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비만 오크-468화 (467/800)

그녀의 왼손에는 환생결정이, 오른손에는 최상급마석이 들려있었다. 468회

107일차

에스투와의 만남은 항상 뭔가 시스템적으로 오류가 생겼을 때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눈앞의 두 보석이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것을 직감하는 동시에, 어딘가 문제가 생긴 거라는 걸 바로 깨달았다.

"시스템 터졌습니까?"

"......시스템이 터졌다기보다는, 상정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는 게 맞는 거지."

에스투는 한숨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뒤에 드라이어드 아스모딘과 엘프 서큐버스 아스모딘이 멍한 얼굴로 서있었다. 드라이어드에게는 인장이 박혀있었다.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 한 번 말해보지 않을래?"

"엘프쪽이 본체고, 드라이어드는 인형인데, 인형에다가 인장을 박아넣은 거 아닙니까?"

"그래, 그런 셈이지. 인장을 자신의 몸 다른 곳에 새길 수 있다는 걸 아스모딘이 악용한 거야."

"네? 진짜요?"

몰랐다. 인장을 다른 곳에 새길 수 있다면....

"유두문장이나 엉덩이골에도 옮길 수 있습니까?"

"안 될 건 없지. 인장 주인이 어디에 문신을 새기든. 근데 너 좀 매니악하다...?"

"거 인장을 이마도 아닌 자궁문신으로 새기신 분들이 할 말은 아닌 듯 합니다만."

"흐흐, 그렇긴 하지. 그래서 아스모딘이 한 짓은 말이야,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형에다가 인장을 박아넣은 거야."

확실히 그건 예상외라고 할 수 있다. 샤이탄으로 치면 그녀의 꼬리 끝에 인장을 박아넣고, 그걸 떼어내어 새로운 샤이탄으로 만들어 인장을 따로 들고다닌다는 얘기니까.

인장이라는 게 단지 군단의 문장이 아니라 마왕의 딸 자체를 말하는 이상, 인장이 여체와 따로 떨어지는 건 운영도 예상치 못한 일일 것이다.

"그러면 왜 진작 개입안하고 있었습니까?"

"규칙 위반은 아니니까. 애초에 규칙이라고 할 것도 얼마 없잖아? 승자가 결국에는 규칙이 되는 걸. 내가 내세운 규칙 중 가장 심각한 건 하나 뿐이야."

"근친."

"정답."

자신의 딸이 온갖 음습한 욕구를 지닌 마물들에게 범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솔로몬은 근친만큼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저지르면 분명 시스템을 회수하거나....

'솔로몬이 쟁탈전을 걸어서 모든 걸 빼앗아갈 수 있지.'

에스투의 웃음에서 미래가 보였다. 나는 에스투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시스템이 어떻게 오류가 났는지 궁금하지는 않고, 이왕 오신 김에 두 개 다 주시죠."

"길가에 엘프랑 다크엘프가 떨어져있어. 너는 한 사람만 데려갈 수 있고. 그럼 당연히 이지선다에서 하나만 골라야 하는 거 아니야?"

"둘 다 주워서 데려가야하는 거 아닙니까? 하나 챙긴 사이 남들이 와서 몰래 가져가면 어쩌려고요. 저는 욕심쟁이라서 둘 다 가질 겁니다.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이유는?"

"던전, 군단."

에스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이번에도 정답을 맞췄다.

"군단간의 전투에서 인장을 차지하여 승리한 보상, 29위 던전 아스타로트를 상대로 승리한 보상. 설마 이걸 하나로 퉁칠 생각은 아니시길 바랍니다."

"아쉽네.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더니. 하지만 아직 줄 수 없어. 아니, 둘 다 줄 건데 궁금한 건 내가 못 참는 성격이거든."

질문에 답을 하면 둘 다 주겠다라. 아마도 저게 에스투가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일 것이다.

"무엇이 궁금합니까?"

"뭘로 진화할까 해서."

"......건의하나 해도 됩니까?"

"응, 말해봐."

이참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시스템에 대한 의문-한 때 게임을 즐겼던 이로서 가지고 있던 의문을 에스투에게 쏟아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진화인데 달랑 직업 이름만 달아놓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최소한 뭐냐, 각 진화에 따른 변화를 체험할 수 있게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대족장으로 진화하면 휘하 부족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라스의 영광>같은 스킬이 생긴다거나, 던전 로드로 진화하면 던전 개조 비용이 줄어드는 <건축가>같은 스킬이 생긴다거나."

"그, 그런 스킬 없는데?"

"당연하죠. 제가 방금 예시로 든 거니까. 최소한 그런 수준의 정보는 있어야 진화할 거 아닙니까. 퇴화를 할 수도 없는 건데."

에스투는 잠시 침묵했다. 다리를 꼬며 머리카락을 베베 꼬는 모습에서 나는 음심이 차올랐지만, 자지는 그녀의 압도적인 레벨(255)을 보고 귀두를 숙였다.

"하고 싶은 말의 요점이 뭐야?"

"시스템이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걸. 나 혼자서 이런 걸 만들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크흠. 흠흠흠!"

에스투는 헛기침을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에 내 자지가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모른 척 해라."

"......."

만약 그레모리가 분신을 남자로 만들어 분신과 섹스를 한다면, 그건 자위일까 성교일까.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지만, 나의 목숨을 위해 그냥 입을 닥치기로 했다.

"입막음 비용으로 섹스를 하고 싶습니다."

"이 미친 새끼?"

물론 입은 닥쳐도 내 판단은 좆으로 하기에, 나는 좆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분노의 군단장은 상대가 그 어떤 존재라 한들, 여자라는 제 1 조건과 구멍이 있다는 제 2 조건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을 외칠 수 있는 자.

"안 됩니까?"

"아직은 안 돼, 아직은. 7군단을 모조리 통솔하면 그 때는 모를까."

허락을 받았다. 이걸로 군단을 모두 내 아래에 놓을 근본적인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 허락을 받으니 슬슬 나의 자신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흐흐, 솔직히 말씀하십시오. 사실은 저랑 한 번 해보고 싶-부히이익!!"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엉덩이 뒤로 무언가가 깊숙히 들어온다는 감각과 동시에, 민감한 부분이 가느다란 손가락 같은 것으로 꾹 눌렸다.

뷰르릇, 뷰릇.

그리고 나는 사정했다. 발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건만, 전립선-으로 추정되는 곳이 눌리자마자 무발기사정을 한 것이다.

"고작 이 정도도 못 참으면서 무슨. 아직 한참 멀었어."

"흐, 허어, 허어...."

에스투는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펼쳐진 마나의 흔적이 사그라들었다. 바닥에는 내가 흩뿌린 정액이 남아있었으나, 곧 에스투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하여튼.... 시스템 쪽에 관한 건 따지지마. 1인 개발로 이정도까지 왔으면 오히려 대단한 거 아니야?"

"그렇습니다. 마왕님 만만세."

이제는 숨길 생각조차 없어보이지만, 나는 최대한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말을 아꼈다. 에스투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적어도 시스템에 대한 내 분노는 정당했다.

"하아. 알았어. 대충 간접체험하게 만들어주면 되지?"

짝! 에스투가 박수를 침과 동시에, 내 의식이 날아갔다.

* *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음?"

눈을 뜬 내 앞에는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는 륜이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주인님 던전이에요."

"아...그랬었지."

깜빡 잠에 들고 말았다.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제법 꿈에 깊게 빠져있는 듯 했다. 나는 일어나마자 나를 반겨준 륜에게 가벼운 모닝 키스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다른 애들은?"

"모두 아이들 보고 있어요. 근무 때문에 바쁘면 대신 봐주거나...뭐 돌아가면서 보고 있죠."

"너는?"

"저야...히힛."

륜은 셔츠 아래 가려진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싱긋 웃었다. 그녀의 배는 임신한 것 마냥 부풀어있었다. 아니, 임신했다. 륜의 뱃속에는 우리가 사랑한 결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벌써부터 막 꿈틀거리는 게 주인님을 닮은 것 같아요."

"꿈틀거린다는 건 무슨 의미야?"

"막 허리를 튕기고...히힛."

"태아때부터 색에 물들다니. 너랑 내 자식답구만."

아들로 태어나면 전세계의 여자들을 임신시키고다닐 것이며, 딸로 태어나면 금지옥엽으로 자랄 것이다. 전자라면 몰라도 후자라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륜, 엘프의 숲은 구획 정리가 다 끝났냐?"

"네. 버진엘프, 크림엘프, 쿠키엘프, 그린엘프. 주인님께서 정하신 엘프별로 구획을 나눴어요. 각 부족별로 숲을 나눠 쓰기로 했죠."

"......아니, 아니다."

나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엘프들을 구획별로 나누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네? 하지만 주인님이...."

"이건 아니다. 컷."

나는 내 스스로의 뺨을 때렸다. 동시에 세상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피부색으로, 처녀의 유무로 엘프들을 나누는 건 차별이다! 나는 이런 부족제 사회는 원치 않아!"

"뭔 시작부터 파토야. 쳇."

륜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검게 물들어 있었다.

"다음."

나는 또다시 의식이 날아갔다.

* * *

"아빠, 정신이 들어요?"

"메어리?"

나는 메어리의 무릎배게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잽싸게 몸을 일으킨 나는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제 구역이죠. 후후, 제법 멋지게 바뀌었죠?"

"아...그래. 던전 등급 A급으로 바뀌면서 철저하게 개조했지."

나는 메어리에 의해 개조된 지하 2층을 살폈다. 오크와 구울들이 열심히 자재를 나르고, 시스템에 의해 공사가 진척중인 곳에는 새로운 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입구의 특수 요격실은 천장을 통해 마물들이 모험가들을 기습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들어오마자마 미노타우르스들이 적의 전력을 가늠한 다음, 적의 전력을 판단해서 뒤의 세 갈래 길 중 하나의 통로를 열 거예요. 각각 2성급, 3성급, 4성급으로 나눠서 요격을 실행하는데...."

"잠깐만."

나는 메어리의 말을 끊었다.

"그건 분명 효율적이고 획기적인 던전 구조로구나. 하지만 그건 '네 구역'에는 잘 맞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왜요?"

"네가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메어리라면 그럴 필요가 없다. 메어리가 '나의 던전'에 있기로 한 이상, 앞으로 우리와 쟁탈전으로 싸울 적들은 나보다 상위의 존재들. 그들을 상대로 적의 전력을 2,3,4 성으로 나누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그건 당신의 노하우로군."

"아, 젠장. 뭐하자는 거야?"

메어리의 눈동자가 검게 물들었다. 그리고 다시 세계가 암전했다.

* * *

"장난하냐?"

정신을 차리자마자 들린 에스투의 목소리는 제법 날이 서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정좌했고, 에스투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것도 싫어, 저것도 싫어. 진화하기 싫어?"

"진화는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뭐? 흐흐, 그러면 대전사의 길을 걷고 싶었구나! 그런 거라면-"

"아뇨."

나는 에스투가 간접체험을 보여주기 전,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제가 되고 싶은 건 대족장도, 던전 로드도, 대전사도 아닙니다."

"......그러면?"

어째서일까. 에스투의 찌푸려진 얼굴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늪처럼 검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서서히 반짝이기 시작했다.

"세 가지 길 모두 시스템으로 제공된, 정해진 길. 저는 저만의 길을 걷도록 하겠습니다."

"진화를 하지 않겠다는 거야?"

"아뇨. 진화는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제 길이 아닙니다."

부족 사회는 내가 바라는 라스토피아가 아니다.

우리의 기반이 던전에 국한된 건 내가 바라는 라스토피아가 아니다.

혼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내가 바라는 라스토피아가 아니다.

"제가 제안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진화>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 90 / 90 ).

예상 결과는 그저 파후우 쿰처쿠 척이 5성이 되는 것 뿐. 한계 레벨이 100까지 늘어나게 될 것이며, 나는 비로소 나에게 주어진 모든☆을 ★로 바꿀 수 있다.

"건방진 말 같지만 저는 저만의 길을 걷겠습니다. 부족장의 특성이 어떻든, 던전 주인의 특성이 어떻든,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세계를 재패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시스템조차 넘어보일 것이다. 시스템이 없어도 건재한 라스토피아를 만드는 그 날까지, 나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세계를 라스의 물결로 덮을 것이다.

"흐음. ...뭐, 진화라는 건 그냥 내가 시스템을 통해 언젠가 도달할 미래를 당겨오는 것 뿐이긴 하지. 하지만 정말로 괜찮겠어? 대족장도, 던전 로드도, 대전사도 아닌 완전히 평범한 오크로서의 미래에 도달할 수 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제 성공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대로 흔들리지 않고 걸어간다면, 나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그'에 도달할 수 있을 터.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저는 이런 자가 되겠습니다."

마왕조차 모독하는 자.

"...그런 말을 하고도 내가 이런 걸 줄거라고 생각했어?"

에스투는 양손에 쥐고 있던 환생결정과 최상급 마석을 가슴골 사이에 집어넣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두 가지가 시스템을 바꾸는, 진화의 조건이라고 한다면."

"......좋아. 본인이 바란다면 얼마든지."

에스투는 사납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마왕의 던전, 레메게톤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언젠가 거기서 만나자고."

아예 숨길 생각이 없구나.

"눈을 뜨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야."

짝.

세계가 다시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 * *

"......."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세계는 원래대로 돌아왔고, 나는 륜과 샤이탄을 옆에 두고 진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때로 돌아왔다.

"음...."

내 눈앞에는 시스템창이 여전히 떠올라있었다. 진화 창에는 대족장, 던전 로드, 대전사의 항목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항목만이 떠올라 있었다.

"<진화> [파후우 쿰처쿠 척]을 진화시킵니다.

[라스토피아의 독재자]

1) 레벨을 끝까지 올린다 ( 90 / 90 )

<예상결과> : [????], ★★★★★."

"......후우."

역시 평소에 치고 다니던 개드립을 들었는게 분명하다. 하필이면 족장도 로드도 아닌 독재자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서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얘들아, 논의는 없었던 걸로 하자. 나는 진화를-"

<퀘스트> ★★★★★으로 진화하라!

# 진화보상 : 환생결정 1개, 최상급 마석 1개, 오닉스 1개.

"아, 씨발 꼴린다."

나는 솔로몬에게 사랑에 빠졌다.

"언젠가 꼭 먹고 말테다...흐흐흐."

성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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