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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670화 (666/800)

670회

314일차

끼이익.

성문이 열렸다. 나는 용마성 바르바토스에 진입했다.

"...그냥 왕성이네?"

들어오자마자 보인 것이라고는 평범한 왕성이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으로 뒤덮여있지만, 길게 뻗은 길이나 좌우의 화단이 이곳이 왕성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는데."

100% 안에서 밖이 보인다. 내가 에로피오네를 비롯한 왕국의 숱한 여인들을 범하고 능욕할 때마다, 오피큐스 국왕은 아닌척하면서 상당한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니까 내가 던전에 진입한 건 무조건 들켰다고 봐야한다. 던전 시스템의 주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 그에게는 시스템이 침입자의 존재를 알렸을 것이다.

나, 라스푸틴(Lv.98, ★★★★★)의 존재를.

'어디 2레벨 올릴만한 녀석 없나?'

왕국 점령 이후, 나는 막대한 경험치를 쌓았다. 예전보다 훨씬 더디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벨은 꾸역꾸역 올라가 이제 고작 2레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상급마석.

마르바스가 동맹의 기념으로 가져온 것, 그리고 왕국에서 귀족가문을 털어 나온 마석들을 모조리 우리 군단의 경험치로 승화시켰다. 나 또한 상급 마석 중에서도 거의 최상급에 준하는 것들만 골라먹으며 경험치를 늘렸다.

'이제 바르바토스 던전을 공략하면서 레벨을 올릴 생각이었는데.'

인생은 때로는 생각보다 더 쉬운 길이 나타나는 법일까? 나는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막대한 괴물들이 나를 기다릴 거라고 예상했지만, 괴물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주인님, 연결이 완료되었습니다. 후방에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샤이탄. 인장들의 힘을 어디 한 번 똑똑히 보여봐라."

나는 내 귀에 채워놓은 붉은 마석 귀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던전 안으로 들어와있다고는 해도, 성문 바로 앞의 지휘부에서 전해지는 통신은 노이즈 없이 깔끔하게 전달되었다.

치지직.

나는 내 눈앞에 쓴 마석 바이저를 내렸다. 던전 내부의 마력 흐름을 눈으로 표현해주는 고급 아티팩트로, 왕국의 모험가 던전을 털어 얻은 던전 탐험의 필수품 중 하나였다.

"오오, 보인다. 이러니까 진짜 모험가 같군 그래."

매번 일일이 지도를 그려나가며 던전의 구조를 파악했던게 엇그제 같은데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아티팩트를 통해 보이는 마력의 흐름에 나는 왕성 내부 던전의 구조를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런 미친. 길이 막혀있고 전이문이 하나 있다고?"

[저희도 보입니다. ...주인님, 이거 왕성 내부가 혹시 '구역'으로 나뉘어져있는 건 아닐까요?]

"네 말이 맞다, 샤이탄. 젠장,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있던 곳은 오픈 월드 세계였으나, 던전 안은 스크롤을 넘어가면 다음 장소로 넘어가는 방식의 세계였다. 내 눈앞에 대놓고 펼쳐진 전이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럽게 귀찮을 것 같은데."

[...알아냈습니다. 던전 내부를 수 백 개의 결계로 쪼개놨습니다. 각 장소별로 공간 유지의 핵심이 되는 핵이 있으니, 그걸 파괴하면 다음 장소로 가는 길이 열릴 겁니다.]

"알겠다. 끙, 바르바토스 놈, 끝까지 안에서 버티는 이유가 있었군."

이 던전은 침입자를 철저하게 농락하고 능멸하는 던전이다. 던전의 주인은 왕성의 꼭대기, 옥좌의 방에서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음흉하게 용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변태같은 구조의 던전이 틀림없다.

"더럽게 귀찮게 하는군."

나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나의 손에는 이미 살기등등한 할레오 색스가 어떤 존재가 나오든 두동강을 낼 기세로 붉게 번쩍이고 있었다.

"들어간다."

서걱.

나는 전이문 앞에 반짝이는 검은 마석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마석은 힘을 잃고 반짝이더니, 곧 안개가 되어 전이문을 활성화시켰다.

"예상대로군. 너무 예상대로라 익숙함마저 느껴져."

[예? 예전에 이런 던전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니. 그 쪽 얘기다."

[아하. 후후, 저희가 오히려 주인님께 배우게 생겼습니다.]

샤이탄의 말대로, 던전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구조다. 나는 전이문을 향해 넘어간 뒤, 곧장 전신에 힘을 줬다.

"역시."

캉, 캉캉.

입구부터 왠 정체불명의 금속 덩어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항아리 두 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기형적인 외형의 괴물은 나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얼씨구."

나는 할레오 색스를 수직으로 놓고 전력으로 휘둘렀다. 야구배트로 풀스윙을 하듯, 도끼로 벤 게 아니라 도끼날로 휘둘러 친 덕분에 괴물은 금방 바닥을 굴렀다.

깡, 까강, 깡.

놈은 바닥을 굴렀다. 날아갈 걸로 예상했지만 의외로 놈은 바닥을 구르며 쓰러졌다. 끼긱거리며 몸을 일으키려하길래, 나는 가까이 다가가 발로 놈을 짓밟았다.

우지끈.

캔이 찌그러지듯, 놈의 몸통이 구겨졌다. 나는 놈의 관절 이음새 부분에 도끼날을 집어넣었고, 도끼자루를 밟아 몸통을 갈랐다.

데구르르.

항아리 괴물은 반으로 갈라졌다. 전방으로 나아가는 전이문이 열린 순간, 나는 아래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급히 몸을 뒤로 날렸다.

[주인님!]

"씨발, 시폭?!"

콰----앙!!

항아리 거인은 폭발했다. 급히 할레오 색스를 들어올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 앞에 물의 장벽이 펼쳐지지 않았다면 분명 폭발에 휩싸였을 것이다.

"주인님, 괜찮으세요?"

"고맙다, 륜. 덕분에 안 다쳤다."

아주 약한 폭발이라 상처가 크게 나지는 않았을테지만, 까딱 잘못했으면 눈썹이 타거나 머리에 불이 붙을 뻔 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골랐다.

"바르바토스 개자식, 골렘을 써먹어?"

콰득. 나는 항아리 괴물, 골렘의 몸통을 짓밟았다. 내 무게를 절반 넘게 싣고 나서야 골렘은 찌그러졌다.

"젠장, 이 썩을 놈. 이래서야 우리 군단의 주력 전술을 사용할 수 없잖아."

"주력이요?"

"미약 테러."

가령, 넵튜뉴스-물의 정령왕에게 미약을 섞어 던전 내부에 살포하여 미약에 익사시킨다거나.

가령, 공기 중에 미약을 실어 멀리서 바람을 일으켜 내부까지 전해지게 만든다거나.

가령, 던전의 마물에게 미약을 중독시킨 다음, 시한폭탄이 터지듯 주변에 미약이 터진다거나.

그 모든 계획이 휴지조각으로 돌아갔다.

던전은 마치 격벽을 친 것 마냥 전이문으로 별개의 공간이 만들어졌고, 던전에 나타난 마물은 미약에 중독되지 않는 골렘이다.

"썩을. 하드카운터네."

우리 군단에게 있어서, 우리의 전투방식에 있어서 최악의 상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끔찍한 상상에 진절머리가 났다.

위이잉.

앞으로 나아가 전이문을 넘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뱀 머리의 검은색 골렘 세 마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리자드맨이 골렘이 된 것 같은 모습. 나는 눈앞에 생전 처음보는 마물에 그만 기가 질렸다.

"이 새끼, 설마 자기네 부하들 죄다 골렘이랑 합성시키고 있는 거 아냐?"

쉬이익!!

의지 없는 골렘들이 우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합성, 합성, 그리고 합성.

파이톤은 여체가 된 상태로 쇠사슬에 묶인 채, 멍하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아니 그녀의 몸은 마치 엘프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검은 흑발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는 바깥의 엘프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웁."

하지만 그녀의 배는 볼록하여 아이를 가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녀는 아이를 낳고 있었다.

"으, 으아아악!!"

'알'을 낳고 있었다. 파이톤은 눈을 까뒤집으며 절정하며 가버렸고, 벌려진 다리에서 검은 광택이 나는 알 하나가 톡 빠져나왔다.

"이걸로 384개."

오피큐스 국왕은 아무 감정없는 얼굴로 알을 받아 소환진에 올렸다. 오피큐스 국왕이 움켜쥔 스태프의 뱀들이 입을 벌리며 마나를 뿜어냈고, 곧 소환진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라스푸틴과 적들이 쳐들어왔더군, 바르바토스."

"이...이 더러운 인간 새끼가...!"

파이톤-바르바토스의 금빛 눈동자가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바르바토스는 자신이 수호하던 왕국의 국왕을 상대로 당장이라도 찢어죽이고 싶어하는 눈빛이었으나, 그녀는 오피큐스 국왕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더러운 인간이라니. 네가 영원히 수호해야 할 왕국의 국왕이니라."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바르바토스는 오피큐스 국왕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그가 움켜쥐고 있는 지팡이 때문에, 조디악 왕국의 긴 역사동안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지팡이의 진정한 힘 때문에 바르바토스는 꼼짝도 못하고 모든 '권한'을 내어줘야만 했다.

"죽여버리겠어...! 감히 나를 수 백년 동안 속여와...!"

"속은 놈이 잘못이지. 그러길래 선조님과 계약을 맺을 때 좀 잘 맺지 그랬나?"

오피큐스 국왕은 바르바토스를 마음껏 비웃었다. 그는 지팡이 끝을 바르바토스의 하복부에 올렸다.

"마장 오피큐스. 다른 12성검과 마찬가지로 성검으로 분류되는 힘을 가진 성검이지만, 어떤 멍청한 드래곤을 조종하느라 모든 신성력을 소모하여 마검이 되었지. 지팡이는 선조님의 취향이고."

"이...개같은...!"

"다른 이름으로는 '뱀주인'이라고 하지. 흐흐, 드래곤도 결국에는 뱀새끼 아닌가? 이거봐라, 바르바토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존재가 아니더냐."

꾸욱, 꾸욱. 오피큐스는 바르바토스의 하복부를 지팡이로 누르며 그녀를 비웃었다.

"명령이다. 시스템을 이용해, 네가 낳은 4성짜리 알과 스톤골렘을 합성해라."

"시, 싫...하아악...!!"

바르바토스의 하복부에 검은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트기 시작했다. 쇠사슬에 묶인 바르바토스의 손은 허공을 두드리기 시작했고, 옥좌의 옆 소환진에 올려진 검은 알 뒤로 스톤골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쩌적, 쩌적!

검은 살덩어리가 골렘을 감싸쥐기 무섭게, 드래곤의 알과 합성되어 새로이 태어난 검은 골렘은 주인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 바르바토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 녀석은 여왕의 방에 배치를 하도록 하지. 오크가 나타났을 때, 내 왕비를 감히 범한 것에 전력으로 복수하도록 해라."

쿵, 쿵, 쿵.

오피큐스 국왕은 바르바토스에게 명령하고, 바르바토스는 거역할 수 없는 명령에 따라 오피큐스의 의지대로 병력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녀는 드래곤임에도 저항할 수 없었다. 마검 오피큐스가 가진, 뱀주인으로서의 권능이 그녀를 옥죄여왔다.

"그럼 이제 계속 낳아야지? 너희 마족들은...던전 주인이라는 놈들은 666개의 알을 낳았을 때 진화라는 걸 한다면서?"

꾸우욱.

지팡이 끝이 바르바토스의 배를 찔렀다. 바르바토스는 이를 악 물었으나, 이 사이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으, 으히익...! 내, 내가 왕국을 위해 수백년을 수호했는데...!!"

"그러니까 앞으로도 더 열심히 수호해달라고. 오피큐스 왕국은 내가 죽지 않는 한 멸망하지 않는다."

오피큐스 국왕은 지팡이를 비틀며 명령했다.

"자가수태하라, 바르바토스."

"으, 으아악!!"

385번째. 바르바토스의 배가 볼록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 *

"젠장, 더럽게 힘들군."

나는 바닥에 쓰러진 세 마리의 골렘에 이가 다 갈렸다.

"이 새끼들 진짜 뭐야? 이거 드래곤 스케일이라도 되는 건가? 왜 이렇게 단단해?"

"광택은 진짜 전설 속 용의 비늘 같아요."

우리는 화단에 쓰러진 골렘 세 개체의 상태를 확인했다. 내 도끼에 찌그러지고 륜의 바람화살에 구멍이 뻥 뚫린 골렘들은 주먹으로 내리치는 게 더 아프겠다 싶을 정도로 단단한 방어를 자랑했다.

[주인님,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레비즈의 드래곤 피부와 비교해본 결과, 드래곤의 피부가 맞습니다.]

"진짜냐."

싸우면서 느꼈지만 설마했다.

드라고니안 골렘.

우리가 레비즈의 알로 무수히 많은 드라고니안을 만들어냈듯이, 바르바토스도 마찬가지로 지금 미친듯이 알을 낳고 있는 게 틀림없다.

"바르바토스 녀석, 설마 쫄리니까 마구잡이로 알을 낳기 시작한 건가?"

그럴 가능성이라면 충분히 있다. 2시간 마다 알을 하나씩 낳던 레비즈의 모성을 생각하면, 어머니 개체인 바르바토스는 얼마나 빠르고 신속하게 알을 낳겠는가?

시간 당 한 개씩 알을 낳는다고 가정해도 무려 하루에 24개체의 드라고니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본인이 5성 만렙의 드래곤일테니, 분명 태어나자마자 최소 3성, 아니 4성급 드라고니안 알로 태어날 게 분명했다.

"씁. 어떤 놈이 감히 내 물건을 임신시키고 있는 거지?"

아직 레비즈와 모녀덮밥을 하지도 못했 건만. 나는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흐흐, 좋다. 어차피 빼앗으면 그만이니. 지금은 파밍에 집중하자."

위이잉.

나는 다음 전장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도 뱀 머리의 검은 골렘들이 우리를 보고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륜, 이번에는 최대한 관절을 자르는 식으로 싸워보자꾸나."

놈들의 몸통이 상하지 않게.

"멍청한 바르바토스 놈 같으니라고."

드라고니안 골렘.

드래곤 피부에 준하는 단단함에 비해 깃털같은 가벼움을 자랑하는 몸체.

"광석 파밍 각이다. 로도페리가 기뻐하겠어, 흐흐흐."

드라고니움, 꺼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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