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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비만 오크-358화 (358/800)

나 혼자 비만 오크 35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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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

나는 방패를 든 오크 사이로 달려드는 인간 병사의 명치를 차버렸다. 피가 섞인 침을 토하며 인간은 뒷걸음질쳤고, 그 사이 나는 몸을 슬쩍 옆으로 비틀었다.

새애액--!

내 목을 스치듯이 날아온 바람화살이 인간 병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병사는 핏발이 선 눈으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4인 1조! 방패병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인간 놈들 무조건 요격해! 구멍을 지켜!"

두 명의 방패병이 앞에서 방패를 우직하게 들고, 다른 두 명이 칼과 해머 등으로 방패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려는 병사를 때려잡는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구멍 속에서 적이 스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쿠키엘프들이 일제히 바람화살을 쏜다.

파바박!

막대한 관통력의 바람화살이 인간 병사들을 꿰뚫었다. 또다시 명중. 관통력에 마나를 쏟고 집중하느라  1분에 한 발 정도밖에 쏘지 못했으나, 착실하게 쌓여가는 시체에 토벌대는 쉽사리 진격하지 못했다.

"큭...!"

적의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단장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현명한 선택이다. 던전은 말이 다니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니까.

"이 놈들--!"

추상같은 호령과 함께 기사단장은 창을 들고 정면으로 달려왔다. 그녀의 창이 노리고 있는 끝은 공교롭게도 나.

가장 강한 마물을 쓰러뜨리는 게 대다수의 마물과 싸우는데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 기사단장은 내가 이곳의 마물 중 가장 강한 존재라고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했다.

"바라던 바다!"

나는 빠르게 손가락을 서로 스쳐 문신을 활성화했다. 근력, 지구력, 인내심을 모두 강화하고 혈류를 가속화하며 토마호크의 자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야!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해?!"

직접 발로 흙을 밟고 달려오는 일점 찌르기. 나는 흔들리지 않는 창끝을 향해 토마호크를 겨눴다.

조금이라도 빗겨나가면 죽는다. 나의 죽음은 곧 군단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여기서 죽으면 나의 여자들이 낳는 나의 딸들을 볼 수 없다. 나는 전신의 근육을 폭발시키 듯, 토마호크를 휘둘렀다.

"우오오오!!"

카----앙.

말고 청명한 소리가 울렸다.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에 나는 웃었고, 기사단장은 표정이 굳었다.

"이름이 뭐지?"

"...레비즈 안. 여신교 교단 성기사단의 단장."

"이름이 참.... 흐흐, 좋다. 나는 분노의 군단 군단장이다. 이 던전의 주인이지."

"이쪽에서 이름을 밝혔으면 그쪽에서도 이름을 밝혀야 하는 거 아닌가?"

"미안하지만 내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내 침대에 들어온 여자 뿐이라서."

대놓고 지른 섹드립에 레비즈 단장의 표정이 굳었다. 찌푸려진 눈가에는 짙은 모멸감이 가득했지만,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토마호크를 겨눴다.

"너는 강하다. 나와 호각이거나 그 이상이지."

강자는 서로 일합만 주고받아도 상대의 경지를 알 수 있다. 나와 레비즈는 서로 한 번 공격을 주고받았음에도 서로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의 지원이 없어도 이정도는 감 잡을 수 있지.'

5성. 루나와 거의 엇비슷한 수준의 강자. 하지만 전투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 듯 보였다.

"보아하니 스펙과 신성력으로 적을 무참히 때려잡는 모양인데...나한테는 통하지 않는다!"

"글쎄."

레비즈의 창끝에 은은한 신성력이 맴돌기 시작했다. 루나보다는 훨씬 못한 수준이었지만, 찔리면 몸이 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내가 나서서 막기를 잘했군.'

괜히 오크들에게 나서라고 시켰다간 방패와 함께 모가지가 꿰뚫렸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라스베가스에서 얻은 가장 좋은 재질의 무기였던 토마호크도 일격에 날이 살짝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버틸 수 있다. 버티지 않으면 입구가 뚫려 던전의 중추가 위협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우리 군단 전체가 큰 위험에 빠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그래...내 자지가 긴 지, 네 질이 깊은 지는 직접 쑤셔봐야 아는 법이다."

"천박하기 짝이없는 마물이군."

"꼬우면 죽여보던가."

"안그래도 그럴 참이다. 네가 진짜 던전 주인이라면 너만 죽이면 끝나겠지. ...그 전에 하나 묻겠다."

레비즈는 내 뒤의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창으로 가리켰다.

"너희들이 데려간 포로들, 아직 살아있나?"

"......."

레비즈의 뒤에 칼을 부들부들 떠는 병사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내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지가 우리에게 포로로 붙잡힌 이들이리라.

죽였다고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살아있다고 하는 게 좋을까.

'적을 도발하고 판단력을 흐트리는 방법이 제일 좋겠지.'

나는 씩 웃으며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로 쑤셔넣었다.

"살아는 있지. 아아, 아주 잘 먹고 있다. 우리 오크들이랑 하피들이 아침이고 밤이고 정말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단 말이지...흐흐."

"역시 살아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이군."

레비즈 단장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창대를 붙잡았다. 뒤에 시립한 병사들 또한 핏발이 선 눈으로 우리 군 전체를 노려보고 있었다.

'멋대로 생각하라지.'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적당한 은유와 감언이설만으로도 저렇게 적을 동요시키고 흥분시킬 수 있지 않은가.

"뭐 어떠냐? 죽이는 것보다는 낫지. 흐흐, 아주 잘 하더구나. 죽음이 두려워서 '제발 저를 맛있게 먹어주세요...'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아직도 인상적이다. 흐흐."

나는 실실 웃으며 손으로 아랫도리 쪽을 살짝 튕겼다.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이 개같은 마물 새끼들!!"

문제는 그 도발이 너무 잘 먹혀, 적의 사기를 드높여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봐줄 필요 없다! 여신의 이름으로 저 간악한 무리를 토벌하라---!!"

"""여신의 이름으로!!!"""

적당히 간만 보던 토벌대가 순식간에 우리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방패의 앞으로 뛰쳐나가 오크들에게 소리쳤다.

"작전대로 후퇴---!!"

내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오크들은 꽉 붙들어잡고 있던 방패에서 손을 떼고 던전의 입구로 달려왔다. 나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가 전방을 향해 토마호크를 휘둘렀다.

부---웅!!

레비즈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창을 찔러올렸다. 자루를 노리는 창날에 나는 도끼를 빙그르르 돌려 창의 궤적을 피했다.

"무슨 꿍꿍이냐!"

"전장에서 작전을 적에게 까발려주는 멍청이가 어디있냐! 알고싶어? 내 침대로 와라! 어떻게 쑤셔줄 지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쳐주마!"

"더러운 마물 같으니!"

레비즈는 얼굴을 붉히며 창을 회수해 다시 찔렀다. 이번에 노리는 것은 나의 발바닥.

"느려!"

나는 이미 진작에 한 걸음 뒤로 뛰었다. 그 사이 이미 입구 근처에 서있던 오크들은 벌써부터 던전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파바박!

쿠키엘프들의 견제사격이 이어졌다. 연사를 위해 살상력을 낮춰 토벌대의 방어구에 막히기도 했으나, 그들이 오크들의 퇴각에 훼방을 놓는 건 충분히 방해할 수 있었다.

"도망쳐봐야 던전 안이다!"

"흐흐, 미안하지만 도망 끝났다!"

"뭐?!"

"짜잔!"

나는 던전의 입구에 서서 뒤쪽으로 들어간 오크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통로에서 가로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뒤에는 하얀 로브를 뒤집어 쓴 쿠키엘프들이 정면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다.

"저, 저게 무슨...!"

"20m 후퇴했다!"

나는 토마호크를 회수해 던전의 안으로 들어갔다. 오크와 엘프 혼성부대는 입구의 벙커를 버리고 과감히 통로를 틀어막기로 했다.

"우리가 뭐하러 너희들 전체와 싸우겠느냐! 흐하하!"

우리가 만든 저지선 너머는 입구에서부터 오른쪽으로 꺾는 삼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그 삼거리를 틀어막고 진을 쳤다.

"뭐...한 오육백 명 정도 데려온 것 같은데 말이다."

나는 좌우 폭을 가리키며 레비즈를 비웃었다.

"어디 여기 40명은 들어올 수 있을까? 손잡고 열춰서 들어와."

600명 토벌대가 한 꺼번에 들어오기에 던전은 너무나도 좁았다.

"차례대로 죽여줄테니까. 아아, 이것은 병목현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수가 많다고 한들, 그 인원 전부가 들어올 수 없다면 의미가 있을까.

* * *

라스베가스, 그리고 라스촌에서 전투가 지속되고 있던 그 시각.

메어리는 침착함을 가장하며 비르고 남작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 움직였다.

"예전에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우리 가문의 집사를 내 손으로 처단했다고."

"예. 분명 가문의 자금을 뒤로 빼돌려서 그랬다고...."

"그건 명목상의 이유야. 아, 물론 그렇기도 했지만 그는 이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지."

끼이익.

비르고 남작은 지하실의 문을 열었다. 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으나, 비르고 남작은 익숙한 손길로 램프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혔다.

"웁."

메어리는 실내에 가득한 시체더미에 코를 찡그렸다. 전부 생기가 뽑혀나간 듯 말라비틀어진 시체들은 구더기조차 끓지 않았다.

"......나의 조모, 나의 어머니, 그리고 나의 이복언니. 그들 모두가 이곳에서 죽었네. 바로 저것 때문에."

"......성검?"

메어리는 석실 한가운데 놓인 연분홍빛 검에 오한이 들었다. 분명 분홍색은 따스하고 화사한 색이건만, 저 분홍은 독버섯의 색처럼 사람을 현혹시키는 느낌이었다.

"오직 순결한 처녀만이 저 성검을 잡을 수 있지. 그래. 단 한 번도 남자의 손길을 타지 않은 여인만이 성검의 주인이 될 수 있어."

"자, 잠깐만요. 그러면 남작님, 이곳에 있는 분들은 대체...?"

"개죽음이었지. 내가 알아낸 것이거든. 〈성검 비르고〉의 주인이 대대로 여자였기에 다들 착각을 한 거야. 여자면 모두 다 되는 줄 알았던 거지."

비르고 남작은 쓰게 웃으며 성검을 보관하는 유리 케이스를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나의 선친도 나를 성검의 주인으로 만들려고 했었지. 성검이 있으면 자연히 우리 가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래서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네."

"......."

메어리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비르고 남작은 유리 케이스를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 가문의 더러운 피는 당장이라도 지워버리고 싶지만...남작 가문의 이름은 이어져야 해. 천년 역사의 비르고 남작령은 후세까지 이어지고, 거기에 더 나아가 최소 백작위까지는 올라가야겠지."

비르고 남작의 눈에 귀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메어리 양, 부디 그대가 우리 가문의 일원이 되어주시게. 가신이 아니야. 나의 동생, 또는 나의 후계자가 되는 거지."

"그건...."

"부디 성검의 주인이 되어주시겠는가?"

"......설마 저한테 안 박으시려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습니까?"

".....훗."

남작은 겸연쩍게 웃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메어리는 어수룩한 동성애 취향의 남작을 이용해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남작 또한 메어리를 이용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던 셈이었다.

"만약 제가 성검의 주인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하시려고 했습니까?"

"성검의 주인이 되기를 거부...한다고? 어째서!"

남작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메어리에게 달려가 멱살을 붙잡았다.

"왜 성검의 주인을 거부하는 것이야!"

"그야 저는 처녀를 바치기로 약속한 분이 있으니까요."

메어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남작을 밀쳐냈다. 그에 남작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메어리에게서 물러났다.

"나, 나를 속였어! 나는 너를 사랑했는데!"

"성검의 용사가 될 메어리를 사랑하신 게 아니고?"

신랄한 메어리의 말에 남작은 인상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걸 눈감아줬는데!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상단을 들였고, 공공외설을 일으키는 것도 봐줬어! 그런데 어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미안하게 됐네요. 제가 마냥 착한 사람은 아니라서. 후후, 이건 '꽃뱀'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 이건 그 분 말씀인데. 음...그러니까 미인계라고 해두죠."

".....메어리! 그대가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나는 그대의 입을 강제로 닫게 할 수밖에 없어!"

본색을 드러낸 메어리에 남작 또한 본색을 드러냈다.

"너는 성검의 존재를 알아버렸지. 내 신뢰를 배반해버렸어! 올라가는 즉시 기사를 부를 것이야!"

"그걸로 저를 귀족 모독죄로 죽이시려고요? 죄송한데, 저 마법사에요."

"하지만 나는 귀족이다! 귀족을 죽이고도...무사할...."

움찔.

비르고 남작은 메어리의 치마 아래에서 꿈틀거리며 흘러나온 점액 덩어리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가 소환수라고 데리고 다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메어리를 너무나도 닮은 인간형의 슬라임이었다.

"소개할게요. 제 엄마에요. 이름은...'라임'."

"인간, 안녕."

"미...미친...!"

비르고 남작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소리쳤다.

"그걸로 나를 협박할 셈이야?! 소용없어! 나와 너 둘 만 있는 걸 온 세상이 다 알아! 나를 감금하거나 죽이면 네가 바로 의심받을 거야!!"

"아뇨. 의심을 받을 수 없죠."

메어리가 손뼉을 쳤다. 그러자 라임의 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곧 비르고 남작이 너무나도 잘 아는 모습으로 변했다.

"하녀장...!"

"제 어머니는 먹어치운 상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답니다."

"비르고 남작...잘 먹겠습-"

와장창!

남작은 유리케이스를 부서버렸다. 백옥같은 손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유리 파편이 가득 박혔으나, 남작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 더러운 흑마법사 년! 내가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네년에게 먹힐 바에는-"

덥썩.

비르고 남작은 성검의 자루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이 버지나니야가 성검의 주인이 되겠어---!!"

우우웅---

분홍색 빛이 성검으로부터 은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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