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 미유키와 데이트(5)
* * *
“혹시라도 시장이라 보는 사람 많다고 내가 못 건들 줄 아나본데. 사람 잘 못 본거야! 우리 오빠 친구가 이 시장에서 전당포 한다!”
시장에서 전당포 하는 게 빽인가?
무슨 원빈도 아니고.
미유키는 이 시장 전체를 통으로 매입 할 수 있을 정도의 부자인데.
미유키의 정체를 알면 저 멧돼지 아줌마는 심장마비 걸리겠네.
미유키가 전당포라는 말을 듣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귓속말로 물어본다.
“오빠. 전당포가 뭐에요?”
“전당포요? 전당포는 물건을 받고 돈을 빌려주는 곳이에요. 미유키.”
역시 아무리 한국말을 잘해도 미유키도 모르는 한국말이 있다.
실제 생활에서 자주 안 쓰는 단어들은 미유키도 모르기 마련이다.
“아! 그러니까 저 멧돼지 아줌마 오빠 친구가 사채업하는 야쿠자라 이 말이죠? 그러면 저 아줌마도 조직원. 안 봐줘도 되겠군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미유키의 오해로 전당포하는 아저씨가 야쿠자가 되어버리고, 멧돼지 아줌마는 조직원이 되어버렸다.
야쿠자와 전당포 아저씨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이미 미유키는 멧돼지 아줌마가 조직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아줌마, 아줌마 구역이라 곤란한 건 알겠지만 할머니와 아이가 여기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허락해줘요.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름 격식을 갖추어 미유키가 얘기를 했지만, 멧돼지 아줌마는 오히려 미유키가 쫄았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거세게 나간다.
“웃기시네. 왜? 우리 오빠 친구가 시장에서 전당포 한다니까 이제야 무서워? 그러니까 좀 예쁘게 생겼다고 사람 우습게보지 말란 말이야!
멧돼지 아줌마가 기세등등하게 미유키에게 큰 소리를 친다.
“알겠어요. 그러면 지금 할머니와 거래를 할 테니 그 때까지만 기다려 줘요.”
나름 상권이라는 개념에 대한 존중이 있는 미유키가 멧돼지 아줌마에게 부탁을 한다.
하지만 기고만장해진 아줌마는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만다.
“거래를 한다고? 웃기고 있네. 이 따위 쓰레기 물건들. 지금 당장 쓰레기통에 버려 주마. 에이. 씨발. 물건 팔아야 하는데, 시간만 뺏기고 이게 뭐야. 본때를 보여줘야 다시는 여기 얼씬도 못하겠지! 너희들도 잘 봐둬! 내 자리를 뺏으면 어떻게 되는지!”
자유롭게 일반인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자리에, 늦게 나온 주제에 할머니의 자리를 오히려 겁줘서 뺏으려는 아줌마.
혹시 다음에라도 누가 자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이 번 기회에 본때를 보여 줄 생각이다.
할머니가 팔고 있는 물건 중 수제 믹서기를 강제로 뺏어서 부수려하는 멧돼지 아줌마.
할머니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안 뺏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안 돼요! 이건 우리 딸이 살아생전 아끼던 물건이란 말이에요. 이러지 말아요. 내가 잘 못했소. 갈 테니까. 물건은 내려놓아요. 제발···”
할머니가 멧돼지 같은 아줌마 팔에 매달려 빼앗긴 수제 믹서를 돌려받기 위해 몸부림친다.
할머니의 손녀딸도 아줌마의 다리에 매달리며 울고 있다.
“이거 우리 엄마가 남긴 물건이란 말이에요. 돌려 줘요! 흐윽.”
“그러게. 가라고 할 때 곱게 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아니야? 하여간 꼭 이런 거지같은 것들은 말로 하면 안 듣고.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니까!”
할머니와 아이를 뿌리치며 양손으로 물건을 부수려는 아줌마.
이런 미친년을 봤나!
보는 눈이 많아서 부담되기는 했지만, 이건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양아치 같은 멧돼지 아줌마를 향해 달려들려고 하는데, 어느 사이엔가 미유키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미유키의 하얗고 고운 손이 물건을 들고 있는 멧돼지 아줌마의 두꺼운 팔목을 붙잡았다.
“뭐야! 이 삐적마른 일본년이. 지금 나랑 장난해! 놔! 안 놔!”
멧돼지 아줌마가 미유키의 팔을 뿌리치기 위해 힘을 써보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미유키의 가녀린 손.
“멧돼지. 아무리 이곳이 너네 구역이라고 해도. 실력행사는 적당히 해야지. 지금이라도 물건 놓고 할머니께 사과드리면 봐준다.”
“뭐? 봐줘? 네가 나를? 이 종이인형 같은 게!”
큰 소리는 쳤지만, 좀처럼 미유키의 가녀린 팔을 뿌리치지 못하는 아줌마.
그녀의 눈빛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거기다가 미유키가 힘을 줘서 아줌마의 팔목을 꽈악 움켜쥐자.
“아, 악! 아, 아파!”
괴성을 지르며 손에 들고 있던 수제 믹서기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수제 믹서기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미유키가 날렵한 동작으로 믹서기를 낚아챈다.
“할머니, 받으세요.”
믹서리를 할머니에게 넘겨 준 미유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는 멧돼지 아줌마.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멧돼지 아줌마는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다.
“씨발! 이 미친년이. 팔 힘 좀 세다고 지금 정의의 사도인척 거만 떨고 있는데. 어디 그 빈약한 몸으로 내 몸무게도 견뎌봐라!”
무게라면 자신이 있는 멧돼지 아줌마가 지체 없이 미유키를 향해 돌진한다.
두두두두두!
정말로 성난 멧돼지가 쉭! 쉭! 거리며 돌진하듯 미유키를 향해 달려드는 아줌마.
이건 아무리 미유키가 싸움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험해 보인다.
일단 체급차이가 너무 난다.
미유키는 고작 몸무게 45kg 정도의 경량급이라면.
아줌마는 100kg에 육박하는 헤비급이다.
아무리 싸움 실력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도 무게 자체에서 주는 파워가 다르다.
아줌마에게 저대로 깔리기라도 한다면, 처참하게 깔려서 파운딩을 당하게 될 것이다.
“미유키씨! 조심해요!”
나도 모르게 미유키가 걱정되어서 소리쳤다.
하지만 미유키는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자신에게 돌진해 들어오고 있는 멧돼지 아줌마를 바라본다.
두다다다다!!!!!
멧돼지 아줌마의 육중한 몸이 미유키의 가녀린 몸을 들이박기 바로 직전.
미유키가 무릎을 낮추고 무게중심을 아래로 둔다.
쿵!
아줌마와 정면 충동한 미유키.
하지만 바짝 무게 중심을 아래로 둔 덕에 그녀는 아줌마에게 깔리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아줌마의 목을 잡고 아래로 찍어 누르는 미유키.
하지만 워낙에 체격 차이가 많이 나서인지.
찍어 누르는 것이 쉽지 않다.
“씨발!!! 너 오늘 죽었어!”
목을 잡힌 아줌마가 발광을 하며 미유키를 들어 올린다.
번쩍!
미유키의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순간.
나도 모르게 걱정되어서 탄성이 나온다.
“미, 미유키!!!”
하지만.
공중에 뜬 미유키가 아줌마의 목을 잡고 있던 팔을 풀고는, 묘기를 부리듯 회전하며 양쪽 다리로 아줌마의 목을 꽈악 조인다.
UFC에서나 보던 화려한 기술.
트라이앵글 초크.
후방낙법을 하듯이 중심을 이동하여 뒤로 눕지만 뒤통수가 바닥에 닿지 않는 것이 포인트.
그리고 다리 모양은 한 쪽의 발등을 반대편 다리의 오금에 붙이고 다리를 오므려서 트라이앵글처럼 만들며 꽈악 쪼여주는 고급 기술.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술에 완벽하게 걸려버리면 그대로 떡실신하고 만다.
꽈아악.
미유키가 다리를 오므리며 힘을 주자, 천천히 멧돼지 아줌마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그대로 처박혀버린 아줌마.
이미 기절했는지 혓바닥을 쭈욱 내밀고 미동이 없다.
미유키는 그제야 멧돼지 아줌마의 목을 조이던 발을 풀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미유키의 화려하면서 완벽한 기술.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도 다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멧돼지 아줌마의 손목에 손을 올리고 체크하는 미유키,
그녀가 손짓을 하자, 어디에선가 검은 양복을 입은 여자 두 명이 나타난다.
“한 10분 후면 깨어날 겁니다. 보건소라던가 적당한 곳에 놓고 오세요. 평소처럼.”
평소에도 자주 있는 일인지, 재빠르게 멧돼지 아줌마를 들쳐 업고 어딘가로 사라져가는 양복 입은 여자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만화 같은 일이라 사람들은 결과를 믿지 못한다.
“지금 이거 영화 촬영중인거 맞지? 일본 영화인가? 와, 저 여자배우 누구야? 장난 아니게 예쁘다.”
“영화 때문에 격투기 연습 열심히 했나 봐. 자세 좋던데?”
“이거 영화 아니고 뉴튜브 실험 카메라 아니야? 하여간 연기 좋네. 진짜 처음에는 깜빡 속았다니까···”
“에이. 바보냐? 난 처음부터 이거 영화 찍는 건 줄 알았는데. 우선 저 일본여자 미모 봐라. 일반인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냐? 그것부터,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저 하늘하늘한 몸으로 100kg은 되어 보이는 아줌마를 트라이앵글 초크로 기절시켜버린다고? ㅋㅋ 이건 현실에선 절대 말도 안 됨.”
다행히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은 이게 실제 상황이 아니라 영화나 뉴튜브 속 한 장면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오해하게 만들어야 번잡함을 피할 수 있다.
“자. 이제 촬영 끝났으니까 그만들 가세요. 가! 배우 분들도 쉬어야 하고. 협조 좀 해주세요!”
영화 속 스텝인척하며 사람들에게 소리치자, 미유키에게 싸인이나 촬영을 요청하려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선다.
“에이, 거 스텝 참 깐깐하네. 가자. 가.”
“아깝다. 싸인이라도 한 장 받으려 했는데.”
영문을 모른 체 나와 미유키를 바라보는 할머니와 손녀 딸.
미유키는 이미 내 의도를 눈치 챘는지 한쪽 눈을 귀엽게 감아 윙크를 보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