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2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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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장은 사타카람에서 약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공터에 마련되었다.
콜탄구트라의 군대는 사타카람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위에 잔뜩 몰려있었다.
그리고 기병대는 사타카람의 양옆에서 대기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판금갑옷을 갖춰 입은 중기병으로 구성된 콜탄구트라의 근위대는 회담장과 사타카람 성벽 사이에서 대기했고 콜탄구트라와 그의 최측근들은 회담장 근처에 먼저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탄 마차는 미리 설정한 장소에서 멈췄다.
엘레아노르는 나보다 먼저 마차에서 내려서 한껏 예를 갖추면서 나를 에스코트했다.
지금의 나는 인류연합제국의 명예기사가 아니라 촉수군대의 군주로서 회담장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에스코트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엘레아노르와 함께 회담장으로 걸어갔고, 내 사랑들이 내 뒤를 따랐다.
내 친위대는 콜탄구트라의 근위대처럼 회담장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대기했다.
하지만 상급 악마촉수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해서 콜탄구트라의 근위대는 물론이고 저 멀리 성벽 위에 있는 마인족 병사들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회담장은 개방된 형태의 게르처럼 생겼고, 바닥 가운데에 선이 그어져있었다.
내가 회담장에 발을 들이는 것과 동시에 콜탄구트라도 회담장 안으로 들어왔다.
드론이나 새를 통해서 볼 때보다 직접 보니 확실히 여태까지 봤던 마인족들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사람만 보면 죽이고 싶어서 안달인 게 마족인데도 콜탄구트라는 나를 향해 우호적인 눈빛을 보냈고, 움직임에서 품위가 느껴졌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사타카람 부족연맹의 카간인 콜탄구트라라고 합니다.”
콜탄구트라는 친절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세상에 인간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마인족이라니 정말 어색하다.
아무튼 상대방이 자신의 신분과 함께 이름을 소개했으니 나도 새로운 신분을 입에 담아야겠지.
“촉수마왕 레베카 카론입니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촉수마왕이라니? 으으... 내가 말해놓고는 손발이 다 오그라들어서 없어질 것 같다.
내 사랑들이나 엘레아노르와 의견을 주고받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가 악마촉수로 하는 짓을 생각하는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생판 남에게 스스로를 촉수마왕이라고 소개하는 건 예상 이상으로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평화협상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기쁩니다. 부디 서로에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도록 함께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가도록 합시다.”
“좋은 제안입니다. 저도 전쟁보다는 평화를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이번 협상이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건 지금으로선 새빨간 거짓말이다.
당장의 평화는 필요하지만 마인족을 상대로 평화협정을 언제까지고 지킬 생각은 없다.
마인족이든 마수족이든 결국엔 인류의 적이다.
콜탄구트라 세력은 마리아의 마을과는 다르다.
마리아의 마을은 조화와 소박한 삶을 원하지만 콜탄구트라 세력은 지배와 권력을 원한다.
콜탄구트라 세력이 내게 방해가 된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나는 안제든지 그들을 이 세상에서 싹 쓸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영원히 깰 수 없는 평화협정보다는 확실한 명분만 있으면 얼마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느슨한 평화협정을 하고 싶다.
마족을 상대로 굳이 명분을 내세울 필요가 있나 싶긴 하지만 내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것을 대비해서 외교적으로 구설수에 오를만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는 엘레아노르가 빼주는 의자에 앉았고, 콜탄구트라는 스스로 의자를 빼고 앉았다.
애초에 의자는 2개 밖에 없어서 수행원들은 모두 뒤에 섰다.
콜탄구트라는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내게 수행원들을 먼저 소개해주었다.
오크 둘이 고위관료인 것은 그렇다 치고 오거 재상이나 고블린 대장군 같은 건 참 생소하게 들렸다.
오거나 고블린의 지적능력으로는 그런 고위직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커다란 안경을 쓰고서 서류뭉치를 들고 있는 오거와 오크에 버금갈 정도로 키가 크고 우락부락한 근육질 고블린을 보고 있자니 왠지 수긍이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콜탄구트라에게 내 사랑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전투메이드라는 말 대신에 존재하지도 않는 군단장의 직함을 붙여주었다.
그나저나 마왕에 이어서 사천왕 타령이라니? 콘셉트를 조금 잘못 잡은 거 같기도 하고...
다행히 콜탄구트라는 의구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악마촉수로 이루어진 군대도 있는 마당에 새파랗게 어려보이는 군단장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긴 하겠지.
“먼저 호의의 뜻으로 가장 원하시는 바를 이루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콜탄구트라가 수행원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멀리서 근위대 뒤쪽에서 마차가 한 대 나타났고, 거기서 3명의 여성들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은 엘리자베스가 분명했고, 다른 두 명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빠른 걸음으로 회담장으로 들어와서는 그어져있는 선을 넘었다.
나는 당장에라도 엘리자베스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내 사랑들에게 맡겼다.
“인질을 이리도 쉽게 풀어주시다니 저에 대한 신뢰가 크신 모양입니다.”
“매우 유리한 상황임에도 협상에 임해주셨으니 그에 대한 보답을 해드려야겠지요.”
“그동안 엘리자베스 황녀를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손님을 환대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 전통에 따라서 본의 아니게 얻은 인질조차도 배려했습니다.”
콜탄구트라는 엘리자베스를 납치한 것은 자신의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뜻을 전달했다.
뭐, 이건 사실 뻔한 거짓말이다.
애초에 콜탄구트라는 엘카힘과 협력관계 하에 자신의 부하들을 보내서 엘리자베스의 납치를 주도한 장본인이니 말이다.
하지만 내 앞에서 대놓고 엘리자베스를 납치했다고 할 수는 없을 테니 저런 식으로 빙 둘러서 말하는 거겠지.
조목조목 따지고 싶긴 했지만 지금은 얼른 평화협정을 마무리하고 엘리자베스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그 대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협상이 마무리되는 대로 내 군대는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군대 또한 일체의 적대적인 움직임을 멈추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점령지와 국경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나 또한 그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임하고자 합니다. 우리 입장에선 불행한 사태로 국토의 절반이 침탈당한 초유의 상황이니 말입니다.”
콜탄구트라는 코르셰핑 북부지역을 자신의 영토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주장하는 정당한 영토를 인정하고픈 생각이 별로 없었다.
내가 전쟁을 통해 얻어낸 영토는 내 것이 되어야 마땅하지.
하지만 내가 당장 통치할 것도 아니고, 통치할 국민도 없는데다 이미 땅굴을 펼칠 만큼 펼쳐둔 상태이니 지상의 영토에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내가 원하는 영토는 코르셰핑 시에서 노르헤임으로 이어지는 동부회랑과 노르헤임 지역 그 자체입니다. 나머지는 온전히 돌려드리며 평화협정이 유효한 상황에 한해선 카간께서 다스리는 영토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조치도 선제적으로 취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엘레아노르가 미리 준비한 지도를 테이블 위에 펼치자마자 내가 원하는 영토가 표기된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마치 초승달처럼 생긴 새로운 국경선을 본 콜탄구트라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마인족의 언어로 수행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고블린 대장군은 다소 언행이 거칠어지는 듯 했지만 콜탄구트라가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오거 재상은 수많은 서류를 들쳐가면서 콜탄구트라에게 무언가를 조목조목 건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머지 오크 관료들도 콜탄구트라를 상대로 많은 말을 건넸다.
적에게 영토를 내어준다는 것은 뼈아픈 선택이겠지만 내가 점령한 것에 비하면 요구하는 영토가 아주 적으니 무조건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국가의 주권이나 카간의 권위를 중시하며 죽음을 불사한 전쟁을 계속 하겠다면야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이 부분을 지금보다 3배 멀리 뒤로 물린다면 요구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콜탄구트라는 사타카람의 동쪽으로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하긴 수도에서 고작 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국경이 존재하는 건 굉장한 위협으로 느껴지겠지.
나는 일부러 해당 지점의 영토를 필요한 것의 몇 배로 불려서 요구한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콜탄구트라의 요구를 받아줄 수 있다.
하지만 30킬로미터도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니 콜탄구트라 입장에선 굉장히 큰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자비를 좀 베풀어 주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해당지점에서 5배 더 멀리 국경을 정해드리겠습니다. 이 이상으로는 양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요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차후에 할양된 영토에 우리 군대나 백성들이 보이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조치를 하겠습니다.”
콜탄구트라는 또 한 번 악수를 청했고, 나는 이번에도 기꺼이 악수를 받아주었다.
정확한 국경선은 실무협상에서 따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런 건 모두 엘레아노르 측에서 맡아주기로 약속했으니 나는 중간 중간에 보고를 받으며 결과를 기다리면 될 것이다.
“다음으로 배상문제에 대해서 논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쟁은 승패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배상에 대해서 논할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 협상 자체가 카간께서 내게 항복하는 자리이니 말입니다.”
나는 도발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 콜탄구트라의 본심을 떠보았다.
당장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협상을 원했던 것인지, 아니면 진짜 자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 협상을 원했는지 궁금하다.
콜탄구트라의 수행원들은 통역도 맡고 있는 엘레아노르를 통해서 내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고는 분노를 참질 못했다.
항복이라는 말보다 자신들의 주군에게 대놓고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화가 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콜탄구트라는 감정의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올리자 알아들을 수도 없는 괴상한 언어로 고함을 치던 마인족들이 얌전해졌다.
콜탄구트라가 평소에 얼마나 측근들을 잘 휘어잡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부하들의 무례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마왕께서 말씀하신 바는 분명 사실입니다. 거의 모든 영토를 잃고, 절반에 가까운 군사력을 상실하고, 수도가 공격받기 직전에 겨우 시작된 평화협상이니 말입니다. 허나, 보시다시피 우리가 아직도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만은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콜탄구트라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항복이라는 말을 직접 입에서 꺼내지 않을뿐더러, 수틀리면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건 내가 볼 때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부하들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에 가까웠다.
자칫 협상이 결렬될 수 있는 상황을 무마하고자 내게 사과를 하면서도 내부단속을 하다니 꽤나 용감한 자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분의 뛰어난 상무정신과 애국심을 존중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배상을 해드리길 원하십니까?”
“모든 인간노예를 내게 양도하시면 됩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합니까?”
“네, 충분합니다. 금전보다는 동족의 자유가 더 중요합니다.”
나는 자비로운 사람을 연기하면서 거울을 보면서 연습했던 한껏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실 내가 인간노예의 해방을 요구하는 이유는 그들이 불쌍하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콜탄구트라의 세력 자체를 약화시키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엘레아노르의 말에 따르면 콜탄구트라의 세력은 인간, 마수족에게 거의 모든 잡일을 맡기고 마인족은 대부분 병사가 되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노예들 중에서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인간노예를 내가 모조리 데려간다면, 사회적인 혼란과 국력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콜탄구르타가 인간노예를 내놓지 않더라도 그들을 자유민으로 해방시키기만 하더라도 나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본다.
갑작스레 해방된 대량의 노예 또한 국가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주요한 사태이니 말이다.
물론 콜탄구트라 측도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테니 쉽사리 내 요구를 수용할 수는 없을 거다.
콜탄구트라는 다시 한 번 수행원들과 논의에 들어갔고 나는 여유롭게 그들이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 콜탄구트라가 인간의 언어를 입에 담았다.
“내가 다스리는 인간들은 노예일지라도 내 백성들입니다. 항복하는 입장일지라도 백성들을 무작정 타국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따라서 마왕께서 요구하신대로 그들을 노예 신분에서 즉각 해방할지언정, 그들에 대한 통치권만큼은 절대 양도해드릴 수 없습니다.”
콜탄구트라는 약간 강한 어조로 백성들에 대한 보호 의지를 드러냈다.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그가 정말로 인간조차도 자신의 백성으로 여기고 있는지 떠보기로 했다.
“내게 인간조차도 같은 백성으로 여긴다는 증거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내 어머니와 아내를 보신다면 납득하실 수 있을 겁니다.”
콜탄구트라가 뒤를 돌아보며 손짓을 하자 엘리자베스와 함께 마차를 타고 왔던 여성들이 협상장 가까이 다가왔다.
하지만 협상장으로 협상장으로 직접 들어올 수는 없어서 먼발치에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물론이고 내 사랑들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오크, 그것도 수많은 마인족을 다스리는 자가 인간을 어머니와 아내로 두고 있다니 무슨 말장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콜탄구트라에 대한 여성들은 아주 건강한 상태였고 그녀들의 시선에는 아들과 남편에 대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급조된 가족이나 평소에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런 표정에 나는 마음이 조금 흔들리고 말았다.
아내는 그렇다 쳐도 어머니라는 사람은 어떻게 마인족을 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마인족이 태어나는 방식과 인간을 다루는 태도를 생각해보면 갓난아기고 나발이고 당장 죽여도 시원찮을 정도일 텐데 말이다.
“나는 인간 어머니께서 키워주셨고, 인간 아내가 지지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인간들을 노예 신분에서 서서히 해방하는 와중이었으며, 그들의 생명권 또한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장담컨대 내 영향력이 닿는 모든 곳에서 인간을 겁탈하거나 잡아먹는 야만적인 일 따윈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투를 하는 와중에 카칸께서 다스리는 군대가 인간노예를 전장으로 무작정 내모는 장면을 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장에 투입되는 전투노예들은 모두 군사훈련을 받은 자들이며 복무기간이 끝나면 자유민이 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전장에 투입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흠... 틀린 말은 아니네.
노예든 뭐든 군인으로 복무 중이면 전장에 투입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데 이렇게 나오면 내가 인간노예들을 다 내놓으라는 요구를 계속하긴 어렵겠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좋습니다. 카간께서 아끼시는 백성을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내 동족이 모두 노예에서 해방되는 것만큼은 분명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해당 요구가 잘 이행되는지 살펴보는 기관을 사타카람에 설치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 통치권과 정책을 존중해주셨으니 해당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악수를 청했고, 콜탄구트라가 받아주었다.
그의 크고 투박하고 거친 손이 이제는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나는 사전에 정해졌던 굵직한 사안을 전부 처리하고 나니 약간 피로가 느껴졌다.
딱히 회담이 길게 이어지거나 내게 불리하게 돌아간 부분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남은 일은 실무협상을 통해서 구체적인 협상안을 도출하고 협상문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실무진들이 할 일이지 나와 콜탄구트라가 직접 참여할 일은 아니다.
콜탄구트라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인간의 예법에 따라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측에서 귀한 손님을 환대하는 뜻에서 정성스레 만찬을 준비했습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응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콜탄구트라의 손을 잡았고, 회담장에 그어져있던 선을 넘어갔다.
그리고 콜탄구트라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만찬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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