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3회
142일차 후작성이 개방되고 벌써 수 일이 지났다.
색수병 환자들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가는 듯 하면서도, 때때로 이상한 곳에서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 네. 여신님 덕분이죠. 이 모든 게 여신님의 덕택이히이익?!"
"보고입니다! 각지에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이들에게 짧은 순간 증상이 나타나는 오그윽?!"
간헐적 발정.
수 시간에 한 번 꼴로, 약 5분 남짓한 시간마다 발정하는 환자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또다시 충격과 공포, 그리고 알게 모르게 기대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간헐적 발정에 걸리면 말이야, 그 순간만 참아내면 되는 거 아닌가?
-사제들에게 걸려서 신성력으로 치료되기도 전에 부작용이 나타날 지도 몰라...!
-미친 놈들아, 일상 생활에 방해가 되잖아!
주민들마다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므신할 후작은 자신의 집무실에 후작성의 고위 관료들을 모았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이리 모아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긴히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 불렀습니다."
"무엇입니까? 요즘 안 그래도 바쁜데...."
"입에 침이나 닦고 말씀하십시오. 자느라 바쁜 거 다 압니다, 공."
"크흠."
집무실에 모인 모두가 얼굴을 붉히며, 같은 자리에 있는 추기경의 눈치를 살폈다.
서큐버스를 숨겨 꿈속에서 성녀와 정사를 나누는 걸 이단심문관인 추기경에게 들키면 빼도 박도 못할 이단행위였으나, 추기경은 후작이 붙인 기사들의 감시를 받느라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공들 모두 요즘 바쁜 것 다 알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후작령에 평안이 내려앉기를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 그렇지요! 평화, 평화 좋지요!"
"여신이시여."
따라서 모두가 입 싹 닫고 모른 척 하면 아무 문제 없었다. 성검의 용사조차 눈을 감아주고 있는데, 이단심문관이 나서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후작 각하, 들으셨습니까? 교회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고...."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그대들을 불렀습니다. 라그비아 대사제 님, 설명을."
"......교단에서는 성기사단과 연계하여 서큐버스들을 잡아들이고 있었소. 하지만 서큐버스들이 탈출하는 일이 벌어졌지."
"뭐요?!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후작성의 권력자들이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고위 행정관, 모험가 길드의 장, 상인 연합의 협회장 모두의 얼굴에 당황이 엿보였다.
"그, 그건 큰일이 아닙니까?!"
"서큐버스들이 탈출한 것이 큰일이기는 한데...흐음, 왜 저는 다르게 들리는 걸까요."
추기경은 마치 농담을 한다는 것 처럼 살포시 입을 열었다. 모두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가운데, 라그비아 대사제가 추기경의 말을 끊고 말을 이었다.
"서큐버스들은 다시 돌아올 것이오. 그리고 후작가의 주민들을 공포에 빠뜨리겠지. 개중에는 아아아아주 불경한 소문이 돌고 있지만...."
라그비아 대사제는 좌중을 훑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이기 전에 남자인지라, 라그비아는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서큐버스들이 꿈에서 누군가를 자꾸 보이게 한다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오. 문제는 그들이 꿈속에서 이야기한다는 여신의 새로운 성지, <라스토피아>라고 부르는 곳이오."
"...저는 처음 듣습니다만?"
"처음 얘기하는 거니까 그렇소. 결코 그대의 주위에 들어가는 정보를 차단하기에 그런 건 아니오. 믿어주시오."
대놓고 배짱을 부리니 추기경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라스토피아라는 곳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큐버스들이 감히 여신교단을 운운하며 민중을 혹세무민하는 것은 여신께 크나큰 불경. 후작 각하."
"음. 라그비아 대사제의 말대로, 나는 이 상황을 가만히 쳐다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간고히 부탁하도록 하지."
"예? 서, 설마...."
"비르고 남작령을 점령한 던전의 마물들이 분명 원흉이라 생각된다. 그들의 행동을 분석한 결과, 정체불명의 성병은 던전의 마물들이 퍼뜨린 것이 분명하다. 어떤 방법으로 신성력의 힘에서 벗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여신님조차 모독하려는 자들의 잔악하고 사이한 짓이지."
권력자들은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생각하면, 이므신할 후작이 할 말의 결론은 단 하나.
"현재 징집한 토벌대와 함께 조만간 원정을 나가도록 하겠다."
성검의 용사가 던전을 폐쇄하겠다 선언했다. 권력자들은 이므신할이 떠나기 전 집단속을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이 원정을 승리로 만든 뒤, 다시 후작령을 떠날 것이다."
"예???"
"나에게는 성검의 용사로서 사명이 있다. 아리에스 변경백까지 죽어 대방벽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곳에 묶여있을 수는 없지."
"그, 그거야 그렇지만...."
캉! 이므신할은 성검을 치켜들고 테이블을 갈랐다. 성검의 검날이 가리키고 있는 곳은 추기경의 미간이었다.
"안다이할은 실종되었고, 나는 성검의 용사로서 가문을 이을 수 없다. 하지만 후작령을 레오 가문의 사람이 잇지 않으면 안 될 말이지. 추기경. 부탁하지."
"이게 부탁하는 이의 태도입니까?"
"나는 지금 너무나도 정중하게 부탁하고 있는데?"
이므신할의 압박에 추기경은 움츠러들었다. 집무실 안에 모인 이들은 모두 이므신할의 편이었고, 심지어 같은 여신교단의 일원인 라그비아 대사제도 이므신할에 동조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단, 선택을 해주십시오."
"뭘?"
"아버지인지, 아들인지."
추기경은 오히려 고개를 빳빳히 세웠다. 노골적인 그의 언행에 이므신할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지만, 추기경은 물러섬이 없었다.
"후작성 지하에서 흑마법의 흔적이 나온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리고 후작가문의 누군가가 마족과 결탁하여 거래를 하려고 한 것 또한 맞습니다. 이건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입니다."
"......네놈. 레오 후작가는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므신할은 으르렁거리며 성검을 아래로 찍었다.
"아버님의 명예를 되돌려다오. 그리고 그분께서 다시 후작으로서 영지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네가 직접 영지민들의 앞에 서서 선언하라. 흑마법에 심취한 자는 고트다이할 후작이 아니라, 안다이할이라고."
"예상외로군요. 저는 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녀석은 글렀어. 매일 시정잡배와 어울리는 놈이라 안 돼."
이므신할은 성검의 끝을 바닥에 놓고 의자에 다시 앉았다. 모두가 이므신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이므신할은 성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후작은 아버님이지, 그 놈팽이가 아니야."
던전 토벌 이후의 권력 구조에 대한 회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간헐적 발정과 딥 페이크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는 없었다.
* * *
후작성에 순회사제단을 파견하여 색수병을 다시 퍼뜨린 지도 어느덧 닷새째.
비오는 날만 되면 하늘로 날아올라 빗물에 미약을 분사하는 하피들.
땅 속을 헤집고 다니며 미약점액을 퍼뜨리는 슬라미아들.
늦은 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민중의 꿈속으로 들어가 라스토피아의 꿈을 퍼뜨리는 서큐버스들.
색수병의 유증상자들의 곁에서 꽁떡을 즐기며 의료진이라고 볼 수 있는 사제들이 색수병에 감염되도록 유도하는 순회사제들.
그리고, 하나 둘 알게 모르게 사제들을 중심으로 인간들의 몸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음충들.
다양한 부대를 적절하게 투입하여, 우리는 레굴루스 성의 색수병 전염 환자를 끊임없이 늘렸다.
- 서큐버스들을 잡아라! 놈들이 역병의 근원이다!
당연하게도 후작을 비롯한 윗대가리들은 감히 라스토피아의 간접 체험 티켓을 독점하고자 했다. 서큐버스들의 움직임을 쫓는 기사단의 포위망이 좁아질수록 서큐버스들 또한 최선을 다해 은밀히 움직였고, 사망자도 속속들이 튀어나왔다.
- 개같은 귀족 놈들! 지들끼리만 좋은 거 즐기고 있어!
- 디브이디방에 들어가고 그 뒤는 어떻게 됐냐고!!
- 나는 라스토피아를 찾아 모험을 떠나겠어!
서큐버스들의 활동이 억제된다는 것은 즉 일반 민중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는 뜻. 민중은 마냥 어리석지 않았다. 서큐버스들은 자신들에게 성녀의 환상을 보여주는 대가로 아주 야아아악간의 정기를 가져갈 뿐이었고, 라스토피아의 환상 속에서 성녀와 그렇고 그런 짓을 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다.
- 서큐버스들을 규탄하는 귀족 놈들이야말로 규탄받을 대상이다!
색수병에 한 번 감염되었던 자들은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서큐버스들을 적극 옹호했다. 겉으로는 서큐버스를 잡는 기사든을 응원하면서, 누군가는 심지어 서큐버스의 방문을 숨기기까지 하며 서큐버스들의 활동을 지지했다.
- 거 정액 한 발 빼주면 좋은 꿈 꾸게 해주잖아!
색수병에 감염되었던 이들은 이미 가지고있던 성적 윤리의식이 많이 무뎌져있었다. 쾌락을 알아버린 이들은 더 큰 쾌락을 갈구하기 시작했고, 서큐버스들의 딥 페이크는 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 적절한 계기였다.
"그대로 모두가 색수병에 걸려서 후작성 전체가 혼란에 빠졌으면 좋았으련만."
하지만 후작가도 마냥 어리석은 놈들은 아니었다. 이므신할 후작은 색수병의 배경으로 남작령에 자리잡은 던전-우리 군단을 지목했고, 그에 따라 병사들을 모아 제법 그럴듯한 정예병으로 훈련시켰다.
- 백인장! 이 놈이 색수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 뭐라?! 끌고가라! 사제님들께 보내!
"순회사제단을 괜히 보냈나...?"
우리가 색수병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투입한 순회사제단은 졸지에 후작가의 훈련병들의 증상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자승자박 꼴이 되기는 했지만, 리스크가 있더라도 병사들의 윤리의식이 무뎌지는 건 바람직한 일이었다.
"'큿, 죽여라'하기 보다는 이제 '어디 한 번 자지로 나를 굴복시켜봐라, 오크!'하는 여기사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냥 죽이라고 하는 건 조금 질리기는 했지? 흐흐, 색수병으로 발랑까지는 만큼 우리 군단의 일원으로 투항할 가능성이 높으니, 나중에 할 암컷 타락 작업을 미리 해놓는 거라고 생각하지."
그들이 바라던 떡상향 라스토피아가 바로 우리 군단이라는 것을 알면, 분명 열에 아홉은 순순히 투항하여 다리를 벌릴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적의 충성도를 낮추면 영입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리하여, 후작령에서는 우리 던전을 향해 진격할 병사들을 양성함과 동시에, 색수병 또한 조금씩 조금씩 퍼지고 있었다. 우리 순회사제단의 지원 아닌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폭주가 일어났다면, 분명 이므신할은 그 분노와 불만을 우리 던전을 향해 터뜨렸을 것이 분명하다.
"서큐버스들이 성에서 일하는 하인들로부터 얻어낸 첩보입니다. 이므신할이 어떻게 군대를 일으킬 지, 자세하지는 않지만 큰 골자는 얻어냈습니다."
"와, 이 년 봐라. 색수병으로 들끓는 성욕을 이렇게 써먹는다고?
- 엘프는 이제 완벽하게 마왕군의 편에 들어섰으나, 그들은 오크들에게 세뇌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엘프를 해방하고 인류를 상대로 역겨운 전염병을 퍼뜨린 마물들을 지워버릴 것이다.
우리는 성에서 일하는 하인을 통해 출정 연설문의 초안을 입수하는데 성공했다. 확실히 오크에 의한 엘프 세뇌설은 제법 그럴듯하게 먹히는 듯 보였다.
"자지에 껌뻑 죽게 만들었으니 부정할 수는 없군."
"세뇌라기보다는 정신개조에 가깝지만, 인간들은 분명 그리 생각하겠죠. 어차피 엘프들은 오크들에게 범해졌는데, 내가 박는다고 좀 달라질까. 하고요."
"그렇다. 이므신할도 그걸 노리고 있어.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사로잡은 엘프들을 모조리 성노예로 만들 생각이다. 이 쌍 것."
전리품. 우리가 안다이할을 상대로 했던 기만책을 고스란히 써먹고 있다. 말로는 해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엘프들을 잡아다가 서큐버스들의 꿈을 독점하려고 했던 것처럼 엘프들에게 야한 옷을 입혀서 밤시중을 들게 할 게 뻔했다.
"역시 좆간들이 할 법한 생각이군."
"거상들이나 종교인들, 후작성의 귀족층이 토벌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필히 엘프를 먹고 싶어서 그런 거겠죠."
"젠장. 너무 납득이 되는 지원 동기라서 더 짜증나는군."
전쟁에서 승리하면 엘프를 따먹을 수 있다. 나같아도 냉큼 전쟁판에 끼어들어 팥고물이라도 얻어먹을 것 같았다. 정작 엘프들을 빼앗기는게 나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들의 음습한 전쟁 동기에 박수라도 쳤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부대를 일으키려면 한참 남았지?"
"예. 설령 저희가 준비되기 전에 부대를 일으킨다고 해도, 지연 작전을 펼칠 겁니다. 순회사제단에 이은 두번째 특수부대는 언제든지 적진으로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순회사제단이 색수병의 심화라는 임무를 지닌 반면, 두번째 특수부대는 적 토벌대의 출진을 방해하는데 의의가 있다.
"일단 보내놓고 생각하지."
"예. 그럼 출진을 명하도록 하겠습니다. 2차 작전, 1번 부대 파견하겠습니다."
시간벌이를 위해, 나는 릴리를 대장으로 하는 '인간' 부하들을 파견했다.
"상단으로 들어가서 마석 좀 땡겨오자고."
토벌대 대군을 만들려고 하는 이므신할의 눈이 훼까닥 돌아갈 법한 물건을 팔아, 토벌대를 쓰러뜨리는 데 큰 도움이 될 마석을 긁어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