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니여친쩔더라-90화 (90/325)

〈 90화 〉 불리한 상황에서도 섹스각을 세우는 게 프로다.

* * *

'키스 마크를 얼마나 진하게 남긴 거야.'

원래도 잘 안 사라지는 자국이긴 하지만 남들이 볼 때 눈에 확 들어올 정도일 줄이야.

멜라니도, 강태민도 심지어 김민수도 이 자국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었다.

기자들조차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했는데 이게 갑자기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세 명은 게이트에 더 집중해 있었고 기자들은...'

내가 사적인 질문은 안 받는다고 한 것 때문에?

그렇게까지 내 신변을 보호해 주다니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태양아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핑계를 찾는 거야? 나 진짜 화 안 났고 괜찮다니까? 더 말해야 해?"

보통 지구에서 이런 경우에 직면 했을 땐 굉장히 뻔뻔하게 대처를 하곤 했다.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냐부터 시작해서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등의 대사로 마무리를 맺곤 했다.

이렇게 대처 했을 때 웬만한 여자들은 전부 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먼저 하곤 했다.

'그때는 그냥 몇 마디 섞으면 다 끝났었는데.'

지금은 경우가 굉장히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유민이를 이 소설의 엔딩까지 데려가야 한다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건 막아야 했다.

"태양아 왜 이렇게 뜸을 들여 진짜 키스 마크라서 말을 못 하는 거야?"

"에이 이게 무슨 키스 마크야."

침묵을 하던 끝에 드디어 해답을 찾아냈다.

'진짜 키스 마크?'

유민이는 지금 키스 마크에 대한 확신을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아니면 키스 마크라는 걸 알아도 믿고 싶지 않다거나.'

진실을 외면하든 진의를 의심하든 어쨌든 아직 확정 도장이 나지 않은 지금, 이 상황.

이렇게 된다면 빠져나갈 구멍이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키스 마크가 아니라고? 근데 왜 아까 내 말에는 제대로 답 안 하다가 이제 해?"

"말할 틈이 없었어 그리고 그... 유민아 너 지금 스킬 사용 중이야."

"어? 어... 헐... 미안 몰랐어."

유민이의 타오르던 머리칼이 다시 잠잠해진다.

'일단 진정은 시켰고.'

아까까지 답을 제대로 하지 않았던 이유는 화가 너무 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분노가 몸을 침범한 이상 무슨 말을 해도 결과가 '미안해'로 도출 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조금 침착해지길 기다렸다가 대화를 시도한다면?

'지금처럼 승산이 생긴다.'

수많은 여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 느꼈던 건 여자가 감정적으로 대응할 땐 가만히 있는 게 최고라는 거다.

이성적으로 접근하려고 해봤자 감성적으로 불타는 여자를 무슨 수로 설득 시키겠는가?

우선 유민이의 분노를 다 받아 준 다음 분노가 조금 식을 때 대화를 시도하는 게 옳은 접근이었다.

여태까지 말을 아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도 본 적이 없어 가지고 이게 뭔지 생각하느냐고 시간이 오래 걸렸어."

"너도 본 적이 없다고?"

"내가 봤었으면 오늘 너 보고 싶어서 부를 리가 있겠어? 진짜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었어."

앞뒤가 안 맞을 수도 있다.

조금 전까지 했던 말과 지금부터 했던 말이 다 틀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키스 마크란 것에 대해서 몰랐고 난 네가 보고 싶어서 불렀다는 것만 강조하면 된다.'

남녀 관계에서 싸울 때 바로 사과를 하거나 저자세로 들어가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순간부터 갑을 관계가 형성 되고 주도권이 상실 되기 때문이다.

무조건 마지막 대사가 '보고 싶다'나 '사랑한다'로 끝나야 연애의 흐름을 꽉 잡고 있을 수 있다.

"지...진짜야?"

유민이는 아직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하긴 몇 분 전만 해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가 갑자기 말이 청산유수처럼 나오니 수상할 만도 하겠지.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내 목에 있는 게 키스 마크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엄, 나는 너 보고 싶어서 이렇게 연락 했는데. 갑자기 키스 마크 이야기 들으면 얼마나 놀라겠어. 너 막 머리도 활활 타고."

얼떨결 한 유민이의 표정과 상반 되게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진지하게 받아치는 게 아니라 '나 너 보고 싶어 죽겠는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라는 느낌으로 가야 한다.

"아...아니 나는..."

유민이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급변하자 적응하지 못하고 신발 앞코를 콕콕 바닥에 두드렸다.

보고 싶다는 말을 연이어서 들었기 때문일까 차마 더 이상 화낼 수는 없고, 웃을 수도 없는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네가 키스 마크 남기고 싶어서 그렇게 본 거 아냐?"

"...그건...맞아..."

배시시 웃으면서 내 품으로 쏙 들어오는 유민이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나 진짜 태양이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막 딴 년이랑 배 맞대고 뒹굴었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너무 나서 그랬어 미안..."

"그럴 수도 있지 뭘, 이렇게 잘 풀고 뽀뽀하면 되지."

쪽.

보고 싶다는 달콤한 말과 다정한 스킨쉽.

이 두 가지를 적절히 활용하며 유민이를 끌어안고 천천히 집 문을 닫았다.

'섹스하기 진짜 힘드네.'

불리한 상황에서도 섹스 각을 세우는 게 프로의 자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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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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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린헷에서 불굴용사김민수님의 계정 정지에 대한 알림입니다.]

안녕하세요 불굴용사김민수님.

최근 악플 신고가 일정 누적 수치를 넘었기 때문에 해당 계정 닉네임 '불굴용사김민수'가 영구 정지 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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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정지야!"

쾅!

민수는 애꿎은 키보드에 주먹을 내려치며 분을 삭혔다.

대체 왜 바른 말을 해도 이렇게 개인의 언론을 억압한단 말인가.

"아니 백태양 그놈이 뭐만 했다하면 기사가 나고! 나도 게이트 같이 들어갔는데 뭐 무슨 한 명만 띄워주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진짜..."

억울한 감이 많았다.

순애일지작가님이 자신을 위해서 만들어 준 던전에 멋대로 들어온 것도 그놈이었다.

그리고 들어왔으면 얌전히 클리어나 도와주다가 빠질 것이지 내 보상까지 모조리 독차지 가다니.

세상 사람들에게 백태양의 이런 사악한 면을 모두 알려주고 싶었다.

'근데 고소는 좀 무서운데...'

백태양의 뒤를 봐주고 있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보금자리 최영남부터 시작해서 헌터계의 MC 이민준 그리고 민심몰이를 하는 강태민 오프너까지.

하나하나가 다 쉽게 볼 수 없는 거물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원래 모델로 하기로 했던 카이반도 백태양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놈이 대체 뭐 잘 났다고..."

민수는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백태양이 찍힌 사진 중에 가장 못 나온 사진을 확대했다.

그 후 손거울을 꺼내 화면과 비교를 시작하며 나름 객관적인 평가를 매기기 시작했다.

"나랑 진짜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솔직히 나도 평균 이상의 외모일 텐데 왜 그놈만 그렇게 빨아주는 거지?

"말을 멋지게 해서 그런가..."

민수는 백태양 인터뷰 영상을 재생시키며 그의 말투를 따라 했다.

"...전 증명 했으니까요..."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고 울리는 것처럼 말해봤지만 놈처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여러 방면에서 세밀하게 살펴본다면 자기 목소리가 더 좋은 측면도 있었다.

너무 저렇게 묵직하고 동굴처럼 울리는 목소리를 사람들이 다 좋아할 리는 없으니까.

"나도 그리고 이사 할 생각이었는데..."

왜 나는 기사조차 나지 않는 거지?

너무나도 이상했다.

'용사라는 이미지 때문에 나한테 접근하기 너무 부담스러운가?'

유민이와 연애를 하던 첫날부터 알아봤던 알콩달콩 동거집에 대한 기사가 하나도 나지 않았다.

혹시 다들 몰라서 그런가 싶어서 일부러 방송국 근처에 있는 부동산까지 찾아갔었는데.

사진기 들고 달려드는 기자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 있는지금.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

"메인 스킬도 강화 됐고... 돈키호테의 허언도 제대로 활용하면 대단할 테고... 아니 진짜 기회만... 백태양처럼 얻어걸리는 거 말고 제대로 된 기회만 있었다면..."

민수의 뇌 속에선 이미 고전명작[춘향전] 게이트를 알게 된 계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민수의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백태양이 얻은 이득과 관심 그리고 멜라니에 관한 것뿐이었다.

"갑자기 왜 답장을 안 하지."

(멜라니)

>머해?ㅋㅋ

>나야 나 민수 ㅋㅋ 그냥 ㅋㅋ 머하나 해서 연락했3ㅋㅋㅋ

>그래도 우리가 그 함께 해온 시간도 있고 그런데 갑자기 연락 툭 끊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너도 알겠지만 이제 인연이라는 게 ㅋㅋ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으니까 조금 주제넘을 지도 모르겠지만 조언을 하자면

>이게 모델일까지 제의도 했고 결과적으로 백태양? 한테 무기가 갔지만 어느 정도 나도 염두해 두고 만들어 놨다고 생각도 좀 들고 그래서 연락한 건데[1]

>너도 알다시피 백태양보다 내가 더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고 있지? [1]

분명 두 번 정도까지는 답장이 잘 왔던 것 같은데.

그 뒤로는 읽지 않았다는 표시인 [1]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바쁜가?'

이유조차 짐작하지 못하는 민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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