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회
95일차
구울 마법사들이 일으킨 시폭은 마법공격이라기보다는 물리공격에 가깝다.
구울 마법사들의 마력이 시체를 내부에서부터 폭파시키기고, 그 육편이 사방으로 터지며 데미지를 입히는 방식의 시체 폭탄이다.
중갑 보병을 상대로는 크게 의미가 없는 공격이지만, 나는 그들이 들어오는 입구 바닥에 ★, ★★성 구울들을 설치했다.
"아아, 이것은 부비트랩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미 던전을 들어온 순간 함정에 빠진 셈. 발치 아래에서 터진 구울 폭탄은 거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토벌대의 선두를 덮쳤다.
"콜록, 콜록!!"
토벌대의 마른 기침소리가 들린다. 흙먼지가 사라지기 전, 나는 색스를 움켜쥐고 앞으로 힘차게 날아들었다.
내가 억제해야하는 상대는 단 한 명.
흙먼지 때문에 상대가 보이지 않는 건 상관없다.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내 눈에 보이는 시스템은 상대의 위치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으니까.
<로도페리 필리아> ★★★★☆, Lv.81
그레모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건만, 어느새 또 레벨이 오른 듯 했다. 물론 나보다는 약한 만큼, 나는 전력을 다해 로도페리에게 색스를 후려쳤다.
카---앙!!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순간적으로 옆으로 퍼진 흙먼지 사이로 날카로운 도끼를 움켜쥔 로도페리가 나를 올려다보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제법 하는구나!"
"큭...!"
로도페리의 눈에 긴장이 역력했다.
나의 일격을 막을 정도로 4성값을 하는 존재인 만큼, 그녀는 내 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한 번 막은 걸로 깨달은 것이다.
"약하구나, 드워프여!"
"오크 주제에 왜 이렇게 강해?!"
"오크니까 강한 거지!"
카앙, 카앙!
나는 로도페리의 도끼를 향해 마음껏 색스를 휘둘렀다. 로도페리는 뒷걸음질 치며 방어를 하는데 급급했다.
"공주님!!"
옆에서 술 잘 마시게 생긴 걸걸한 목소리의 땅딸보들이 도끼를 휘두르며 나를 위협했다. 하나면 그냥 무시하겠지만, 서넛이 동시에 나를 위협하니 확실히 위협은 위협이었다.
"흐업!"
나는 색스를 크게 휘두르며 옆으로 물러났다. 드워프들의 공격은 허공을 긋거나 내 로브를 스치는 것으로 무위로 돌아갔다.
"엘리자베스의 원수! 죽어라!!"
아래에서 드워프 하나가 내 배를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너무 키가 작아서 핼버드로 요격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늦었다.
출렁--!!
"하필 노려도 배를 노리다니. 어리석은 놈."
나는 색스를 한 손에 쥐고 드워프의 목덜미를 잡아들었다. 순식간에 들어올려진 드워프는 아둥바둥거리며 저항했으나, 나는 색스를 뒤로 던지며 드워프의 목덜미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빠각!
손아귀 힘 만으로 목이 부러졌다. 축 늘어진 드워프의 모습에 로도페리의 눈에 불이 붙었다.
"쳐죽일 놈이!"
"시야가 좁아졌구나. 조금 주변을 둘러보는 게 어떤가."
나는 목을 꺾어 죽인 드워프를 들고 뒤로 달렸다.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로도페리가 나를 쫓아 달려들려 했지만, 점차 아래로 가라앉는 흙먼지에 그녀는 눈빛이 형형하게 변했다.
"이 개자식들!!"
"푸하하, 어디 나만 움직인 줄 알았느냐?"
던전의 주인은 나만 있는게 아니다. 내 손에 드워프가 들려있는 것처럼, 하르파스-알로켄-그레모리의 앞에도 중갑 기사들이 시체처럼 축 늘어져있었다.
"흐흐, 하나같이 제법 강해보이는 놈들이군."
"밀집대형으로! 이미 터진 곳은 더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라!"
안경을 쓴 청년이 비명을 지르며 지휘를 내렸다. 제법 고급스러운 복장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 최소 백작가의 주요 인사인 게 틀림 없었다.
"쟤가 사지타리우스 백작이야."
"그래? 대단하군. 백작이 직접 전선에 나서서 지휘한다니 말이야. 그 의기를 생각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쳐죽여야겠어."
툭. 나는 드워프의 시체를 반듯하게 세웠다.
이미 시체라 내가 들고 있어야만 바르게 설 수 있었지만, 시체인 만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군단의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라.]
라스투자드와 12사도들이 우리가 납치해 온 이들의 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전부 목이 꺾여 죽은 그들은 우두둑 소리를 내며 눈에서 보라색 안광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짜잔, 즉석에서 병력 확보 완료!"
그어어어.
납치한 드워프와 기사들은 하나같이 3,4성급의 강자였다.
"아주 쓸만한 구울들이군."
흙먼지 속에서도 능히 공격을 대처할 수 있을만큼 강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또한 우리가 충분히 납치할 수 있는 상대를 일부러 흙먼지 속에서 낚아채왔다.
"하지만 천 명 중에 고작 네다섯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어?"
물론 납치한 이들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아하하하하하하!!"
투둑, 투두둑.
하늘에서 중보병들이 인형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팽겨쳐지며 사지중 하나는 죄다 꺾였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목은 굵은 발톱 자국이 찍혀있었다.
"그러니까 더 납치했다."
천장에 숨어있던 하피 에일로들 또한 흙먼지가 일어남과 동시에 중보병들을 습격했다.
거대한 발톱으로 먹이를 낚아채듯 일반병들의 목을 움켜쥐었고, 30의 하피 에일로들은 최소 한 명 씩 병사들을 낚아채왔다.
최초의 시폭으로 눈을 가린 이후, 우리는 무려 50여명에 이르는 전력을 순식간에 납치했다.
"이게 바로 체급 차이지. 장비로는 커버할 수 없는 피지컬의 차이. 인간과 마족의 근본적인 차이다, 로도페리."
"이 나쁜 새끼들아!!"
로도페리는 격정을 내며 비명을 질렀다. 나를 향해 겨눈 그녀의 도끼가 바들바들 떨렸고, 눈시울은 붉어져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만 같았다.
울렸다.
"크하하. 나쁜 새끼 맞으니까 나쁜 전술을 사용하는 거지. 잊었느냐? 우리는 마족이라는 것을. 마족답게 싸우고 있는데 무슨 문제라도?"
[군단의 주인께서 바라신다. 전 구울들은 모두 일어나라.]
라스투자드가 해골 지팡이를 들어올리며 마나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슬라임도 구울로 다루기는 했지만,역시 라스투자드는 인간을 구울로 다룰 때 가장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크어어어어.
목이 뚫린 병사들이 모두 몸을 흐느적거리며 일어났다. 내 손짓에 따라, 그들은 모두 우리 군단의 최전방에 섰다.
"병력이 없으면 병력을 조달하면 그만인 것을."
"전원, 발사!!"
백작의 뒤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다혈질인 로도페리와 달리, 아무 전조도 없이 공격을 준비할 정도로 백작은 침착하고 주도면밀했다.
"빛나는 창? 흑마법사들을 지켜!"
날카로운 빛의 창이 발리스타처럼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전방을 가로막은 구울들을 피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창은 정확히 구울 마법사들을 저격하고 있었다.
"방어하라!"
""라스으으!!""
하지만 우리 또한 대처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흑마법사들의 옆에 대기하고 있던 오크들이 거대한 나무 방패를 들어올렸다.
파바바박!
날카로운 빛의 창은 방패에 가시처럼 박혔다. 하지만 방패를 꿰뚫지는 못했다.
"언데드 흑마법사를 저격하는 건 당연히 마법공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것도 대비하지 않았을 것 같으냐?"
오크들은 방패를 내렸다. 겉면에 있던 나무 방패가 빛의 창에 쪼개지며 본모습을 드러냈다.
"아아, 이것은 프렌드 실드라고 하는 것이다."
"아아아악!!!"
토벌대의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쪼개진 나무방패의 안에는 발가벗겨진 채로 금빛의 창에 꿰뚫린 인간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흐흐, 설마 잡자마자 모가지를 잘랐을 거라고 생각했나?"
오크들이 인간방패로 사용한 시체들은 모두 사수좌 전선에서 그레모리 사단이 포로로 잡은 이들이었다.
일부 우리 군단에 전향한 이들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군단에 들어오기를 거부하여 복상사로 생명을 다한 이들이었다.
"걱정마라. 죽을 때 만큼은 곱게 보내줬으니까."
전부다 복상사로 죽었으니 확실히 곱게 보내주기는 했다. 적어도 그들은 마지막 순간 만큼은 최후의 상대를 스스로 정해 쾌락속에서 죽었다.
물론 갈 때는 편하게 보내주더라도, 죽고 난 뒤의 시체는 이제 우리의 것이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일회용이기는 하지만...상관없지. 어차피 구울은 다시 보충하면 되니까."
"이 천벌을 받아 죽을 놈들! 쓰레기 새끼들아!!"
"쓰레기라고? 저런. 그래도 곱게 처분하려고 했는데 그런 말을 하다니. 쓰레기답게 행동해주지. 라스투자드!"
[주인님의 뜻대로.]
털썩. 오크들은 마법에 꿰뚫린 구울들을 집어던졌다. 구울 마법사들은 방패에서 떨어진 구울들을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턴 언데드. 우리의 양식이 되거라.]
키에에엑.
구울들의 몸이 재가 되어 흩어졌다. 동시에 그들의 몸에 남아있던 마나의 일부가 안개처럼 흘러나와 구울 마법사들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짝, 짝, 짝.
"완벽한 재활용이야. 정말 그 누구보다도 마족 다운 걸."
그레모리가 박수를 치며 나를 치켜세웠다. 나는 그레모리의 가슴을 쥐어잡으며 가볍게 희롱한 뒤, 절망과 공포와 분노에 휩싸인 토벌대에게 소리쳤다.
"네놈들이 먼저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걸었으면 우리도 정정당당하게 싸웠을 것이다."
"개소리 집어치워!"
"개소리라고? 웃기는 소리! 평원에서 우리가 트롤들과 싸우고 있었을 때, 너희들은 어떻게 했던가! 가만히 지켜보다가 싸움이 끝나고 나서야 기습을 하지 않았더냐! 비겁하게도!!"
백작과 로도페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희들은 기회다 싶어 저질렀겠지! 그 덕분에 우리는 강인한 전사들을 잃었다! 네놈들은 트롤들의 사지를 자르고 분질러, 그 피를 뽑아 포션을 만들었을 터!"
인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던전을 공략하려는 이유는 마족을 죽여 마석과 부산물을 챙기려는게 근본적인 이유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네놈들을 죽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니 뼛속까지 우려먹을 것이야! 보아라, 이것이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탄의 전술이니라!"
[군단의 이름으로 명한다. 전 구울들은....]
카앙!
라스투자드가 하늘 높이 지팡이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벗어라!]
크어어어.
우리가 납치했던, 갓 구울이 된 이들이 하나 둘 투구를 벗기 시작했다. 구울 마법사들은 구울을 직접 조종하며 투구 뿐만 아니라 갑옷을 벗어 차곡차곡 뒤에 개어놓았다.
"너희들이 무장은 앞으로 잘 사용하도록 하마. 흐흐흐."
구울들은 모두 갑옷과 무기를 벗고 무방비한 상태가 되었다. 뒤에서 기다리던 오크들은 그들이 벗은 장비를 챙겼고, 아무렇게나 생긴 나무 몽동이를 그들의 손에 건넸다.
[전군, 진격.]
라스투자드가 지팡이를 앞으로 겨눴다. 동시에 '구울 부대'만이 앞으로 흐느적거리며 양손에 든 나무 몽동이를 아무렇게나 휘두르기 시작했다.
"조심하거라, 인간들이여! 너희가 입고있는 갑옷과 무기는 우리가 곱게 사용해야하니, 찌그러지거나 날이 상하지 않도록 하거라! 흐하하!"
키아아아악!!
구울들이 본격적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와 동시에 붉은 섬광이 적에게서 빛났다.
퍼---억!!
도끼질 한 번에 구울 여섯 마리가 허리가 잘렸다. 그중에는 구울이 된 드워프도 있었다.
"워후. 화끈한데."
"......언젠가, 네놈을 꼭 죽여버리겠다."
로도페리는 나를 향해 도끼를 겨누며 뒤로 물러났다. 인간 병사들은 자신들을 향해 기어가는 구울들을 일거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이름이 뭐냐."
"이름을 알아서 무얼하려고 하느냐? 어차피."
크르르.
나는 남들보다 훨씬 더 몸집이 큰 워울프의 위에 올라탔다. 오크들이 모두 워울프에 올랐다. 그들의 손에는 이전 듀라한들이 인간 병사들을 낚아챘던 올가미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너는 내 손에 잡히고, 너희 토벌대는 우리에게 잡히게 될 것을. 가자, 로보 2호기!! 진격하라, 모두!"
캬아아아!!
워울프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피 에일로들이 천장을 날기 시작했다. 안드라스들이 양손에 몽둥이를 들고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오만의 군단의 힘을 똑똑히 목도하라--!!"
* * *
"루시펠 언니. 이식이 끝났습니다. 이제 일어나시길."
"하아, 하아. 샤이탄...너무 잘 해."
"서큐버스니까요."
루시펠은 제 속에 박혀있던 샤이탄의 꼬리를 스스로 뽑아냈다. 침대 아래에는 루시펠이 뿜어낸 조수가 홍수가 난 것 마냥 축축했다.
"하아. 그럼 이제 나는 어디로 가면 돼?"
"그대로 여기서 하던 일을 계속 하시면 됩니다. 조교실의 다음 주인이 오기 전까지, 언니는 계속 조교를 해주시면 됩니다."
"흐응, 그렇구나. 주인님께서 빨리 새로운 걸 잡아와주셨으면 좋겠네."
루시펠은 자신의 하복부에 돌아온 인장을 손으로 매만지며 요염하게 웃었다.
"이 하프 드래곤, 너무 반응이 없어서 슬슬 질리기 시작했거든."
"......너희들,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촉수에 휘감겨 입만 드러난 레비즈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군단을 둘로 나눈다니...그게 무슨...."
"별 거 아닙니다."
"세상을 상대로 사기치는 거지. 후후."
샤이탄과 루시펠은 서로의 인장을 만지작거리며, 레비즈의 귀에 좌우로 속삭였다.
"주인님답게 인간과 공존을 추구하는 분노의 군단."
"마족답게 인간을 몰살시키는 오만의 군단."
두 이복자매는 서로를 바라보고는, 레비즈의 귀를 혀로 할짝이며 동시에 속삭였다.
""아아, 이것은 투트랙이라고 하는 것이다.""
뷰르르.
레비즈는 소름이 돋아 그만 알을 지려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