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세나와 수상한 강아지
* * *
이미 원래 세계에서 만기 병장 제대를 한 유시현.
고문관이라는 말을 모를 리가 없다.
“아....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고양이 배변 용품은 필요 없으니. 먹이하고 간식만 사면, 되는 거지?”
“고양이 먹이하고 간식이요? 시나는 햄버거랑 오렌지 주스만 있으면 되는데.... 그치 시나야?”
시현이의 품에 안겨있는 시나가 세나와 눈빛을 마주치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 거리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대가리 박을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아직 어리지만 시나의 동물적인 생존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냐, 냐오옹~! 끄덕끄덕.”
“봐요. 오빠. 시나도 그렇다잖아요. 비타민 C가 듬뿍 들어간 오렌지주스랑 햄버거에 든 고기 먹고 강해져야 일진 고양이들한테 안 맞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요!”
고양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세나는 고양이도 사람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어렸을 적 고양이 집사로서 고양이님을 모셔본 적이 있는 유시현.
그가 진심이 되어 심각한 목소리로 말한다.
“안 돼! 세나야. 오렌지 주스에 햄버거라니! 그건 고양이님을 모시는 집사로서의 도리가 아니야! 사람이 먹는 음식 먹고 시나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 아파요? 시나가요?”
“응. 세나야. 고양이님은 하등한 닝겐 따위가 먹는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고양이님에게 바칠 먹이랑 간식부터 사자.”
다른 사람의 말이라면 세나는 믿지 않았겠지만, 유시현의 말은 그녀에게 곧 성경과 같다.
고개를 끄덕 끄덕 거리며 유시현을 따라간다.
그렇게 애완용품 상점에 들어가서 시나의 먹이와 간식을 사온 세나와 유시현.
유시현의 품에 안긴 시나는 흐뭇하게 닝겐 주인들의 손에 들린 간식을 바라본다.
‘이제야 붉은 머리 닝겐이 집사 구실을 좀 하는 구나!’ 라고 갸르릉~ 거리는데.
지저분하게 털이 길고 잔뜩 흙이 묻은 건방진 녀석이 그들의 앞을 막는다.
“멍! 멍! 헥헥헥.”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건 고양이의 숙적인 강아지.
유시현이 자신들 앞에 서서 헥헥 거리는 강아지를 향해 손을 내민다.
“응? 얘는 누구지? 애완샵에서 기르는 강아지인가?”
유시현과 세나를 바라보며 손을 척! 드는 강아지.
자연스럽게 유시현이 손에 들고 있던 시나의 간식 중 강아지도 먹을 만한 생선으로 만든 어묵을 내민다.
“배고프니? 그렇다고 탈출하면 안 되지. 이거 먹고 얼른 다시 샵으로 돌아가렴.”
마음착한 유시현은 특히 고양이, 강아지 같은 동물에 약하다.
하지만 세나는 다르다.
‘흥. 개녀석. 감히 우리 오빠한테 꼬리쳐서 시나 간식을 얻어내다니. 제법 사회생활 좀 하는군. 굶어 죽지는 안겠어.’
하지만 세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강아지는 유시현이 내민 간식에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한 눈빛으로 세나를 바라보며, 손을 휘저으며 낑낑 거리고 있다.
“세나야. 이 강아지. 너를 보면서 낑낑 되는데? 세나가 한 번 간식 줘 볼래?”
“네?”
사실 강아지 따위.
그것도 더러운 강아지 따위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세나이지만, 시현 오빠의 부탁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강아지에게 간식을 내민다.
“개. 우리 오빠가 이거 너 주래.”
마치 초등학생이 선생님이 시켜서 친구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는 것 같은 말투다.
헥헥헥~!
지저분하게 털이 길고 잔뜩 흙이 묻은 강아지가 그제야 마음에 드는 듯 세나의 손에서 간식을 받아서 맛있게 먹기 시작한다.
찹촵촵~!
그런데 강아지의 눈빛은 간식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세나의 하얗고 예쁜 허벅지를 향하고 있다.
‘뭔가 수상한데... 저 녀석.’
세나는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오빠. 개 녀석.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눈빛이 요렇게... 축 처져서 계속 제 다리를 보는 것 같아요.”
“응? 개가 세나 다리를 보고 있다고? 에이. 아니야. 세나야. 무슨 개가 변태도 아니고. 귀엽기만 한 걸. 자. 봐봐. 세나야.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애완동물들을 다루는 것에는 제법 소질이 있는 유시현.
그가 손을 들어 빵~! 권총을 쏘는 것처럼 흉내를 낸다.
“빵!”
하지만 유시현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는 강아지.
세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유시현과 강아지를 바라본다.
“어... 이 강아지 훈련 받은 강아지가 아닌가? 보통 빵! 정도는 할 줄 아는데. 그럼 이건 하려나...”
유시현이 이번에는 강아지를 향해 손을 내민다.
“손! 강아지. 손!”
당연하게도 강아지가 손을 들어 유시현에게 내밀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더러운 강아지는 그대로 헥헥... 거리며 멀뚱멀뚱 보고만 있다.
“오빠. 이 녀석. 오빠가 하는 말 못 알아듣나 봐요. 쓸모없는 녀석 같아요. 감히 우리 오빠 명령도 무시하고. 제가 대가리 박아 좀 시키면 알아들을 텐데...”
“아... 아마 손! 이나. 빵! 같은 훈련은 안 받은 강아지인가 보다. 세나야. 하긴 모든 강아지가 똑똑할 순 없으니...”
애완동물을 다루는 것에는 자신 있던 유시현.
그가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고 유시현이야 의기소침하던 말던, 세나에게 허벅지를 바라보며 야릇한 시선을 보내는 강아지.
세나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불평을 한다.
“개 녀석. 눈빛도 이상하고... 왜 자꾸 내 허벅지를 보고 있는 건데?”
그런데 세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강아지가 헥헥! 거리며 다가와 세나의 하얗고 예쁜 허벅지에 손을 척~! 하고 올린다.
“무, 무슨 짓이야!”
당황한 세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오빠! 이 녀석 역시 이상해요! 눈빛도 음흉하고. 제 허벅지에 손을 척~! 하고 올렸다니까요!”
“응? 세나야. 설마. 어떻게 강아지가 허벅지를 알아들어. 손이랑 빵도 못 알아듣는데. 그냥 우연이야. 세나야.”
“아, 아닌데....”
유시현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자 왠지 억울해진 세나.
그녀가 다시 한 번 자리에 앉아서는, 강아지를 바라본다.
“개! 한 번더 기회를 준다. 손!”
하지만 역시 반응이 없다.
“빵!”
역시나 헥헥 거리기만 하는 강아지.
세나가 의심의 눈빛으로 강아지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가, 가슴!”
그러자.
그 전까지는 전혀 반응이 없던 강아지 녀석이 척~! 하고 세나의 가슴을 향해 손을 올린다.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이, 변, 변태 녀석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척 올리고 있는 강아지를 향해 세나가 딱밤을 콩! 먹였다.
그러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유시현을 바라보는 강아지.
“세나야! 왜 강아지를 때리고 그래. 보아하니 주인도 없는 불쌍한 강아지 같은데.”
처음에는 애견샵에서 탈출했다고 생각했지만.
더럽게 흙이 덕지덕지 묻고 전혀 관리가 안 되어 있는 강아지.
아무래도 누군가가 버린 강아지 같다.
세나는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강아지가 이번에는 유시현을 향해 다가간다.
세나에게 한 대 쥐어터지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불쌍한 표정.
유시현이 쓰다듬어서 달래 주려고 하지만 강아지가 거부한다.
그리고 입맛을 다시며 세나를 바라보는 강아지.
유시현 보다는 세나와 가까이 있고 싶지만, 무서워서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다.
더러운 강아지의 음흉한 눈동자가 계속해서 세나의 은밀한 부위만을 향한다.
그제야 유시현도 이 강아지 녀석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시현도 세나가 했던 것처럼....
“강아지 손!”
반응이 없다.
“빵!”
역시나.
유시현이 한 숨을 쉬며....
마지막으로 말 해 본다.
“거시기?”
그러자.
더러운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우며, 유시현의 중요한 부분에 손을 척! 하고 올린다.
도대체 이 강아지 녀석은 어떤 삶을 살아 왔기에!
아는 단어가, 허벅지. 가슴. 거시기 밖에 없는 것일까!
마치 거시기를 알아들었으니 칭찬해 주라는 듯 헥헥 거리며 유시현을 바라보는 강아지.
그 모습이 너무 능청스러워서 유시현도 자기도 모르게 강아지를 뻥! 차고 말았다.
“이 변태 녀석아!”
세나와 마찬가지로 유시현도 씩씩거리며 변태 강아지를 쫒아 보낸다.
아무리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유시현이라도 이건 선을 넘었다.
깨겡~! 거리면서 뒤로 물러 선 강아지.
마치 먹잇감을 놓쳐버려서 아쉬운 표정으로 음흉하게 세나를 바라보다가 곧 뒷모습이 예뻐 보이는 여자를 쫄래쫄래 따라가기 시작한다.
새로운 타깃을 찾은 것이다.
“뭐, 저런 변태 강아지 녀석이 다 있어!”
아직도 어이없다는 듯 유시현이 고개를 흔든다.
“거 봐요. 오빠. 제 말이 맞죠? 눈빛이 음흉했다니까요.”
“그러게. 우리 세나 말처럼 저 녀석. 진짜 변태 개였어. 의심해서 미안해. 앞으로 세나 말은 무조건 믿을게...”
다시 시나를 한 손에 안은 유시현이 세나의 손을 잡고 한강으로 향한다.
드디어 세나가 가고 싶다던 한강으로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 가는 것이다.
‘시현 오빠와 함께 보는 저녁노을이라니. 너무 설레!’
‘처음으로 여자와 함께 보는 저녁노을이 여신처럼 아름다운 세나라니.’
세나와 유시현은 한강에서 저녁노을 데이트를 할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설렌 표정이다.
하지만.
유시현의 팔에 안겨 있는 시나는 동물 적인 감각으로 기분 나쁜 눈빛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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