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 이유비(3)
* * *
가깝다는 말에 유비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가, 가까워? 그렇게?”
“응. 커피도 다 마셨는데. 빨리 가자. 유비야.”
“벌써?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아, 아니. 그래, 가자. 귀신의 집에서 시원이 너 무서우면 내 뒤에 숨어. 알겠지?”
유비가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 딛는다.
사실 나는 여름이면 혼자서 불 꺼 넣고 주온이나 링 같은 공포영화를 즐겨 볼 정도로 무서운 것에는 내성이 강하다.
그냥 가벼운 오락거리 정도다.
* * * * *
귀신의 집 행사장은 의외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실 어린아이나 좋아할 만한 행사인데, 20대가 많은 시내 중심가에 행사장을 설치했으니.
프로모션의 실패다.
그래서인지 나와 유비가 참여한다고 티켓을 사자.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 게임의 방식은 간단합니다. 들어가셔서 저희 무서운 귀신들에게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걸어서 이 잔에 든 물을 최대한 많이 남겨 오시면 됩니다. 물 잔에 표시된 노란선 이상 물을 남겨 오시면 영화 상품권 드리고 있어요.”
그냥 말이 게임이지.
모든 사람에게 다 주는 상품에 가까웠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고작 탈을 쓴 귀신에 무서워 할 20대는 없을 테니까.
“자. 선택 하실 행사장을 고르실 수 있는데요. 좀비방, 호러방, 유령방. 어느 방으로 하시겠어요?”
유비가 토끼같이 눈을 크게 뜨고 행사장 직원에게 물어본다.
“어느 방이 가장 무서워요? 저희 그 방으로 갈게요.”
“가장 무서운 방이요? 호러방이 그래도 제일 무섭죠.”
“네. 거기로 갈게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중간에 보이시는 입구 있죠? 거기로 가시면 되요.”
유비가 나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한다.
“시원아. 넌 자신 없지? 자신 없으면 내가 먼저 갈게. 내 뒤에서 따라와 알았지?”
유비가 마치 강철로 만든 심장을 지닌 것처럼 비장하게 말한다.
유비는 이 게임에 진심인 게 분명하다.
“그래 유비야. 그럼 나는 유비의 의견을 존중할게.”
유비의 불타오르는 의욕을 꺾고 싶지는 않다.
거기다가 뒤에서 따라가며 무서운 척 유비를 뒤에서 안을 수도 있고.
출렁출렁 거리는 유비의 탱탱한 젖가슴을 보니, 의욕이 살아난다.
“그래. 시원아. 나 먼저 갈게. 빨리 따라와. 무섭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하면 안 돼!”
“응. 알았어. 유비야. 빨리 따라 갈게.”
직원이 우리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안내를 해 준다.
“준비 되셨으면 들어가시면 되요.”
직원의 말을 들은 유비가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물어 본다.
“이, 이거 무서워요? 진짜 막 귀신같은 거 나오고 그래요?”
직원이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에이. 무섭긴요. 그냥 애들용이죠. 보니까 중학생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중학생이면 하나도 안 무서워요. 걱정 말아요.”
안 무섭다는 말에 유비가 환하게 미소를 짓는다.
“자, 가자. 시원아.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며 출발하는 유비.
나도 유비를 따라 호러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호러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유비가 소리를 지르며 빨리 걷기 시작한다.
“아, 안 무서워어어어어!!!!!!!!”
정말 걸음아 나 살려라 정도의 빠른 걸음.
아, 아니. 유비가 겁이 많은 건 짐작했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유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도 유비를 빨리 따라간다.
중간중간 보이는 엉성한 해골 인형들과 귀신분장.
아무리 행사로 대충대충 만든 것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너무 하다.
이런 걸 무서워 할 사람이 어디 있········
어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엄청난 비명소리.
“아아아악! 엄마아!!!!!!!!”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비였다.
“유비야, 어디 있어? 같이 가!!”
다 죽어가는 비명소리에 나는 재빨리 유비를 찾기 위해 호러의 집을 걷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 엄마아! 무, 무서워! 싫어어어어엇!!!!!”
점점 더 커져가는 유비의 목소리.
정말 사람 하나 잡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비명소리다.
“오, 오지마아앗! 싫어어! 싫다고오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유비의 비명소리.
갔던 길을 되돌아서 다시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유비가 손에 들고 있던 물 컵은 어디다 던져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유비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나에게 달려오더니 푸욱 안긴다.
“시원아. 무, 무서워. 무서워어엉!!!”
아니 무슨 이런 두부 심장이 다 있지?
내 품에 안겨서 훌쩍거리는 유비.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엽다.
거기다가 부드러우면서 탱탱한 육덕진 젖가슴의 감촉까지.
그냥 계속 호러의 집에 있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다.
“유비야, 괜찮아. 나랑 같이 가자. 나랑 같이 가면 괜찮을거야.”
“흐윽. 흐윽. 안 무섭다고 했는데. 직원 언니가 안 무섭다고 했는데에·······”
유비가 입구에서 안 무섭다고 설명했던 직원 언니를 원망하며, 눈물방울을 글썽 거린다.
아니. 뭐 이런 귀여운 여자가 다 있지?
내가 이런 취향은 아닌데.
눈물을 글썽거리는 유비는 귀여워도 너무 귀엽다.
“흐윽. 빨리 왔더니 무서워. 여기 귀신 있어써! 시원아. 나 무서워어. 흐윽. 흐윽.”
“어디? 어디 귀신 있어?”
유비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다리 건너편을 가리킨다.
“저기, 저기 귀신 있어. 시원아아. 나 무서워서 저기 어떻게 가.”
그리고 때 마침 나타나는 귀신분장을 한 아줌마.
후다닥!
우리를 가로질러 간다.
“꺄아아아악! 무서워요. 흐윽, 귀 귀신 진짜 있단 말이에요. 흐윽.”
그런데 오히려 우리를 지나쳐 가던 귀신 분장을 한 아줌마가 비명소리에 더 놀라서 주르륵 미끄러 넘어진다.
하아·······
이런 엉성한 분장에 설마 초등학생도 아닌 어른이 놀랄 줄은 몰랐나 보다.
“나, 무서워서 못가겠어어. 시원아아아. 엄마아아아.”
“유비야. 내가 먼저 갈게. 나만 붙잡고 따라와.”
너무 무서워서 대성통곡하는 유비를 보니 놀리는 거고 뭐고.
일단은 유비를 진정시켜서 빨리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시원아아아. 나 진짜 무서워 죽을 것 같아. 쟤, 쟤 봐! 움직여! 움직인단 말이야. 흐아앙!”
유비가 공중에 초라하게 매달린 허수아비를 보며 또 다시 무서워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괜찮아. 유비야. 울지 말고 내 등만 보고 따라와. 알겠지?”
“얘가 막 움직여서 나 놀래키면 어떻해에. 시원아. 진짜, 언니가 안 무섭다고 했는데. 흐윽.”
아이고, 우리 유비.
생긴 건 중딩인데, 겁 많은 건 초딩보다 더하다.
“아니야, 유비야. 안 놀래켜. 진짜야. 안 놀래키니까 나만 보고 따라와.”
“얘가, 얘가 나 놀래킬 것 같아아. 시원아아아. 엄마아아아. 나 나가게 해 주세요. ㅠㅠ”
“유비야, 눈 감고 내 손 꽉 잡고. 그냥 따라오기만 해. 알았지?”
“알았어. 흑. 진짜, 안 놀래키는 거 맞지?”
그렇게 겁쟁이 유비의 손을 붙잡고 공중에 매달린 허수아비를 지나쳤다.
그러자 나오는 철창과 그 안에 갇혀있는 귀신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귀신 분장을 한 아르바이트생들이다.
그래도 지금 지나고 있는 이곳이 이 행사장에서는 가장 무서운 하이라이트 구간인 것 같다.
철창 안에 갇힌 귀신들을 보자 유비가 얼어붙었다.
“흐흐흑. ㅠㅠ. 엄마아아... 귀신들이 나 째려봐요. 못 가겠어요.”
“유비야. 내가 먼저 갈게. 괜찮아. 유비야.”
간신히 유비를 달래며 한발 한발 전진한다.
유비는 철창 반대편 벽에 딱 달라붙어서 게가 걷듯이 울면서 옆으로 걷고 있다.
“진짜, 놀래키는 거 없다고. 안 무섭다고 언니가 그랬는데에. 너무 무서워.”
덜덜덜 떨면서 간신히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전진하는 유비.
그래도 다행히 이곳이 마지막 구간이다.
이렇게 무서워 할 줄 알았으면 귀신의집 따위 오자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눈물을 흘리면 덜덜 떠는 유비를 보니 후회가 되었다.
“유비야. 다 왔어. 진짜. 다 왔어. 조금만 힘내자. 알았지?”
유비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마치 귀여운 여동생과 함께 귀신에 집에 온 것 같아 묘한 감정이 든다.
겁먹은 모습마저 사랑스러운 유비다.
“진짜. 다 와가는 거지? 흐윽. 진짜지?”
유비가 확인을 하 듯 반복해서 묻는다.
“응. 진짜야. 유비야. 자, 저기 써 있잖아. 나가는 길이라고.”
나가는 길이라고 써있는 화살표를 발견한 유비가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세상에는 꼭 눈치 없는 녀석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야 겨우 안심을 하며 미소를 짓는 유비를 향해.
철창에 갇혀있던 귀신 알바생 하나가 철창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다.
“으으으~ 내 몸이 불타고 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딴에는 일 열심히 한다고 혼신의 연기를 펼친 것 같은데.
문제는 그 대상이 바로 두부심장 유비라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흐윽. 흐윽. 엄마아아아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리는 유비.
"니가 안 무섭다메. 흐흑. 안 놀래 킨다며. 시원아, 나 좀 살려줘. 살려주세요. 흐윽.“
그냥 자기 일 열심히 하던 귀신 알바생이 더 당황해서 어리둥절해졌다.
“유, 유비야. 미안해. 미안해. 일어나 유비야. 저기 까지만 가면 돼. 이제 다 끝났어. 진짜.”
유비가 내 등에 바짝 거북이 등딱지 마냥 꼬옥 붙었다.
뭉클뭉클!
유비의 왕젖가슴이 내 등에 밀착해서 탱탱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 하지마! 하지마아아아아! 귀신님 제발 하지마아. 흐윽. 이렇게 빌게요. 하지마세요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