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남친은 모르는 표정을 짓는 동급생, 소유민(2)
* * *
생선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가장 큰 차이가 뭘까?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겠지만 난 생선 가시를 잘 바르냐 못 바르냐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김민수는 생선 가시를 발라 줄 수 없다는 거고 난 된다는 거다.
"갈치는 뼈가 많아서 맛은 있는데 먹기가 힘든 것 같아."
"내가 발라줄게 유민아."
"어, 어? 안 그래도 되는데..."
"아냐, 어차피 나 바르는 김에 같이 하면 좋잖아."
빅토리 식당은 2인분 이상 주문할 시 음식이 같이 나오고 1인분을 시킬 때보다 양을 더 많이 준다.
가장 중요한 건 한 접시에 나온다는 거였다.
김민수는 생선을 질색 했기 때문에 다른 층에서 음식을 따로 주문했다.
가지고 올라오는 동안은 유민이와 나 단둘 뿐!
개수작 부리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 아카데미에 대해서 모르는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돼,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이것까지 예상했다.
소유민은 털털하고 활발한 흔히 말하는 인싸 계열의 여자였다.
그런 여자가 생선을 발라주는 상황에서 침묵을 유지한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방과 후 안내까지 부탁 했는데, 이런 식의 대화가 나올 걸 예상하는 건 너무 쉬웠다.
"아... 있는데... 이게 너무 사적인 것 같아서... 물어봐도 되나 고민하고 있었어."
"뭔데?"
잠깐 망설이는 표정을 지으며 유민이 밥 위에 갈치조림을 올려 준다.
남들이 보면 부담스럽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백태양의 얼굴이 그 모든 걸 이해시킨다.
잘생기고 편했다.
"혹시 아카데미에서도 연애 같은 거 해?"
"어? 어... 하.. 할걸?"
눈에 띄게 놀라자 오히려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이 정도는 당연하게 받을 줄 알았는데, 보기보다 숫기가 많이 없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글쎄? 태양이 너는? 넌 연애 많이 해봤을 것 같은데..."
눈동자가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아가는 게 누가 봐도 당황한 모양새였다.
힐끗 옆을 살피자 김민수가 다가오는 게 보인다. 타이밍이 나쁘지 않았다.
"나? 나는 연애 상관 없긴 한데... 솔직히 비밀 연애만 아니면 다 괜찮지..."
앞으로 김민수가 식탁에 앉기 전까지 여덟 걸음.
불신의 씨앗을 심어두기엔 지금이 딱이다.
"비밀 연애가 왜?!"
갑자기 유민의 목소리가 확 올라간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무슨 갑자기 소리를 질러'
시선이 몰리고 화들짝 놀란 김민수가 잽싸게 유민의 옆에 앉는다.
"무슨 일이야?"
김민수의 표정만 봐서는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소리 지른 건 니 여친인데 왜 나를...'
마침 유민이가 소리도 질렀겠다, 대화를 끼어들 구실이 생겨서 좋은지 김민수는 냅다 대화에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어?"
"아, 비밀 연애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어."
"그, 그래?"
비밀 연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얘도 칼 같이 버퍼링이 걸린다.
그 틈에 다시 유민의 밥 위에 갈치 조림을 얹어 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솔직히 남자가... 비밀 연애 제안 하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잖아. 안 그러냐 민수야?"
"응? 뭐,뭔데? 그냥 아껴주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이런 대화 주제는 생각도 못 했는 지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비슷한 점이 많아서 사귀나 싶었다.
분명 5분 전만 해도 날카롭게 노려보던 눈빛은 다 사라지고, 처량한 염소 눈동자가 나타난다.
자기 말에 동의를 해 달라는 듯 은근한 시선을 보내는 데…
가볍게 무시했다.
"쪽팔려서 그런 거잖아, 애인 얼굴이나 그런 게... 아니면 뭐 바람 같은 거 필려고?"
애초에 비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건 빈틈이 굉장히 많다는 거다.
뭐가 부족하지 않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연애를 금지 하는 게 아니라면 왜 숨긴단 말인가?
"너희들은 선천적 각성자라 일반 학교에 안 다녀봐서 잘 모르겠지만…"
유민과 김민수는 내 말이 곧 법이라는 얼굴로 경청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민이는 귀는 나에게 고정 됐고 눈은 민수를 보고 있었다.
남자끼리 더 편하다고 말하면서 남자의 우정을 강조했던 민수다.
이미 내 입이 열린 순간부터 '남자들은 어느 정도는 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낙인이 찍힌 거였다.
"…원래 다 그런 의미로 비밀 연애 할걸? 왜 사귀는데 그걸 비밀로 숨겨, 이상하잖아. 안 그래?"
"아, 아니야!"
이번에는 김민수의 데시벨이 올라간다.
진짜 무슨 대본 써서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짓이 똑같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이래서 나오나 싶다.
근데 소리는 그렇다 해도 갑자기 왜 벌떡 일어나는 건데?
밥 먹다가 쫓겨나는 거 아냐?
'이래서 동정 주인공들은 진짜... '진짜'네...'
지도 쪽팔린걸 아는 지 황급히 앉은 다음에 민수는 열심히 변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를 보면서 말하다가 나중엔 아예 시선이 유민이한테 고정돼 있었다.
"그, 그냥 갑자기 다 밝히면... 부...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닐까?"
"왜 부끄러워 사랑하는 사이끼리, 그냥 쪽팔린 거지... 어디 내놓기 조금... 딸리는?"
물론 나는 그래 본 적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통 애들이 다 그렇더라고 진짜 쓰레기 같지 않냐?
마지막 말을 꼭 붙여야 했다.
'다른 놈들은 그런데 나는 아니다' 라는 부분을 강력하게 어필해야 호감이 팍팍 오른다.
겉보기만 불량스럽지 사실은 여자한테 되게 잘하는 담백한 남자라는 인상을 줘야 한다.
"나...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어, 유, 유민아 진짜야."
비밀 연애 한다고 먼저 말해 놓고 티는 누구보다 내고 있었다.
아무리 멍청한 놈이어도 이쯤 되면 누가 누구랑 사귀는 지 다 알 텐데.
'얘는 왜 굳이 비밀 연애를 한다는 걸까'
사실 수업 시간에 잠깐 봤는데 김민수가 유민이를 쳐다볼 때 눈에서 꿀이 그냥 뚝뚝 떨어졌다.
'그니까 아마... 나중에 우리 사귀어! 이러고 밝히면 나머지 애들은 끄덕끄덕거리면서 이제서야 말하는군 하는... 전개겠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나만... 나만 몰랐던 거야? 이러면서 니네 언제부터 사귀었는데! 하고 난동 피우는 놈도 있을 테고... 뻔할 뻔 자였다.
'이제 절대로 그렇게 될 일 없다, 민수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민수를 빤히 바라보는 유민이와 필사적으로 비밀 연애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하는 김민수.
여기서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지금은 비밀 연애의 장단점을 말해야 될 게 아니라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는 지를 말해야 될 때였다.
정말로 연애 경험 없는 티가 그대로 난다.
그런 걸 못하면 차라리 입술 박치기라도 하면서 주제를 확 돌려야 되는데, 비밀 연애의 의도만 주구장창 설명하고 있으니……
'유민이가 아깝긴 하네...'
동양인한테는 보기 드문 골반 사이즈와 허벅지의 두께가 저런 놈한테 쓰여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당장 교복 바지만 봐도 난 좌수납 흑구렁이였고 저놈은 가운데 앵무새였다.
앵무새와 흑구렁이의 싸움, 누가 이길 지는 이미 정해진 거 아닌가?
"뭘 그렇게 필사적으로 해명해 민수야, 여자들은 잘 모르지... 남자끼리의 그런 게 있는 거잖아 그치? 밥이나 얼른 먹자"
급한 불은 절대로 끄면 안 된다.
대충 소화시키는 척하면서 잔불을 남겨야 나중에 써먹을 때 용이하다.
식당에서 사랑싸움을 하는 건 둘도 좀 그랬는지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밥을 먹는다.
사실 대화라고 하기엔 뭐 했다.
일방적으로 말한 건 민수였고 유민이는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으니까.
솔직히 이런 걸로 불화를 만들었다고 뭐가 바뀌는 건 없었다.
연애 초기에 있는 흔한 사랑싸움이고 화해하게 된다면 더 진한 연결 고리가 생기는 경우가 허다 했다.
원래대로의 이야기 흐름이었다면 비밀 연애에서 공개 연애로 밝히면서 민수가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지도 모른다.
이제 그럴 일은 없었다.
김민수에게 남은 건 개같이 멸망하는 길, 단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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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모두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 수업이 끝났다고 바로 해이해지지 말고 항상 수련에 정진하도록, 이상."
""감사합니다.""
마침내 모든 수업이 끝났다.
빅토리 아카데미는 고등학교 수업처럼 굴러 갔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8교시가 기본이라는 거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억지로 듣는 거 진짜 말도 안 되지.'
초등학생이 물리2를 갑자기 배우는 느낌이었다.
'되겠냐고 그게.'
수업 시간엔 잠을 우선으로 했고 쉬는 시간엔 민수와 유민이가 오해를 풀지 못하게 막았다.
김민수 옆에 딱 달라붙어서 녀석이 놀던 그룹과 친해지고, 눈만 깜빡였다 하면 유민이 옆으로 가려는 놈을 가로 막았다.
똥 마려운 개 마냥 빨리 화해 하고 싶어서 낑낑 거리는 걸 막느라 굉장히 힘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견제 한 결과는?
"태양아, 가자."
훌륭했다.
유민이는 점심시간 이후부터 단 한 번도 김민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싸늘한 얼굴로, 누가 봐도 화가 많이 난 모습이다.
오해는 빨리 푸는 게 중요했다.
근데 같은 반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고 친구들이랑 놀기만 하는 남자 친구?
그 모습을 보면서 오해가 풀릴 수 있을까?
'다 맞는 말이니까 해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자고로 관계를 망치는 건 상상력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란히 유민이의 옆에 섰다.
원래 같이 하교를 약속 했는지 교실 뒷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민수가 보인다.
'억지로 껴서 셋이 다닐 생각인가?'
그런 얕은 수가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점심시간에 했던 이야기, 설명해 줄까? 둘이서만.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깝게 입술을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유민이한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외간 남자와 몸을 가깝게 했다는 게 아니다.
비밀 연애에 대한 남자들끼리의 '무언가'를 듣는 거였다.
남자 친구가 기다리는 거? 처량하게 볼 수 있었다.
애처롭게 여기면서 화해 하고 싶지만 마음은 이미 다른 데 있을테지.
'왜 비밀 연애하자고 했을까?'
이게 미치도록 궁금할 거다.
예상대로 유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만 있는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김민수 따라올 생각하지 말고 먼저 가."
단호하게 말하는 유민의 말에 몰래 뒤따라 가려고 했던 김민수의 발이 멈춘다.
순식간에 냉동인간처럼 굳어버린 모습이 아주 잘 어울렸다.
'민수야'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김민수의 표정은 정말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사실 이제는 참을 필요가 없었다.
유민이는 더 이상 내 표정을 보지 못한다.
어서 빨리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앞만 보고 무작정 걷고 있었다.
"내일 보자, 민수야"
민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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