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이세계 유시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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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이세계 유시현의 일상.
*현세계의 유시현이 이세계의 유시현에게 빙의하기 일주일 전.
‘띠디디디! 띠디디디!
핸드폰 알람이 시끄럽게 울린다.
하아.
조금만 더 자고 싶다.
어제도 안무 연습 하느라 새벽 4시에 잤다.
하지만 회사는 가야지.
내가 그렇게 가고 싶다고 해서 겨우 다니고 있는 회사인데.
아흐~
기지개를 키며 창문커튼을 열었다.
아침 햇살이 방안으로 쏟아져 내린다.
아! 오늘도 날씨 좋네.
화장실에 가서 샤워를 한다.
쏴아아아........
찬물에 샤워를 하니까 잠이 좀 깬다.
가볍게 양치를 하며 거울을 온다.
어제 트레이닝 하느라 좀 무리 했나?
얼굴이 상한 것 같다.
하아.
할 수 없지.
당분간은 빡세게 운동해야 한다.
세 달 후에 정규 앨범이 나온다.
그 전 까지는 몸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회사에 가기 위해 정장을 입는다.
정장을 입어도 고등학생처럼 보인다.
벌써 26살인데 얼굴은 10대처럼 보인다.
위이이잉!
머리를 대충 드라이기로 말린다.
그때 전화기가 울린다.
카통! 카통왔써~
카통을 확인 한다.
[수연이 누나: 지훈아, 너희 집 앞에 와서 차 대기 하고 있다. 준비 다 하면 내려 와.]
아, 그러지 말라고 해도, 꼭 진영이 누나는 매니저를 꼭 집으로 보낸다.
[나: 누나 나 오늘 오토바이 타고 출근 할 거야. 집에 가서 쉬어요.]
[수연이 누나: 야! 너 미쳤어?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너 나 진영이 언니한테 죽는 꼴 보고 싶어? 제발 좀 살려주라. 응?]
하아.
이제는 내 마음대로 오토바이도 못 타게 하네.
가방을 매고 엘리베이터를 내려간다.
밖으로 나올 때는 얼굴이 가려지는 마스크를 한다.
동네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보면 곤란하다.
씨발.
처음 일 시작 할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유명해 질 줄 알았나.
지금은 마치 범죄자처럼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안 그래도 여름이라 더워 죽겠는데.
마스크와 모자는 내 필수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역시나 검은 색 VAN 차량이 낡은 아파트 주차장에 떡 하니 버티고 있다.
나는 터벅터벅 걸어서 VAN에 올라탄다.
검은 선글라스에 정장을 입은 수연누나가 쀼루퉁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박지훈, 이제 그만 일반인 코스프레 좀 안하면 안 되냐? 너도 피곤하고. 우리도 피곤하고 이게 뭐냐?”
수연 누나의 선글라스를 벗겨서 내가 써 본다.
“어, 누나. 선글라스 예쁘다.”
“야! 박지훈. 누나가 하는 말은 듣긴 듣는 거냐? 너 자꾸 누나 말 개 무시 할래?”
“아, 진짜. 누나. 나 음반작업 하면서, 회사 다니는 거. 진영이 누나랑 계약 할 때 이미 말 끝낸 거잖아. 자꾸 귀찮게 할래.”
“야, 그때는 네가 이렇게 뜰 줄 몰랐으니까 그렇지. 지금 너 하나 섭외하겠다고 매일 방송국, 라디오, 광고주들한테 얼마나 전화가 빗발치게 오는 줄 알아? 신비주의도 하루 이틀이지.”
“아, 진짜. 누나. 내가 신비주의 하면서 방송에 잘 안 나고 광고도 잘 안 찍으니까 사람들이 더 찾는 거라니까. 이게 다 마케팅이야. 마케팅.”
“하아. 진짜. 박지훈. 한 마디를 안 져요. 한 마디를. 야, 진짜 네가 일반인 코스플레이 한다고 해서 놓친 수 억 짜리 광고가 몇 개인 줄 알아? 중국 애들은 제발 한번만 방중 해 달라고 돈을 싸들고 매일 회사로 찾아온다. 진짜. 걔네는 한국이랑 규모가 틀린 거 알지? 방중 한 번 하면 최소 몇 십억이야.”
사실 궤변으로 매니저 누나를 놀리고 있지만, 나도 이런 일반인으로 지내는 시간이 얼마 길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아, 누나. 알겠어. 정규 앨범 나오기 전까지만. 좀 일반인으로 살게 해주라. 진짜. 이미 계약 할 때 다 명시한 내용이잖아. 이제, 길어야 3개월인데. 내가 계약서에 명시되지도 않은 내용으로 억지 쓰는 것 도 아니고.”
“하아........”
수연 누나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네 그 왕고집을 누가 꺾겠니? 알겠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떠들어 봐야, 입만 아프지. 그 보다 잠은 좀 잤어? 너 어제 새벽 3시 넘어서 집에 들어갔다면서. 명지가 그러더라.”
명지는 내 야간 조 매니저다.
“어, 명지가 누나한테 얘기했나 보네?”
“응. 뭐. 그렇지.”
아, 진짜. 자유롭게 살다가 지금은 닭장 속에 갇혀 사는 것 같다.
매니저들이 내가 어디를 가나. 뭘 하나.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으니.
“누나, 나 그런데 진짜 요즘에 너무 지친다.”
“또. 왜?”
“아니. 누나도 알다시피 내가 처음에 이러려고 JYK 엔터테인먼트에 들어 간 거 아니잖아. 그냥 재미삼아 한 번 면접 본거지. 그게 이렇게 흘러 갈 줄 알았으면, 절대 안했지. 누나는 왜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나한테 명함을 줘 가지고 JYK에 들어가게 만들어. 하유....... 지금은 내 마음대로 아무 것도 못하는 새장 안에 갇힌 새 같아.”
“야, 다른 연습생 애들이 들으면 미치고 환장할 말을 존나 쉽게 한다. 너는.”
창밖을 보니 익숙한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회사가 가까워 졌다.
“다은이 누나, 저쪽에 세워 줘요. VAN타고 회사에 출근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해.”
“네, 지훈씨.”
끼이익!
운전기사 다은이 누나가 차를 한적한 회사 뒤편에 세웠다.
“수연누나, 나 회사에 있을 때는 연락 하지 마. 알지?”
“알겠다. 야, 그런데 진영이 누나가 너 점심시간에 전화하래. 잊지 말고 꼭 전화 해. 알겠지?
하아.......
진영이 누나 생각하니 또 숨이 막히네.
“알겠어. 누나.”
“꼭이야. 꼭! 너 연락 안하면 또 나만 진영이 누나한테 깨진다.”
“알겠다고요........”
VAN에서 내려 회사를 향해 걸어간다.
아침부터 지치네.
“어, 시현씨! 출근 하는 거야?”
익숙한 목소리 유리씨다.
“아, 네. 유리씨.”
유리씨가 내 얼굴을 자세히 본다.
“시현씨. 많이 피곤한가 봐. 고운 얼굴에 다크 서클 보인다. 피로회복제라도 하나 사 줄까?”
“아니에요. 유리씨. 그 것 보다 회사 늦겠어요. 빨리 가요.”
“네. 시현씨.”
유리씨는 내 회사 동기인데 착하고 듬직하다.
얼굴도 회사에서는 예쁜편이다.
“어머, 시현씨. 유리씨.”
“안녕하세요. 미영 대리님.”
미영 대리다.
얼굴은 좀 웃기게 생겼어도 착한 아줌마다.
“시현씨, 어쩜 볼 때마다 박지훈이랑 닮은 것 같다. 진짜. 혹시, 박지훈이 시현씨 인거 아니야? 아니면 쌍둥이형 이던가?”
“아니에요. 닮기는요. 박지훈이 얼마나 잘생겼는데요. 실물 보면 저 보다 훨씬 낫죠. TV로 보니까 비슷해 보이는 거죠.”
하아, 그거 나 맞는데.
내가 박지훈이라고 할 순 없잖아.
유리씨가 끼어들었다.
“에이. 그건 아니다. 그 슈퍼스타 박지훈이 이렇게 평범하게 회사를 어떻게 다녀요. 그리고 시현씨보다 잘생긴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어. 진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나는 그 박지훈인가 걔 보다 시현씨가 훨씬 낫더라.”
그래,
어차피 슈퍼스타 박지훈 보다야 가까이 있는 나한테 잘 보이는 게 더 낫겠지.
뭐 그게 나지만........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아영팀장과 미희 주임. 다정 차장은 출근 해 있었다.
아영 팀장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어머, 시현씨 왜 이렇게 오늘 빨리 왔어?”
“아니에요. 뭐. 정각에 왔는데요.”
“아니, 시현씨야. 편하게 회사 다녀도 되잖아.”
사실 그랬다.
내가 대기업이 아니고 이 중소기업에 입사한 이유도 파격적인 조건 때문이었다.
출근 시간도 자유로운 편이었고, 꼭 해야 하는 바쁜 업무도 없다.
그냥 내가 자율적으로 도와주는 거다.
그냥 회사 사원지나, 입사 공고 할 때 회사 모델로 사진이나 영상 제작을 도와주면 그걸로 내 할 일은 끝이었다.
한 마디로 땡보직이다.
굳이 개발사업부에 있을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어느 팀이든 소속감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상무님의 의견 때문에 개발사업부에 내 책상이 있는 거다.
“시현씨. 여기 스탈벅스 그린티 프라푸치노요.”
미영대리가 내가 아침마다 마시는 스탈벅스 음료수를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감사합니다. 대리님.”
“아이. 감사하기는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모든 팀원들이 나에게 따뜻하고 다정하다.
하아.
이 평온하고 따뜻한 일상을 내가 스스로 망쳐버렸다.
아이 씨발.
괜히 JYK에는 들어가 가지고.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후회해 봤자 뭐 하겠어.
계약서에 이미 싸인을 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미희 주임이 회의실로 들어가며 나를 본다.
“시현씨, 우리 오전 회의 하고 올 테니까 쉬고 있어요.”
오전 회의 시간이다.
나는 오전 시간에는 주로 모자란 수면을 회사에서 보충한다.
“네~”
“피곤해 보여. 한 숨 자라. 점심 먹으러 갈 때 깨워 줄게.”
“네. 회의 잘 하세요~”
“아유, 인사성도 밝아라. 진짜 볼 때마다 귀여워 죽겠어.”
미희주임은 팀원들 중에서도 특히 나를 귀여워 해 준다.
“시현씨, 오늘 저녁에 뭐 해? 나랑 술 한 잔 안할래?”
눈앞에서 탱탱하고 커다란 멜론 두 개가 출렁출렁 거린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최다정 차장이 요염하게 미소 짓고 있다.
“아. 예. 저는 약속이 있어서요.”
“아, 진짜 시현씨는 약속이 매일 있나 봐. 섭섭하게.”
자꾸 가슴을 내 얼굴 쪽으로 들이 민다.
윽.
최다정 차장은 섹시하고 예쁘게 생겼지만 너무 남자를 밝힌다.
나는 남자를 너무 밝히는 걸레 같은 여자는 별로다.
“아, 차장님. 주임님. 뭐하세요. 왜 자꾸 우리 시현씨 잠도 못 자게 질척거려요. 빨리 와요. 회의 시작해요.”
하아.......
한 숨 돌렸다.
유리씨 고마워요.
나는 후드를 꺼내서는 위에 덮고 평화롭게 잠을 청한다.
회사가 끝나고는 다시 빡센 슈퍼스타 박지훈이 되어야 한다.
이곳이 그나마 나에게는 유일하게 마음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이다.
이 따뜻한 곳을.
뺏기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도 사실은 알고 있다.
이 평화가 얼마가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진영이 누나와 계약할 때는 정규앨범을 내기 전까지 회사에 다닌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싱글앨범을 낸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한국이 난리다.
씨발, 나 따위가 뭐라고 다들 열광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네.
지금이야 어떻게든 JYK의 철통같은 보안으로 이중생활이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이 생활이 며칠이나 갈지 시한폭탄과 같이 불안하다.
그래서 사실 나는 오늘 진영이 누나를 만나면 극딜을 할 생각이다.
한 달 만이라도.
아무런 간섭도 안 받고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러면 유시현이 아닌 박지훈이 되어 정규앨범 작업에 모든 걸 쏟아 붙겠다고.
지금은 스케줄도 매니저도 다 지겹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같이.
답답하기만 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