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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이 살아남는 법-315화 (315/413)

〈 315화 〉 예슬이와 놀이동산에서 (5)

* * *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갈팡질팡 한다.

나는 재빨리 예슬이를 부축해 주었다.

­물컹물컹! 탱글탱글!

예슬이의 풍만한 젖가슴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예슬이를 부축해서는 의자에 앉혔다.

“예슬아. 괜찮아? 무서운 거 못타면 못 탄다고 말을 하지. 왜 바보같이 끝까지 탄다고 해서.”

예슬이가 아직까지 창백한 얼굴로 나를 보며 말한다.

“아, 아니예요. 무섭긴 누가 무서워. 얼마나 재미있었는데요!”

에휴. 하여간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의 여자들의 가오란.

그렇게 울면서 아빠를 찾았으면서, 아직까지 남녀역전 세계말로 여자다운 척을 하고 있다.

“진짜 하나도 안 무서웠어? 그런데 왜 그렇게 아빠를 찾으면서 엉엉 울었던 건데?”

“나, 나. 아빠 찾은 적 없어요. 시현오빠가 잘 못 들은 거야.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아빠를 찾으면서 울어요. 울기는.......”

예슬이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부정을 한다.

흐음. 요것 봐라. 쉽게는 인정 안 하겠네.

“그거 시현오빠가 잘 못들은 거예요. 나 아니고. 그, 그래. 제 옆에 앉은 초딩 남자애가 소리친 건데, 시현오빠가 잘 못 들었어요!!”

그렇게 서럽게 아빠 찾으면서 오열해 놓고는 이제 와서 발뺌을 하려고 한다.

아직 눈물 자국도 눈가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래? 그럼, 내가 잘 못 들었나 보다. 그러면 우리 다음에는 저거 탈까?”

나는 손을 들어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놀이기구를 가리켰다.

도깨비 바람이라는 놀이기구였는데, 무섭기로 따지자면 샷드롭보다도 더 한 놀이기구였다.

더군다나 놀이기구 쿨타임도 길어서, 놀이기구를 잘 못 타는 초보자가 탔다가는 그야 말로 지옥을 몇 번 왔다, 갔다 할 정도의 난이도였다.

놀이기구에 거꾸로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예슬이가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저, 저거? 흐끅! 시, 시현오빠가 원하면 타, 탈까? 흐. 흐끅.”

예슬이의 표정을 보니 완전히 창백하게 시체처럼 얼어붙었다.

에휴, 곧 죽어도 나에게 겁쟁이로 보이기는 싫었나 보다.

그래, 내가졌다. 졌어!

나는 예슬이의 손을 잡고 도깨비 바람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깨비 바람과 멀어지자 예슬이의 얼굴에도 다시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시현오빠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나는 말없이 예슬이의 손을 잡고는 아이들로 가득한 곳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 곳에는 바로 놀이동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회전목마가 있었다.

샷드롭 탈 때 예슬이의 패닉 온 상태를 보니 예슬이가 소화 할 만한 놀이기구는 회전목마, 범버카 같은 초딩용 놀이기구뿐이었다.

나는 예슬이를 목마에 태우고 나도 뒤에 탔다.

“이거 너무 어린이용 놀이기구 아니예요?”

예슬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은 서울랜드에 오고 처음으로 편안해 보였다.

“아니야, 이거 어른들도 많이 타거든. 그 드라마에서도 남자 여자 주인공이 회전목마 많이 타잖아.”

“아, 맞다. 헤헤.”

예슬이가 활짝 웃는데 보조개가 귀엽게 들어간다.

“그런데 회전목마 시현오빠랑 같이 타니까. 꼭 우리가 커플인 것 같다.”

“커플? 우리 그러면 오늘부터 1일 할까?”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예슬이의 얼굴이 발그레 졌다.

“노, 농담하지 마요. 시현오빠. 치.”

그렇게 예슬이와 담소를 주고받는데 회전목마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같이 회전목마도 타고 사진도 찍으니까 진짜 우리가 무슨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된 것 같다.

느리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그리고 잔잔하게 들려오는 신비한 오르골 소리.

동화 속 세계에 빠져든 것 같다.

예슬이가 목마에 탄 채 쭈뼛 거리며 나를 자꾸만 할 말이 있는 듯 바라본다.

“예슬아, 왜 그래? 뭐 할 말 있어?”

예슬이가 나를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몇 번 떼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 끝내 입을 열었다.

“저기 시현오빠. 실은 나 오늘 오빠에게 꼭 할 말이 있어. 사실 며칠 전부터 말할까 말까 고민만 했는데요. 오늘 시현오빠를 보니 지금 이 순간....... 꼭 말해야 할 것 같아요..”

예슬이가 분위기를 잡는다.

“응 뭔데? 말해 봐. 예슬아.”

“그게. 말이에요. 시현오빠, 오빠가 괜찮으면. 나.... 나.......”

그 다음 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지 예슬이가 망설인다.

내가 재촉하지 않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예슬이가 마침내 망설임을 끝내고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내 뱉었다.

“시현오빠. 오빠만 괜찮다면........ 나, 시현오빠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어요..... 차분하게 오빠 대답을 기다리고 싶었지만, 오빠를 만나면 만날수록 오빠가 너무나 좋아서 누구에게도 오빠를 뺏기고 싶지 않아요.”

여자친구?

예슬이가 내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나는 천천히 생각을 해 보았지만, 결론은 바로 나왔다.

예슬이 같이 귀엽고 예쁜 여자가 내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니.

물론 미유키도.

강세나도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여자들이지만.

지금 나의 마음은 정해졌다.

예슬이가 내 대답을 기다리며 초조한지 손톱을 예쁜 입술로 깨물며 바라보고 있다.

“오, 오빠?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요? 미안. 내가 너무 조급했나 봐요. 그냥 제가 말한 것 잊으세요!! 언제까지든 기다릴게요, 시현오빠 마음이.......”

나는 예슬이를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니. 예슬아. 그럴필요 없어. 오늘부터 예슬이는 내 여자친구야.”

내 갑작스러운 말에 예슬이가 놀랐는지 귀여운 눈이 더 동그랗게 커졌다.

“시현오빠. 바, 방금 뭐라고 한 거예요?”

“예슬아 못 들었어? 그러면, 이리 가까이 와봐.”

내가 예슬이를 부르자 예슬이가 회전목마를 탄 채 허리를 뻗어 나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가까이에서 본 예슬이의 작은 브이라인 얼굴은 그야말로 동화 속에 나오는 공주님처럼 완벽했다.

단아하게 뻗은 눈썹과 눈처럼 하얀 피부.

토끼처럼 큰 눈.

그리고 귀여운 코.

모든 것 하나 안 예쁜 곳이 없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예슬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루비처럼 반짝이는 붉은 입술을 향해 내 입술을 덮쳐갔다.

상큼한 과일향이 나는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감촉.

투명한 눈처럼 반짝거리는.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

그 것이 바로 내 스물 여섯 살 여름.

내 첫 번째 여자 친구 한예슬과의 설레이는 키스였다.

회전목마에서 내린 예슬이와 나는 살짝 어색해졌다.

예슬이가 내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고백하기 전 까지는 그저 섹스가 가능한 사람 여자친구 정도였다면, 지금의 예슬이와 나는........ 다른 의미로서의 여자친구와 남자친구.

즉 애인 사이가 되었다.

예슬이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먼저 말을 건다.

“오빠. 아, 아니 자기야? 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내가 살게요.”

예슬이가 애인 사이라는 관계가 의식이 되는 듯 말투가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평소에 나는 자기 또는 허니 라고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닭살 돋기 때문이다.

“예슬아. 그냥 우리...... 말은 예전처럼 편하게 하자. 예슬이 네가 내 여자친구라고 해도 자기라고고 하는 건 어색해.”

예슬이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그. 그럴까요? 아니 나는 드라마에서 보통 애인 사이 일 때는 자기라고 불러서, 나도 해 봤는데. 역시 어색하다. 그쵸? 나도 시현오빠랑 그냥 편하게 말하는 게 더 좋아요. 가요! 오빠. 나 배고파요.”

예슬이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고 서울랜드 내 식당이 모여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놀이동산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보통 놀이동산에서 파는 음식들은 그 퀼리티에 비해 폭리를 취한다.

예슬이가 꽤나 번듯 해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는다.

“여기 메뉴판 주세요!”

점원이 가져다 준 메뉴 판을 보며 예슬이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다.

“시현오빠. 뭐 먹고 싶어요? 먹고 싶은 거 다 골라요! 스테이크 먹을래요? 아니면 해산물 요리?”

내 여자친구 예슬이가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꽤나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제 막 걸그룹으로 데뷔한 예슬이의 자금 사정은 사실 뻔하다.

보통 잘 나가는 걸그룹이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회사와의 정산관계가 다 끝나고 나서 부터다.

보통 신입 걸그룹 같은 경우에는 그저 회사에 갚아야 할 빛만 싸여 있기 마련이다.

내가 이 번듯한 식당에서 스테이크라도 먹겠다고 나서면, 예슬이가 그동안 피자 아르바이트 하며 힘들게 번 돈이 점심 한 끼로 사라질 판이다.

내가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랑 연애 할 때, 여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격식 있고 분위기 있는 고급 식당에 데리고 간다.

그리고 힘들게 번 월급을 식사 한 끼로 갈아 넣는다.

그런 남자들의 마음을 잘 아는 내가 예슬이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예슬아, 있잖아. 우리 그냥 분식 먹으면 안 될까? 사실 아까부터 떡볶이가 먹고 싶었어.”

예슬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응? 시현오빠. 나 오늘 고백 성공하면 오빠랑 여기 오려고 할인 카드도 가지고 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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