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살면서 저녁 뫫시를 이토록 기다린 날이 있었던가.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쪼그려 앉아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았다.
오후 5시 38분.
초침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꿓시간 후 쯤이면 난...
또다시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나... 진짜로... 당하는 거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 었다.
이불위에서 벌떡 일어난나는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바닥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머리카락을 쓸었고 걸레로 바닥도 말끔하게
닦았다.
빨랫감은 깔끔하게 모아서 통 안에 정리했으며 냄새도 신경 쓰는 편이 좋
을 것 같아서 탈취제를 몇 번이나 뿌렸다.
“하우우...”
어쩌지?어쩌면좋지?
가만히 앉아서 상상을 할수록 더 진정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 무슨 짓을 당하게 되는 걸까.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속 히로인들의 첫경험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에 휘
리릭 스쳐지 나간다.
최 재혁의 그 서늘한 눈빛이 떠오른 나는 몸을 부르르 떨 었다.
걔...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아니.그런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해주지...!
처음부터 그런 무례한 태도로 나를 대해줬다면 다는 단언컨대 이미 가랑
이를 벌리고도 남았을 것이 었다.
그 영혼 없는 눈동자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이진성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
사해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날수 있을까.
생에 단 한번 밖에 없는 파과 이벤트를 위해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준
비했다.
선반 위에 있는 먼지를 말끔하게 쓸어냈으며 화장실 청소까지 땀을 삐질
삐질 흘려가며 해두었다.
“…이제 씻자.”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었다면 그 다음으로 깨끗이 해야 할 것은 내 몸이 었
다.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따듯한 물로 몸을 적 셨다.
-솨아아아
체향.
한겨울 작가님은 언제나히로인들의 몸에서 나는 향기에 대해 디테일하
게 묘사하는 편이었다.
내 최애 히로인이었던 남가연 같은 경우에는풋사과 같이 청량한향이 난
다는 표현이 있었고, 마지막 히로인인 나유진의 경우에는 달달한 복숭아 향
이 난다는 묘사가 되 어 있었다.
물론 당연히 독자들의 상상을 돕기 위함 장치 인 것은 맞았지 만 사실 읽는
이들이 흥분을 느끼는 것은 그 파트가 아니 었다.
그녀들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땀냄새와 체액으로 인해 암컷의 향기로
바뀌 는 그 과정 이 진짜 일품이 었다.
바디워시 통을 꾸욱꾸욱 누르자 투명한 색의 질척한 액체가 내 손바닥 위
에 담겼다.
이 제 몇 시 간 후면 바디 워 시 가 아니 라 다른 끈적하고도 질척 한 액 체 가...
“...미처따....미쳐쏘.”
-치이이익
뜨거운물에서 수증기가올라오는것이 아니라 내 야한상상 탓에 머리에
서 모락모락 김이 피 어오르는 것 같았다.
바디워시를 두 손으로 비비자 새하얀 거품이 일었다.
나는 최대한 이 장미향이 몸 전체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이 렇게 해두고 향수도 뿌려 야지.
화장은...
화장은 어떡해야하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 고 있다고 생 각했지 만 화장이 라는 주제 에
봉착하자 나는 급격하게 뇌사가 온 것이 느껴졌다.
사실 가장 예쁘고 꼴리는 모습으로 기 다리고 있는 것이 베 스트라는 생 각
이 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풀메를 하고 있기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
았다.
정말 마지못해, 내가 그의 말에 굴복 당했다는 그 느낌이 중요한 거지 내
가 가랑이를 벌리고 애액을 질질 흘리며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걸레나 다름
이 없었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대 앞에 앉은 나는 한참을 그 자세 그대로 고민했다.
“..최대한 연하게 하자.”
언제나 느끼는 거 였지 만 꾸민 듯 안 꾸민 듯이 라는 말이 가장 어려운 것 같
았다.
:k * *
“짖으라고 이 암컷아...?”
아씨... 이 느낌 아닌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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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
출발까지 한 시간 정도를 남겨둔 나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속 대사들
을 쭉 정리해서 A4에 인쇄해 두었다.
배 우가 대본 리 딩 이 라도 하듯 거울 앞에 선 나는 최 대 한 소설 속 이 진성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고개는 이렇게 살짝 비스듬히 위로 들어 올리고, 눈은 이렇게 세상 미개한T
생명체를 보듯이.
하다 보니까 표정은 그럴싸한 것 같은데 대사가문제였다.
“짖으라고! 이 암캐년아!”
...진짜 옆방에 들릴까 무섭네.
괜히 벽 쪽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나였다.
“하아...”
잠시 휴식을 위해 침대에 걸터 앉은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맞냐.”
솔직히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뫫시에 찾아가지 말까 생각도 들기는 했다.
미친짓이었다.
어떻게 봐도 미친 짓인데 나연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
각은 이 미친 짓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야... 그래도가야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내가 오늘 나연이네를 찾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
히 나연이와 맺어질 수 없다는 거였다.
[소신 있는 사람]
나연이가내게 알려준자신의 이상형.
내가여기서 뜻을 꺾는다면 나는 그녀에게 벌레 취급을 당할지도몰랐다.
그냥 찌질이 정도가 아니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줏대 없는 싸이코 머저
리.
믿자.
나를 믿는다는 소리 가 아니 었다.
내 가 믿는 것은 나연이 의 다이 어 리 , 그리고 [그녀를 감금했습니 다]
나는 그저 성서가 점지해준 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지도는 이미 내 손 안에 있었다.
그 길을 걸을지 걷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만이 나의 몫.
20살.
최재혁.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
복장.
나연이네 가는데 뭘 입고 가야하는지는생각보다 어려운문제였다.
히로인들의 외형이나 외관에 관한묘사는 [그녀를 감금했습니다]에 자주
등장하는 편이었으나 주인공인 이진성에 관한 묘사는 잘 등장하지 않았다.
당연히 남성향 야설이니 남자의 묘사보다는 여자 캐릭터들의 묘사가 훨
씬 중요하겠지만 지금만큼은 한겨울 작가가 좀 미워 지려고 했다.
선생님. 주인공 묘사도 좀 해주시지 그랬어요.
나 진짜뭐 입고 가야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내 이런 원망이 작가에게 절대 닿을 리 없었지만 탓할 곳이 없었던 나는
애꿎은 작가를 자꾸 찾게 되 었다.
결국 옷장에 있는 옷을 모조리 다 끄집 어 낸 내 가 고른 것은...
검정색 티셔츠와낮에 입었던 검은슬랙스.
애시당초 밖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취방에 방문하는 건데 화려하게 입
고 나가는 것도 웃기다는 것이 내 판단이 었다.
남색 볼캡을 쓴 나는 거울을 확인해 보았다.
“…범죄자 같아.”
좋게 말하면 편한 복장이었지만 내가무슨 저지를지 알고 있어서 그랬던
갈까.
나는뭔가내 복장이 뫫시 뉴스에 수갑을 찬채 연행되는범죄자들의 착장
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에 지갑과 휴대폰을 챙긴 나는 마지막으로 오늘의 아이템을 뒷주
머니에 욱여넣었다.
편의점에서 구매한 걔중에서 가장비싼 콘돔이었다.
“후... 할수있다. 할수있다. 최재혁.”
그렇게 나는 현관을 나서서 나연이네 빌라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연이네 집은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
혼자 살기에는 부족함 없는 깔끔한 신축 빌라였다.
1층 입구에 들어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쿵쿵쿵쿵
올라갈 때마다 울리는 발소리 가 내 심 장 소리를 대 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 개떨려.
마지 막으로 휴대 폰으로 시 간을 확인해 보았다.
[20:58]
지금으로부터 씁분 후.
내 운명은 결정될 것이 었다.
나연이네 집 현관문이 열려있다면 나는 그 안으로 돌격할 것이었으며, 닫
혀 있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왔던 길을 되 돌아가리 라.
저 녁 뫫시 가 되 자마자 나는 마저 반층을 올라가 나연이 네 집 이 위 치한 씁층
에 도달했다.
가장 안쪽에 자리한 나연이의 방.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207]
문 앞에 도달하자마자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삐쭉 튀 어나온 잠금장치 .
외 부인의 방문을 허 가한다는 신호.
동공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 금 여 기 서 손잡이 를 잡아당겨 안으로 들어 간다는 건 …
“후우...
99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내 가 문고리를 붙잡았다.
준비한 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어.
열심히 준비했잖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준비한 노력의 결실을 선보일 때가 온 것 뿐이었다.
-끼이이 익
문을 열고 방 안쪽으로 들어선 나는 바로 나연이 에 게 달려 가기보다는 담
담하게 잠금장치를 잠갔다.
신발을 벗은 내가 화장실과 부엌이 자리한 통로를 지나친다.
“…진짜 왔네?
알싸하게 풍겨오는 꽃향기.
참으로도 여성스러운 향기 였다.
내 방에서는 절대 날수 없을 것 같은.
침대 위에 걸터앉은 나연이가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놀란 것 같으면서도 경멸이 담겨 있는 눈빛.
...대답은정해져 있었다.
“난 그런 걸로 농담 안해.”
천천히 나연이 앞으로 다가간다.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따먹힐 준비는 됐니. 좆집년아.”
-히끅!
이 번에도 대 답 대 신 돌아온 것은 딸꾹질 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