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화 〉 돌아온 예슬이와의 아찔한 데이트(1)
* * *
“그럼 이제 가야죠. 팀장님. 그리고....... 파이널 테스트 결과 나왔거든요?”
“파이널 테스트 결과요!!”
삐져서 고개를 돌렸던 아영팀장이 긴장된 얼굴로 다시 나를 바라본다.
“네. 아영팀장님......... 아쉽게도!”
아쉽게도 라는 말에 아영팀장의 눈빛이 달라진다.
사자한테 쫒기는 토끼같이 다급한 표정이다.
“왜...... 왜요! 설마 저 파이널테스트 불합격 한 거예요? 아, 안 돼! 주, 죽기 싫단 말이에요....... 시현씨. 미, 미안해요. 혹시 나 시현씨 만족 못 시켜 준거야? 다시 할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 이번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시현씨의 충실한 노예가 될게요. 말만 해요. 시현씨가 원하는 건 모든지 할게요. 흐윽”
아영팀장이 그 높던 자존심을 내려놓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물론 아영팀장을 더 몰아세울 수도 있지만 이쯤에서 용서해 주기로 한다.
“하...... 아쉽네. 팀장님 노예처럼 부려 먹을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네??? 시현씨이. 제발. 흐윽. 사, 살려 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아영팀장이 내 발을 붙잡고 매달린다.
“하아.... 팀장님이 죽긴 왜 죽어요. 합격입니다. 파이널 테스트. 다만 점수 결과가 서유리씨, 김미희 주임, 최다정 차장보다 낮을 뿐. 팀장님인 주제에 겨우 80점이 뭐에요? 1점만 더 낮았어도 저승구경 갈 뻔 했잖아요. 노력합시다. 팀장님. 진짜.......”
타박을 주었지만 내 타박은 들리지도 않는지 아영팀장님 양손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사, 살았다! 살았어!!!!! 하아하아....... 진짜 저 파이널테스트 통과한 것 맞죠?”
긴장이 풀려서인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아영팀장.
“네. 그러니까 앞으로 잘 하세요. 알겠죠? 안 그러면 파이널 테스트 통과한 것 취소하고 확 낙제 시켜 버릴 테니까.”
“아, 알았어요. 시현씨.”
아영팀장이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제 원래의 남녀역전 세계 유시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영팀장과 헤어진 후 원래 세계의 유시현B를 소환한다.
드디어 회사에서 나를 괴롭혔던 페미 걸레들과의 악연은 그녀들을 100% 완벽하게 조교함으로서 끝이 났다.
드디어 남녀역전 세계 미소년으로 빙의된 내 퀘스트가 끝이 난 것이다.
‘하아, 막상 페미걸레들을 다 조교하고 나니까 시원하긴 하지만, 좀 심심하기도 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컴퓨터 전원을 켰다.
이리저리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카톡이 울린다.
카톡! 카톡!
‘뭐지. 내 카톡에서 알림 설정이 되어 있는 건 세나, 미유키, 진영이누나...... 정도 밖에 없는데. 진영이 누나한테 카톡 온 건가?’
핸드폰을 들어서 카톡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서 온 카톡이었다.
* * *
[예슬이: 오빠......... 저 너무 힘들어요. 오빠, 제발 연락 좀 주세요.]
예슬이가........
아픈 기억만 남기고 떠나갔던 예슬이가.
나에게.
SOS 요청을 보냈다.
* * *
저녁노을이 지는 아파트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 예슬이와의 추억을 떠올려 본다.
피자 배달부와 손님으로 만났었던 첫 만남.
너무나 아름다운 예슬이의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었다.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내 이상형이 설마 현실 속에 존재 할 줄이야.
그렇게 그녀와 만난 후.
우리는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썸을 타고 설렘을 이어갔다.
그리고 예슬이와의 첫 번째 데이트.
거리에서 공연을 했던 특별한 이벤트
한강에서의 첫 키스.
그리고.......
내 설레는 고백에 미안하다고 대답하며 돌아섰던 그녀.
나에게 첫 실연의 아픔을 주었던 예슬이를 나는 지금 홀로 놀이터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오빠........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어요?”
익숙한 귀여운 목소리.
그리고 꿈속에서도 잊지 못했던 예슬이의 청순한 얼굴
어느 사이엔가 예슬이가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예슬아.......”
막상 오랜만에 만난 예슬이를 보자 말문이 막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건 예슬이도 마찬가지인지 말없이 아련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예슬이의 크고 아름다운 눈과 마주쳤다.
마치 영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매력적인 예슬이의 모습.
그녀에게서만 빛이 나는 것 같다.
“미안해요. 오빠........ 제가, 다 망쳐버렸어요. 오빠가...... 오빠가 용기내서 말 해 주었는데.”
또르르르.......
예슬이의 눈에서 이슬같이 아름다운 투명한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예슬아........ 괜찮아.”
나는 부드럽게 예슬이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빠.......... 미안해요. 저 이렇게 되어서야 오빠한테 올 수 있었어요. 오빠가 없어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수록 더욱 더 그녀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투명한 물방울이 굵어진다.
하아.......
미치겠다.
눈물을 흘릴수록 더 아름답고 청순해 보이는 예슬이.
예슬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다.
“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오빠 없이는.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걸그룹으로 데뷔했지만. 오빠가 없으니까, 춤도 노래도.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제야.......”
예슬이가 내 가슴에 그녀의 작고 아름다운 얼굴을 기대어 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안은 채 아이처럼 섬세하고 신비로운 검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는 확신 할 수 있었어요. 오빠 없이는.......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의미 없다는 것을.......”
* * *
예슬이의 고백 후.
나와 예슬이는 그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예슬아. Z드래곤하고는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거지?”
“네. 오빠. 사실 Z드래곤 오빠가 고백한 적은 있었지만.......”
“고백?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돌 Z드래곤이 예슬이한테?”
“네. 오빠도 의외죠? 저도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하지만. 오빠.”
예슬이가 하얗고 예쁜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귀엽게 웃는다.
“저는 오빠 말고는 그 누구도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요. Z드래곤 오빠도 마찬가지예요. 좋은 오빠이기는 하지만. 오빠처럼 제 마음을 설레게 하지는 못 하는 걸요.”
어?
설마 나.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이라는 Z드래곤을 이겨 버린 건가?
구찌, 프라다 같은 최상위 티어 명품 브랜드의 홍보대사이자 세계적인 스타들에게 러브콜 받고 있는 Z드래곤을 누르고 예슬이를 차지하다니.
이건 그야말로 뽕이 차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Z드래곤을 차버릴 정도의 극강의 미모에 현재 가장 떠오르는 여자 걸그룹의 무려 비쥬얼 센터 한예슬.
어떻게 보면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자에게 고백 받은 전생에 세계를 구한 남자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슬이가 더욱 값지고 빛나 보인다.
“그런데 예슬아. 소속사에서 찾고 있는 것 같던데?”
“아...... 네. 오빠. 사실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몰래 도망쳐 나오다 매니저 언니한테 딱 걸려서 정말 한동안 기계처럼 일만 했었거든요.”
예슬이가 장난스럽게 나를 바라보며 윙크를 한다.
“그렇게 마음 놓게 만들어 놓고, 매니저 언니들이 방심했을 때 스슥! 사라져 버렸죠. 헤헤.”
“그러다 걸리면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그건 알지만....... 오빠가 보고 싶어서 숨이 안 쉬어 질 정도인데 어떡해요! 이건 다 오빠 책임이에요. 그리고....... 그래도 급한 일은 일단 전부 다 해놓고 나왔어요.”
나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구나.
우리 예슬이.
생각보다 나를 훨씬 더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은 어디에 있어?”
“지금은...... 원래 일했던 피자가게에서 잠시 신세지고 있어요. 언니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처음 만나게 해 주었던 그 피자가게?”
“네. 오빠. 거기서 오빠 생각 많이 했어요. 하아...... 이제 속이 다 시원해요. 오빠 만나서 하고 싶은 말 다 했으니까요.”
“예슬아.......”
“오빠, 저 염치없는 것 알지만. 오빠한테 부탁이 있어요.”
“부탁?”
“네. 저 오빠랑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딱 두 번만 만나주시면 안 되요? 그 후에 제 고백에 대한 오빠 대답 기다릴게요. 저 알고 있어요. 한 번 상처 입은 마음 되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래도 저 용기 냈으니까, 딱 두 번만 만나주세요.”
나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예슬이가 나에게 상처를 준 건 사실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여자에게 한 첫 고백이었고 그 만큼 상처도 컸다.
하지만 사실 그 것 보다 지금 당장 예슬이의 고백에 대답하지 못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건 바로........
세나와 미유키.
나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그녀들이 나에게 고백을 하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미유키는 내 대신 칼까지 대신 맞은 생명의 은인이자, 나 같은 녀석은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집안의 손녀딸이다.
그리고 세나.
내 마음 속까지 포근하게 만들어주는 그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정말 세상에서 미리 정해진 인연이라는 것이 있으면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기에 비록 나 역시 예슬이를 마음속 깊이 좋아하지만 지금 당장 그녀의 고백에 YES라고 대답할 수 없다.
하지만 예슬이가 원하는 두 번의 데이트.
그건 오히려 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마음을 확실하게 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