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화 〉 예슬이와 놀이동산에서(F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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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자가 한 입으로 두 말 할 수는 없지.
나는 예슬이의 기대에 가득 찬 아름다운 검은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예슬이 소원이 이번 여름휴가 때, 나하고 바닷가로 바캉스가고 싶다는 거야? 예슬이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휴가인데, 친구들이나 부모님이랑 같이 안 보내고? 나랑 단 둘이? 괜찮겠어?”
예슬이가 귀엽게 위 아래로 움직이는 고양이 귀 머리띠를 한 채 수줍게 말한다.
“네. 저,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꼭 같이 바닷가 가보고 싶었어요. 섹스 생각으로만 가득 찬 머리가 텅 빈 여자 친구 녀석들은 바닷가의 낭만은 남자 헌팅이지! 라면서 헌팅에만 매달릴 걸요! 그런 녀석들은 바닷가에서 남자 헌팅 따위 성공해 본 적도 없고. 그러니까 그런 녀석들이랑 여름휴가를 즐기는 것 보다는........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그런 거 있잖아요! 바다에서 남자친구와 수영도 하고, 달콤한....... 연애도 잔뜩 하고.......”
예슬이가 빨개진 얼굴로 당황한다.
음......
하긴 나도 내가 원래 살던 세계의 남자녀석들을 생각해 보면 여자와 여름 바닷가에서 낭만을 즐기는 것이야 말로 어렸을 적부터 남자들이 꿈꾸던 로망 중의 하나지.
그렇게 생각하니 예슬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아? 여름휴가라면 이제 곧 아니야?”
“아, 아니예요. 시현오빠. 시현오빠는 그냥 시간만 내면 돼요. 차랑 숙박 같은 건 내가 다 알아서 예약할게요! 같이 가요~! 시현오빠.”
예슬이가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간절히 애원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물론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여름휴가를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이번 여름휴가는 고양이처럼 귀엽고, 풋풋한 내 여자친구 예슬이와 함께 보내고 싶다.
“좋아. 예슬아. 일정 정해지면 일주일 전에 연락 해. 그리고 부담 갖지 말고 좋은 호텔로 잡아. 호텔비는 내가 낼게.”
“진짜? 시현오빠! 이번 여름에 나랑 같이 바닷가로 여행가는 거예요!”
예슬이가 너무 좋아서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정말로 기분이 좋은지 예슬이의 머리띠에 달린 귀여운 고양이 귀가 마구 앞, 뒤로 인사를 한다.
“너무 좋아요. 시현오빠랑 함께하는 여름휴가라니. 꿈만 같아. 그리고 시현오빠. 모든 비용이랑 일정은 저만 믿어요. 시현이 마음은 잘 알지만, 나도 여자인데. 오빠가 자꾸 돈 낸다하면 자존심 상하거든. 치.”
예슬이의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보니,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상큼하고 풋풋한 미소녀의 텐션은 다르구나.
어느 덧 회사 페미년들한테 빨려 버린 기가 다 충전된 것 같다.
예슬이는 자연 비타민C 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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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적이 드문 오락실에서 예슬이와 격렬한 섹스를 하고 난 후 우리는 범버카도 타고, 의자가 움직이는 3D 영화도 관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못 타는 예슬이를 배려해서,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는 피했다.
그동안 여자를 만나면 다짜고짜 무지성 섹스만 했는데,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는 것 같다.
“시현오빠, 사실 처음에는 그냥 시현오빠랑 호텔에서 넷플릭스나 보면서 쉬고 싶었는데, 막상 나오니까 너무 좋아요. 고마워, 시현오빠.”
“고맙긴. 나야 말로 예슬이 때문에 빨렸던 양기도 다시 충전........ 아, 아니. 예슬이같이 귀여운 여자랑 같이 시간도 보내고 정말 좋았는걸.”
“정말? 내가 귀여워요?”
“응. 귀여워. 예슬아. 사실 귀여운 걸로 보자면.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 예슬이가 가장 귀엽고 상큼한 걸?”
사실 객관적으로 가장 예쁜 얼굴은 강세나다.
그리고 미유키는 이지적이고 세련된 얼굴.
하지만 귀엽고 지켜주고 싶은 미소녀는 세 명 중에서 단연코 예슬이다.
예슬이가 귀엽다는 말에 다리를 비비꼬며 부끄러워한다.
“치. 오빠. 그럼 나는 귀엽기만 한 거예요? 섹시하거나.... 뭐 그렇진 않고요?”
평소 예슬이를 여동생처럼 귀엽게 보는 게 서운했던지 예슬이가 삐진 척 해보지만, 나에게 홀딱 빠져버린 예슬이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그저 귀여운 투정처럼 들릴 뿐이다.
하늘을 보니 벌써 붉은 저녁노을이 서서히 져가고 있다.
예슬이와 정신없이 서울랜드에서 놀다 보니 어느 덧 늦은 오후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서 카통을 확인 해 보았다.
[미유키: 오빠. 지금 어디에요? 저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지금 한국에 왔어요!]
이럴수가!
한 동안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미유키가 이미 몸을 다 회복하고 한국에 왔구나!
다른 사람의 연락이라면 이렇게 반갑지 않을 텐데.
미유키의 연락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내 대신 자신의 몸을 던져 괴인의 칼을 맞고 병원에 입원했던 미유키.
나는 미유키에게 바로 카톡을 보냈다.
[나: 미유키! 이제 다 나은 거야? 나 지금 친구랑 서울랜드에 있어]
[미유키: 서울랜드요? 알겠어요. 오빠. 나 지금 거기로 갈게요. 서울랜드 입구에서 봐요!!]
헉! 지금 바로 미유키가 온다고?
예슬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즐겁고 소중하지만.
미유키에게는 빛이 있다.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그 때 미유키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차가운 주검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몸.
[나: 알겠어. 미유키. 서울랜드 입구에서 기다릴게.]
내가 카톡을 보내고 있는데, 예슬이가 곁눈질로 내 핸드폰을 슬쩍슬쩍 훔쳐본다.
내가 누구랑 카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가 보다.
그리고 내가 카통 보내는 것 끝마치기를 기다렸다가 나에게 말한다.
“시현오빠. 우리 서울랜드 야간 개장까지 보고 갈 거죠? 서울랜드는 낮 보다는 밤이 그렇게 예쁘데요!”
예슬이가 나름 용기를 내서 먼저 서울랜드 야간 개장까지 같이 있자고 말을 꺼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이미 선약이 잡혀있기 때문에 예슬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예슬이와 서울랜드 야간 개장을 같이 할 수 없다.
“미안해. 예슬아. 나는 이따가 친구랑 서울랜드 입구에서 만나기로 해서. 오늘 밤에는 같이 못 놀 것 같아. 다음에 같이 놀자. 응?”
오늘밤에는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말에 예슬이의 표정이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어두워졌다.
“진짜요? 나 오늘 밤에 시현오빠랑 데이트 하려고. 어제 밤 새 인터넷으로 서울랜드 근처 분위기 좋은 술집도 다 찾아놨는데........”
예슬이는 나와의 오늘밤 데이트를 위해 꽤나 시간을 들여서 인터넷을 검색했던 것이다.
“미안해. 예슬아. 다음에 같이 더 좋은 곳에 가자. 응?”
예슬이는 오늘 밤은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 같았지만, 곧 기운을 차리고는 밝게 말했다.
“알겠어요. 오빠! 그러면 나도 시현오빠랑 다음에 데이트 하려면 이번 주는 열심히 회사에서 안무 연습해야겠어요! 그런데 시현오빠는 그 친구랑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요?”
그때 마침 카톡이 울린다.
[미유키: 서울랜드 7시! 나 지금 바로 가면,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오빠!]
예슬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예슬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응. 실은 지금 친구가 오고 있데. 30분 후면 도착한다는 데? 갑자기 이렇게 돼서 미안해, 예슬아. 다음에는 늦게까지 같이 놀자.”
“아. 그래요? 시현오빠와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30분밖에 안 남았구나.......”
예슬이가 잔뜩 아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최대한 아쉬워하는 티는 안내려 한다.
“알겠어요. 시현오빠. 사실 나도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 시현오빠가 저녁에 혼자 외로울까봐. 취소할까 했죠. 시현오빠 혼자서 서울랜드에 남아 있으면 마음이 불편할 거 아니예요! 그런데 시현오빠도 약속있다니까 다행이에요! 그러면 시현오빠 서울랜드 입구까지 데려다 줄게요.”
예슬이가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예슬이의 하얗고 고운 손을 살짝 붙잡으며 말한다.
“역시. 인기녀 예슬이. 저녁에 약속 있었구나. 하긴 예슬이 같은 미인이 약속이 없을 리 없지. 안 그랬으면 나도 다른 친구랑 약속 안 잡았지. 나 약속 안 잡았으면 꼼짝 없이 혼자서 서울랜드에서 야간개장 구경 할 뻔 했네.”
물론 겉치레 말이지만 예슬이가 다시 활기차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게! 아깝다. 시현오빠, 서울랜드 야간개장 왕따처럼 혼자 구경 할 뻔 했는데. 치. 어서 가요. 나도 시현오빠 데려다 주고, 친구들 만나야 하니까.”
“응. 그래. 예슬아. 예슬이는 어디서 친구들 만나기로 했어?”
예슬이가 머뭇거리며 말한다.
“응. 서울랜드로 오기로 했어요. 시현오빠 먼저 가요. 나는 여기서 친구들 기다려야 하니까.”
예슬이와 나는 손을 잡고 천천히 서울랜드 입구로 걸어간다.
수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서울랜드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지, 행복한 얼굴로 서울랜드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하늘하늘 거리는 풍선을 손에 쥐고 있고, 연인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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