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이유비(2)
* * *
평소에 내가 알던 얼음같이 차가운 성격의 유리 누나와 같은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이상했다.
너무 공부를 오래해서 스트레스 받아서 조울증이라도 걸린 건가?
S대에 다닐 정도로 똑똑한 사람의 생각을 내가 알 리가 없지.
나 같이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무시하기로 한다.
일단은 유비를 만나고 나서 연락해도 늦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하고 유리 누나의 카통은 무음으로 설정해 놓는다.
잘 쉬어야 이따 유비를 만나서 재미있게 놀겠지?
거실에 나가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는 침대에서 낮잠을 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원아, 우리 등산 갔다 올게. 집에서 잘 쉬고 있어!”
잠에서 깨서 대답한다.
“응. 엄마 아빠 걱정 말아요.”
부모님이 등산을 가자 재빨리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는다.
오늘은 유비를 보러 집 앞에 잠깐 나가는 거니까.
그냥 편하게 얇은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는다.
덜커덩.
운동화를 신고 문을 열었다.
다쳤던 왼쪽 발목을 움직여 보았지만 별 이상은 없다.
병원에만 있었더니 갑갑하던 참이었는데 바깥 공기를 쐬고 몸을 움직이니 좀 나았다.
터벅터벅.
천천히 산책이라도 하 듯 유비와 만나기로 한 탐앤탐스 커피숍 앞으로 걸어간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데이트 나온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남자들과 모델같이 훤칠한 여자들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고 있다.
다정한 모습을 보니 나도 너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지 말고, 여자 친구를 한 명 만들어서 순애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유비의 모습이 보인다.
“시원아!”
유비가 나를 발견하고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달려오기 시작한다.
출렁출렁~
유비의 볼륨 업 된 젖가슴이 탱글탱글 하얀 티셔츠 안에서 춤을 춘다.
꿀꺽.
나도 모르게 군침이 넘어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마치 10대 중후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유비의 너무 어리고 앳된 모습.
나와 같은 20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유비는 옷도 심플하고 청순하게 입고 나왔다.
하얀색 티셔츠에 몸에 딱 달라붙는 청바지.
그리고 스니커즈다.
패션도 10대에서 유행하는 옷차림이다.
피부도 타고나서인지 너무 뽀얗고 하얗다.
눈은 또 왜 토끼같이 큰 거지?
생긴 건 귀여운 토끼 같은 초식동물인데.......
출렁출렁~!
내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젖가슴은 위험하다.
하얀 얼굴에 토끼같이 큰 눈.
거기다 보조개도 들어간다.
낮에 본 유비는 어느 때 보다 더 귀엽고 예뻤다.
어제 만난 도도하고 차가운 매력의 여의사 서예린 같은 스타일도 좋지만.
역시 데이트하기에는 풋풋하고 귀여운 스타일이 더 내 취향이다.
“시원아. 오래 기다렸어? 빨리 온다고 왔는데. 시원이보다 늦어버렸네.”
“응. 아니야. 유비야. 내가 약속시간보다 일찍 온 건데 뭐. 그런데 유비야, 너 머리에 나뭇잎 붙었다.”
주위에는 공원이 있기 때문에 나뭇잎이 유비 머리위로 떨어진 것 같다.
손을 들어서 유비의 검은색 청순한 머리카락 위에 붙은 나뭇잎을 손으로 잡아서 떼어내준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참 곱다.
“고마워. 시원아.”
유비가 귀엽게 얼굴을 붉히며 토끼같이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유비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도 나는 것 같다.
밀크........ 그러니까 젖소 냄새?
아, 아니다.
이건 그러니까 어린 아이에게서 나는 분유냄새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어렸을 적을 기억나게 해주는 기분 좋은 냄새다.
“유비야. 너 향수 뿌렸어? 좋은 냄새가 나는데?”
“향수? 아니. 향수 안 뿌렸는데. 좋은 냄새가 나?”
유비가 손을 들어서 입고 있는 흰색 티셔츠를 펄럭 거리며 냄새를 맡아본다.
“응?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러긴 하더라. 나한테서 우유냄새 난다고. 치. 엄마 젖 떼고 오라고. 나 어린애 아닌데. 다들 어린애 취급한다니까.”
역시 나만 유비를 어려보인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구나.
유비의 하얀 피부와 통통한 볼이 더 유비를 어리게 보이게 만든다.
“얼마 전에는 편의점 알바하는데, 담배 안 판다고 중딩 급식들이 시비를 털더라. 어이가 없어서 진짜.”
“진짜? 그래서 어떻게 했어? 걔네들 혼내줬어?”
유비가 귀여운 눈으로 처량한 표정을 짓는다.
큰 토끼 같은 눈이 처지자 더욱 귀여워 보인다.
“아니, 한 명이면 혼내줬을 텐데. 세 명이라. 맞을까 봐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 사장님 불러서 해결했지.”
우리 유비는 정말 중딩급식이랑 맞짱 뜰만큼 어려보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겁에 질린 저 표정을 보니 분명히 중딩한테 쫄았던 게 분명하다.
“그래. 유비야. 중딩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뉴스기사 보니까 얼마 전에 할아버지한테 담배 심부름 시키는 나쁜 여중딩들도 있더라. 잘했어. 괜히 촉법소년이다 뭐다해서 그런 애들 건드려 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그치? 그래. 나도 그래서 참았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그 것보다 시원아 우리 일단 커피나 한 잔 할까? 밖에 있으니까 덥다.”
아닌게아니라.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여름이라서인지 날씨가 꽤 더웠다.
땀으로 축축해지고 있다.
옷도 축축.
유비의.
어? 유비의 흰색 티도 유비의 땀으로 살짝 젖어서 유독 유비의 그 크고 탱탱한 젖가슴만 눈에 더 들어온다.
브라자 보일 정도로 흰색 티가 비친다.
유비의 오늘 브라자는 분홍색이구나.
귀엽다.
“들어가자. 유비야.”
커피숍 문을 열고 유비와 들어가는데 이상하게 아까부터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이 느껴진다.
휙!
재빨리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눈빛을 느꼈던 것 같은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예민해진 걸까?
* * * * *
“나는 따뜻한 우유. 시원이는?”
유비는 음료도 어린아이처럼 우유를 마신다.
커피숍에서 우유라니.
“민트초코 프라푸치노가 없어서 아쉽다.”
거기다가 민트초코에 진심인지 민트초코가 없는 것에 아쉬워하고 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윽. 그거 쓰지 않아? 시원이는 정말 어른이다.”
유비가 마치 아이가 어른을 바라보는 것 같은 동경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같은 나이인데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신다고 어른 취급을 받다니.
뭔가 쑥스럽다.
“시원이 너는 여기 앉아있어. 내가 사올게.”
“아니야, 내가 살게. 어제 유비가 나 때문에 휴일도 집에서 보내고. 미안해서 그래.”
하지만 유비는 끝끝내 자기가 사겠다고 한다.
그래. 뭐.
어차피 커피 마시고 술 마실 건데 술값을 내가 내면 되지.
잠시 후.
유비가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우유를 가지고 온다.
“시원아. 여기.”
“고마워. 유비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바라보던 유비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시원아. 나도 한 모금 마셔 봐도 돼?”
“응? 이거? 그럼. 자, 먼저 마셔.”
내가 유비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양보한다.
쭈우욱!
유비가 빨대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쪽 빤다.
하지만.
“콜록, 콜록! 윽. 시원아 이거 엄청 써. 이런 걸 어떻게 마시는 거야?”
유비가 귀엽게 이마를 찡그리며 인상을 쓴다.
너무 어리고 귀여워서 보여서인지 이마를 찡그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나는 큭큭 웃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유비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우유 마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른들 마시는 거니까.”
유비가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말한다.
“치. 나도 마실 줄 알거든. 그냥 생각보다 써서 당황 한 거지. 우씨. 그리고 시원이 너 진짜 나 자꾸 놀릴 거야? 나이도 같으면서. 계속 아이취급하고.”
유비는 나한테 아이취급 당하는 게 싫은 것 같다.
그런데 유비 반응이 너무 재미있고 귀여워서 계속해서 놀리고 싶어진다.
“알겠어. 유비야. 오빠가 안 놀릴게. 유비야. 오빠랑 놀이동산 갈래? 오빠가 솜사탕이랑 곰돌이 인형 사줄게.”
“시원이. 너. 진짜! 계속 놀릴래! 나 놀이동산 같은 거 안 좋아하거든. 그런데는 애들이나 가는 거지.”
그렇게 말은 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유비의 얼굴이 설레서 상기되었다.
놀이동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가 보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유비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고 싶지만.
발목도 아직 정상이 아니고 세경이랑 얼마 전에 다녀왔다.
그 때 마침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이벤트행사가 생각났다.
“그러면 우리 귀신의 집 갈까?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주말에 귀신의집 행사 한다던데?”
“귀, 귀신의 집?”
유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왜? 무서워서 싫어? 유비야? 하긴 유비한테 귀신의 집은 좀 무리겠다. 우리 그냥 다음에 어린이집이나 가자.”
유비랑 귀신의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유비를 어린애 취급하며 자극했다.
“무섭긴 누가! 나 귀신 좋아하거든. 진짜 공포 영화도 나 막 새벽에 혼자보고 그래. 가, 가자! 귀신의 집. 어딘데? 그런데 그. 너 발 괜찮겠어? 나는 진짜 가고 싶은데 시원이 발이 걱정되어서.”
역시나 어린아이같이 발끈한 유비가 내 도발에 넘어왔다.
“가까워. 귀신의 집. 여기서 걸어서 5분 정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