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눈꽃은 검게 물든다.
귓속말이 라고는 했지 만 너무나도 선명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이 었다.
지금 뭐라고 했냐며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인간
의 언어가 아니었다.
-히끅!
깜짝 놀라버린 탓에 올라온 딸꾹질.
긴장해버린 몸이 딸꾹질 리듬에 맞춰 움찔 떨렸다.
고개를 들어 최재혁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오늘 수업 시작할 때부터 느낀 거기는 했지만 오늘의 최재혁은 어
딘가 달랐다.
비단옷이나 헤어스타일이 달라졌다는 것이 아니었다.
재질.
뭔 가 사람의 근간을 이 루는 재 질 자체 가 다르게 느껴 진 다고 해 야 하나.
나는 진지하게 지금 내 앞에 서있는 그가 며칠 전에 내가 찐따 같다고 무시
했던 걔 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 히끅! 방금 뭐라고...”
행 여 내 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돌
아오는 것은 무척 이 나 싸늘한 눈빛.
“…난 두 번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런 말을 할애가 아닌데?
적어도 내가 아는 최재혁은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애가 아니었다.
혼란스러움이 한층 더 가중된 나는 내가혹시 그에게 무언가큰 잘못을 저
질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소 얼빵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이고 있자 최재혁은 다시 한 번 내 귀 쪽
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댔다.
“일어나라고. 이암퇘지년아.”
그의 말에 나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켰다.
아니. 근데 만에 하나 내 가 쟤 한테 잘못을 저 질렀다고 한들 내 가 암퇘 지
소리를 들을 이유가 있기는 한가?
일차원적인 비난이 목적이라면 일반적인 욕설을 사용하는 게 보통 아닌가
싶은데...
“ 따라와.”
그 말을 끝으로 최재혁은 등을 돌려 강의실을 벗어났고 나는 그런 그의 뒤
를 쫓아갔다.
그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인적이 몹시 드문 비상계단.
그것도 지하주차장 최하층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
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할말이라는게 뭔데?”
딸꾹질도 멈췄고 어느 정도 평정심도 되찾은 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그에
게 물었다.
목소리가 동굴 안인 것처럼 울려퍼진다.
“사과해.”
“뭐를.
역시 내가뭔가 잘못한것이 있어서 이렇게 구는 건가…?
“암컷 개보지 주제에 까불어댄 거.”
최재혁의 목소리에 나는 내가혹시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암컷...? 개보지…?
이 런 말들을 현실에서 입 밖으로 말하는 남자애 가 있다고?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같은 마니악한 야설에서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그 마저도 조교할 때나쓰는 거지, 이런 공적인 장소에서는 거의 나오는 경
우가 없는데...
“지금 나한테 암컷 개보지 라한 거니?”
뭔 가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이상한 느낌 이 었다.
.야해.
단어가 야했다.
이렇게 야한 말을 소리 내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난 영문 모를 배덕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 너개씹변태년이잖아.”
아무런 근거도 없이 천박한 말들로 나를 매도하는 최재혁.
찬찬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결코 감정 에 휩 쓸려 화를 뿜어 내 는 느낌은 아니 었다.
오히려 추운 겨울, 창가에 내려앉은 서리와도 같은 서늘함이 깃들어 있는
표정이었다.
-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 기 시 작한다.
“내가틀린 말했어? 한나연?”
나쁜 말은 모조리 자기 가 해 놓고 오히 려 나에 게 따지 려 는 듯한 내 로남불
그자체인 태도.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진실을 내뱉어버리고 말했다.
a
...아니오.”
그의 얼굴에 일그러진 미소가 지어진다.
전에 보여줬던 수줍고 해맑은 웃음 따위 가 아니었다.
조롱과 멸시 가 섞 인, 광대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초리.
심장이 보다 떠 빠르게 뛰 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대답할줄알았어.”
최재혁의 오른팔이 서서히 나를향해 올라온다.
어깨를 넘어 내 머리 위에 손을 얹는그.
“그렇게 비싼 척 하고 있었어도 사실은 너.”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그의 손이 내 머리채를 꽈악 붙잡았다.
그와동시에 커다래지는 내 두 눈동자.
“엉 망으로 박히고 싶은 거 잖아.”
...어떡해.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내가 내 얼굴을 확인하지 못하는것이 무척이나불안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나는 지금...
“..맞아요.”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점 이 었다.
난데없는최재혁의 매도 세례에 나는 내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매 력이 라고는 한 번도 느낄 수 없었던 애 였지 만 지금 이 순간, 최재혁은 누
구보다도 멋진 남성처럼 느껴졌다.
내 대답을들은 그가 머리끄댕이를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우리 두 사람의 거리.
“…오늘 밤 뫫시. 너희 집으로 찾아갈 거야.”
예고 살인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무엇을 하러 오냐고 물어보지 않았지 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의 방문 목적
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 그렇잖아...
저런 말을 해놓고 나를 찾아온다는 건...
“문 열어놔라.”
그 말을 끝으로 내 머리를 놓아준 최재혁은 그대로 나를 스쳐지나가 지하
주차장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 에 우두커 니 서서 그가 사라진 비 상구문만을 바라보
았다.
...손을 뻗어 만져본 내 뺨은뜨겁기 이루 말할수 없었다.
…
“허억... 허 억...”
지하주차장을 그대로 전력 질주해 가로질러 지상으로 나온 나는 가쁜 숨
을몰아쉬었다.
...저질렀다.
...저질러 버렸다.
내가 해놓은 짓이 었음에도 나는 지금도 조금 전 장면이 꿈만 같이 느껴졌
다.
“내가나연이의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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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이 생기게 된다면 슬쩍 손을 붙잡는 것을 꿈꿔왔던 나는 좋
아하는 여 자애의 머 리 채를 함부로 붙잡고 이 리 저 리 흔들었다.
행동만 문제 였겠는가.
암퇘 지 니 개보지 니 말한 내 용들도 남들이 들으면 아주 까무러 칠만한 말
만 골라서 하고 온 상태.
나는 진짜로 거울 앞에서 수도 없이 연습했던 말들을 그녀 앞에서 내뱉는
데 성공했다.
솔직히 강의실 안에서 그녀가 바로 강렬한 거부 반응을 보였더 라면 잘못
말한 것처 럼 꾸며대고자 했지 만 나연 이는...
[...맞아요.]
엉망으로 박히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녀는 맞다고 답했
다.
그냥 맞다고 한 것도 아니 었다.
동갑임 에 도 불구하고 얼굴을 붉히 며 존댓말로 대 답한 나연 이.
그녀의 대답은 다이 어리 속 내용이 사실임을 증명해주는 존재 그 자체였
다.
근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야한 말로 매도만 해놓고 튀는 것도 웃겨서 자취방으로 찾아가겠다
고 으름장을 놓기는 했는데...
아까보다도 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아니. 나 그러면 이따 거 기 가서 뭘 해 야 하지 좥
아니지. 아니지.
문을 열어두라고 말은 해놨는데 문을 잠가놨을 수도 있잖아.
사실 잠가놨을 때 취 할 수 있는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그 길로 뒤 돌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오면 그만이
었다.
응〜 나연이는 별로 나랑 하고 싶지 않구나〜
그게 당연하잖아〜 대 뜸 암퇘 지 년아〜 하고 박는 남자애 랑 누가 하고 싶겠
어 〜 고소나 안 박으면 다행 이 지 〜
이런 쫄보 마인드로 돌아오면 괜찮을 것 같은데 만약에 문이 열려 있다고
한다면...
허어...
나연이의 방 안쪽이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그 새하얀 이불 위 에 서 나랑 나연이 가...?
귀 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에 나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 거
렸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일단 다짜고짜 학교 앞 편의점에 들어간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콘
돔매대 앞에 섰다.
뭐야이거...
뭐가 이렇게 많아.
성교육 시간에 야 이런 게 있다 이렇게 껴 라라고 설명은 들었지만 무슨 종
류가 있고 뭐 가 좋은 지에 대해서는 알려줄 리 가 없었다.
그래 도 처음이 니 까 가장 비 싼 거를 써 야하지 않나 싶어서 손에 쥐 기는 했
는데...
...이진성은콘돔 안쓰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녀를 감금했습니다]라는 소설에 콘돔이 등장하기는 하
나?
안에 싸고. 엉덩이에 싸고. 얼굴에 싸고.
이진성에게 있어 사정은 여성들을 지배했다는 흔적을 위해 남기는 수단.
그가 콘돔 같은 고무를 이용할 리가 없었다.
나는 또다시 고증이 라는 벽 앞에서 고뇌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콘돔도 안 사가?
그러다가애기 생기면 어떡하려고...?
휴학을 하고 안 하고 레 벨이 아닌 문제로 넘 어갈 것 같은데...?
무려 인생의 방향이 비틀리는 일이었다.
맞아. 역시 그래도 콘돔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콘돔 상자를 쥐 었다 꽂아 놨다 쥐 었다 꽂아 놨다를 서 너번을 반복한 나는
결국 사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혹시 안쓰게 되더라도 사는 편이 훨씬 더 내 마음에 평화를줄 것 같아
서였다.
물건을 내밀자 내 얼굴을 확인하는 알바생 .
나 같아도 콘돔을 대낮부터 쪼물딱 거리고 있으면 상판을 확인하고 싶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제 완료되셨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나는 주머니에 콘돔을 욱여넣고는 집을 향해 또다시 달
려 나갔다.
현재 시각은 2시 30분.
약속된 시간까지 남은 것은 6시간 남짓.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노벨 월드 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녀를 감금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해답을 찾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