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미유키와 데이트(3)
* * *
“그러게 나 일본 TV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아. 그 무슨 걸 그룹 48명이 멤버인 걸그룹 있잖아. 거기 비주얼 메인 걔 아니야? 와. 실물 보니까 진짜 예쁘다. 무슨 인형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
“저 남자는 누구야? 팔짱끼고 다니는 것 보니까 혹시 남자 친구?”
“바보야. 일본에서는 매니저랑도 팔짱 끼고 다녀. 모자랑 마스크로 얼굴 가린 것 보니까, 그냥 일본 흔남 매니저네.”
“하아··· 나도 일본 가서 기획사 매니저나 해 볼까? 그러면 저렇게 예쁜 일본녀랑 같이 팔짱끼고 걸을 수 있는 거야?”
아무리 남녀 비율이 1 대 10인 한국이라도 해도, 미유키처럼 예쁜 여자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무리 세상에 조개가 넘쳐난다고 해도 비싼 진주를 품은 조개는 얼마 안 되듯이.
남자에 비해 여자가 넘쳐난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미유키처럼 예쁜 여자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거기다가 미유키는 외모만 인형같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패션센스도 세련되고 우아하다.
오늘 미유키가 입고 있는 미유키의 날씬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하얀색 블라우스는 섹시하면서도 품격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은 끌지만 쉽게 접근하지는 못하게 만든다.
마치 옛날 궁전에서 우아하지만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은 공주님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미유키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일에 익숙한지 전혀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녀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당당하게 나와 함께 걸어간다.
예슬이었다면 고개를 푹 숙이고 귀엽게 볼이 빨개졌을 텐데.
이상하게 자꾸 예슬이와 미유키를 비교하게 된다.
“오빠, 이곳이에요. 제가 한국전통시장에서 꼭 구경하고 싶다고 한 곳!”
“여기? 정말 이런 곳에 미유키가 보고 싶은 게 있다고?”
미유키의 발길이 멈춘 곳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장소였다.
한국전통시장의 공구 거리
나는 당연하게도 미유키가 아름다운 꽃을 파는 꽃시장이라던가.
맛있는 한국전통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시장골목을 가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미유키가 선택한 곳은 각종 공구들을 파는 곳이었다.
한국전통시장의 공구 거리에는 스크류 드라이버, 전동드릴.
드라이버, 나사, 못, 망치, 뺀치 등등은 물론이고.
오래된 가위와 톱.
대대로 물려져 내려온 검과 도.
심지어 활과 화살까지 팔고 있었다.
그야말로 각종 잡화를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자~ 싸요 싸! 공구세트가 단 돈 5,000원! 거저입니다. 거저!”
“이 망치로 말할 것 같으면! 저희 가문에서 3대째 가보로 내려져 오는 신성한 망치로서, 툭 건드리기만 해도 못이 저절로 벽에 박힙니다! 자~ 자! 오늘만 단 돈 2만원에 모십니다!”
역시나 전통시장답게 말도 안 되는 광고로 어르신들을 현혹하는 장사꾼들도 꽤 볼 수 있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가문이기에 망치를 가보로 남겨.
그리고 건드리기만 해도 못이 알아서 벽에 박히다니.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
“바퀴벌레 약! 살충제! 냄새만 맡아도 반경 100미터 바퀴벌레는 씨가 말라버려요! 거기다가 인체에는 무해! 저는 가끔 집에 녹차가 없을 때는, 이 바퀴벌레 약으로 차를 만들어 마십니다! 그만큼 인체에 무해한 바퀴벌레 약! 쌉니다. 싸! 이제 딱 10개 남았어요. 한 통에 만원!”
바퀴벌레 약으로 차를 타 마시는 아저씨도 있고.
“즈아아아! 왔어요. 왔어! 이 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검!! 이 검이야 말로 세계 삼 대 보물 중에 한 개! 국보중의 국보! 수 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했으면서도 아직까지 날카로운 검 날! 보는 것만으로도 적장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는 바로 그 주몽의 단검! 그 단검을 오늘 제가 단 돈 1,000,000원에 모십니다! 다시는 안 올 기회! 주몽의 단검! 1,000,000원!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물건입니다. 먼저 사는 사람이 임자!”
주몽의 단검?
무슨 국제적인 경매장도 아니고 길거리 전통시장에서 국가 보물에 해당하는 수 천 년 역사가 담긴 보물을 판다니.
정말 기가차서 말이 안 나올 정도다.
“자, 빨리 가요. 미유키씨. 아무리 어르신들의 귀가 얇다고 해도 누가 저런 말에 속아요···오? 어? 미유키씨?”
말을 하면서 옆을 보니 미유키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미유키는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이미 주몽의 단검을 판다는 장사꾼 아줌마 앞에 서서 검을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단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는 미유키.
그런 미유키를 장사꾼 아줌마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오늘 제대로 호구 하나 잡았다는 눈빛이다.
“아이고, 아가씨. 이거 보는 눈이 있네? 어때요? 검에 담긴 역사가 그대로 보이죠?”
미유키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사기꾼 장사꾼 아줌마 앞에 선다.
미유키가 검을 가리키며 자세히 봐도 되냐는 눈빛을 보낸다.
“아, 보세요. 봐. 이거 특별히 아가씨에게만 허락하는 겁니다. 워낙 고가의 국가 보물에 해당하는 물건이라. 아무에게나 만지게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아가씨. 보니까 한국사람 아닌 것 같은데. 일본 사람?”
일본 사람이냐는 말에 미유키가 고개를 끄덕끄덕 움직여 수긍한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주몽의 단검에만 고정되어 있다.
사기꾼 아줌마가 단검을 들어 미유키에게 건넨다.
주몽의 단검에는·······
놀랍게도 붉은 날개를 활짝 펼친 새.
주작이 그려져 있다.
이 아줌마 10,000원 짜리 단검에 주작 그리고 주작하네.
아니 하려거든 좀 제대로 하던가.
엉성해 보이는 칼에 새겨진 주작.
무슨 포켓몬도 아니고.
초등학생이 그려도 이것보다는 잘 그리겠다.
“미유키씨. 가요.”
사기꾼 아줌마를 눈으로 욕하며 미유키를 데리고 가려는데, 사기꾼 아줌마가 미유키의 팔을 덥석 붙잡는다.
“아가씨. 이거 안사면 진짜 후회해. 내가 진짜 아가씨가 한국에 놀러 온 외국인이니까 특별히 할인해서 800,000원에 줄게. 응? 이거 진짜 아무한테나 이 가격에 안 팔아. 아가씨가 선해 보여서 이 칼이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다급한 마음에 외국인 특수를 노리는 사기꾼 아줌마.
역시 시장 상인들의 외국인 등골 빼먹기 스킬은 대단하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옆에 있으니 어림도 없·······지??
“800,000원이요? 흐음······”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돌아섰던 미유키가 외국인 등골 빼먹기 스킬에 걸려 다시 관심을 가지고 단검을 손에 쥐어 본다.
그리고는 단검을 꽈악 쥐고는 매섭게 사선으로 그어본다.
후욱!
바람을 가르며 퍼지는 날카로운 파공음.
단검을 사용하는 방법도 훈련을 받았는지 미유키의 동작은 절도 있고 깔끔하다.
“어때 아가씨? 마음에 들지? 사실 이거 아가씨가 일본 사람이라고 하니까 말해주는 건데. 이 단검은 말이야. 일본 천황님이 조선을 정복했을 때, 우리 할아버지가 일본 총독부를 도와드려서 하사 받은 물건이란 말이지. 그러니까, 이 물건은 어쩌면 아가씨 같은 일본 분이 진짜 주인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얼른 사는 게 어때요?”
자랑스럽게 자신의 할아버지가 매국노였다는 걸 말하는 사기꾼 아줌마.
으드득.
진짜 미유키만 옆에 없었으면 당장에 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싶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유키의 반응이 나보다 더 차가웠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미유키가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칙쇼! 잘도 우리 일본의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 오빠 앞에서 들먹이다니. 이거 지금 나를 공개 저격하는 거지. 이 나라를 팔아먹은 새끼의 자손인 주제에. 감히. 나를 우습게 봤겠다.”
수치스러워서 빨개진 미유키의 얼굴.
역시 일본사람이라고 해서 전부 개념 없는 우익은 아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일본사람이라면 자신들의 과거를 부끄러워 할 뿐이다.
살벌하게 눈빛이 바뀐 미유키.
그녀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사기꾼에 매국노 아줌마를 바라본다.
“이 검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말이죠. 과연 얼마나 내구성이 좋고 날카로운지 확인은 해 봐야겠죠?”
10,000원 짜리 단검을 800,000원에 팔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픈 아줌마.
“아, 그럼요. 아가씨 원하는 대로 확인해 봐요.”
“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미유키가 단검을 검 집에서 꺼내더니, 자신의 손을 가판대 위에 올려놓는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사기꾼 아줌마가 멍한 눈빛으로 미유키를 바라본다.
“아가씨?”
왼손가락들을 쫘악 펼치고 가판대 위에 내려놓은 다음.
오른손으로 잡은 단검을 그 위에 가져다 된다.
그리고는 천천히 손가락들의 사이.
빈 공간들을 단도로 천천히 찍기 시작한다.
팍 팍 팍 팍!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아슬아슬하게 손가락들을 비켜가는 단도의 예리한 검 찌르기.
“아, 아가씨! 그러다 손가락 다치면 어쩌려고. 그만해요. 그만!”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아줌마.
하지만 미유키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져만 간다.
바람을 가르며 검이 바닥에 찍히는 소리만 들린다.
육안으로는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가 않을 정도다.
“소, 손가락 잘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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