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돌아온 예슬이와의 아찔한 데이트(2)
* * *
“알겠어. 예슬아. 그럼 우리 언제 데이트 할까?”
“허락해주는 거예요. 오빠?”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예슬이의 귀여운 얼굴에 활짝 미소가 만개한다.
“고마워요. 오빠! 하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예슬이는 긴장을 많이 했었는지 눈을 감고 다행이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데, 우리 언제 데이트 해?”
예슬이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저, 사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요. 회사로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든 오빠에게 잘 보여서 공식 커플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러면 내일 어때? 예슬아?”
“좋아요. 오빠. 내일.”
예슬이의 아름다운 눈이 귀엽게 반짝인다.
“그런데 예슬이가 나와 하고 싶다는 데이트가........?”
“제가 오빠와 하고 싶은 데이트는요........”
* * *
다음 날 늦은 오후.
회사가 끝나고 예슬이와 만나기 위해 그녀가 있는 피자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예슬이가 나와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데이트가 취할 때 까지 술 마셔보는 것이었다니.’
사실 전혀 예상치 못한 데이트다.
‘그냥 만나는 건 좀 허전하니까. 남녀역전 세계에서는 좀 튀는 행동일지 몰라도.......’
나는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 놓은 액세서리 집 근처 꽃집에 가서, 라일락과 장미가 한 아름 담긴 꽃다발을 골랐다.
사실 원래 세계에서 데이트를 해 본적이 없어서인지.
서프라이즈 선물로 건넨 꽃을 받아 들고 놀란 표정으로 활짝 미소 짓는 여자친구를 보는 것이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한 가지였다.
이런 건 내가 살던 원래 세계에서는 여친 있는 부러운 놈들만 할 수 있는 이벤트였으니까.
꽃을 포장해 달라고 하자, 꽃집 사장님 아저씨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총각. 무슨 남자가 여자친구 준다고 꽃다발을 사? 그것도 이렇게 예쁜 꽃다발을. 그 총각 여자친구가 누군지는 몰라도 복 받았네. 진짜.”
나는 가볍게 웃어 넘겼다.
하긴 남역 세계에서 남자가 여자를 위해 꽃을 사지는 않을 테니.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다고 하긴 했었는데. 한국에는 그런 젊은 남자들이 거의 없는데. 총각 낭만이 있네. 그리고 외모가 아주 번듯 한 것이 나 어렸을 적도 생각나고 말이야.”
비록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꽃집 아저씨는 마치 마스크 속 얼굴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아저씨의 외모가..... 산적처럼 생겼다는 것 뿐이다.
꽃가게 주인아저씨가 나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듯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헐.
아저씨는 젊었을 때도, 결코 저랑 닮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하여간, 요즘 젊은 남자 녀석들은 여자들이 다들 오냐오냐 하면서 받아주니까.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니까. 그래서 인지 낭만이 없어 낭만이. 좋다. 총각은 낭만이 좀 있네. 내가 특별히 총각은 20프로 할인 해 줄게. 나 젊었을 때가 생각나서 말이야. 미영이는 잘 살고 있으려나.......”
오! 이게 웬 행운?
산적처럼 생긴 꽃가게 아저씨가 자꾸 나를 자기 젊은 시절과 투영시키며 감정이입한다.
뭐 어찌 되었든 꽃다발 가격 대폭 할인이라니.......
그걸로 충분히 산적 아저씨의 젊은 시절 낭만을 회상시키는 희생양이 되어 줄 수 있다.
오늘 예슬이와의 데이트도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는 산적같이 생긴 꽃가게 사장님에게 꾸벅 90도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꽃가게를 나왔다. 이제 제법 하늘이 어두워졌다.
나는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예슬이가 있는 피자집으로 가는데, 남자들이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어? 뭐야. 이건.
아, 그렇군.
반대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간다.
남녀가 역전된 세계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다들 내가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꽃다발을 받은 걸로 착각하는구나.
아, 그렇게 생각하니 또 존나 창피하네.
남자 새끼가 여자한테 선물 받은 꽃다발이나 들고 다니고.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최대한 빨리 걸어서 예슬이가 일하는 곳에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예슬이가 말한 언니로 보이는 피자가게 사장님이 나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예슬이 있어요?”
“예슬이요??”
피자가게 누나가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예슬이는 현재 소속사를 피해 잠시 숨어있는 상태니까, 혹시 소속사에서 예슬이를 잡으러 나온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저 예슬이랑 오늘 만나기로 한 유시현이라고 하는데요.”
“아~ 시현씨!”
피자가게 사장님이 그제야 활짝 미소를 짓는다.
“네.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예슬이한테 시현씨 왔다고 전달 해 드릴게요. 그런데, 꽃다발 예쁘네요. 선물 받으셨나 봐요?”
피자 가게 사장 누나가 장미와 라일락이 섞인 꽃다발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피자 가게 사장 누나에게 말했다.
“아니요. 이거 예슬이 주려고 산건데요. 아, 가지고 오는데 쪽팔려 죽는 줄 알았어요. 사람들이 쳐다봐서.”
피자가게 사장 누나가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네? 예슬이한테 주려고 꽃다발을 샀다고요? 남자가요? 여자한테 꽃다발을?”
아, 역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주는 건 남녀역전 세계에서는 특별한 일이구나.
“네. 그, 죄송한데 예슬이 좀 빨리 불러주시겠어요?”
“아? 네? 네.......”
피자가게 사장 누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모자를 쓰고 아디더스 트레이닝복을 입은 예슬이가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심플한 트레이닝 복 옷차림이었는데도 확실히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탱탱한 콜라병 몸매여서 그런지 옷 태가 확 살았다.
오히려 막 예쁘게 꾸미고 차려입은 것 보다 약간 보이시한 느낌이 더 매력 있어 보였다.
풋풋한 학생의 느낌이라고 할까?
예슬이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시현오빠. 그 꽃다발 뭐에요?”
나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예슬이에게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응, 예슬이 주려고. 예슬이가 예뻐서 그런지 꽃이랑 진짜 잘 어울린다. 화사한 게.”
예슬이의 얼굴이 화끈화끈 붉게 달아올랐다.
“아, 고, 고마워요. 오빠 가, 가요! 아이씨! 언니! 웃지 마. 웃지 말라고!”
예슬이가 키득 거리며 꽃을 든 예슬이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피자집 사장 언니에게 큰 소리 치고는 얼른 내손을 잡고는 밖으로 나왔다.
예슬이의 검은 모자 속으로 보이는 빨개진 작은 예쁜 얼굴이 귀여웠다.
“예슬아, 뭘 그렇게 부끄러워하고 그래. 누가 보면 너 남자한테 꽃 한 번도 안 받아 본 줄 알겠다.”
예슬이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처, 처음 맞는데요. 남자한테 꽃 받아 본거.”
어? 진짜 처음인가 보구나.
이렇게 예쁜데?
남자한테 고백 받아 본 적이 없나?
“응? 뭐야? 그러면 여태까지 너 좋다고 꽃 선물 한 애도 없었어? 예슬이 너 대한민국 최고 아이돌 Z드래곤도 고백할 정도로 귀엽고 예쁜데?”
안 그래도 빨갛던 예슬이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완전 홍당무 같아졌다.
“그, 남자 애들한테 손 편지는 받아 본 적 있는데요, 꽃은 처음. 그런데 오빠. 보통 남자애들은 너처럼 그런 얘기 잘 못하던데........ 사람 부끄럽게.”
나는 잡고 있는 예슬이의 작고 하얀 손을 더 꽉 잡으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응? 얘기? 무슨 얘기?”
예슬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들릴 듯 말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막 예쁘다거나 그런 얘기.........”
“아~ 그거야. 다른 남자들이 용기가 없어서 그런 건가 보지. 예슬이처럼 예쁜 여자랑 데이트 하는데 당연히 남자가 먼저 용기를 내야지.”
예슬이가 부끄러운지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바라봤다.
크고 맑은 토끼처럼 아름다운 눈이다.
“아이. 오빠. 진짜. 그만하라니까요. 부끄럽게......... 그보다 오늘 왜 이렇게 멋있게 입고 왔어요? 평소에 멋없었다는 게 아니라, 오늘 따라 옷도 진짜 남자 아이돌같이 입고 오고. 나는 트레이닝복이나 입고 있는데. 아,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집에 가서 예쁘게 입고 올걸. 아 쪽팔려.”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뭐. 예슬이 너는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옷이 더 잘 어울려. 청순하게 예쁘게 생겨서.”
정말 거짓말 하나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말했다.
예슬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오빠. 진짜 계속 그렇게 부끄러운 얘기 막 할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전혀 싫은 투가 아니다.
오히려 좋아서 죽겠는데 표현을 못하는 것 같다.
“예슬아, 그런데 너 손 따뜻하다. 부드럽고......”
예슬이가 수줍은 얼굴로 나와 맞잡은 자기 손을 바라본다.
아까 피자가게에서 나오면서 얼떨결에 잡았던 손을 지금까지 잡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눈치 첸 것 같다.
처음 잡아보는 손은 아니지만, 남자와 데이트 경험이 거의 없는 예슬이는 부끄러운가 보다.
예슬이가 급하게 손을 빼며 말했다.
“미, 미안해요! 오빠. 나도 모르게 손을 잡고 있었네. 아까 너무 창피해서....... 빨리나가자고 손을 잡았는데 아직까지 잡고 있었어요.”
나는 예슬이를 다시 꽈악 잡으며 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