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관객은 창문 밖 김민수 (정장 일러 추가)
* * *
데이트를 했던 전 날, 일요일.
"백태양 생도, 면허도 있었나요?"
"그럼요."
난 멋쩍게 웃으며 그녀가 차에 타길 기다렸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금자리에 전화를 걸어서 차 한 대만 대기 시켜달라고 한 게 갑자기 미안 해졌다.
원하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라는 말을 들었어도 아침부터 일하는 건 누구라도 싫을 테니까.
기사와 같이 대기 시키면 될까요?
아뇨 제가 몰 거라서요. 차 종류 상관없이 아무거나 괜찮으니까 굴러가는 것만 주세요. 하하
아침에 나눴던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백태양님이 운전을 직접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보금자리 쪽에선 내가 몰 거라는 걸 알자마자 통화를 조금 급하게 마무리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침이라서 바쁘구나 싶었으나 차를 봤을 때 그런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신차를 가져올 줄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당일 날 신차는 나오지 않는다.
그것도 전화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신차가 눈앞에 나타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보금자리는 그걸 충분하게 가능하게 할 '재력'이 존재했다.
그들은 어느 부자한테 가게 될 신차를 돈으로 가로챈 거였다.
나한테 이렇게까지 한다고? 백화점 한 번 구해줬다고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단 타긴 했는데 차 안에는 이 차가 내 명의라는 명세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대기업의 생각은 알다가도 알 수 없어서 그냥 새 차 생겼다는 마음가짐으로 여기까지 운전해 온 것이다.
'이렇게 좋은 차는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예전에 위튜브 같은데서 '명품 외제 차를 타야 여자를 꼬실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영상이 굉장히 많이 돌아다녔었다.
다 의미 없는 짓이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사람을 만날 때 차를 보고 만나지 않는다.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얼굴이지.'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나와 초호화 외제 차를 타고 있는 김민수.
사람들이 여기서 김민수를 선택할 확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차는 여자를 얻기 위한 목적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이동 수단일 뿐이다.
'근데 너무 좋은 차라 티가 너무 나네.'
실제로 류혜미도 차에 바로 타지 않고 차 주변을 한 바퀴 빙글 돈 뒤 조수석에 들어왔다.
아마 감탄이나 놀라움 같은 건 아닐 테고, 이럴 때엔 백이면 백.
"태양 생도, 너무 과소비한 거 아닌가요? 제가 알기론 이거 몇억은 하는 걸로 아는데..."
"...아 이런 게 확실하게 값을 한다고 해서요."
잔소리였다.
"아니 그래도... 아직 헌터도 안 됐는데 벌써 이런 건 너무..."
여기서 말을 굉장히 잘해야만 했다.
자칫 잘못하면 차 좋은 걸 뽑았다고 으스대는 철없는 생도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이유로 소비를 했다는 걸 노골적으로 어필하지 않으면서 납득을 시켜야만 했다.
'아니지.'
그럴 필요가 없구나.
너무 간단한 방법이 떠올랐다.
"이거 보금자리에서 선물해줬어요."
"아...그 백화점 때문에요?"
"그렇죠, 그럼 이제 차 이야기는 그만하고 가 볼까요?"
자동차 이야기하러 만난 것도 아니고.
난 그녀의 안전벨트를 매주며 엑셀을 밟았다.
목적지는 최근에 생긴 파라다이스필드였다.
원래 초기 계획은 보금자리몰에서 편하게 같이 쇼핑하는 거였다.
그러나 갑자기 목적지가 변경된 이유는 단 하나.
김민수 때문이었다.
'이 새끼 이거 여기 있네.'
최근 인스페이스에서 활발한 활동하고 있는 민수는 자기 사생활을 거의 다 공개했다.
침대 셀카는 기본이고 남친짤 생성, 오늘의 착장 올리기 등등 여러 가지를 했는데.
오늘 파라다이스필드에 온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파라다이스필드는 최근에 생긴 커다란 쇼핑몰로 작은 도시라도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곳이었다.
웬만한 명품부터 시작해 이런 브랜드도 있었네? 하는 것까지 모두 있는 장소.
여기에 김민수가 오겠다고 한 이유? 당연히 옷을 사기 위해서 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합동 교육 때 성녀와 붙어 있을 생각하며 옷을 준비하려는 것일 터.
난 이때부터 김민수와 미묘하게 동선을 겹치며 은근히 인기척을 내보냈다.
절대 나와 류혜미가 데이트하는 건 알아채지 못하게 하면서 내 뒷모습을 무조건적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면서 말이다.
우웅 우웅.
데이트하는 내내 류혜미의 핸드폰은 열심히 몸을 흔들며 메시지가 왔다는 걸 알렸다.
"또 민수예요?"
"으응... 대충 잔다고 답장하고... 핸드폰도 끈다고 하려고."
"그게 낫겠네요."
이때 난 데이트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고 직감했다.
모든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일까.
그 이후부턴 그냥 늘 애인이 있었을 때 하던 데이트 루틴을 그대로 복사했다.
밥 먹고 카페 가고 쉬고 돌아다니다가 비상 계단에 들어가서 간단하게 야외 노출 시키기와 펠라 받기.
팬티를 벗긴 뒤 영화를 보면서 옆자리에 앉아, 보지에 손 넣고 씹질하기.
저녁 먹고 또다시 산책 겸 걷다가 공원 깊숙한 나무 사이로 들어가서 얼굴에 정액 뿌리기 등등.
모든 걸 다 끝낸 후 류혜미를 보냈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열매를 수확하는 날이지.'
그렇게 여러 번 유사 섹스를 했지만 결국 끝까지 처녀막을 찢지 않은 이유?
바로 오늘을 위해서 라고 볼 수 있었다.
'멜라니가 확 뒤로 밀린 게 웃기네.'
정해 놓은 건 아니었지만 흐름상 원래 유민이 다음엔 당연히 멜라니의 처녀막을 찢는 거였다.
근데 갑자기 류혜미가 급부상을 하며 본의 아니게 멜라니한테 너무 소홀하게 되다니.
진짜 사람 일은 모르는구나 싶었다.
(멜라니)
>태양 씨 저랑 이야기 좀 해요.
> ㅡㅡ... 계속 이런 식이면 저 진짜 화낼 거예요.
> 합동 교육 전에 어떻게든 하루 시간 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 알겠죠.
>저 당신 걱정 안 해요!
>조금은 그래도 해 줄게요,
실제로 멜라니와 문자를 할 때 글자 그대로 감정이 읽혔다.
멜라니는 아예 야한쪽으로 나아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서 뒤로 밀리는 감이 확실히 있었다.
'가장 어려울 거로 생각했던 류혜미는 쉬워지고, 빨리 끝날 것 같은 멜라니가 어렵다니.'
역시 뭐든지 까 봐야 아는 거였다.
드르륵
"교관님 저 왔습니다."
연구실 문을 열었을 때.
혜미는 늘 그렇듯 민소매 셔츠에 정장 외투를 입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마스코트처럼 자리 잡은 차림.
"둘이 있을 땐 편하게 불러도 된다니까."
그 상태로 머리를 묶으면서 날 향해 방긋 웃는데 묘하게 색기가 느껴졌다.
발정기 짐승이 눈을 부릅 뜨고 바라보고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나랑 지금 생각이 똑같아 보이네.'
눈빛부터 시작해서 몸짓까지.
어제 데이트의 마무리를 오늘 매듭 짓겠다는 결의가 피부로 전해진다.
"그럴까?"
"응."
수진이 같은 경우엔 연하임을 어필해도 상관이 없었지만 혜미는 그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가 있었다.
괜히 나이 차가 나보이는 느낌을 주면 줄 수록 거리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거리감을 줄이는 덴 말을 편하게 하는 것만큼 좋은 수단이 없었다.
허물이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난 자연스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손가락을 어루어만졌다.
일부러 네 번째 손가락, 약지에 원을 그리듯 만지며 눈을 마주친다.
'여기서 키스.'
반지를 연상케 하는 손동작.
묘한 긴장감으로 경직된 분위기.
"태양...흡...읍...!"
본격적인 수확을 시작할 차례였다.
그리고 당연히 관객은.
창문 밖 김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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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미 누나한테도 신경을 써 줘야지.'
김민수는 연구실에 가기 전 탈의실을 들렸다.
아무래도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걸까.
요즘 묘하게 류혜미가 밀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복장을 바꾼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 단 몇 분만이라도 교복을 벗고 멋진 옷차림을 한 모습을 본다면.
분명 누나도 날 다시 볼 수밖에 없겠지.
민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원래라면 오늘은 연구실에 들릴 생각은 없었다.
밀당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류혜미를 정실로 정했다지만 완전히 확정 지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근데 어제... 비슷한 사람을 봤어서 참... 괜한 걱정이겠지만.'
요즘 백태양 스타일이 유행이어서 그런지 종종 길을 가다 보면 하얀색으로 염색한 남자들이 정말 많았다.
어제도 백태양 같은 남자가 류혜미 같은 여자와 함께 다니는 걸 봐서 마음이 많이 불안 해졌었다.
'후...인기인은 힘들구나.'
민수는 어제 산 옷들을 다 갈아입고서 마지막으로 전신거울로 상태를 한 번 싹 점검했다.
살짝 악동 느낌을 주기 위해서 큰맘 먹고 구입한 보라색 정장 풀 세트.
머리는 요즘 유행한다는 올백으로.
왁스를 발라본 적은 없지만 일단 손바닥에 가득 담은 뒤 한 번에 머리를 뒤로 넘겼다.
'어색한가.'
처음 봐서 그런 거겠지.
남자가 머리를 올리면 다 멋있다는 어느 연애 잡지 기사를 떠올리며 김민수는 탈의실 밖을 나왔다.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는 연구실로 향했다.
그녀를 깜짝 놀래켜 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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