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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간다-269화 (269/271)

〈 269화 〉 268화

* * *

만찬장에는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입씩만 먹어도 배가 터질 것처럼 보였다.

나는 콜탄구트라와 나란히 앉아서 그들이 자랑하는 마유주로 목을 축이고 각종 기름진 음식을 맛보았다.

솔직히 음식들이 전반적으로 간이 싱겁고 느끼할 정도로 기름져서 별로 맛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몇 음식들은 몇 번이고 계속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또한 준비된 음식 중에는 익숙한 것들도 제법 많았는데, 마인족이 아니라 인간요리사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덕분에 입맛이 떨어지는 일 없이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었다.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앉은 자리에서 내려다보이는 공터에서 기마공연이 진행되었다.

말을 타고서 각종 묘기를 부리는 건 이미 경험해봐서 익숙했다.

그리고 말을 탄 상태로 움직이는 과녁을 활이나 화승총으로 쏴서 맞추거나 둘이서 서로의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을 벗기는 대결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동사격은 몰라도 두건 벗기는 정도는 에리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에리카에게 텔레파시를 보내서 생각을 물어보기로 했다.

‘에리카, 가서 네 실력을 한 번 보여주는 건 어떠니?’

‘제가요? 제 실력은 여기선 평범한 수준에 불과한 걸요.’

‘자신감을 가져. 내 눈에는 지금 공연을 보여주는 녀석들보다 네 실력이 더 좋아.’

‘음... 상대측에서 허락해주면 한 번 해볼게요.’

에리카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씩 웃었다.

그녀의 혈관에 흐르는 유목민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한 모양이다.

“내 군단장 중 하나가 기마실력이 탁월하니 한 번 대결을 시켜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좋은 제안입니다. 뱀파이어족은 오크족에게 있어서 영원한 맞수이니 말입니다.”

콜탄구트라는 생각보다 큰 흥미를 보였다.

이거 내가 본의 아니게 종족간의 자존심 싸움을 유발한 걸지도 모르겠네.

“알겠습니다. 제3군단장, 준비하시오.”

“네, 마왕님.”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에리카는 바디슈트를 뱀파이어족의 전통복장으로 변형시켰다.

그리고 아래쪽으로 단번에 뛰어내려 마침 준비된 말 위에 올라탔다.

에리카의 등장에 마인족들이 소란스러워졌다.

특히나 오크들은 잔뜩 흥분해서는 소리를 지르거나 탁자를 술잔이나 주먹으로 계속해서 내리쳤다.

그리고 에리카의 대결상대가 되어줄 건장한 오크 하나가 등장하자 환호성을 질렀다.

“저 자는 지금까지 99번을 대결하여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실력자입니다. 1백 번째 승리상대가 제3군단장이니 분명 평생의 영광으로 여겨지겠지요.”

“제3군단장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닐 겁니다. 난 그녀가 생애 최초의 패배를 안겨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은근히 신경전을 벌였다.

아무래도 콜탄구트라가 에리카의 대결상대를 총애하는 모양이다.

‘에리카, 이기면 뭐든 다 해줄게.’

‘정말요? 약속하셨어요.’

‘응. 그러니까 꼭 이겨줘.’

‘맡겨만 주세요!’

에리카는 자신감 있게 외치면서 먼저 상대방을 향해 빠르게 말을 몰았다.

오크는 에리카가 다가오는 것을 여유롭게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옆으로 몰아서 에리카의 손이 자신의 두건에 닿지 못하도록 했다.

난 처음에는 에리카를 얕보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의 눈빛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오크는 말을 몰아서 에리카의 뒤를 바짝 추적해 들어갔다.

그는 에리카의 뒤통수를 향해 손을 뻗었고, 마인족들을 그의 승리를 확신하고서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에리카는 두건을 뺏기기 직전에 말의 옆구리에 매달려서 패배를 막아냈다.

오크는 자신의 시야에서 갑자기 에리카가 사라지자 말의 속도를 조절하여 그녀가 달라붙어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는 다시 에리카의 두건을 향해 손을 뻗었고, 에리카는 말의 목을 팔로 포옹하더니 그대로 말의 앞쪽으로 몸을 한 바퀴 돌려서 공격을 피했다.

말의 위에 선 에리카는 곧장 오크의 두건을 벗기려고 했지만 그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다시 바른 자세로 앉은 에리카는 자신의 뒤를 재차 추적하는 오크를 피해서 지그재그로 말을 몰았다.

그러자 오크는 에리카를 쫓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상황을 지켜보았고 에리카 역시 말을 멈춰서 오크와 같은 행동을 취했다.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렀던 대결은 서로가 동시에 말을 전속력으로 돌진시키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에리카가 꼭 이기기를 기도했다.

지금으로서는 팔 길이가 훨씬 더 긴 오크가 더 유리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에리카는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말 위로 뛰어오르더니 공중제비를 돌면서 오크의 두건을 벗겨냈고 다시 말 위에 안착했다.

워낙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마인족들은 침묵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그러자 콜탄구트라도 나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고, 마인족들도 그를 따라서 박수를 쳤다.

패배한 오크는 여전히 놀란 기색이 역력했지만 먼저 에리카에게 다가가서 알 수 없는 말을 건네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러자 에리카는 방긋 웃으며 그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엘레아노르, 상대방이 뭐라고 했는지 알려다오.”

“좋은 승부였으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주어서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할 줄 알다니 참으로 명예로운 자로구나.”

나는 솔직하게 내 심정을 드러냈다.

99연승을 끊어버린 상대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고 먼저 악수를 청하다니 마음에 들었다.

“저 자에게 상을 내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영광입니다. 나 또한 제3군단장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선물을 안겨주어야겠습니다.”

나와 콜탄구트라는 서로가 내보낸 선수에게 보상을 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지금 당장에야 무언가를 줄 수는 없지만 만찬이 끝나면 적절한 보상을 안겨줄 수 있겠지.

‘레베카님! 저 어땠어요?’

‘정말, 정말 대단했어. 설마 그런 식으로 이길 거라고는 상상 못했었어.’

‘사실 무모한 도박이었는데 운 좋게 성공했어요.’

‘상대방이 좋은 승부였고, 평생의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렇군요. 저도 덕분에 즐거웠다고 말했었는데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나중에 상대방에게 상을 내려줄 예정이니 그때 네 말을 전해줄게.’

‘네, 레베카님. 아참! 저한테도 상을 주실 거죠?’

‘물론이지. 아까 약속했었잖아.’

‘헤헤헤. 기대하고 있을게요.’

나는 에리카가 어떤 요구를 할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본인이 스스로 요구사항을 말할 때까지 그냥 입 다물고 있어야지.

한바탕 대결이 지나간 이후로 몇 가지 공연이 더 이어졌지만 나는 공연보다는 콜탄구트라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내가 콜탄구트라에게 궁금한 것은 그의 가족사였고, 그는 흔쾌히 내 궁금증을 풀어주기로 했다.

“나는 태어난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노르헤임에 살았던 부모님께서 나를 거두어주셨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노르헤임은 내 고향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곳의 주민들은 날 거두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을 박대했고, 결국 현상금사냥꾼에게 끌려간 아버지는 마을사람들이 던진 돌에 맞아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노르헤임을 공격한 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크는 원수를 반드시 갚아야하는 종족이니 말입니다. 나는 부모님 밑에서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노력했으나, 노르헤임 주민들에겐 그저 괴물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이야 충분히 그 심정들이 이해가 가고,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증오이지만 미성숙했던 당시의 나는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콜탄구트라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마유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어머니와 미래에 아내가 될 소꿉친구를 데리고서 마을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10년이 훌쩍 지난 어느 날에 마을을 불태워 복수를 완수했습니다.”

“10년 만에 코르셰핑 기사단을 전멸시킬 정도로 강한 세력을 만들었다니 대단합니다.”

“결정적으로 카간의 혈통 덕분이었습니다. 피나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스스로도 몰랐던 혈통이 나를 이 자리에 앉혀주었습니다. 덕분에 어머니와 아내를 무사히 지킬 수 있었지요. 그리고... 엘카힘의 도움도 컸습니다.”

콜탄구트라는 엘카힘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다시 한 번 마유주를 마셨다.

계속되는 음주에 그의 초록색 피부가 점점 붉게 변하는 듯 했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멀쩡했다.

“엘카힘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본래 같은 목적을 가진 협력관계였습니다. 엘카힘은 강력한 마인족 국가가 건설되기를 원했고, 나 또한 그러했으니 얼마 전에 서로 갈라서기 전까지는 계속 협조했었습니다.”

“왜 갈라섰습니까?”

“그 여자는 상상 이상으로 악한 존재였습니다. 단순히 인류연합제국을 견제하고 마인족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를 도운 것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불태우고 싶을 뿐인 광인이라서 그랬던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황녀를 납치한 것은 부족연맹에 기술을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기술제공은 허울일 뿐, 결국 내 백성들을 세상을 불태우는 첨병으로 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국의 기술적 우위를 상쇄하는 건 우리에게 있어서 꿈만 같은 일이지만 그 결과가 제국과의 공멸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좋은 판단입니다. 엘카힘과의 협조는 결국 나의 군대를 적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입니다. 엘카힘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낸다면 본때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내가 약간 거드름을 피우면서 하는 말에 콜탄구트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마유주를 들이마셨다.

정리하자면 콜탄구트라는 사적인 복수를 위해서 노르헤임을 공격했었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엘카힘과 손을 잡았다가 그 미친년의 본성을 깨닿고는 바로 손절하고 나와 평화협상을 맺으려고 했던 거구나.

일단 노르헤임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서는 라우라와 대화를 나눠보는 게 좋겠다.

그리고 콜탄구트라 역시 엘카힘의 위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니 더 이상 그에게 엘카힘에 대해서 물어볼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소꿉친구와 결혼하다니 멋지군요.”

“하하하하! 카간의 자리에 오른 뒤로 그런 칭찬을 듣는 건 처음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시다시피 마족에겐 어머니와 아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인간여자는 가축이나 다름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동족의 야만성을 버린 내 백성들조차도 내게 인간 아내가 있다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질 못하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개념을 설명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나옵니다.”

콜탄구트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개념을 설명하고 납득시키려면 보통 일이 아닐 거다.

당장 내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당장 민주주의를 하자고 말하면 그 당시의 콜탄구트라와 똑같은 취급을 받을 거다.

“아내 분은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언제나 내 덕분에 행복하다는 말을 해줍니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두 분이 무탈하게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나 또한 마왕께서 군단장들과 매우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콜탄구트라는 이미 나와 내 사랑들의 관계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보아하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나는 수틀리면 싹 다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콜탄구트라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좀 미안하다.

하지만 사정이 어쨌든 라우라의 인생을 꼬아버린 원인제공자이기도 하니 마냥 그를 우호적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나는 콜탄구트라와 사적인 대화를 좀 더 주고받았고,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길었던 만찬도 끝을 맞이했다.

이제 만찬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엘리자베스에게 갈 수 있겠구나.

부디 삐친 상태가 아니라면 좋을 텐데...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평화가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나 또한 오늘의 평화가 영구적이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사타카람에 방문하신다면 국빈으로서 환대해드리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나는 콜탄구트라와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그의 배웅을 받으며 마차에 올라탔다.

나와 내 사랑들이 탄 마차는 콜탄구트라의 근위대로부터 호위를 받으며 내 친위대가 대기하고 있는 곳까지 돌아왔다.

나는 근위대의 노고를 치하한 뒤에 친위대와 함께 아침에 머물렀던 천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마차가 목적지에 멈춰 서자마자 한달음에 엘리자베스가 있는 천막으로 달려가서 다짜고짜 몸을 안쪽으로 들이밀었다.

“엘리자베스! 아, 미안. 목욕하는 줄 몰랐어.”

“안녕, 레베카.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엘리자베스는 욕조 안에서 거품목욕을 하면서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그녀가 삐칠 것을 걱정했었는데, 정작 그녀는 오늘 아침까지 인질이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유가 넘쳤다.

아니, 내가 네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여러모로 늦어서 미안해. 한시라도 빨리 널 구출하고 싶었는데 그게...”

“난 별로 힘들었던 거 없으니까 네가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어. 난 그것보다 네가 날 구하려고 고생했었다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감동적이야!”

엘리자베스는 욕조에서 일어나더니 거품 묻은 손으로 내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해버렸다.

나는 처음에는 당혹감에 몸을 뒤로 빼려다가 엘리자베스의 감미로운 키스에 그만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분명 초보자의 서투르고 어설픈 키스인데도 어찌나 열정적인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레베카, 정말 고마워. 흑흑! 아버지도 버린 나를 구하려고 애써줘서. 흐윽! 으아아앙!”

“아니야. 친구가 위험에 빠지면 구해주는 게 당연하잖아.”

나는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하는 엘리자베스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항상 제멋대로였던 엘리자베스가 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이라서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내 사랑들을 달래줄 때처럼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버지에게 버림을 받은 심정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분명 엘리자베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정치적 판단이 중요한 자리에 있다고는 해도 자신의 딸을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버리는 아버지는 정말이지 최악이라는 생각만 든다.

나는 엘리자베스가 불쌍해서 더욱 더 그녀를 정성을 다해서 달래주었다.

한참을 내 품에 안겨서 울던 엘리자베스는 몸에 묻었던 거품이 모두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겨우 기운을 차렸다.

“내가 이렇게 한심하게 울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마. 알았지?”

“알았어. 비밀로 해줄게. 그리고 나는 네가 울었다는 이유로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당분간은 나랑 같이 지내자. 어때?”

“진짜 너랑 같이 사는 서야? 야호! 신난다!”

엘리자베스는 내게서 일시적인 동거제안을 받기 무섭게 언제 울었냐는 듯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매달렸다.

알몸인데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는 걸보면 엘리자베스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로 웃음소리가 나왔다.

앞으로 엘리자베스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더 돈독해지지 않을까싶다.

아무튼 엘리자베스가 내 곁으로 무사히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이제 당분간은 쉴 수 있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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