핀도 자신들의 신은 아니지만 홀스타우로스와 함께하기로 한바 점차 그 모습이 나타나는 신상의 모습에 경건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분리되어 가는 격벽의 아래에서 안전한 거리를 유지한 채 드러나는 신상을 향해 신비로운 춤사위를 보이며 신계 올리는 기도를 하고 있는 제사장 루피카를 더불어 점차 앞으로 나아가 그 뒤에 당당히 서 있는 밀크의 모습

찬란한 황금빛의 물결이 펼쳐졌고 격벽이 모두 제거된 뒤에 나타난 것은 자애로운 미소를 보이며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을 듯 풍만한 몸을 한 여신이었다.

다만 밀리의 옆에 있던 메어리와 뷰렌, 그리고 린다의 눈은 신상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밀리의 얼굴로 고개가 돌아갔다. 밀리는 갑자기 느껴지는 시선에 놀라 주변을 보니 그녀를 향하고 있는 다른 여인들의 눈길에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왜 왜 그래 모두?”

“아니…. 아무리 봐도….”

“응…. 저건 아무리 봐도 그렇지.”

“그러게요….”

잠시 말이 없던 모두는 한마음으로 입이라도 맞춘 듯 이렇게 말했다.

“언니네.”

“언니가 분명해.”

“언니가 확실합니다.”

“무, 무슨 말들 하는 거야! 부정 타니까 그런 큰일 날 소리 하는 거 아니야!”

한쪽에서는 이렇게 신상의 모습이 밀리와 닮았다는 것으로 소란이 일어났지만, 묘하게 닮았을 뿐이지 밀리와는 차이가 분명히 있었기에 크게 조명되지는 않았다.

[밀크가 다스리는 마을 전체와 그 주변 숲을 더불어 산지까지 신상의 은혜가 닿았습니다. 잠들어 계시던 고대의 신께서 눈을 뜨셨습니다.]

‘음…. 함부로 깨웠다고 화내시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오히려 기꺼워하시면서 은혜를 내려주고 계십니다. 당장은 깨어나신 직후라 마을 주변으로 적의를 가진 자들의 마력을 억제하는 파장을 내뿜는 것이 그쳤지만, 앞으로 제사장과 함께 신상에 공물을 바치고 기도를 함에 따라 여신님의 은혜가 점점 이 땅에 현신할 겁니다.]

‘내 목소리가 닿을까?’

[지금은 밀크님을 내려다 보고 계십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지금 바로 마음속으로 강하게 목소리를 담아 기도를 해보세요.]

‘알았어.’

루의 말대로 밀크는 눈을 감고 신상의 앞에 서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신성 왕국의 마수로부터 아인들을 구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마음속의 강렬한 외침

홀스타우로스 뿐만 아니라 아인 전체라는 점에 조금 꿈이 과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밀크는 마음을 다 해 기도를 드렸다.

{아가.}

다음 순간 머릿속으로 울리는 알 수 없는 부드러움 음성에 밀크는 깜짝 놀라 눈을 떴지만, 주변에는 기도를 드리는 춤에 심취한 루피카 말곤 아무도 없었다.

‘방금 그건?’

[여신님의 목소리가 닿은 겁니다.]

루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었다. 가슴이  따듯해지는 듯한 자애로운 목소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가, 너와  따르는 아인들이 번창하고 또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내가 살펴주마.}

“아!”

“헉!”

“이건!”

“흠!”

밀크를 제외한 모두가 갑자기 흠칫 놀라면서 큰 탄성을  뿜었다. 그리고 일제히 그에게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은 동시에 외쳤다.

{여신 베라밀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대족장 밀크를 따라라.}

대족장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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