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화 〉 미유키에게 납치당하다!(1)
* * *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불어오고 향긋한 풀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벌서 다 왔네?”
예슬이가 내 손을 놓으며 말한다.
“응. 예슬아. 예슬이랑 헤어지려니까 아쉽다. 예슬이 너 나 간다고 우는 거 아니지?”
“치. 오빠! 내가 오빠 여자친구 해 준다니까, 선 넘는다! 울긴 누가 울어요. 나도 친구들 만나야 하니까 빨리 가요.”
예슬이가 새침한척 연기하며 나에게 빨리 가라고 손짓 한다.
“알겠어. 나, 이제 진짜 간다. 예슬아. 카톡할게.”
“응. 잘 가요. 시현오빠. 친구랑 좋은 시간 보내요.......”
예슬이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예슬이와 헤어진 후, 서울랜드 입구에서 시간을 보니 저녁 6시 30분.
이제 곧 미유키가 도착 할 시간이 되어갔다.
카통 프로필 사진을 클릭해서 만화속에 나오는 미소녀 같은 미유키의 사진을 보고 있는데,
우웅! 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빨간색 스포츠카가 서울랜드 입구를 향해 질주 해 왔다.
그리고는.......
내 바로 앞에서.
끼이이익!
소리와 함께 멋있게 주차를 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빨간 스포츠카로 쏠렸다.
빨간 스포츠카는 오픈형 스포츠카였는데, 잘빠진 곡선형에 도시적이고 화려한 모델이었다.
유럽의 고풍적인 도시를 질주할 것만 같은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환상적인 슈퍼 스포츠카였다.
그리고 차 안에 타고 있는 건.
보라색의 단발머리에.
눈처럼 하얀 얼굴에 작은 브이라인 얼굴형.
오뚝하고 서구적인 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권인 건 명품 갈색 선글라스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호수처럼 아름답고 깊은 에메랄드 눈동자.
마치 인형같이 아름다운 미소녀가 만화 속에서 현실로 차원 이동한 것만 같다.
“오빠,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빨리 온다고 했는데, 차가 좀 막혔어요.”
고양이 같은 얼굴로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소녀.
그녀는 바로 내가 오늘 저녁에 만나기로 한 일본 재벌 그룹의 손녀 딸.
미유키였다.
* * * * *
[예슬이 시점]
하아.......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걸까?
이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나, 그래도 중학교때부터 매일 교문 앞에서 기다리던 남학생이 트럭으로 한가득.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걸그룹의 비쥬얼 센터 한예슬인데.
시현오빠가 빨간 색 스포츠카에서 내린 인형같이 생긴 미소녀와 차를 타고 가는 것을 본 후, 심장이 두근거리고 진정이 안 된다.
이런 게 바로 흔히들 말하는 질투라는 걸까?
내가 남자 때문에 질투라는 것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연예인들의 연예인 Z드래곤 오빠의 고백에도 흔들리지 않던 나인데.
시현오빠에게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고백할 때 까지만 해도 사실 내가 남자에게 질투를 느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시현오빠의 천사 같이 귀여운 외모에 반해 고백해버린 건데.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이 시리도록 아픈 가슴의 통증은 뭐지?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현오빠에게 진심으로 빠져버리기라도 한 걸까?
처음에는 그저 시현오빠의 겉모습만 보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 시현오빠와 서울랜드에서 데이트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묘한 감정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현오빠가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야한다고 했을 때.
시현오빠에게 서운하고 배반당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여자 가오가 있지.
내 감정들을 시현오빠에게 표현 할 수 는 없었다.
고작 남자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호구같은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약속을 만들어 내어 시현오빠에게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시현오빠에게 자존심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현오빠와 빨간색 스포츠카를 탄 미소녀가 같이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본 순간.
내 자존심은 모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오한이 들린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런 게 바로 짝사랑의 아픔이라는 것일까?
시현 오빠와 사귀기로 했지만, 남자가 부족한 이 세계에서 남자는 여자 친구를 몇 명이라도 동시에 사귈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시현오빠에게 완전히 푹 빠져 버린 것이다.
그 여자.
여자인 내가 봐도 아름답고 귀티나 보였다.
진짜 부잣집에서 자란 부유한 냄새가 나는 여자였다.
고급진 빨간색 로터스 에미라 스포츠카를 타고, 루이비통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딱 봐도 나 같은 건 상대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재벌가의 여자였다.
투둑. 툭, 툭..........
눈에서 투명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돈 많은 미소녀에게 남자친구를 뺏겨버린 처량한 여자라니.
싫다.
이런 건 싫어.......
혼자 쓸쓸히 노을이 지는 서울랜드에 벤치에 자리 잡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한예슬.
이렇게 바보 같이 약한 여자였어?
힘내자. 예슬아.
시현오빠는 그 여자가 좋아서 따라간 게 아닐 거야.
그래, 시현오빠는 연예인이니까.
사업상 필요해서 그 여자와 어울리는 거야!
아니면, 시현오빠에게 투자하는 그룹에서 일하는 여자가 잠깐 픽업해 준 것 일수도 있어.
그리고 내가 그 여자보다 귀티는 나지 않지만 더 귀여워.
그래, 예슬아. 아직 시현오빠를 그 여자에게 뺏긴 건 아니야.
더군다나 시현오빠는 나랑 여름휴가 때 같이 바닷가도 가기로 했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스스로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다.
나는 흘러내리던 눈물을 말끔히 닦아내고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이동산에서 왕따처럼 혼자 벤치에서 눈물이나 찔금 거리는 여자만큼 찌질해 보이는 게 없지. 사람들이 보면 남자에게 차인 바보 같은 여자라고 생각 할 거 아니야.
하아..... 할 수 있어. 예슬아.
이번 여름휴가 때, 바닷가에서 시현오빠가 나에게 푹 빠져서 도저히 헤어 나오지 못 하도록 만드는 거야.
그러려면 더 운동도 빡세게 해서 더 탄탄하고 섹시한 몸을 만들고, 일도 더 열심히 해서 시현 오빠가 무시하지 못 할 만큼 대중들에게 인지도도 더 쌓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두고 봐.
꼭 시현오빠를 나한테 푹 빠지게 만들어서, 내 미래의 서방님으로 만들 테니.
그렇게 점점 자신이 유시현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체 한예슬은 유시현의 정실이 되기 위한 각오를 다졌다.
[유시현 시점]
“에취! 으....... 갑자기 오한이 오네. 그, 차 지붕 좀 내리면 안 될까? 미유키. 이제 좀 추운데.”
여유롭게 빨간색 스포츠카를 운전하던 미유키가 나를 힐끔 쳐다본다.
“아.... 오빠 미안해요. 하긴 아무리 여름이라도 산길을 운전하고 있으니 춥겠네요.”
지금 나와 미유키는 서울랜드를 빠져나와 탁 트인 과천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산 공기는 맑고 하나 둘 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만큼 정취와 분위기는 데이트하기에 딱 좋은 상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미유키를 봐서 설레는 마음보다 서울랜드에 홀로 남겨진 예슬이에 대한 걱정이 커져간다.
예슬이. 친구를 보기로 했다지만. 갑자기 친구와의 약속이 잡혔을 리 없다.
혹시 서울랜드 야간개장을 혼자 구경하다가 블랙블루의 멤버인 것을 들켜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지는 않겠지?
연예인이면 몰래 사진 찍어서 나쁜 기사를 만들어 내거나.
괜히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아니면.......
예슬이는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가려도 워낙 미모가 마스크를 뚫고 나오니까.
남자 녀석들이 혹시 데이트 신청을 한다거나.
납치를 한다거나.....!!!
아, 안되는데!
늑대같은 녀석들이 넘치는 위험한 서울랜드에 병아리처럼 귀여운 예슬이를 혼자 남겨두다니!!!
혼자 놀이공원에 남겨진 예슬이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 때 차분한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티를 안내려 했지만, 예리한 미유키에게 속마음을 들켰다.
“으응. 아니야. 그냥 서울랜드에 혼자 남겨진 친구가 걱정되어서.”
“친구여? 혹시...... 블랙블루 한예슬 말 하는 거예요?”
“어...? 엇!?”
너무 놀라서 동그라진 눈으로 미유키를 바라봤다.
미유키가 풋~! 하고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뭘, 그렇게 놀래요. 오빠. 예슬씨 정도의 미모면 아무리 모자를 쓰고 마스크로 가려도 다 알아볼 수 있다고요. 치.”
“아...... 역시 그런가? 아, 아닌데? 서울랜드에서는 아무도 몰라봤는데?”
으음. 아무리 봐도 우리를 알아보는 일반인들은 없었다.
워낙 모자와 마스크로 철저히 가리기도 했지만.
설마 대한민국에서 현재 가장 떠오르는 신인 아이돌 박지훈과 걸그룹 비쥬얼 센터 한예슬이 한가롭게 서울랜드에서 공개 데이트를 하고 있을 거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미유키의 눈썰미가 대단한 것이다!
“그런데, 오빠? 혹시 그런 옷......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런 옷이라니?”
“예슬씨가 치파오 복장 하고 있던데. 혹시 오빠가 좋아해서 그런 복장 입고 나온 거예요? 물론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