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의 일러레님!-90화 (90/276)

땘 90화 > #90. 뒷풀이

아마 이 건 굳이 건축학과가 아니 더 라도 모두 같으리 라 생 각하지 만, 내 가

발표하기 직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들이 열심히 공들여 준비한 한 학기의 프로젝트 설명은 지금의 나에게

는 그저 소음에 불과했다.

다섯 번째인 내 순서가 오기 전까지 나는 인쇄해온 대본을 계속 입으로

중얼거리며 외우기에 급급했다.

“이번 재생 프로젝트는 기존에 제안되 었던 재생의 개념을 조금은 다른 방

식으로 해석해...”

이거라도 안하면 버벅거릴 것 같아서 나는 열심히 원고를 훑고 또 훑었다.

근데 솔직히 말을 얼마나 수려하게 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자.다음. 이민호 씨?”

장발의 교수님이 명단을 넘기며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여깄습니다.”

“그래요. 시작하도록 하세요.”

“이번 제 프로젝트의 컨셉은...”

준비 한 원고 그대로 나는 차분하게 내 프로젝 트가 어 떻게 구상되 었고 발

전되 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교수진들.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은 나의 모형.

심지어 한교수는 의자에서 일어나내 모형 앞에 쪼그려 앉아서 고개를 이

리저리 돌려가며 모형을 구석구석 스캔하고 있었다.

나머지 교수님들도 내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등.

판넬을 한 번 슥 봤다가 휴대폰을 보시는 교수님도 계 셨다.

“이게 제 최종렌더샷이고.발표마치도록하겠습니다.”

칼같이 꿓분 안에 발표를 마친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어.그래요. 잘들었어요. 민호 학생. 근데 이게 평면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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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지금부터는 두드려 맞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두드려 맞는 것에 억울해하는 사람들은 얼마 없을 것이 었다.

그냥 원래 그런 수업이 었다. 건축 설계는.

절대로 ‘참 잘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세요.’ 이런 말로 끝날 수가

없는 수업이었다.

실제로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교수들의 일은 학생들의 결과물에서 아쉬

운 점을 찾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조언해 주는 것이었다.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땠을 것 같냐.

기본적인 내용은 저거였지만 저걸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 과격함의 차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

“아...재미가 없네.”

팔짱을 낀 한 교수님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작업물을 바라보았다.

저 멘트. 저거. 저 씨발 재미가 없다는 말. 저거.

저게 진짜 들을 수 있는 최 악의 멘트였다.

저 말을 들으면 진짜 뭐 라고 반박할 여지조차 주어 지 지 않았다.

소설이랑크게 다를 것이 없는 거지.

독자가 [아... 노잼이네...] 하면 진짜 나도 말문을 잃어버리고는 한다.

차라리 개연성을 따지거나 이런 데에서 이런 씬이 있었으면 좋겠다거나

그렇게 말을 해주면 참고하고 반박의 댓글이 라도 달지 .

노잼 이 라고 말하면 할 말도 없고 기 운도 그냥 쭈욱 빠져버 리 기 일수였다.

그걸 붙잡아놓고 이 게 왜 재 미 없냐고 따지 는 것도 웃기는 노릇이 었다.

그래도 저 싸가지 없게 말하는 한 사람을 제외 하고는 나머 지는 젠틀하게

이야기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순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내 발표가 끝나자 나는 바로 나은이를 찾아갔다.

복도 저 끝에 모형을 전시해둔 나은이는 나와 마찬가지로 대본을 보고 있

는듯했다.

a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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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그녀에 게 장난을 칠 겸 그녀의 어 깨를 확 붙

잡았다!

“으메 । 깜짝이 야I”

나은이는 진짜로 내가 다가온 줄도 몰랐는지 화들짝 놀라서 쥐고 있었던

휴대폰을 바닥에 놓칠 뻔했다.

“어유. 선생님. 많이 놀라셨나봐요?”

내 가 키득이자 나은이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잘하고 왔어요?”

“개뚜들겨 맞고 왔지. 뭘.”

쓴웃음을 지으며 대 답하자 나은이 는 이해 한다는 듯이 내 등을 토닥여주

었다.

“괜찮아요. 잘했어요.”

정말 오랜만이 었다. 누군가 내 프로젝트를 보고 잘했다고 말해주는 것이.

물론 그냥 빈소리 로 하는 말일 확률이 무척 이 나 높았으나 그럼 에 도 뭔 가

짠한 이 느낌.

나은이를 지금 당장 끌어안고 싶었다.

하지 만 복도에 우리 학년 전체 가 돌아다니 는 지금.

차마 그런 망측한 짓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었다.

“너도 그래도 잘한것 같은데?”

누가 금손 아니 라고 할까봐 나은이의 모형과 페 널은 내 것보다 훨 씬 더 세

련되어보였다.

깔끔한 레 이 아웃. 여 자애들 특유의 아기 자기 한 디 테 일 포인트들.

하지만 나은이는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쓸쓸한 웃음을 지어보였

다.

“아마 오빠 것보다 더 잔소리 들을 지도요.”

오래 기다려야할 나은이를 위해 나는 지하에 있는 카페에 내려갔다 왔다.

샌드위치 하나. 커피 하나를 테이크아웃 해서 들고 오자 나은이는 진짜 고

다웠는지 내게 연신 감사의 말을 건넸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샌드위치를 먹는 나은이.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그녀의 볼은 식량을 비축해두려는 다람쥐 같이 부

풀어 올랐다.

“많이 배고팠어?”

너무 잘 먹다보니까 이럴 거면 다른 초콜릿이나 빵이라도 더 사올 걸 싶었

다.

“근 24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요.”

아이 고야... 나는 중간에 라면 하나 후다닥 끓여 먹 었는데 .

아무래도 나은이는 마감한다고 배를 쫄쫄 곪았나보다.

“간단한 다른 음식 이 라도 사다줄까?”

이 런 류의 셔틀이 라면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었다.

“으으응. 아니에요. 나 이따오빠랑저녁에 맛있는 거 먹을래.”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나은이 .

입 가에 빵 부스러 기 가 묻어 있는 채로 순애 물스러운 말을 하는 그녀는 너

무너무 귀여웠다.

하아... 나은아...

오빠가 사줄게...!

야설 팔아서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사줄게...!

진 짜 이 상한 근본 없는 색드립 만 안 치 면 이 렇게 귀 여 운데.

가끔씩 야설 작가인 나조차도 혀를 내두르는 드립을 치는 그녀는 제정신

이 아닌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간식거리를 먹고 나서도 나은이의 차례까지는 꿓시간이 더 걸렸다.

“자.한나은 씨.”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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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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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나은이.

“시작하세요.”

“어...제가이번에 구상한프로젝트의 컨셉은…”

나은이는 발표에는 그렇게 재주가 없었는지 조금씩 말을 절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발표를 끝냈다.

사실 평 가 순서 가 뒤 쪽 일수록 교수님 들도 지 치 시고 시 간여 건 상 빠르게

진행하는 경우도 빈번했기에 교수님들은 슥슥슥 포인트들만 짚고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역시 개념이 제일 아쉬운 것 같아요. 나은 씨 프로젝트는.모형이 먼저 나

오고 개념이 따라간 느낌?”

“아...네…”

“나은 씨는 그런 느낌 작업하면서 안 받았어요?”

한교수의 집중 마킹에 나은이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답변을 망설였다.

“좀...그랬던것 같기도하고요.”

“그게 굉장히 조심해야되는 것이...”

그 교수는 다른 교수님 들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혼자 나은이 한테 막

자기 경험담을 퍼부었다.

당연히 1명에게 주어진 평가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서 나은이의 차례는 교

수님의 대학원생 시절 이야기로 마무리되어버렸다.

“수고했어.”

내 가 멋쩍은 듯이 웃으며 고생한 나은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 진짜... 어떻게든 끝이 나기는 했네요.”

그래. 이거였다.

어떻게든 끝은 났다는 이 느낌.

나은이가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내려줄뿐이었다.

“종! 강! 종! 강!”

분명히 잠도 얼마 못 잤을텐데 나은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폴짝폴짝 점프

를 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나은이의 차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건축대 건물

을 벗어났다.

물론 실질적으로 종강이기는 했지만 설계실 청소도 해 야하고, 모형도 다

시 수거해가야만했지만오늘은 더 이상저 건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

양이었다.

“길 미끄러워. 나은아.뛰지 마.”

12월 중순.

곳곳에 바닥이 얼어있어서 넘어지면 상당히 험한꼴을 당하기 쉽상인 날

씨였다.

“오빠오빠. 우리 술 마실래요?”

“술?”

“네. 원래 설계 마감하면 다들 뒷풀이로 술 마시러 가잖아요.”

나는 사실 뒷풀이보다는 집에 가서 자는 것을 좋아해서 당일에는 잘 마시

지 않는 편이었지만 여자친구가 원한다면야.

"그래. 마시러 가자.’,

"삼겹살에 쏘주고?’,

아... 이건 못 참지.

"시원하게 가보자잇!’,

그녀와 내가도착한 곳은 나은이네 집 근처 삼겹살가게.

지글지글 불판이 뜨겁게 달아오를수록 뱃속에서는 더욱 요란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나은아. 너무 배고파. 나.’,

"아니.오빠도샌드위치 아까먹지 그랬어요.’,

"낮에라면 먹어서 괜찮을줄.’,

이윽고 삼겹살이 도착하자 나은이는 바로 야무지게 세팅을 시작했다.

어쩜 불판위 음식 배치까지 잘하냐. 너는.

정갈하게 삼겹살 두 줄을 나란히 얹은 나은이는 구석에는 편마늘과 김치

를 가지런히 굽기 시 작했다.

"오빠. 구경 만 하지 말고 소주 좀 따라봐요.’,

내가 속으로 감탄만하고 있자 나은이는 뭐하냐는 듯이 내게 핀잔을 주었

다.

이거라도해줘야지. 뭐.

나는 그녀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고는 내 잔 또한 채웠다.

"짠!"

내가 잔을 앞으로 내밀자 나은이는 해맑게 웃으며 내 건배사를 받아주었

다.

"짠!"

굶주렸던 우리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일단 정신없이 식사를 했다.

여 자친구가 구워 주는 삼겹 살은 그야말로 극락. 극락 그 자체 였다.

술도 같이 마시니까 무척이나 달게 느껴 진다고 해 야하나.

평소 같으면 알코올 램프 통으로 들이마시는 것 같다고 찡얼댔을 텐데 오

늘은 스무스하게 물처럼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갔다.

날이 날이니 만큼 각을 잡고 마신 우리 테이블 위에는 어느덧 소주병이 4

병을 넘어가고 있었다.

"크으!!! 나은아!! 시발! 휴학이다!"

원래 가급적이면 그녀 앞에서는 욕을 잘 안 하려고 하지만 술을 마시니까

비속어들이 자꾸 튀어나왔다.

"맞아요! 섹스!’,

미친년아.

하지만 내 취 기는 충분히 저걸 받아줄 만큼 올라와 있었다.

"섹스!"

주변 테이블 손님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알

바인가.

우리는 이미 진득하게 나락에서 뒹굴다온 쭈왑녀. 쭈왑남이 었다.

"하아... 오빠 휴학하면 연참 존나 해주실 거죠?’,

잘 익은 홍시 같은 얼굴로 나은이는 꽃받침 포즈를 취했다.

"야. 연참이 쉬운 줄알아. 이게.’,

"아아아앙. 해죠오오.’,

찡 얼대는 그녀 가 무척 이 나 귀 여워 보였다.

근데...이상하다...?

...나은이가 언제부터 내 독자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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