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3화, 꼬물이와 옹알이 콤보의 위력은 상당했다.
모자 관계에 애정으로 돌입할 수 있다는 말에 밀크는 속으로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였다.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돌 맞아 죽기 딱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짐작한 루는 그를 향하여 다정하게 말을 걸며 안심시켰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곳은 당신의 과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곳이고 하물며 종족 자체가 남성이 드물어서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행위입니다. 그러니 남 눈치 볼 필요도 없지요. 만약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행위임이 틀림없지만, 지금 밀크는 홀스타우로스입니다. 인간이었을 시절의 기억 때문에 아직 거부감이 남아있을 테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아서 해결될 겁니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지 마시고 모든 것은 종족을 위한 행위라고만 생각하시고 지금은 아기의 생활에 충실하시지요.]
당장에 와닿지 않은 말이지만, 언제고 밀크 또한 거부감은 없어질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테니 말이다.
‘알았어. 일단 그건 제쳐 두고 계속 설명해 주겠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루가 다음 설명을 하려는 그때 밀크의 몸은 뷰렌에게서 밀리에게 전해졌고 그녀가 밀크를 다시 짚으로 만든 푹신한 침대 위에 올려놓는 것으로 그는 편안하게 누운 자세가 되었다.
그가 자리에 누워 똑바로 천장을 보고 있으니 다시금 루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눈앞에 떠 있는 화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밀크는 아직 나이가 적어 의무에서 벗어납니다, 후에 17세가 넘어가는 시점에 당신은 성인이 되고 그때부터 종족을 위한 의무를 지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자유롭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경험해보고 또 열심히 생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기에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활발히 생활하였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바로 달성과제와 업적입니다. 달성과제는 쉽게 말해 퀘스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또는 일정한 행동에 따라 발생하고 그것을 해결하면 업적 수치를 올려 주거나 바로 당신에게 도움을 주는 보상을 제공합니다. 업적 수치는 당신의 행동에 따라 그 수치가 증가, 또는 저하되며 일정 수치 이상에 도달할 때 점차 거대한 보상을 제공합니다. 종족 이념에 반하는 행동 대부분은 수치를 내리며 그 외 행동은 수치를 올리거나 형상 유지를 합니다.]
‘으음…. 그, 그렇구나.’
공부를 잘 하는 지능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명석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아이의 몸이 되어서 그런지 그녀의 말을 머리에 정리하는 동안 꽤 긴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래도 아예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루 역시 그의 상황을 바로 인지하고는 대화의 속도를 조금 늦추었다.
[죄송합니다. 밀크, 현재 당신의 신체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였군요. 대화 속도를 조금 줄이겠습니다.]
‘고마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루, 그녀는 평범한 가이드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은 정신 체계를 가진 하나의 인격체였다.
다만 스스로가 AI와 같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것으로 보아 완전한 생명체는 아니고 누군가에 의해 밀크에게 심어진 생명체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신이라는 존재일 것이며 자신이 지구에서 죽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자신을 보고 혀를 끌끌 차대던 그 존재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스스로 생각해낸 밀크의
시야가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뇌가 받아들이자 피곤해진 것일까? 아니면 밥을 배불리 먹어 그 작용이 온 것일까.
밀크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였다. 작고 앙증맞은 아기가 입을 벌리고 눈을 찡그리며 하품하자 주변에 있는 두 엄마는 자지러지듯 심장을 부여잡고 학학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밀크는 감겨오는 눈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며 고요하게 미소 지었고 이윽고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아기의 몸은 에너지 소비가 너무 극심했다. 잠자고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을 뿐인데 벌써 방전이 된 모양이다.
[주무십시오, 밀크, 당신은 아직 어려서 깨어나 있는 시간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성장을 하기 위한 건강 체크와 영양소의 분배는 지금부터 제가 조정하겠으니 밀크는 푹 쉬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여러모로 고마워 루.’
[아닙니다. 이것이 제 존재의 의의입니다. 모쪼록 편한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편안한 루의 목소리를 끝으로 밀크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고른 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꼬물거린다.
뷰렌은 꼬물거리는 밀크의 손에 자신의 검지를 가져다 대보았다. 그러자 잠들어 있는 밀크는 무의식 중에 그것을 꼭 쥐었다.
“(꺄아!)”
잠들어 있는 밀크가 깰까 봐 최대한 소리를 줄여서 비명을 지른 그녀, 밀리도 그 모습을 보고 귀여워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족의 다음 대를 이어갈 아이, 그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이며 가장 귀엽고 소중한 존재이다.
어미 홀스타우로스의 이런 반응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그녀들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한결과였다.
매일 봐오던 여자아이도 귀엽긴 하지만, 정말 그 수가 희박할 정도로 적은 수가 태어나는 남자 홀스타우로스의 귀여움 앞에서는 10 여자아이가 부럽지 않았다.
밀크는 잠자고 있지만, 그와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한 존재는 잠들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그의 가이드 루였다.
[뷰렌, 그리고 밀리. 지속해서 호감도 상승 중 밀크와의 상성은 단연 발군, 이후 잉태 확률이 지극히 높음 수치화할 경우 약 90% 이상으로 추정됨 밀크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존재 1, 2로 지정. 북마크 하여 해당 정보를 기재한다. 이름 밀리 그리고 이름 뷰렌으로 정보 저장. 키워드 엄마, 위치 정보 미니맵에 항시 표시 ON, 일정 거리 접근 시 알림 설정 ON]
뭔가를 열심히 설정하기 시작하는 루의 목소리,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밀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에게 들리지 않게 자신만이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 잠든 밀크의 곁을 지켜주는 밀리, 그리고 작은 엄마 뷰렌의 존재로 밀크는 따듯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밀크의 나이도 이제 두 살 옹알이는 끝났고 이제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발음이 이상했다.
“으응마아앙-”
참고로 엄마를 부르는 소리다. 입을 크게 벌리고 발음에 힘을 써도 가장 정확한 발음은 이것이 한계였다.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며 그가 가능한 필살기는 그저 엄마인 밀리를 기쁘게 하는 것이 전부이다.
“우리 밀크 엄마 불렀니-?”
부드러운 밀리의 목소리와 함께 목걸이의 이음줄 같은 것을 만들고 있던 그녀가 잠시 작업을 멈추고 밀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하반신을 감싸고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 주머니가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는 새로운 천 주머니를 가져와 밀크의 헌 주머니와 바꿔주기 위해 그것을 풀었다.
밀크가 한바탕 만들어 놓은 것들은 정리해준 그녀는 깨끗해진 그의 엉덩이에 질 좋은 허브로 만든 분가루를 발라준 다음 천을 입혀 주었다.
“아응마아. 가우해오”
그녀가 수고를 해줄 때마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 물론 발음이 모두 세어버려 소용은 없었지만 말이다.
“아휴 그랬어요? 우리 아들 이제 시원해요?”
지레짐작으로 밀크의 말을 해석하는 밀리,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밀리의 사랑을 받으며 밀크는 무럭무럭 자라는 중이었다.
[어머니 밀리의 호감도가 90으로 올랐습니다.]
수확이 있다면 어머니의 호감도가 차근차근 오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기인 밀크가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어머니 밀리,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뷰렌이 전부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다른 부족의 여인들도 밀크를 보고 싶어서 하는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다음 대의 후계자를 자신들이 보고 싶다고 함부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홀스타우로스의 여인들은 모두 모성애가 넘쳐나기에 아이들을 한곳에 몰아 놓고 보모역할을 하는 여인들이 한꺼번에 아이를 키운다.
어차피 모두 한 남자의 아이였고 그들의 부족 구성원이기에 누가 엄마 역할을 하고 누가 키운다 하여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자아이일 경우이다. 남자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다.
우선 친모는 모든 부족의 일거리에서 제외된다. 밀리의 경우는 집에서는 하는 소일거리를 하고 있지만, 원래는 그것도 할 수 없는 것인데 부족장의 허락하에 일부 허용된 일거리였다.
친모가 하는 일은 남자아이를 옆에서 철저하게 키워서 장성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한 지원은 모두 부족에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모의 옆에서 한 명의 여인이 더 배치되어 가끔 상황을 살피며 아이의 건강을 객관적으로 점검하여 부족장에게 보고하니 그것이 바로 뷰렌의 일이었다.
즉 밀리가 잘 하고 있는지, 그리고 아이가 건강한지 검사를 하는 것이 뷰렌이라는 것이다. 만약 친모가 제대로 육아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다른 홀스타우로스 여인이 관리하여 치우게 된다.
그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그만큼 홀스타우로스의 남자 부족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기에 미리미리 조심하자는 취지에서 실행되는 일이었다.
정성스럽게 그가 저질러 놓은 실례들을 정리해준 밀리에게 다시 고마움을 느끼며 몸을 뒤집는 밀크 그의 전매특허 필살기였다.
“꺄! 우리 아들 잘한다-”
[뒤집기 성공, 어머니 밀리의 호감도 1점이 상승합니다. 일주일간 같은 행동으로는 호감도가 상승하지 않습니다.]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악! 뭐야! 또 나 없을 때 몸 뒤집은 거야! 밀크 너무해! 작은 엄마도 보여줘-”
언제 왔는지 후다닥 달려 들어온 뷰렌이 그의 등 위에서 눈에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 그렁그렁한 눈을 만들며 그에게 사정한다.
밀크는 하는 수 없이 그의 전매특허 필살기를 오늘 대량 방출했다. 그는 뒤집힌 몸을 온 힘을 다해 뒤로 뒤집는다.
파앗!
그러자 밀크의 몸은 뒤집어 엎드린 자세에서 다시 정자세로 눕게 되었고 또랑또랑한 눈으로 뷰렌을 바라본 밀크는 만족하냐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힉!!!”
심장이라도 멎었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옆으로 꼬꾸라지는 뷰렌, 그렇게 밀크는 점차 이 세상에 적응하며 두 여인의 심장에 무리를 주는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현재 두 사람은 지극히 건강한 상태입니다. 밀크의 곁에서 20일 동안 더 생활하면 수명이 약 1년 늘어나게 될 겁니다.]
‘동물원에 레서 판다가 이런 기분일까?’
[적어도 당신은 동물원의 레서 판다보다 100배 이상 귀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여기에 있는 홀스타우로스 여인들에게 한하여 말입니다.]
‘아니…. 그거 전혀 기뻐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걸?’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장성하게 되면 반응이 좀 덜할 겁니다. 다만 그때부터는 당신의 다른 매력 때문에 문제가 생길 요지가 크지만요.]
‘다른 매력이라니?’
[수치화하여 말씀드리자면 지금 당신의 자지는 7cm입니다. 지난 1년간 2cm나 자랐습니다.]
‘푸웁!’
“푸웁!”
그는 하도 놀라는 바람에 현실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였고 그가 하는 행동을 본 뷰렌과 밀리의 시선이 한순간 정지하였다.
[투레질을 하여 두 여인이 놀랐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검사가 들어올 거 같으니 귀찮을 일에 대비하시려면 옹알이와 꼬물거리기 콤보를 사용하시길 추천합니다.]
‘아, 아이고!’
이상 현상을 보이면 걱정이 앞선 두 여인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미지수라 그는 바로 루의 말대로 행동에 들어갔다.
예전에 한 번 루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너무 다양한 지식이 들어오는 고통으로 잠시 끅! 하는 비명 비슷한 소리를 냈다가 부족이 완전히 뒤집힌 사건이 있어서 그는 더 다급했다.
말 그대로 그의 손짓 그리고 발짓 하나에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한 무서움 파급력이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필사적으로 손발을 꼬물거리며 옹알이를 펼쳤다.
“아응마앙!, 아응마앙!”
밀리에게 한번 엄마를 외치며 손가락을 꼬물 발가락을 꼬물, 반대쪽을 보며 마찬가지 뷰렌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손가락을 꼬물, 발가락을 꼬물거린다.
“꺄아!”
“어머, 어머 어쩜 이렇게 귀엽니 내 아들-!”
어쩔 줄 몰라 하며 방금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잃어 버리는 두 여인의 모습에 밀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걱정 수치가 해소되었습니다. 상황은 안정권에 들어갔으며 뷰렌의 호감도가 81로 상승 하였습니다.]
‘너무 피곤해….’
과거의 생까지 합하면 거의 40이 넘어가는 그로서 아기로 생활하는 것은 너무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했다.
도미노를 쌓아 가는 느낌이랄까?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순간 모든 것이 초기화되어 버릴 도미노 말이다.
그나마다행인 점은 그 도미노가 쓰러지지 않게 잘 지탱해줄 두 엄마와 자신의 가이드 루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그는 점점 성장해 나아갔다. 유년기를 넘어 소년기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