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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59화 (359/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5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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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검은 널리 알려진 바가 없으나, 성검의 사용자만이 아는 비밀이 존재한다.

에고 소드.

흔히들 영혼이 담겨있는 검이라고도 표현하는 검은 스스로 영혼을 가지고 주인을 선별한다.

선대 사용자의 의식인지, 아니면 성검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깃든 영혼인지, 그도 아니면 고도로 발달된 인공 정령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검은 자신을 사용할 자의 적격 여부를 스스로 판단한다.

혹자는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끌리도 하고, 혹자는 이 세계 최강을 논할 수 있겠다 싶은 자에 끌리기도 하며, 혹자는 쌍둥이에게 각각 한 자루씩 들려야 한다는 특이한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비르고 남작령에 전해져 내려오는 〈성검 비르고〉의 경우는 단 하나.

- 남자의 손을 타지 않은 순수한 처녀의 몸일 것.

오직 순결한 처녀만이 성검 비르고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순수한 처녀라고 하더라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킨 채 죽겠다는 절개를 가지고 있어야만이 성검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성검의 각성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가 성검 사용자만이 알 수 있는, 그 어떤 형태로도 후세로 전해줄 수 없는 기밀이라는 것.

때문에 성검 비르고의 초대 사용자도 후세에 성검의 까탈스러운 유니콘적 면모를 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처녀가 아닌 자가 건드리면 성검 비르고는 그 여성의 정기를 흡수해버리는 것으로 벌을 내린다.

비르고 가문은 각성의 조건과 패널티도 모른 채 수 백년간 성검 비르고를 깨울 방법을 연구해왔다.

그리고 전대 비르고 남작 또한 지하에 보관된 성검을 깨우는 방법에 대해 평생을 연구했다.

선대 사용자들이 모두 여성이었던 것을 착안하여 '여자'라는 조건은 생각해냈지만, 이상하게 성검에 접촉한 여자들은 모두 생기가 빨려 죽어버렸다. 설마 순수한 처녀여야 한다는, 흑마법사들이 마족을 소환할 때나 논할 법한 조건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 저것은 성검이 아닌 마검이다.

검의 안에 담겨있는 신성력은 분명 빨아먹은 여인들의 정기가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검을 가질 수만 있다면 남작 가문이 다시 일어나는 것도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었다.

- 조건만 알아내면 아리에스 가문처럼 대대로 성검을 물려줄 수 있다.

꼭 피를 이을 필요는 없다. 적당히 양자를 들이거나 하여 비르고 가문이 남작이 아닌 백작, 아니 후작-어쩌면 공작까지도 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피를 이을 자식은 장자 한 명이면 충분하고, 나머지 여자 형제들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내야했다.

남작 가문이 가문의 여인들을 '갈아넣은 것'도 그 때부터였다. 그리고 버지나니야 비르고는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너무나도 몸이 허약하여 성검을 사용해봐야 가망성이 없다고 판정받은 아이였다.

- 모두 죽고 너만 남았구나.

그런 아이가 결국 자신을 성검의 주인으로 만들려던 부친을 독살했다. 성검의 주인이 되기위한 자격이 순수한 처녀라는 걸 알았다면, 아마 순순히 성검의 주인이 되었을 것이다.

-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자신은 남작이 되었고, 주변에 믿을만한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버지나니야는 처녀를 유지한 채 여색을 탐하는 자를 가장하며 성검의 주인을 찾아나섰다.

그런 상황에서 나타난 메어리라는 존재는 여신께서 내려주신 천사와도 같았다. 버지나니야는 그녀를 평생의 동반자로서 성검의 주인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다.

하지만 마녀였다.

마물을 부리며 자신을 암살하려고 온 자객이었다. 버지나니야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성검을 들어올렸다.

-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직접 성검을 휘두른다.

성검을 사용해 싸운다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다. 성검은 사용자를 무지렁이라도 일류 기사로 만들어주는 이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버지나니야는 직접 성검을 붙잡았다.

눈물을 머금고 메어리를 죽이기 위해서.

자신의 영지에 나타난 마물들을 죽이고 남작 가문을 바로잡기 위해서.

하지만.

- 얘는 안 되겠다. 처녀 아니네.

어디선가 들려온 까탈스러운 목소리에 버지나니야는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도 거룩하고 웅장한 목소리라 위압감이 들었지만,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니.

- 어디보자.... 뒤로는 엄청 많이 했네. 뭐 그건 상관없는데, 에이, 오크한테 박혔어? 안 돼. 그러면. 아웃.

오크? 그럴리가 없다. 오크와 만난 적이 있다면 그저 꿈일 뿐. 꿈에서는 오크에게 겁간당하고 윤간당하고 오크들의 마을로 끌려가 매일같이 오크들에게 박히거나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었다.

억울했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귀족 가문의 여식으로서 처녀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해왔는데 자신이 처녀가 아니라니.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떠올렸다.

- 처녀가 아닌 손으로 감히 나를 만지려고 하다니.... 골백번 죽어 마땅해.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빠져나가서는 안 될 무언가가 손바닥을 타고 성검으로 흘러들어간다. 버지나니야는 뭔가 생각할 새도 없이 의식을 잃었다.

"나는 처녀인데-"

- 꿈에서 처녀를 잃었을 뿐인데.

오크와의 행위가 현실이었다는 것을 마지막순간까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녀는 스스로가 처녀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가버렸다.

- 응, 너 처녀 아니야.

버지나니야는 성검의 말을 듣지 못했다.

* * *

"......과연. 이런 이유가."

메어리는 정기가 뽑혀나가 미라가 된 버지나니야를 방치한 채, 성검이 보관된 지하실의 연구자료를 읽으며 성검의 각성 조건을 파악했다.

여자. 처녀.

'나랑은 관계 없는 거네.'

메어리는 여자다. 동시에 메어리는 처녀다. 하지만 언젠가는(?) 처녀를 잃을 몸이다. 한창 자료를 뒤지고 있던 메어리의 뒤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푸득.

성검의 앞에 새로운 미라가 생겼다. 메어리는 입을 쩍 벌린 채 뭔가를 강하게 부정하는 듯한 버지나니야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다시 태어나면 같은 여자들 괴롭히지 말고 좀 남자랑 자고 그러세요. 원없이."

과연 본인이 들었을 지는 모르지만, 메어리는 원래 해야할 일을 하기 위해 남작의 시체를 쭉 잡아당겼다.

"엄마?"

"먹어야...하지?"

라임은 대놓고 싫은 기색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작의 정기를 빨아먹은 성검은 따스한 분홍빛을 뿌리며 우아한 자태를 내뿜고 있었다.

신성력을.

"...확실히 나는 인간이니까 괜찮기는 한데, 엄마는 괜히 잘못 먹으면 정화될 수 있겠다. 잠깐만."

어디 적당한 곳이 없을까. 메어리는 단검을 꺼내 비르고 남작의 살을 살짝 발라냈다. 이미 삐쩍 말라 살가죽을 조금 뜯자마자 뼈가 보일 정도였다.

"이거면 돼?"

"......죽어도, 주인님 부활 시켜주심, 도전."

라임은 눈을 질끈 감고 메어리가 넘겨준 걸 입에 삼켰다.

"......별미!"

그리고 라임은 남작을 향해 뛰어들었다. 성검과 접촉하여 행여나라도 신성력이 묻어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도 메어리가 걱정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근데 큰일이네.... 만약에 변신 안 되면 플랜 B로 넘어가는데."

밥먹는 중에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 법. 메어리는 라임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연구 자료들을 파악하며 먼지 가득쌓인 유리 케이스로 성검을 덮어버렸다.

"우리 군단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야."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은 있다. 심지어 마물-오크인 갤러해드마저도 성기사라는 이름으로 검에 신성력을 깃들게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처녀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은 분노의 군단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처녀가 된다.

그건 군단장과 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군단장이 취하지 않을 여자는-

"아, 아니다. 걔들은 쓸 수 있겠다."

후일을 위해 메어리는 성검을 은폐하기로 했다. 괜히 자신이 건드리기라도 했다가는 정기가 뽑혀나갈 수 있었다.

"꺼억."

라임은 트름까지 하며 뼛조각 한 점 없이 먹어치운 것을 과시했다. 동시에 라임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메어리는 숨을 참고 라임의 변신을 기다렸다.

"......어때?"

"완벽해요, 남작님."

메어리는 순간적으로 습관처럼 눈앞의 여인에게 남작이라고 불렀다. 가까이가서 만진 피부는 여전히 슬라임의 것이었지만, 살짝 붉은 기가 감돌게 된 눈동자를 제외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버지나니야 비르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임무 성공이네요. 이걸로 남작 가문은...우리 것이에요."

"나 이제부터 남작이야?"

"그렇죠. 그러니까 저도 남작님께 존대하는 거예요."

"...별로야. 역시 이쪽이 나아."

라임은 몸을 이곳저곳 만지더니 곧 다른 모습-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변했다. 메어리와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폭유를 가진 마법사가 된 라임은 자신의 가슴을 붙잡으며 안정감을 느꼈다.

"역시 큰게 최고야."

"...남작도 적은 편은 아니긴 했는데. 일단 남작으로 다시 변신."

라임은 순순히 메어리가 말하는 대로 남작으로 변신했다. 지하실에 들어올 때와 다를게 없는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오히려 전보다 훨씬 젊어진 모습으로 싱글벙글 웃으니 딴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이걸로 남작령 확보. 이제 남은 건 병사를 보내서 라스베가스 탈환 명령을-"

와장창!!

유리 케이스가 부서졌다. 라임은 메어리를 보호하듯 메어리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 얘! 나 그냥 두고가지 마!

"......성검이 말했다?"

두근, 두근. 메어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자신의 눈높이까지 떠오른 성검에 넋이 나갔다. 라임은 성검이 흩뿌리는 분홍빛 신성력에 몸이 붉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 거기 고귀한 혈통의 처녀! 내 주인이 되어라! 아니, 되어 주세요! 100년만에 온 기회라고!

"저요?"

- 벌써 여기 갇힌 것만 수 십년이 넘었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밖에 나가서 힘 좀 쓰고 다니고 싶단 말이야! 제발, 고귀한 처녀님, 저 좀 잡아주세요!

성검을 하늘을 날아다니며 앙탈을 부렸다. 그 때마다 라임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메어리는 결국 라임을 뒤로 물린 채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성검에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저 처녀 딱지 뗄 건데요. 아니, 그보다 성검이 어떻게 말하는 거죠? 이건 연구 자료에도 없던데?"

- 흐흥, 성검의 주인이 아니면 모를 일이지! 내가 조금 조건이 까탈스러워서 여태까지 그리 많은 손을 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뭐라고? 처녀를 잃겠다고?

"네."

성검이 메어리의 미간까지 다가왔다. 라임은 당장이라도 성검을 옆으로 떼어내고 싶었으나, 메어리는 성검과 기싸움이라도 하듯 눈을 부릅 뜨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 왜? 잠깐만. 이해할 수 없어. 난 처녀를 지키기 위해 태어났다고!

"그건 당신이 태어난 의의지 내가 태어난 의의가 아니잖아요.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애낳고 살아가고 싶은데요? 당신은 그냥 영원히 여기서 있어요. 나는 당신 주인이 될 생각이 없으니까. 여차하면-"

- 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 생각이지!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예?"

성검은 공중에서 춤을 추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 유리관에 전시해놓고 모두가 공짜로 보게 할 속셈인 거야! 검집에서 뽑혀나온 내 속살을 만천하에 드러내서, 조명을 비추고 시간하려고 하는 게 분명해! 아아, 그러다가 나중에는 대리석 위에 검만 올려두고 접근금지 가이드라인을 펼쳐서 사방에서 나를 보게 할 생각인 거지!

"무슨 미친 소리를...."

글렀다. 이 성검은 글러먹은 성검이다. 비록 성검에 관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지만, 메어리는 에일라로부터 들었던 성검에 대한 지식이 와장창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 그럴 수는 없어! 부디 내가 살아갈 이유를 줘! 나, 나도 다른 애들처럼 제대로 된 주인 만나서 살고 싶다고!

"처녀 이외에는 다 정기 빨아먹는 마검이면서."

- 그건 원래 만들어질 때부터 그랬으니까! 각성 조건이 까다로울수록 성검의 힘은 더 강해지는 법이야! 그런 것도 몰라?!

"네. 됐구요, 저희 지금 바빠서 이만 가봐야 해요. 자꾸 귀찮게 굴면...."

메어리는 눈앞에 바람개비처럼 빙빙 돌기 시작하는 성검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성검 퇴치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노의 군단에서 통용되는 성수가 담긴 통을 품안에서 슬쩍 꺼냈다.

"이걸 사용해버릴 거예요."

- 그게 뭔데?

"마액."

메어리의 뒤에 있던 라임이 전전긍긍하며 행여나 누가 보고 있을까 침을 꼴깍 삼켰다.

"마나포션이죠. 원료는...뭐 알 필요없고."

발광하던 성검이 유리병 안에 찰랑거리는 마액을 보자 그대로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 그, 그걸로 뭘 하려고!

"순순히 여기에 처박혀있지 않으면...."

메어리는 성검을 붙잡으려는 듯 웃으며 마액이 든 병을 흔들었다.

"제가 당신의 주인이 되어서, 매일매일 뿌려버릴 거예요. 검신에."

========== 작품 후기 ==========

지금까지 나온 성검 리스트

성검 타우러스 - 시련의 석상(★★★★★) 1:1 승리

성검 아리에스 - 1인 전승.

성검 비르고 -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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