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회
150일차
스카 트올로지에 의한 후장 테러는 이미 효과가 입증된 전술이다.
엘프가 아닌 생물인 이상 당연히 배변을 할수밖에 없다.
먹은 게 있으면 나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며, 스카 트올로지라는 어둠의 사냥꾼은 아주 은밀하고 어두운 곳에서 움직이며 사냥감을 노린다.
"레비즈 안 조차도 당했던 전술이지."
성벽위에서 상황 파악을 위해 나온 나는 하늘에서 고공낙하하는 스캇 공수부대를 보며 승리를 기원했다.
부디 이므신할도 화장실을 갔다가 스카 트올로지에게 걸려 제대로 발정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요행으로라도 쉽게 이겼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너무 힘들게 싸웠어."
던전 주인이 되고 나서도 5개월 가량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나들었는지 모른다.
'날로 먹어서 이기고 싶다.'
이왕이면 나도 뒤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하나를 처리하고 나면 그보다 더 강한 자들이 내 앞을 가로막거나 싸움을 걸었다.
"샤이탄, 네가 보기에는 이므신할이 대략 몇 레벨 정도 되어보이는 것 같으냐?"
[100레벨입니다.]
"...오우, 그거 참 듣기만해도 골때리는 소식이군."
100레벨. 나는 아직 한참 남아있는 소위 '만렙'의 경지. 5성으로서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나는 절로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진짜로 100레벨일까?"
[실례했습니다. 100레벨에 준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정정하겠습니다. 실제 레벨은 90레벨 전후로 추정되지만, 성검의 힘이 붙어있는 이상 마족들을 상대로 100레벨 급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하죠.]
"그렇지? 미르망이랑은 경험 자체가 다르니까."
검보다 사교계에서 부채를 더 많이 쥐었던 백작 부인조차 내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강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도 역전의 용사로 만들어주는 게 성검의 힘이다.
다른 곳도 아닌 마왕군과의 최전선에서 성검도 사용하지 않고 굴렀다고 하는 이므신할이 약할 리가 없다. 만렙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그녀의 강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샤이탄. 이런 경우에는 내가 어떻게 싸운다고 했지?"
[싸우지 않는 것이 상책. 적을 사로잡을 수 있는 수가 보이는 경우, 승률이 최소 5할은 되어야만이 싸워봄직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지금 네 생각에 승률은 어떻느냐?"
[이므신할과의 1:1 대결에서의 승률은 대략 3할, 지원이 붙을 경우 승률은 5할입니다.]
샤이탄이 말하는 지원은 우리 군단에서 활용가능한 병력들이 총출동 했을 때의 이야기다. 륜, 루나, 미르망, 거기에 그레모리까지 모두 지원을 나섰을 때의 가정.
"그렇다면 샤이탄, 내가 실행하는 작전은 모두 성공률이 몇 할일 때 결행되더냐?"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입니다."
"그래. 성공률 10할이 아니면 나는 하지 않지. 싸움도 마찬가지다. 이기는 게 확정되지 않은 싸움은 하지 않아."
이므신할이 쫄보라고 조롱해도 상관없다.
군단의 부하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살리고, 조금이라도 덜 힘을 써서 적을 사로잡고, 피를 흘리지 않고 이길 수만 있다면 그게 어떤 더럽고 추잡한 작전이라도 사용할 수 있었다.
"음충 낙하는 그저 눈속임일 뿐."
나는 몸을 돌렸다. 라스마켓이 타오른 붉은 광장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요새의 높이 때문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위치에서, 우리의 '기병'대는 언제든 인간의 목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군단이여, 포털을 넘어라."
우리 군단에 있는 마법사의 9할이 모여 만든 포털은 한 번에 10명은 족히 넘어갈 수 있는 너비였다. 포털을 만들기 전부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병들은 무기를 든 채 내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우리의 전쟁에 오크가 빠지면 섭섭하지."
오크가 군단의 주인인데 엘프와 언데드, 수인만 활약할 수
는 없는 노릇.
"달릴 준비를 해라, 전사들이여."
나는 드라이어드의 나무뿌리로 만든 합판전차 위에 오른 오크들을 향해 박수를 쳤다. 오크들이 잡은 고삐에는 구울들이 포털 너머로 달리기 위해 짐승처럼 엎드려 바닥을 긁어대고 있었다.
"가자, 라스의 전사들이여. 가서...."
쿵.
나는 성문에서 뛰어올라,전차부대의 선두에 서서 진격의 북을 두드렸다.
"빈집을 털어라."
"""라스으으으!!"""
던전 주인을 제외한 모든 오크들이 모는 파티클 보드 전차가 포털을 넘었다.
* * *
<늦은 새벽, 토벌대 임시 진지. 후작 전용 저택>.
"끄응, 으으윽...!"
이므신할은 밤잠을 설쳤다. 성녀가 주인공인 서큐버스의 꿈을 꾸는 것도 아니었건만, 꿈에서 오크에 의해 용사가 패배하여 암컷타락하게 되는 악몽을 자꾸만 꾸게 되었다.
"아아악!!"
이므신할은 비명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온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고, 아직 세상은 고요하고 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하아, 하아."
이므신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수통에 담긴 물은 언제 다 마셔버렸는지 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이므신할은 타는 갈증에 옷을 여미고 성검 레오를 붙잡았다.
위이잉.
성검 레오에서 뿜어져나오는 은은한 빛은 램프가 되어 어둠을 밝혔다. 이므신할은 작은 저택 안에서 화장실을 찾아 조심스레 걸었고, 화장실 특유의 악취가 나는 곳을 찾아 문을 열었다.
"......."
후작성에 비하면 열악한 걸 넘어 화장실을 가고 싶은 생각이 달아나게 만드는 수준이었지만, 이므신할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구멍을 덮은 천을 옆으로 옮겼다.
쪼르르르.
"후우."
너무 오랫동안 전장에서 떨어져서 그런지, 이므신할의 몸은 최전선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긴장이 풀려있었다. 최전선에는 화장실에 간 순간마저 어떤 일이 발생할 지 몰라 항상 전전긍긍했는데, 후방은 상대적으로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이므신할은 최전선에서의 지옥같던 나날을 떠올렸다.
생리혈의 피냄새도 귀신같이 맡던 헬하운드 무리라거나, 조그만 자상에도 달라붙어 몸에 버섯이 피어오르게 하는 기생 마물, 거기에 인간의 뇌수를 파먹고 두개골에 알을 까던 파리들까지.
그곳은 지옥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였다.
"거기에 비하면 정말 여기는...."
천국이다. 비록 상황은 좆같기 짝이 없지만, 매 분 매 초마다 긴장의 끈을 붙잡고 있어야하던 현장보다는 낫다.
그래, 저기 엉덩이 뒤쪽에서 뛰어오르려고 준비중인 남근머리의 작은 벌레를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
토-옹!
"흡?!"
벌레는 몸을 튕겨 이므신할의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었다. 성검 레오의 칼날에 비친 벌레는 형태가 자지처럼 생긴 괴물이었다.
"어딜?!"
이므신할은 본능과 경험에 따라 손으로 음부를 가렸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신성력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므신할은 여성을 납치해 강제로 알을 까게 하던 촉수 괴물이 떠올랐다.
꾸륵, 꾸륵.
하지만 음충은 이므신할의 예상을 깨고, 아래에 있는 또다른 구멍으로 대가리를 쏙 들이밀었다.
"아아악!!"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애널섹스의 경험을 고작 벌레에게 당했다는 충격도 잠시. 이므신할은 손을 뻗어 음충을 막지 않고, 성검 레오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흐-읍!"
이므신할은 기합과 함께 전신에 힘을 줬다. 하복부의 근육이 탄탄하게 당겨지며, 성검의 신성력이 몸안에서 들끓기 시작하자, 막 괄약근 속으로 꼬리까지 집어넣었던 음충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하-아!"
이므신할이 몰아쉰 숨을 크게 토해내자, 몸안에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마치 코르크 마개가 뽑히는 와인병마냥, 내부에서 터져나온 신성력에 음충은 탄환처럼 쏘아져 아래로 처박혔다.
"어디서 개수작을 부려!!"
이므신할은 시뻘게진 얼굴로 성검 레오로 화장실 문을 찍었다. 검신에서 신성력의 구체가 뿜어져나와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므신할의 발치에 남은 구체 하나는 곧 사자의 형상을 갖추며 음충이 있는 아래로 뛰어내렸다.
콰득, 콰득, 콰지직.
은빛 사자는 음충의 몸통을 씹고 뜯으며 음충을 터뜨려버렸다. 이므신할이 자신을 중심으로 퍼뜨린 사자들이 숙영지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고, 이므신할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감각에 현기증을 느끼고 거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각하, 큰일입니다! 적들이 음충을...!"
"안다. 이미 조치는 취해놓았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어."
이므신할은 성검을 눈으로 가리키며 피식 웃었다.
"최전선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미리 정화하여 떠놓았던 물조차도 공기중 오염으로 썩는 곳이 최전선이다. 고작 음충 따위로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사제들이 당했습니다!!"
"......뭐라?"
음충은 이므신할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므신할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므신할이 음충을 발견하고 조치를 취하기 전, 이미 사제들의 엉덩이는 터져있었다.
***
오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전사가 대표적이지만, 워울프를 타고 평원을 달리는 기수의 모습도 떠오르기 마련.
“달려라, 달려!”
나는 움켜쥔 고삐를 당겨 구울들의 질주를 재촉했다. 다른 전차와는 달리 내 전차는 엘프의 숲에서 직접 베어온 통짜 나무였고, 내 앞에서 나를 이끌어 달리는 구울도 평범한 구울이 아니었다.
“개처럼 달려라!”
오라의 힘으로 강화된 하이 구울. 그 중에서도 본래 레벨이 높았던 포로 중 일부를 구울로 만들어 달리게 했다. 구울들은 두 발로 걷는 것이 기본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네 발로 달리는 것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멍청한 인간 놈들!”
나와 오크들은 왼쪽으로 보이는 토벌대의 임시 진지를 비웃으며 앞으로 달렸다. 과연 저들이 우리의 진격을 봤을까 싶었지만, 음충 테러에 난리가 난 상황에서 우리의 은밀한 기동을 눈치챘을 리는 없다.
그르르르.
구울들이 달려가는 뒤로 굴러가는 파티클 보드 바퀴는 생각보다 견고하고 단단했다. 로도페리가 덧댄 철판과 프레임의 힘으로 굴러가는 나무 전차는 솔직히 부서뜨리기 아까울 정도였다.
“이거 부수면 로도페리가 울겠지? 오크들이여, 집중하라! 적의 마을을 털고나면 바로 다시 포털로 돌아갈 것이다!”
나와 부하들은 빠르게 평원을 달렸다. 적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구울들이 이끄는 전차가 목적지를 향해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야심한 새벽. 인간의 긴장이 가장 풀려있는 위험한 시간.”
우리는 ‘성벽’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설명으로만 들었던 그 웅장하고 화려한 레굴루스 성에 나는 괜히 오한이 들었다. 우리가 만든 천연 요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크기에 공성을 하지 않기로 생각한 게 천만 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건 라임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 뿐.”
“주인.”
부르기가 무섭게 라임이 성벽 위에서 뛰어내렸다.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라임은 선홍빛 머리칼을 찰랑이며 내게 안겼다.
“다치지는 않았느냐?”
“왜 이렇게 일찍왔음? 아직 공사 중인데.”
“너 보고 싶어서 왔지. 흐흐흐.”
“그런 거라면 인정.”
라임은 내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묻게 끌어당겼다. 폭신한 가슴의 감촉이 내 볼을 감싸는 가운데, 나는 라임이 뭔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안색이 좋지 않구나. 무슨 일이 있었나?"
"주인, 미친 년이 따라붙었어."
"미친년이라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니야?"
라임이 말한 미친년은 내 뒤에서 속삭이듯 나타났다. 나는 라임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네 년, 누구냐?"
"상대의 정체를 추궁하기 전에 자기 정체를 먼저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강하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대는 나보다 훨씬 강한 존재라는 걸. 그러나 물러설 수 없다.
"마족끼리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면, 강자의 일에 약자가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어머, 그래서 네가 강자라고? 풉."
여인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나를 조롱했다. 바로 옆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라임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눈에 훤했다.
"마음껏 비웃어라. 언젠가 미래에 큰 코 다칠 일이 올 것이다."
"그래, 그 미래가 곧 오게 될 지 모르겠네."
미친 마족의 속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군단의 승리를 위해서는 궁금증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는 법.
"대주거나, 꺼져라. 그도 아니면 얌전히 구경이나 해라."
화륵.
나는 드라이어드 나무뿌리 끝에 불을 붙였다.
"쥐불놀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