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573화 (572/800)

573회

150일차

은테 모험가, 모트보르거 파버린은 귀동냥으로 들은 정보에 목숨을 걸고자 했다.

여신님이 모험가들을 위해 만든 공간, 차원의 틈에 가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하더라. 사람을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해준다더라. 엘프랑 떡치는 것도 가능하다더라.

‘목숨을 걸 만 하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게 모험가의 삶이다. 죽기 전에 엘프랑 한 번 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고, 색수병의 발발로 모트보르거는 나름 자지에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차원의 틈으로 향하는 곳이 어디냐 하는 건데.’

모험가 길드의 윗대가리들은 자신들만 차원의 틈으로 향하는 장소를 알고 비밀을 공유하지 않았다. 같은 모험가끼리 너무한다 싶었지만, 그 누구도 그들을 향해 직접적으로 원망하지는 않았다.

‘드래곤의 힘을 받아 다시 태어나는 놈도 있는데,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내가 죽어.’

이제는 후작령에서 찾아볼 수 없는 존재, 이프산 루머메이커는 자신이 차원의 틈에서 용의 힘을 이어받았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드래곤의 힘을 받아 몸에 마나도 늘어났고, 색수병에 걸린 것처럼 자지도 커졌고, 무엇보다도 머리가 벗겨질 것 같던 탈모도 풍성해졌다. 심지어 드래곤의 힘 덕분에 엘프와 드라이어드를 두 명이나 동시에 한 침대에서 먹었다고 으스대기까지 했다.

‘내가 그 놈에 비해 못난 게 뭐가 있다고!’

모트보르거는 마법사보다 마나는 적을 지언정, 모험가에게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추적술은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부장 근처에 뽈뽈거리는 년놈들의 뒤를 밟자.’

누군가는 지부장에게 알랑방귀를 뀌어 차원의 틈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럼 자신은 그 뒤를 쫓아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

“흐흐, 역시 난 천재야.”

모트보르거는 차원의 틈을 발견하고 말았다. 지부장에게 다리를 벌려 차원의 틈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얻어낸 모험가 여자 둘의 뒤를 밟았더니, 왠 작은 동굴의 마법진으로 들어가더라.

모트보르거는 마법진을 넘어오자마자 몸을 숨겼다. 모험가들에게 잽싸게 뒤를 돌아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았다.

“.......응?”

모트보르거는 좌우로 난 통로에 이상함을 느꼈다. 어디선가 콸콸콸 물이 흘러내려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고, 모트보르거는 무의식적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여긴…?”

동굴 밖으로 나온 모트보르거는 깎아지른 절벽에 경악했다. 비탈길을 통해 올라가는 길은 아무리봐도 차원의 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너무 현실적이었다.

“이게 뭐야?”

“안녕하세요?”

모트보르거의 등 뒤에서 고운 미성이 들렸다. 급히 달려온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분홍머리 미인에 모트보르거는 침을 꼴깍 삼켰다.

“아, 안녕하시오…?”

“차원의 틈을 방문한 모험가님이시죠? 이쪽으로는 나오시면 안 돼요.”

“아니, 그,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움찔. 모트보르거는 위로 시선을 돌렸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오는 서너명의 오크들은 차원의 틈에서 판매된다고 하는 물건을 한아름씩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저, 저게…?”

푸-욱.

모트보르거는 자신의 가슴을 찌른 분홍색 검에 사색이 되었다. 검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커흑!"

"그러길래 앞으로 가는 길에 왜 뒤로 오고 그러세요."

분홍머리 여인은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여기는 출입 금지인 곳인데."

화륵. 모트보르거는 눈부터 타버렸다.

* * *

타락용사에 의한 별빛폭격이 이루어진 뒤, 토벌대는 요새에서 크게 뒤로 물러나 진지를 펼쳤다.

- 지금부터 이 마을은 우리가 사용하겠다.

후작 대리의 명령하에, 마족들에 의해 한 번 침략을 당한 변경 마을 주민들은 후작성으로 쫓겨나야했다. 그들이 살던 마을은, 그들이 마족들에 의해 범해진 마을은 토벌군의 임시 진지가 되었다.

"그럼 저희는 어떻게 살라는 말씀이십니까...?"

"후작성으로 가라. 그곳에 너희들을 위한 임시 거처가 있으니."

일방적인 퇴거 명령에도 주민들은 저항할 수 없었다. 주민들을 집에서 쫓아내는 장본인이 후작령의 주인이었고,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은 후작의 것이었다.

"여기를 떠나면 저희는 죽습니다!"

"마왕군에게 잡혀 구울이 되는 것보다는 나을텐데?"

후작성 내에 사는 농노만도 못한 대우에 주민들은 울분을 토해냈지만, 마왕군과 싸우기 위함이라는 명분에는 어떻게 반박할 도리가 없었다. 자신들이 직접 마왕군과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마족들이 달려와 피해를 입히기도 했으니까.

"싸우고자 하는 자들은 남고, 살고자 하는 자들은 떠나라!"

일방적인 퇴거 명령에 의해 주민들은 모두 떠났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점은 그들이 마족들에게 일방적으로 범해져서 마물박이라는 교단의 금기를 범하기는 했으나, 성기사단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

"여신이시여."

주민들이 달을 향해 기도를 올리며 하나 둘 떠나는 사이, 토벌대는 마을의 울타리를 보수하고 천막을 치며 마을을 거대한 진지로 구축했다.

"제법 장기전이 될 것 같구나...."

이므신할은 철옹성과도 같은 요새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이 더러운 마족 놈, 감히 용사이자 왕국의 귀족을...!"

남들의 앞에서는 차마 얘기할 수 없었지만, 이므신할은 타락한 용사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저 멀리 사지타리우스 성에서 들려온 소식과 용사로서 가진 직감은 세뇌당한 용사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도 패배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마족에게 패배하면, 하복부에 음문이 새겨져 마족에게 씨뿌리기를 당하게 된다. 용사로서 그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치욕이며, 인간으로서도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성벽을 뚫고, 던전을 박살내야겠어."

이므신할은 사람들을 모아 포트라스 공략을 위한 회의를 소집했다.

"이 싸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네."

* * *

<그 시각, 포트라스 작전회의실.>

"단기결전이다. 길게 끌어봐야 좋을 건 없어."

우리는 최대한 빨리 전쟁을 마무리지어야했다. 전쟁 중에는 섹스와 사정을 거의 하지 않기에, 전쟁이 길어진다는 것은 곧 내 자지가 그만큼 논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라임에게서 들어온 소식은 아직 없나?"

"네. 아직도 작업중인 것 같아요."

"...생각보다 더디군. 슬라미아들을 더 많이 소환할 걸 그랬나."

평소의 라임이라면 아무리 땅이 넓어도 금방 작업을 마치고 귀환했을텐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이 생긴 게 틀림없다. 아니면 너무 정교하게 작업을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거나.

"하르파스, 정찰부대를 하늘로 보내 순회사제단과 접선하도록. 성 안의 상황을 살핀 정보를 모으며, 라임과 만나 작업의 진척을 전해듣고와라."

흑익룡 서넛이 요새를 떠나 하늘을 날아갔다. 포트라스와 후작성 사이에 자리잡고있는 토벌대 때문에 마도구를 통한 연락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륜, 던전 쪽 상황은?"

"마르코시아스 던전은 뛰쳐나올 기미가 없어요. 차원의 틈을 방문하는 모험가들의 양과 질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에, 마르코시아스 쪽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으니까요. 다만...."

"다만?"

"슬슬 뒤로 돌아보는 놈들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놈들은 메어리가 다 처분했어요. 조만간 구울이 되어 요새로 걸어올 거예요."

"쳇."

쟁탈전으로 만들어진 포털은 항상 던전의 중심부로 향하는 곳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있어야 한다.

따라서 차원의 틈이랍시고 만들어진 포털은 정면으로 쭉 따라 걸으면 마르코시아스 던전과 통하도록 되어있지만, 혹시라도 옆으로 나있는 작은 통로로 빠져나간다면 바깥, 폭포수가 흐르는 절벽으로 통하게 된다.

"메어리가 잘 관리하기를 믿는 수밖에. 그럼 됐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어."

적의 전력에 대한 파악은 모두 끝났다. 요새를 눈앞에 둔 인간들은 당연히 눈이 성벽에 닿을 수밖에 없고, 어떻게하면 요새를 넘을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싸움은 최대한 빨리 끝내야한다. 우리 상대는 후작령만 있는 게 아니야."

마르코시아스를 비롯한 온갖 던전의 주인들도 잡아야하고, 후작성을 넘어 왕국도 도모해야한다. 그걸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후작령을 무너뜨려야했다.

"적을 정면에서 깨부순다. 빡대가리들의 대가리는 으깨버려야지."

공군이 훤히 있는 걸 봐놓고서는 평원에 진지를 구축한다? 이므신할의 전술적 식견에 대해 나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야밤에 공습간다."

나는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 * *

늦은 밤. 자정을 넘은 시각.

"흐아암."

아르다임 에스에이지는 길게 하품을 하며 횃불을 주변에 흔들었다. 임시 천막 근처에는 그 어떤 마물도 보이지 않았고, 반경 이백미터 가량에 마물이 나타나면 울리게 되어있는 알람도 잠잠했다.

"오크 부랄 자르러 왔는데 이게 뭐람."

아르다임은 볼을 만지작거리며 몸을 으스스 떨었다. 요새에서 쏟아지는 화살비에 중간중간 굴러오는 돌덩이들,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구울 폭탄에 아르다임은 볼에 스쳤던 시독이 떠올라 몸서리를 쳤다.

하마터면 죽을 뻔 했다. 기적적으로 바로 옆에 사제가 있지 않았다면, 분명 시독에 중독되어 피부가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살아남은 것에 안도를. 아르다임은 횃불을 들고 잠시 뒤를 돌아봤다.

마족들이 습격했다고 하는 마을에 자리잡은 토벌대는 마을을 순식간에 마족들을 상대하기 쉬운 임시 요새로 만들어버렸다. 마을 광장을 중심으로 퍼지는 주택에는 성검의 용사를 비롯한 주요 요인들이 들어갔고, 일반병사들은 마을 주변에 천막을 치고 몸을 눕혔다.

"으으, 오늘 하루만 참자."

숙영지를 만들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설마 후작령을 넘어가기도 전에 천막을 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그래도 후작령에서 보급품이 급히 도착할 것이니, 아르다임은 하루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추위를 견뎌냈다.

사락.

무언가가 투구를 스치고 살랑거리듯이 떨어졌다. 아르다임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검은 물체를 손으로 잡았다.

"깃털?"

순간, 아르다임은 소름이 돋았다. 그 깃털은 불과 한나절도 전에 요새 위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던 흑익룡들의 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설마-"

피융.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아르다임은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제, 젠장...."

아르다임은 의식을 잃기 직전, 품에서 지급받은 마도구를 꺼내 마나를 흘려넣었다.

"저, 적의 모습은...."

털썩.

아르다임은 죽기 직전,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쏜 이들의 모습을 생생히 마도구에 음성으로 남겼다. 적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린 아르다임은 소리없이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보초로 서있던 병사들의 몸에는 모두 화살 구멍이 하나씩 나있었다.

* * *

쾅!

이므신할은 성검을 휘둘러 나무테이블을 잘랐다. 잘랐다기 보다는 검면으로 테이블을 부숴버렸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으아아아악!!"

이므신할은 테이블을 마치 나무 마족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파편이 옆으로 튀어 풋풋한 신혼 부부의 그림을 찢어버렸으나, 이므신할은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집기에 화풀이를 일삼았다.

"이, 더러운, 마족 놈들! 하아, 하아."

한바탕 히스테리를 부린 이므신할은 침대에 주저앉았다. 침대 옆에는 보초 중 유일하게 적의 정체를 알아내고 죽은 병사의 목소리가 유언으로 담겨있었다.

"엘프 궁수들이 흑익룡에게 하늘에서 뒷치기 자세로 화살을 쏘고 있다."

"이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이므신할은 병사가 남긴 마지막 보고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이곳의 병력으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마족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 이므신할은 또다른 수정구에 마나를 주입했다.

"으아악, 플라잉 엘프다!!"

"이게 진짜 무슨 개소리냐고...!"

* * *

<그 시각, 토벌대 임시 진지 상공.>

"우와, 위험했다. 걸릴 뻔."

공습을 맡은 그린엘프는 화살을 쏘고 나서 눈이 마주쳤다는 것에 소름이 돋았다. 등줄기를 흐르는 짜릿함에 조준이 엇나가게 되었고, 그 바람에 병사를 일격에 죽이지 못했다.

"저기요, 좀 더 꽉 움켜쥐지 못해요?"

"아플까봐 너 배려하는 거라스."

그린엘프의 뒤에는 검은 용의 날개를 펄럭이는 안드라스가 후배위 자세로 그린엘프를 뒤에서 붙잡고 있었다. 날카로운 새의 발톱으로 된 손으로는 그린엘프의 커다란 가슴을 움켜쥐고, 자지로는 그린엘프의 안에 삽입을 하여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 배려 할 필요 없어요. 나 인간일 때는 언제 그런 배려하면서 박으셨나?"

"그, 그건 명령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거라스."

"나 참. 됐으니까 자지 더 꽉 넣어요. 미끄러질 뻔 하니까 조준도 불안하잖아요."

그린엘프는 마지막 화살을 날린 뒤, 주머니에서 작은 보자기를 하나 꺼내들었다.

검은 스타킹 천으로 된 보자기에는 스카 트올로지들이 천에서 뻗어진 줄을 이빨로 움켜쥐고 있었다. 일반 스카 트올로지와는 다른, 몸이 은색으로 반짝이는 스카 트올로지들은 전신을 스타킹 조각으로 둘러 몸의 색을 가렸다.

사락.

"흐흐, 사람들끼리 서로 좋은 건 나눠야지."

그린엘프는 천조각-음충을 바람화살에 걸었다. 음충들은 바람화살의 위에 바짝 엎드렸다.

"투하!"

서늘한 바람과 함께, 음충들은 밤의 어둠에 숨어 천천히 인간들의 진지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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